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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29강 계계분별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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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035회 작성일 21-08-0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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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강 계계분별문(7)



제 7식은 계계분별문의 ‘수소생소계隨所生所繫’ 입니다. 

계계분별문의 수소생소계는 태어남에 의해서 얽매임이 된

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태어나는 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

다. 팔식이 태어나는 장소에는 아치, 아집, 아만, 아애 네 

가지 번뇌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몸이 욕계에서 나면 그 자

체를 말하는 것으로 팔식이 나는데 칠식은 자연히 매어지

는 것입니다. 칠식에는 사종 번뇌인 아치, 아집, 아만, 아

애에 얽메이게 됩니다. 어제까지는 태어나는 장소라고 하

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나는 장소가 이제 매

우 많습니다. 삼계가 태어나는 장소가 되는데 삼계를 세분

하면 구지로 나누어집니다. 지난 시간에 구지를 논했는데, 

아홉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지를 나누면 첫째는 욕계입

니다. 욕계를 다른 말로 오취잡거지라고 합니다. 

요즈음 내가 자는 방에 개미가 들어와서 같이 자자고 몰

려옵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이와 같이 오취가 서로 모여 

사는 곳이 오취잡거지입니다. 잡스럽게 사는 것을 뜻합니

다. 색계를 가지고 네가지로 쪼갠다고 했을 때 첫째가 이생

희락지離生喜樂地입니다. 이생희락지를 초선이라고도 합

니다. 왜 이생희락지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 인간들의 욕구

에는 성취하고자 함이 있어 추합니다. 성취하고자 함은 곧 

추하다는 말인데 또 장애가 많아서 고추장苦麁障이라 그래

요. 고추장 이것이 아주 탁하고 욕심도 많습니다. 이생희

락지에 가면 고니, 추니, 장이니 하는 것을 떠나버립니다. 

이것들이 떠나니 희락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즐거움이 생

긴다는 것입니다. 여윌 ‘리離’자 거기에서 약간의 희락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생희락지라 합니다. 

이선천으로 가면 정묘리精妙利라 합니다. 정미로울 ‘정

精’자 하고 묘할 ‘묘妙’자, 날카로울 ‘리利’자로 정묘리를 

희구하는 것입니다. 이선천에서는 정묘리를 구하니까 고와 

추와 장을 여의게 됩니다. 그래서 이선천을 정생희락지 定

生喜樂地라 합니다. 정생희락지에 정이 생기니까 또 이생

희락지보다 한층 더 올라가는 것입니다. 비로소 정묘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삼선천에 가게 됩니

다. 이희, 희락 이것을 또 여여진일보 할 때 이희는 여기서 

희락으로 좀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념청정

지捨念淸淨地라하여 자꾸 여여진일보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 염을 여의는 것을 사념청정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가

는 것이 순서에 맞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일보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선이지만 달마선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추

