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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38강 삼종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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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145회 작성일 21-08-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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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강 삼종자성



그런데 자세히 보니 뱀 같은 것이 술잔 아래로 쏙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잔에 어린 그림자를 뱀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천장을 쳐다보니까 활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활에 용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술잔에 비칠 때 뱀으로 보

였던 것입니다. 활에 그린 용의 그림자가 뱀으로 보인 것입

니다. 그 자리에서 용의 그림자를 땅바닥에 깔아버리자 뱀

이 일어나지를 못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눈으로 확인

한 그 바보는 병이 다 나아버린 것입니다. 노끈을 노끈으로 

알면 의타기성이고 노끈을 뱀으로 알고 일으키는 생각은 

변계소집성입니다. 

원성실성을 알고 나면 의타기성이 인연으로 된 것은 뱀  

같은 모양으로 실물이 아닌 것입니다. 실물이 아니고 헛것

이란 말인데 허망한 생각으로 몸이 시들어서 죽게 된 것입

니다. 아뢰야식에서 보면 허망한 생각이지 이것이 어찌 뱀

입니까? 몸을 생명이라 하는데 몸은 생명이 아닙니다. 자

그마한 오온의 그것을 가지고 자기라고 가장을 한 것입니

다. 허망한 생각에서 생긴 삼라만상이 실상인 것처럼 보이

듯이 뱀의 그림자를 보고 실물로 알고 병이 난 것입니다. 

활줄을 보고 뱀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원래 몸 속에 하나

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흙인 줄 알고 있으면서 하

나가 자꾸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소유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마치 맑은 공기가 하나의 기운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공

기 속에서는 기압이 하나이기에 맑은 공기뿐입니다. 이것

이 청정법신인 것입니다. 기압이 잘못되면 흰 구름이 떠 다

니는 것입니다. 고기압이 잘못되었을 때 구름이 되었지만 

고도가 달라져 기압이 달라지면 평지에서처럼 구름이 없어

져버립니다. 그래서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

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라. 이것은 어떤 기운이 떠서 

상황에 따라 구름이 되었다 없어졌다 하는 것입니다. 즉 어

떤 기압에서는 구름이 생겼다가 또 기압이 달라지면 구름

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압의 차이에 의해서 생명이 일어

나면 생야일편부운기입니다. 부운기에서 구름이 일어났습

니다. 허공자체는 구름이 생길 때 구름을 따라가서 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구름이 이쪽으로 흘러가다 저쪽으로 휙 

돌아가서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서장에서 아리따운 여인이 성동격서聲東擊西를 

합니다. 동쪽을 불러서 서쪽에 있다고 하는 것을 요즘은 

내가 서쪽에서 왔더니 나중에는 동이다하는 소리입니다. 

그 사람이 착각을 해서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는데 동이 바

뀌어 서쪽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또 깨달은 후 동으로 바

로 설 때에 서쪽이 변했던 것이 도로 동이 되는 것도 아닙

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진여는 변화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진여는 변화를 하지 않고 이 마음이 

변화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든지 

진여는 언제든지 그냥 있습니다. 중생이 되어서 벌레의 몸

으로 봤던 것을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것은 업으로 당긴다는 뜻입니다. 

다시 본문에 가서 들어봅시다. 변계소집성은 결국 노끈

인 줄 모르고 뱀으로 알고 착각을 하여 병 들었던 사람이 

그것이 뱀이 아닌 것을 아는 순간 병이 다 나아버린 것입니

다. 병원에 갈 것도 없이 뱀이 아닌 것을 알고서 그 자리에

서 병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심화心化가 돈성頓成이라, 병

이 있던 것이 다 빠져나가버렸습니다. 변계소집임을 아는 

순간 그 자리에서 병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변계소집을 이

해하는데 있어 십대 논사가 제 각기 의견을 달리 했습니다. 

옛날에는 나름대로 바램이 많은 것이 죄가 되어 오래 갔었

습니다. 자꾸 토론으로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토론이 

계속되고 논쟁이 계속 되면 그것이 지옥입니다. 이론이 많

기 때문에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론이 

많기 때문에 통석방난입니다. 


