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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36강 요경능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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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384회 작성일 21-08-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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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강 요경능변



상응수구문相應受俱門(6)


책 323페이지 다섯째 줄에 구기俱起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육식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육식

은 토를 달아야 합니다. 호법은 삼성이 구기한다고 하는데 

난타는 ‘삼성 불구기설’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삼성 구기

를 주장하는 것은 호법이고 삼성 불구기를 주장하는 사람

은 난타인데 난타학설에서는 육식을 삼성이라고 하지 않았

습니다. 육식이라고 하면 말이 안됩니다. ‘육식은?’ 이라고 

해야 합니다. 다시 책을 앞으로 275페이지를 넘기면 ‘심

소상응문(7)’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성유식론에서는 

대단히 중요시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심리학입니다. 

일반적으로 심리를 연구하는 것을 심리학이라 합니다. 심

리학은 보통 현상심리를 말하는데, 드러나는 것을 사용하

는 것을 현상심리라고 합니다. 유식에서는 심리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그 본질과 현상을 다 얘기하는데 일반심

리학에서는 현상만 이야기합니다. 

1절 능변차별문能變差別門에서는 앞의 이숙능변과 사량

능변은 그 식체識體가 오직 하나였지만 제 육식인 요경능

변은 식체가 종종으로 차별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로 차별이 됩니다. 2절 자성행

상문自性行相門에서는 제 육식의 성과 상을 설명하고 있습

니다. 자증분과 견분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이문으로 나

누었지만 요경으로서 그 의義가 친하므로 일문으로 든 것

입니다. 3절은 삼성분별문三性分別門을 설명하고 있습니

다. 요경을 통하여 선善, 불선不善, 구비具非가 먼저 나타

난다는 것입니다. 

315페이지의 도표를 하나씩 다 가지고 있지요? 요별경

식은 4절의 상응수구문相應受俱門을 보면 되겠습니다. 그

래서 지난 시간에 공부한 차별유육종差別有六種도 끝났고 

삼성분별문도 끝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육유六類을 공부할 차례인데 여섯 가지는 

변행遍行, 별경別境, 선善, 번뇌煩惱, 수번뇌隨煩惱, 부정

不定입니다. 51심소의 해석은 ‘성유식론’에서 정확하게 설

명해 놓았습니다. 초의 변행은 촉등이라고 그랬습니다. 촉 

하나 들고 그 밑에 넷을 등치했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배웠

습니다. 변행에 나오는 대의는 제 팔식을 배울 때에 이미 

다 나왔습니다. 촉의 오변행은 낱낱이 해석이 되었습니다. 

별경은 욕欲,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를 가리키며 변행

이라는 심소는 마음만 있으면 따라다니는 것으로 두루 행

합니다. 별경의 별자는 특수하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경우

에만 일어나는 심소이기 때문에 별경이라고 합니다. 욕과 

승해와 염과 정, 혜 다섯 가지는 별경이라 합니다. 식에서 

반연하는 일이 같지 않기 때문에 별경입니다. 사자事字는 

경계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소연경所緣境이 부동不同하

다’ 는 말입니다. 첫째는 욕, 승해, 염, 정, 혜 소연경이 부

동하므로 각각이 되는 것입니다. 승해를 내고, 생각을 하

고 정, 혜 전부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별경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총설은 다 한 것입니다. 오위, 육위라고 그랬

습니까? 그러니까 총설로서 심소는 변행과 별경과 선과 번

뇌와 부정인데 그것이 다 선에 응한다는 말입니다. 

초 변행은 앞에서 공부한 것으로 하고 차별경次別境은 

계속 나오는데 책 326페이지 셋째 줄에 별경에 대한 해석

이 잘 되어 있습니다. 별경 밑에 차별경次別境, 욕欲, 승해

勝解, 염念, 정定, 혜慧, 소연사부동所緣事不同은 도표를 

가지고 이야기 했습니다. 소연과 사에서 ‘사事’자는 경이라

고 했는데 소연경계와는 달라서 전기불 밖에 있는 경계입

니다. 사실 이것은 명언으로 명언심입니다. 하고자하는 것

은 마음속에 들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하는 

마음이 일어나 ‘돈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마음도 거기

서 나오는 것입니다. 명언심을 가지고 있을 때 경계는 여섯

가지인데 그 중에 다섯 가지로 다르게 나오는 것은 밖에 경

계가 다르기 때문에 속으로 다섯 가지가 생겨 나온 것입니

다. 별경 밑에 욕, 승해, 염, 정, 혜 이것을 따로따로 새기

는데 그 방법이 정확합니다. 