념해서 세념으로 자꾸 들어갈 뿐 무념까지는 못갑니다. 추

념에서 세념으로 가면 그칩니다. 초선천에 들어가기 전에 

욕계 육천이 있습니다. 욕계 육천은 우리가 색계 삼천에 올

라가는 사다리 노릇을 하는 곳입니다. 자꾸 올라가면 욕계

에는 육천이 있고 욕계 또한 색계와 합하면 십팔천이 됩니

다. 초선천에 삼천, 이선천에 삼천, 삼선천에 삼천으로 삼

삼은 구가 되는데 사선천에 가면 구천이 나옵니다. 무색계

에 가면 공무변, 식무변, 무소유, 비상비비상천이 있고 욕

계 육천하고 색계 십팔천하고 무색계 사천까지 모두 이십

팔천이 됩니다. 그러니까 소천에만 수미산과 같은 중심을 

둡니다. 수미산을 중심에 두고 모여있는 칠금산등을 소천

이라 합니다. 소천을 천개를 모아놓은 것을 소천세계라 하

고 소천세계가 천개 모이면 중천세계이고 중천세계가 천개 

모이면 대천세계라 합니다. 그런데 초선천만 하더라도 욕

계가 천개나 됩니다. 그런데 사선천 안에는 욕계가 마음 맞

는 것이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백억이라고 하는데 사

실은 만 단위가 됩니다. 숫자 영이 아홉 개인 것이 삼천대

천 세계가 됩니다. 이것을 한 불국토라 합니다. 즉 불국토 

하나를 대천세계라 하는데 대천세계가 열 개면 십삼천대천 

세계로 삼천대천 세계가 열 개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여

기 불국토에서 석가모니가 교화를 한단 말입니다. 내가 그 

화장세계가 있는 책을 가져 왔는데 운문사에서 강의할 때 

복사해서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받

았으면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 직지사에 이렇

게 건물을 지어놓으니까 써먹잖아요. 우리가 반드시 무엇

을 해놓으면 그것이 공이 있는 것입니다. 공이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내 소리도 들으면 대단치 않아도 성불할 때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무색계가 있습니다. 여기 사천이 또 나옵니다. 그

것은 다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하는 달마선과는 

다릅니다. 추념麁念해서 세념細念으로는 들어가되 무념無

念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세념에서 그치고 맙니다. 그러니

까 저 비상비비상천이라 하더라도 세념에서 끝이 나며 무

념까지는 가지 못합니다. 세념이란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번뇌망상을 자꾸 모아서 종자로 심은 것을 말합니다. 그것

이 자꾸 들락날락하면서 생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좋아하여 우리가 깨지 못한 무명으로 받아들이는 

종자를 다른 말로 식이라 합니다. 결국 식이 안 좋아서 야

단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 언제든지 윤회하는 것은 깨닫지 못

한 무명으로 귀신 모양으로 지내다가 변해서 자꾸 나온다

는 것입니다. 진여가 그 속에 들었다고 그랬습니다. 진여는 

그 속에서 지내는 동안 벌레가 되거나 사람이 되어도 그대

로 있는 것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느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윤회하는 것은 깨지못한 상태의 식인 무명이라 합

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원각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성

실성이 윤회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깨닫지 못한 것을 어

느 정도 받아서 전체적으로는 못쓰고 부분적으로 쓰는 것입

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체를 모르고 자꾸 돌아다니는 이유

입니다. 이 아뢰야식과 무명은 성불하는 과정입니다. 이것

이 뚝 끊어져서 사그라지면 부처가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

다는 것입니다. 저 귀신 눈에도 진여가 있다는 것은 모릅니

다. 오직 무명을 깨쳐 연기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달마선을 살펴보면 우선 두 가지가 모여 있습니다. 정과 

혜의 통칭이라 했습니다. 달마선에서 먼저 정과 혜를 해석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조스님이 유명합니다. 무엇을 

정이라고 하는가? 유식에서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

다. 문제는 육근과 육경입니다. 육근 육경이 자꾸 오고가

고 해서 고생을 합니다. 육근 육경 밖으로는 못 가봤다고 

했습니다. 육근이 육경을 반연하므로 밖에 있는 것이 능선

으로 한 곳에 딱 붙어야 됩니다. 그런데 갈라져서 문제입니

다. 근과 경이 나누어져 자꾸 실물처럼 되는데 성불하기 전

까지는 어디서 연기를 깨치는 가를 살펴봅니다. 깨닫지 못

해서 육근과 육경 속에서 반연하는 그것이 여기에 들어가

게 됩니다. 육근은 밖으로 나가고 육진은 밖으로 나가지 않

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이 여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들

