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존재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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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8-03 15:08 조회 17,786 댓글 0본문
제30강 제 팔식 존재의 증명
제 팔식은 대승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존재의 증명에
대해서도 대승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먼저 ‘대승아비달마계경’에 보면 무시시래계無始
時來界 일체법등의一切法等依 유비유제취由比有諸趣 급열
반증득及涅槃證得이라. 제 팔식은 무시이래로 일류상속해
서 일체 제법에게 인이 되며 또한 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이 식은 능히 일체 제법의 인연이 되기 때문에 유정의 유전
과 환멸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성취했다 해도 이 식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해심밀경에서는 아타나식기심세阿陀那識其深細 일
체종자여폭류一切種子如暴流 아어범우불개연我於凡愚不開
演 공피분별집위아恐彼分別執爲我라. 제 팔식이 일체의 종
자를 집지해서 제법을 현행을 시키는 것이 매우 깊으므로
부처가 중생에게 개설치 않는 것입니다. 만약 개연하면 중
생은 그것을 실아라고 잘못 집착하기 때문에 개설치 않는
것입니다.
견성을 한 사람이 요즘 사람들에게 권하는 말이 ‘천년도
래당천래千年到來當千來’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소리가 아
닙니다. 그것이 인이 되어 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는 것은 견성입
니다. 어떤 농부가 농사짓다가 저 산에서 토끼가 내려와서
암놈 숫놈이 농부 옆에서 죽었다고 ‘천년도래당천래’ 하면
안됩니다. 옛 사람이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는데 사람
마다 체질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먹어 어느 정도 나았다
고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견성성불
해도 나는 복잡합니다. 병이 있어 이 약 저 약 다 먹었으면
난 죽었을 것입니다. 체질이 다른데 어떻게 다 똑같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체질은 다르지만 잘만 하면 깨칩니다.
진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집을 가지고 하면 공부가 안 됩
니다. 아집을 놓고 해야지 아집을 그대로 둔 채 공부하면
‘천년도래당천래’라는 이 소리가 해로울지도 모르겠습니
다. 이것과 같은 소리로 ‘탁’ 치는 것입니다. ‘틀렸다’ 하는
것은 여러분 몸은 마음의 찌꺼기란 것입니다. 조갱이라고
하는 것은 국맛을 보는 것으로 정성으로 해야 됩니다. 조갱
은 임금이 백성을 조정할 때 국맛 조정하듯이 백성을 조정
한다는 뜻입니다.
복숭아와 매화의 이야기를 할 때 복숭아가 매화 되었다
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복숭아일 때 무명 속
에서는 깨는 기운이 없습니다. 무명 속에는 깨는 기운이 없
기 때문에 복숭아를 무명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복숭아와
부처님이 깨는 것은 다릅니다. 즉 성불하는 것은 다릅니
다. 복숭아가 매화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여
러분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제 부처님은 북방에
서 공부 안 하고 따뜻한 남부지방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찾
아갔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을 전파하러 간 것입니다.
하늘이 잘 하고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진해서 화복
禍福을 구하는 것이 불교의 윤리입니다. 중동지역에는 하
느님을 있다고 가르칩니다.
매실에서 매화가 나온 것은 맞고 복숭아에서 나왔다는
것은 틀린 소리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선생님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착한 제자
는 착한 일 받고 우리가 하는 일은 고행이 아닙니까? 똑 같
은 뜻으로 고행을 해서 락을 받는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
니다. 스승이 대답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고행을 해서 락을
받는 것은 복숭아에서 매화가 나오는 소리와 다릅니다. 이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매화를 보고 부처님이 도
를 깨쳤다는 소리가 전혀 이익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
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에게는 당치 않지만 가난한 사
람, 밥 못 먹는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것에도 이익이 있단
말입니다.
조조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적군을 치러 가는데 군
인들이 목이 타서 더 이상 행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러자 조조가 능선만 넘어가면 매실 밭 수천 평이 있는데 빨
리 가서 매실을 따먹자고 군인들을 설득하여 진군을 했다
는 것입니다. 매실 나무의 소리가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 소
리가 그 소리 같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한테는 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욕계, 색계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입니다.
여기서는 팔식, 칠식이 어떻게 작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책
291페이지 아뢰야식에서도 삼위三位가 나왔습니다. 일
一위, 이二위는 유루有漏이고 제 삼위는 무루無漏입니다.
294페이지 11절을 읽어보면 이교二敎와 육리六理를 잘 알
것입니다.
요경능변了境能變
전육식과 제 육식이 다르고 통通팔식과 제第 팔식이 다릅
니다. 제 팔식 할 때는 여덟 번째 제 팔식이지만 통팔식은
전부를 묶어 놓은 것입니다. 도표는 칠단이 있는데 여기서
는 단이 줄어 9의義가 되었습니다. 앞의 2종의 능변은 종종
으로 차별이 되어 일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
문을 일문으로 차별합니다. 안근으로 보아 색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가져가도 안식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의근득명依根得名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근은 이근
이 인지할 수 있는 인에만 통합니다. 귀로 듣는 것밖에 못하
는데 벌레들은 우리만 못하여 촉각 하나만 가지고 눈, 귀를
대표합니다. 중생이 사는 것을 보면 각자가 다 다릅니다. 바
다에 가면 새우 처럼 생긴 것이 침이 없어도 다른 생물을 뜯
어먹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 놈은 소와 뱀의 피를 빨아 먹으
니 침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물정을 저
승에서는 못 써먹습니다. 하나를 깨달은 사람은 듣는 것이
마음이고 보는 것이 마음으로 생명이 하나임을 알아요. 밥
먹는 생명 따로, 옷 입는 생명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겨 제 2절에 보면 체와 용의 자성은 체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 육식에서 눈은 모양을 구별하고 귀
는 소리를 구별합니다. 경계를 아는 것은 관여하는 것으로
상을 삼기도 합니다.
제 3절에서 삼성분별은 선, 불선, 무기를 이야기하고 있
습니다. 또 제 4절에서는 전육식에 대해 상응하는 것은 심
소라고 했습니다. 심왕은 몇 개입니까? 전육식 여섯 개와
말나식과 아뢰야식으로 심왕은 여덟 개인데 심왕에 상응하
는 것이 심소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전육식에서 심왕에 상
응하는 심소는 51개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요경식了境識
이라고 합니다. 요경식은 전육식에서 요경하는 것입니다.
전육식이 요경하는 것은 제 팔식과 제 칠식에 비하여 수승
합니다. 그래서 전육식을 요경이라고 하는데 꺼끄러운 경
계로 추조한 경계라 합니다. 그리고 육위를 다섯 가지 종류
로 나눠서 이야기합니다. 육위는 변행遍行, 별경別境, 선
善, 번뇌煩惱, 수번뇌隨煩惱, 부정不定을 말합니다. 이것
이 수 즉 삼수와 상응하는데 너무 복잡합니다. 종자에서 이
런 것들이 나온 것입니다. 전육식이 한 번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은 ‘선, 불선, 무기’ 까지 공
부하고 나머지 부분은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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