욕이라는 것은 성유식론에서 심소라고 하여 따로 새긴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심소는 가흔可欣, 가염可厭, 중용中

容 일체에 작용을 합니다. 소요경所樂境에 ‘요樂’자를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락이며 악이라고도 합니다. 악은 음악이

고 락하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요하면 좋아한다는 뜻입

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맹자에서

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다. 소요경에 대한 설명도 앞에서 했

고 희망으로 성품을 삼는다는 성용性用도 했습니다. 근勤

은 정진을 말합니다. 그리고 욕하는 것은 곧 욕을 딛고 정

진하는 것입니다. 가령 소욕이니까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저절로 안 벌어지니까 어쨌든 노력해야 됩니다. 노력

을 근이라고 하는데 노력하는 것이 밑천이 되어 업을 삼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문으로 된 것만 새겨 나갈 것입니다. 소요경에 희망하는 것

으로 성용을 삼고 노력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업을 삼는

다고 했습니다. 

승해라는 것은 승할 ‘승勝’ 자로 좋은 것만 승해가 아니

라 나쁜 것도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것이 됩니다. 나쁘다고 

생각을 하면 안 고쳐집니다. 공산당도 이념 자체만 보면 좋

은 것입니다. 부자들이 혼자 먹지말고 나눠 먹자고 하는데 

그것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 승해라는 것은 딱 좋다는 것

입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둥글다고 했습니다.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오는 하는 일이 따로 있지만 틈만 나면 망원

경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니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

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해 뜨면 망하게 생겼단 말입

니다. 그래서 갈릴레오를 잡아놓고 너는 하느님의 학설에 

반대되는 소리를 하니까 사형을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

러면서 너의 주장을 철회하면 사형을 시키지 않겠다고 합

니다. 사형장까지 잡혀가게 되자 일단은 자신의 학설을 부

인했지만 사형장에서 풀려나올 때에는 ‘그래도 지구는 돌

고 돈다’고 한 그것이 승해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나 나

쁜 것이든 간에 꼭 좋다는 것은 안 바뀝니다. 유식학설을 

잘 들은 뒤에 우리의 몸이 전부 뭉쳐 깨닫지 못했던 승해가 

나오면 경전을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전이 바탕이 된

다고 했습니다. 승해가 나오면 무슨 소리가 나와도 바꿔지

질 않습니다. 승해라는 것은 논문에서 선악 간에 결정을 해

야합니다. 인정하면 다른 이에게 안 팔리는 것입니다. 그

것으로 성용을 삼고 불가인전不可引轉으로 무슨 소리를 해

도 유혹을 당하지 않고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업을 삼는 

것입니다. 

또 증습경曾習境에 보면 증습이라는 것은 앞에서 공부했

던 습관이 종자되는 이야기가 기억납니까? 일찍이 익힌 것

으로 술 잘 먹는 놈, 노름 잘 하는 놈, 화투 잘 하는 놈 등

이 있었습니다. 증습경에서는 염하는 마음으로 하여금 명

기불망明記不忘이라. 마음으로 분명히 기록을 해서 잊어버

리지 않는 것이 염입니다. 톡톡 튀어나오는 것으로 염을 생

각하는 명기불망이라고 했습니다. 증습경에는 마음으로 하

여금 밝게 기록을 해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성용이라 하

며 이 성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는 정定이 잘 안됩니

다. 정定이라는 것은 물이 흔들거리다가 가라앉은 모양을 

보고 정이라고 합니다. 흔들리는 모양을 살랑거린다고 합

니다. 산란인데 빙빙 돌아다닙니다. 그러니까 천하를 빙

빙 돌아다니다가 정에 이르는 것은 조용하게 됩니다. 염불

을 해도 잘 안됩니다. 명기가 안됩니다. 과거때부터 종자

가 바가지 모양의 해골 속에 있는데 그게 증습경입니다. 그

것이 해골에 들어앉아서 요동을 하니까 잘 들리겠어요? 화

두를 들어서 정에 들어가려면 과거부터 쌓아놓았던 종자를 

가만히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되니까 마치 물이 흐

르는 힘에 의해서 옆에 것이 다 떠내려가 버리는 것처럼 됩

니다. 관세음보살을 생각할 때도 그 세력의 업력에 밀려서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지를 해야 하는데 ‘정념’인 바른 생각이 업력을 이기지 못