어왔다가 또 나가기를 경계에서 왔다갔다 할 뿐 경계 밖에

는 못 나가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꿈 

생각이 일어나면 꿈 속에도 밖에 경계가 있고 외경이 있고 

내심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단지 꿈 속에서 경계와 꿈의 

근경이 왔다 갔다 했지 꿈 밖에는 못 나가는 것입니다. 무

명속에서 꿈 꾼 사람이 꿈 속에서 놀 듯이 육근이 정定이 

되지 못하고 육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육근과 육

경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왔다갔다했을 뿐입니다. 밖

으로 한 번도 못나갔습니다. 육근으로 합하든지 육경으로 

합하든지 하면 됩니다. 육근이 육경과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정定이라고 합니다. 여기 경계를 타고 앉아서 마음을 

내는 것은 진여심이 아닙니다. 반연한다는 것은 근과 경

이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안에 있는 육근이 밖에 있는 육경

을 끌어들여서 이놈이 가든지 저놈이 오든지 하나가 되어

야 합니다. 둘이 대립해서는 안 됩니다. 근으로 합하든지 

경으로 합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 할 때 경계만 남고 실체

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임제종에서도 같은 소리를 합니다. 육근이 육경과 합하

여 하나가 되는 것을 정이라 합니다. 근과 경이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육근이 육경과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은 진

여심이고 반연해서 두 덩어리로 상대가 되어 왔다갔다하는 

것은 망심입니다. 하나가 될 때 그것을 정이라 합니다. 그 

다음에 ‘심경이후무心境而後無’ 해야 심은 안에 있고 경계

는 밖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근경이라고 하는 것은 근과 

경으로 심경이라 쓰고 있습니다. 후무해야 ‘조감무흥照感

無興’이라, 심경이 후무後無해야 됩니다. 이것이 대립하면 

식이 됩니다. 화두를 들 때 심경이 후무해야 몸에 경계가 

없어집니다. 육근과 육경이 없어져 아무 것도 안 보이게 되

는 것입니다. 심경이 후무해야 능히 모든 일에 성심을 다하

여 화두를 드는 사람이 신信을 발 해가지고 근원자리로 돌

아가면 허공이 사라집니다. 실개소운 하는 것을 보아야 됩

니다. 상당할 때는 최소한 이런 경계를 체험해야 하는 것입

니다. 자꾸 망상을 따라 왔다갔다 하면 그것은 생사에 윤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화두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화두라는 소所가 따로 있고, 능能이 따로 있

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주관객관이 합해서 작용

이 되든지 화두를 따라가서 합하든지 화두를 떼어 가지고 

합하든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

는데 화두 드는 사람 따로 있고 드는 화두 따로 있으면 되

겠습니까? 

이야기가 자꾸 벌어지는데 옛날에 우두 법륭선사라는 사

람이 농서지방에서 토굴을 짓고 혼자 공부하고 있었습니

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보니 선사가 토굴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보았는데 며칠을 공부를 했는지 나오는 걸 보지 못

했습니다. 그런 우두 법륭선사가 도신대사를 한 번 만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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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랬는데 아예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즈음도 토굴을 

짓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무슨 망상을 부리고 

앉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천축사 무문관에 들어앉

아서 6년 동안 가만히 낮잠 자다가 나왔습니다. 아무도 간

섭하는 사람이 없어 낮잠 자기 아주 좋았습니다. 혼자 있

는 것이 참선 공부 잘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안되는 것

입니다. 대중하고 같이 있으면서 공부를 해야되는 것입니

다. 하다못해 도인이 없으면 오래된 뱀이라도 재주를 부리

는 것입니다. 뱀도 오래 되면 재주를 부리고 너구리도 오래 

되면 재주가 생기고, 개도 십 년을 키우면 사람이 자기를 

잡으려고 하면 알고 달아납니다. 닭도 삼 년 이상은 먹이

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닭 몸뚱이가 헛간에서 뱀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

도 십 년이상 살면 변한다는 것입니다. 도신대사가 하루는 

어느 곳을 지나가다가 거름 무더기 같은 곳에 그림자가 서

려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돌 무더기

를 지나고 물을 건너 봉진노전이라는 그곳을 일부러 찾아

갔습니다. 찾아들어가니까 컴컴한 굴 속에 나무 같은 것이 

있어서 쿡 쑤시니까 무엇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기 들

어앉아서 무엇을 하느냐?’ 하니까 ‘마음을 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신대사가 관觀자를 써서 ‘관하는 놈은 누구며 어

