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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 생각과 행위가 모여 거시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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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455회 작성일 21-07-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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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알은 하나 둘 셀 수 있어 분명 물질인데, 물은 셀 수가 없으니 물질이 아니지 않는가? 물질이라 불리는 것은 최종적으로  분자, 또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액체와 기체를 혼합한다는 것은 분자가 섞인다는 것이다. 흑백의 바둑 알이 섞이는 것과 액체와 기체가 섞이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는 같은 것이다. 바둑알은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고 셀 수 있는데 비해 분자는 너무 작아서 집을 수 없고 셀 수 없을 뿐이다. 

개구쟁이가 장난치지 않는다면 바둑알은 놓인대로 백색은 백색대로 흑색은 흑색대로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분자는 스물네 시간 끊임없이 운동한다. 단순한 고체인 경우에는 구성 요소인 원자가 심한 진동을하여 이리 저리 휘청거리지만 멀리 가지는 못한다. 물질을 녹힐만큼 고온이 아닐 때에는 물질들이 혼합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액체와 기체 분자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물에 잉크를 섞을 때나 산소와 질소를 혼합할 때도 어떠한 힘의 도움도 없이 저절로 섞인다.  설탕과 소금은 되로 양을 잴 수 있는 고체의 물질이고, 혼합시키려면 손으로 잘 섞어야 한다. 액체와 기체처럼 분자 크기로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덩어리(크기가 1mm의 100분의 1정도)로 섞인다. ‘섞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현상이다. 물질은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입자들의 성질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미시적 물리학이라 하고 이에 반해 물은 어디까지나 유체이며, 최종적인 입자까지 생각하지 않고 물의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거시적 물리학이라 한다. 

거시적 입장은 00C와 1000C의 물을 섞으면 500C의 물이 된다는 식의 현상적인 설명이고, 두 종류의 분자가 뒤섞여 어쩌구....하는 것은 이미 미시적 영역까지 들어간 것이다.

 고전물리학은 모두 거시적 입장에서 자연현상을 보아 왔는데 분자, 원자가 발견되자 미시적 물리학이 급속히 발달했다. 미시적 물리학의 주역인 분자, 원자는 아주 불규칙한 운동을 한다. 만일 이 입자들의 운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맥스웰의 도깨비인 우리의 마음 뿐이다. 

거시적 입장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비록 작심삼일로 현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지만, 미시적으로는 무엇을 이루겠다는 그 한 번의 결심만큼 달라져 있는 것이다. 참선이나 염불 기도도 똑같은 것이다. 등산을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저녁 예불에 참석했을 때 그 한 번의 예불이 현상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지고 오지 않았지만 미시적으로는 한 가닥의 불심을 마음 깊숙히 심어 내 자신을 수 천억분의 일만큼 변화시켜 놓은 것이다. 비록 내가 인식하지 못한다 하드라도 미시적인 변화가 수 천만년 쌓이면 거시적으로 변화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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