하면 산란합니다. 생각이 업력을 이기면 정이 되는데 식을 

따라 자꾸 흘러가면 지혜를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정신없

이 책장을 넘기고 나니 기억이 안나는 것입니다. 해석이 참 

좋습니다. 염念이라는 것은 정定의 바탕이 됩니다. 옆에서 

유혹을 해도 당하지 않습니다. 정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업

을 삼습니다. 소관경所觀境에 마음으로 하여금 온전히 흩

어지지 않는 것으로 성을 삼고 지혜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바

로 정입니다. 

혜라는 것은 소관경에 분별하는 것으로 성을 삼고 의심

을 끊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소연사부동所緣

事不同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소연사부동이라는 것은 오

종의 심소를 별경別境이라고 하는 소이所以를 보인 것입니

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락의 경계에서 욕을 일으키고 결

정의 경계에서 승해를 일으키며 훈습의 경계에서 염을 일

으키며 소관의 경계에서는 정과 혜를 일으킵니다. 일으키

는 소연을 달리하므로 반드시 별경에 대해서 일어나는 것

이기 때문에 소연사부동이라고 했습니다. 소연사에서 사事

는 경境의 뜻이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해석을 잘한 것입

니까? 동일한 것이 아니라 세 개가 부동한 것이기 때문에 

별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선善이란 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信과 참慚과 괴愧와 무탐無貪 등 3근과 근勤과 안安과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 등 열한 가지입니다. 

선에는 열한 가지가 나오는데 신信이라는 것은 실덕능實德

能에 낙욕을 해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성을 삼고 불

신不信을 대치해서 낙선樂善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 것입니

다. 성용性用은 심정心淨이라고 하여 자성청정심이고 능

히 상응의 심품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마치 수청주와 같다

는 것입니다. 수청주는 구슬 이름인데 탁한 물에 담그면 물

이 맑아지는 그런 구슬입니다. 수청주가 능히 탁수를 깨끗

이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시 나가서 본체를 말할 때 

실이라고 합니다. 본체에 가장 깨끗한 것이 있다면 아주 유

수한 작용을 덕이라고 합니다. 실덕능의 ‘능能’에는 사람들

이 스승을 말하고 또 보살 같은 재주를 가진 것을 덕이라고 

합니다. 능은 신통치 못하여 색이 있는 것을 능이라고 그래

요. 글씨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실체와 덕을 얻고 그 다음에 능력을 얻은 사람은 세 가지

가 다 좋은 것입니다. 사람으로도 좋은 것이고 사람이 아니

어도 좋습니다. 실덕능은 신의 의지처이고, 심인락욕은 신

의 인과입니다. 참을 인忍자하고 인정이라고 할 때 신이 나

고 낙욕하는 것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면 성을 삼아서 실신

을 하는데 실신은 마음을 맑히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마음

을 맑히는 것으로 실신 있는 사람과 실신 없는 사람의 생활

이 아주 다르지요. 불신을 대치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 것입

니다. 

참괴라는 것은 자법력自法力이라고 합니다. 자력은 속에

서 나오는 힘으로 그것은 자신을 존중하고 교법을 존중하

는 성용입니다. 법력이라는 것은 국가의 법률입니다. 유명

한 사람 가운데서 모범될 만한 것이 법입니다. 자법력은 현

인과 성인을 존경하는 것으로 성을 삼고 또 무참을 대치해

서 악행을 지식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 것입니다. 또 괴라는 

것은 포악한 사람을 경거하는 것으로 성을 삼고, 악행을 그

치게 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렇게 새겼는데, 두 가지를 잘못하면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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