떤 물건이냐?’고 묻습니다. 물건이 있어 두 개로 나누어져

서 관하는 놈이 있고 관해지는 놈이 있는데 관한 놈이 어떤 

놈이며 심시하물心是何物고, 마음을 관하는 놈이 어떤 물

건인고? 하니까 콱 막혀버렸단 말입니다. 그러자 도신대사

가 다시 묻기를 여기 앉아서 누구한테 배우느냐고 하니 그 

수좌는 혼자서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혼자 공부해서 되

겠느냐고 꾸중을 하자 수좌가 대답하기를 공부를 배울려

고 도신대사를 아무리 찾아다녔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가 없었다고 하면서 혹시 도신대사 계신 곳을 아느냐고 묻

습니다. 그러자 도신이 바로 나다라고 하면서 도대체 여기

서 뭘 먹고 공부하느냐고 물으니까 낮이 되면 까마귀, 까치

가 가져다주는 과실 같은 것을 먹고 지낸다고 합니다. 남

천시에 있는 어떤 농막을 찾아가니까 미리 올 줄 알고 이놈

들이 생사를 꿰뚫은 것입니다. ‘까마귀 까치한테서 네가 상

을 받는구나. 까마귀, 까치가 잘 한다고 과실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너를 놀리는거야 이놈아. 알겠느냐?’ 그리고

는 떠났습니다. 도신대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까마귀 까치

가 과실을 물어다 주었는데 그 날부터는 아무것도 없었습

니다. 도신대사를 만나 화두를 제대로 알고 나니까 까마귀 

눈에 수좌의 모습이 안 보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원숭이 뿐

만 아니라 어떤 짐승의 눈에도 안 띄게 되는 것입니다. 이

런 공부를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도신대사를 일찍이 만났

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이것이 귀신한테도 

안 되는데 까마귀 눈에 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화두를 들

어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 하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를 들면 달마가 깨친 것과 조주고불이 깨친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만약에 머리가 아프든지 배가 아프든지 해서 약을 먹으

면 약기운이 병을 녹이듯이 화두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놈을 들면 이미 근경이 다 사그라집니다. 심경이 구경

이 되어 근과 경이 사그라지니까 환한 빛만 하나 뿐인 것입

니다. 환한 거울처럼, 거울에 먼지를 닦아놓고 발로 밟으

면 뿌옇게 됩니다. 거울은 있는대로 비추어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비추고 개가 있으면 개를 비추는 것을 ‘혜慧’라 합

니다. 조감무흥照感無興이 되어야 합니다. 화두를 드는 것

만이 공부입니까? 화두가 없을 때도 공부가 되어야 합니

다. 나중에는 화두가 근경에 남으면 그것이 밧데리가 되는

데 만약 우리 눈에 공기가 보여 돌처럼 보인다면 어떻게 돌

아다니겠습니까? 머리가 부딪칠까 봐 못 다닙니다. 그러나 

전부 공해 버립니다. 종자가 되지 않고 전부 공하기 때문에 

몸도 그렇게 됩니다. 공부가 처음부터 잘못되면 평생해도 

소용없고, 못 배우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인사의 백운 스님은 나이 60세를 넘어 장좌불와를 했

다고 자랑했던 스님인데 성철스님 밑에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좌하면 깨쳐야 되

지요? 몽둥이로 패든지 해서 고쳐 놓아야지 아무리 장좌불

와를 해도 소용없고 토굴 짓고 혼자서 아무리 공부해도 소

용없고 어두움이 없는 성자도, 도사스님이 되어 만나도 그

것은 외도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깨친 사람에게 인

가를 받기 전에는 외도이지 불교가 아닙니다. 그 동굴 속의 

수좌도 도신대사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제대로 사람 구실

을 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달마선에서 공부하는 것

은 소승에서 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내가 며칠 전에 여기서 선문염송을 강의했습니다. 달마

