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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32강 유식과 법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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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981회 작성일 21-08-0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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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강 유식과 법성게




대장간에 가 보면 묵은 쇠를 불에 달궈서 때리다가 물에 

담그고 또 쇠를 달구어 때리기를 반복합니다. 쇠똥은 다 빼

버리고 맑은 쇠를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삼베 짜는 것도 

삼을 이어서 베를 짜는 것입니다. 삼베 놓는 줄을 가지고 

그 놈 똥을 빼는 것입니다. 여러 번 중복해서 똥을 빼고 빼

는 것입니다. ‘연득심성’ 즉 깨끗한 것이 학 같다는 것입니

다. 몸 형상을 단련해서 얻으니까 깨끗한 것이 마치 학의 

모양과 같습니다. 살림살이를 보니 아무 것도 없고 병 하나 

갖다놓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송하천주영언경’이라. 소나

무가 일천 주나 되는데 살림살이가 병 밖에 없었던 것입니

다. 다른 소리는 없고 ‘운재청천수재병雲在靑天水在甁’이

라. 구름은 청천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대구 동화사에서 일본 사람이 훈련을 시켰

습니다. 그 때는 일본사람이 강의도 했습니다. 대구에 최

순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권상수 선생이 찾아와서 자꾸 

글을 써 달라고 하여 써 주었습니다. 그래서 권상수 선생은 

병풍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때 동화사 스님이 옆에 앉아 있

다가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 글은 

태전선사의 사제되는 약산스님 글인데 나도 강의하다 보

면 바꾸어서 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했더니 그럼 누구 글이냐고 동화

사 스님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건 태전스님 사제되는 약산

스님 글 아닙니까?’ 했더니 ‘아! 그렇구만.’ 권 선생님 같은 

분은 나보다가 아는 것이 몇 백 배인데 동화사 스님도 글을 

잘 하지만 착각을 할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권상수 선생에

게 모르는 것을 가르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착각할 수도 있

고 바꿔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법성게法性偈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로 뜻이 맞아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돈을 출자해서 주식 회사를 세웁니다. 

우리가 만나서 뜻이 맞아 무엇을 하려면 돈이 있고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추렴을 곡식으로 했습니다. 벼를 

몇 되 씩 거두어 뭘 해보는 것이 소위 계입니다. 여자들이 

계 하다가 계주가 도망가서 계원들이 망하는 경우가 있습

니다. ‘계契’자의 의미가 그런 뜻의 글자입니다. 사람들이 

출자를 해서 일도 하고 점심이라도 먹고 뭐 그런 것을 옛날

에는 곡식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서울서는 벼라 하고 경상도는 나락이라 합니다. 신라 때

도 농업이 많이 발달했는데 삼국유사를 보면 불국사를 지

을 때 복조란 사람의 집에 중이 탁발을 가니까 베 삼십 필

을 시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베 한 필에 곡식 삼십 석

을 줬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화폐가 없었습니다. 관리들

에게 월급을 줄 때도 곡식으로 대신 주었습니다. 그런 곡식

인 벼를 신라만 나락이라고 합니다. 신라 사람은 녹봉 주는 

것이 나락인데 신라할 때 ‘비단 라羅’자하고 녹봉 ‘녹錄’자

해서 처음엔 나녹이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변해

서 나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라 때 나록은 녹을 주던 

물건으로 알면 됩니다. 

장자에 보면 포정이라는 백정이 소를 19년 동안 잡았습

니다. 19년 동안 소를 잡았으니 길에 소가 지나가면 가죽

은 가죽대로 뼈는 뼈대로 나누어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글

을 오래보면 포정에게 소가 나누어져 보이듯이 글이 똑똑 

떨어져 보입니다. 말 뜻을 알고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기 

쉽습니다. 글을 볼 때 갈라져 보는 것을 과목科目이라 합니

다. 포정이 소를 볼 때에 갈라져 보이고 분해되어 보이듯이 

글도 그렇게 보이는 것을 과목이라고 합니다. 법성도란 마

치 소 한 마리를 두고 어디까지 머리고 어디까지 가죽이고 

심줄이고 뼈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성도에 대한 

과목이라는 것입니다. 법성게를 또 분삼分三이라 했습니

다.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지知이며 셋째는 행行으로 보

았습니다. 그리고 법을 둘로 나누는데 이 세상은 법성게 뿐

만 아니라 모든 법은 5위 100법이라고 했습니다. 심도 있

고 책도 있고 불상도 있어 그것들이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

다. 집에는 서까래도 있고 대들보도 있고 기둥 등 여러 가

지가 어울린 것이 집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법이라 해놓고 법 가운데는 보통 실상이라 하는데 실상

은 본모양입니다. 유식론에서 실상은 원성실성의 본질이

고 의타기성을 연기라고 합니다. 실상은 본질이고 연기는 

현상입니다. 겉모양은 연기이고 속 모양은 실상입니다. 부

처님의 45년 설법 가운데 21년 동안 설한 반야경은 실상

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본체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21년 

반야경은 ‘유심연기’라 하여 밖으로 육근 육경을 이야기 한 

것은 연기법입니다. 유식은 연기입니다. 진여는 실상이고 

파동으로 퍼진 것을 연기라고 합니다. 여기에 물이 있을 때 

물은 실상이며 물에 바람이 불어 파동을 일으키면 연기에 

대한 현상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파도는 연기이고 물 자체

는 실상입니다. 이것은 실상을 보자는 뜻입니다. 글을 보

면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

動本來寂’이라 했습니다. 뜻은 법성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

이 없으니 실상속에서 보면 본래 적적하다는 것입니다. ‘무

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그 자리는 이름도 없고 모양

도 없어 일체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증지소지비여경證

智所知非餘境’ 알고보면 실상 그대로입니다. 실상이라 할 

때 보통 중생들은 분별하여 팔식으로 알며 증지證智는 부

처님이 가지는 평등지입니다. 증證한 지智는 부처님이 가

지는 것으로 보살들은 증한 지로 알지만 보통 우리들이 아

는 것과는 다릅니다. 증득한 지혜로 알 뿐이고 나머지 경계

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상에 대해서 능연과 소연을 논한 것

입니다. 그러면 실상은 본체인데 연기에 가서는 소연과 능

연에 대해 나누어 보았습니다. 유식에서 능연은 팔식, 소

연은 5위 100법입니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라, 진여의 성품은 매우 깊어서 미묘합니다. 이것은 기신

론 연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유식연기에 가서는 망妄이 연

기緣起를 하고 진성은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승에서는 

이것에 진성이 연기한다고 했습니다. 연기법에 들어가면 

소연, 능연이 있는데 소연 가운데 능연기가 있고 소연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본래 적적하지만 적적하지 않고 동한 곳

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연기는 능연기로 진성자리는 심심

해서 본래 미묘합니다. 진성자리는 죽은 놈은 아니지만 죽

었다면 고꾸러져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자

리는 원성실성으로 자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연을 따라

서 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소연기는 능연기로 변해서, 즉 

실상이 변해서 5위 100법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연기를 둘로 나누어 보았는데 호상연기互相緣起와 차

제연기次第緣起라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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