선에서 공부 잘 한 사람이 그 업보에 따라서 송한 것을 모

아 놓은 것이 염송입니다. 염송 강의를 할 때 첫머리에 미

리도솔래未離兜率來란 말이 나오는데 바로 석가모니가 도

솔천에서 내려왔다고 그랬습니다. 미리도솔래는 도솔천을 

떠나기 전에 이강왕궁已降王宮하여 이미 왕궁에 내려왔고 

미출모태未出母胎하야, 마야부인의 배 속에서 나오기 전에 

도인이필度人已畢이라, 중생제도하기를 다 마쳤다는 것입

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육식이나 칠식을 가지고 그것

을 따지겠습니까? 그런 소리는 ‘식’ 밖에 소리요. 식이 터

진 다음에 나온 소리인 것입니다. 둘째는 세존이 ‘견명성오

도見明星悟道’하였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밝은 별을 보

고서 도를 깨쳤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송’한 것이 

있는데 바로 염송입니다. 

예를 들어서 휴가를 내어 집으로 가는데 귀성길이 꽉 막

혔다는 이런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납월팔

일 새벽에 저 동천에서 떠 있는 별을 보고 마음이 탁 열

렸다고 했습니다. ‘인견명성몽변해因見明星夢辨解’라 하는 

것은 사람이 밝은 별을 봄으로 인해서 문득 꿈을 돌이켜 분

별에서 벗어났다고 하면 이해가 됩니까? 별을 보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밝은 별을 보는 것으로 인해서 견성했다고 하

면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을 보고 견성하는데 밑천

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십 년 장좌한 것이 헛수고

라고 했습니다. 깨치지 못하면 헛손질이니 십 몇년 못 깨고 

바늘 귀에 헛손질을 했단 말입니다. 장사할 때 밑천드는 것

처럼 말입니다. 바늘 꿰는 데 밑천 드는 것이 아니지요. 그 

놈 헛손질한 것이 원인이 되어 견성했다고 하면 말이 안 되

는 소리입니다. 밝은 별을 보는 것으로 인해서 견성했다고 

하면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재도개매千載桃改梅’란 천 년 묵은 복숭씨에서 매화

가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즉 천 년을 묵은 복숭씨에서 매

화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귀신 눈에서 진여가 연계

했다는 것인데 말이 안됩니다. 진여가 연기해서 중생이 되

었다면 나중에는 부처로 변했다가 다시 중생이 되라는 것

인데 그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꾼이 나무

를 보고 ‘어이쿠 도깨비다’ 하는 것처럼, 나무가 도깨비 되

는 법은 없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나무이지 도깨비로 보면 

망령이 되는 것입니다. 돌을 보고서 어이쿠 호랑이다 하는 

것처럼 돌이나 나무가 도깨비나 호랑이가 된다는 것은 아

닙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당체라 합니다. 그 물건이 그대

로 되는 것은 이치입니다. 이치 ‘치治’라는 것은 나무넝쿨

이 도깨비가 된 것은 아니지만 도깨비를 보는 밑그림이 된

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을 이치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착각을 하는 것은 되지만, 그것이 그 놈이 되는 것

은 아닙니다. 그것이 그 놈 되는 것을 가지고 진여가 연기

한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은 되는 것 같아도 진여

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진여가 변해서 중생

이 된다고 하면 틀린 것입니다. 진여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

니다. 유식의 종지인 진여는 벌레 속이나 사람 속이나 나무 

속에서나 절대로 변함이 없이 그냥 그대로 있다는 뜻입니

다. 밑도 끝도 없이 망녕이 덮였을 뿐이지 변하는 것은 아

닙니다. 이것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 언제든지 윤회하

는 것으로 원성실성은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그렇지도 않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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