삼종자성三種自性


책 404페이지에 보면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에 대해서 

다른 학설은 놔두고 호법의 학설을 가지고 얘기한 것입니

다. 다른 것은 복잡해서 여러분이 들으면 아주 머리 아픕니

다. 변계소집은 삼종변계라. 변계소집성을 세 가지로 이야

기 합니다. 능변계能遍計, 소변계所遍計, 변계소집계遍計

所執計입니다. 변계 가운데 소변계와 능변계가 있으며 이

것은 변계소집을 하는 것입니다. 우선 소변계, 능변계, 변

계소집성에 관한 글은 놔두고 글의 내용에서 안혜가 변계

라고 하였습니다. 406페이지에 안혜와 호법을 설명한 도

표가 있는데 변계가 육근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이 번뇌입

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번뇌란 말입니다. 그래서 팔식

을 통해서 안혜安惠는 틀리기 때문에 전오식도 변계가 되

고 제 팔식도 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허물이 있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호법은 전오식하고 제 팔식은 허물

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허물은 칠식하고 육식 밖

에 없다는 것입니다. 도표에서 안혜는 아집, 법집이라 했

습니다. 분별기무명이 되어 전오식하고 제 육식, 제 칠식

이 있을 때에는 전부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구생이

라 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분별기는 이 세상에 몸

을 받아 삿된 스승과 삿된 벗을 만나면 물이 드는 것을 분

별혹이라 합니다. 구생혹俱生惑에는 전생부터 가져나온 것

이 있어요. 이 몸이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생혹俱生惑이라 합니다. 이 공부 처음 하던 날 내

가 얘기했지요?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

한테 배운 것이 잘못되어 평생 동안 가져간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금생에서 습이 된 분별혹입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

한테 들은 소리가 분별혹이 되어 지금도 하루 8시간 씩 자

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분이 좋아서 조금이라도 잠을 덜 자

면 아주 찝찝해요. 이 몸 받은 다음에도 전생부터 지닌 혹

이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독기가 보통이 아닌 구생혹

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생부터 노래 잘 부르는 얘들이 있

지요. 어린 것이 노래하는 것을 알고 노래에 따라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합니다. 

그것이 구생혹인데 한번 물이 들으면 바꾸기가 어렵습니

다. 난 이런 얘기를 신도한테 종종 합니다. 여기 와서는 이

런 얘기를 할 처지는 못되지만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꿈을 꿔도 되지 않습니다. 남자는 어디를 가던지 아기 낳는 

꿈은 꾸지 않습니다. 우리의 업 속에 든 것이 없어서 아기 

낳는 꿈은 안꾸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가요? 사람이 죽어 살이 다 

벗겨지면 어떤 것이 여자 시체인지 남자 시체인지 모릅니

다. 여자는 죽어서 뼈다귀와 살이 다 빠져버립니다. 여자

는 물에 빠졌을 때 위로 엎어져 떠내려 갑니다. 그렇다면 

저 나무와 바위 같은 것은 밑을 자르고 양쪽을 자르고 가운

데 속만 해서 두 개씩 잘라 놓으면 어느 쪽이 위인지 아래

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는 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아느

냐 하면 물에 띄워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나무도 여자가 

떠내려가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위로 갔던 그 성질

은 나무가 되어 썩더라도 위로 갔던 성질은 변하지 않기 때

문에 물에 담가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니 수행을 하

여 성불하기 전 단계인 비상비비상천까지 가야하는 것입니

다. 그래야 이 업이 제대로 벗겨진단 말입니다. 여간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 다시 책 404페이지를 보세요. 호법의 학설로 보면 유

피피변계由彼彼徧計를 능변계라고 합니다. 또 변계가 현상

으로 나타나는 것을 변계소집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변계

소집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종변계라고 하는데 변

계란 것은 마음은 능변계이고 소변계는 능변계로 판단을 하

면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무 끝 

부분을 쳤을 때 나무 끝 부분은 소변계입니다. 그러면 나무 

끝을 보고 변계라 하고 나무 끝을 못보고 다른 것으로 알아

버리면 그것을 사견이라 합니다. 정견을 바로 보는 것과 바

로 못보는 것은 상관이 있습니다. 외도 학설과 부처님 학설 

사이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학설만이 옳다고 보는 

사람의 눈은 능변계이고 또 나무 끝 부분은 소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있으면 바로 보이는데 태양이 없

어지면 어두워 못보는 것입니다. 나무 끝 부분에서 도깨비

가 나왔다 혹은 귀신이다 했을 때 나무 끝의 그림이 소변계

이고 보는 것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능변계입니다. 그 착각

으로 나무 끝 부분을 귀신으로 본다면 귀신이 그곳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소변계라 그래요. 변계해서 나온 것입니

다. 변계가 없는 사람이 보면 나무 끝 부분을 귀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은 소변계로 안보이는 것입니다. 

볼 때에 그릇되게 본 것을 변계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번뇌

입니다. 번뇌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나오는 변계는 소변계

이고 보는 것은 능변계이고 보고 착각해서 그릇된 것이 나타

나는 것은 변계소집성입니다. 이것이 유피피변계입니다. 이

것은 능변계인 것이 한 가지가 아니라 피피 두 가지를 중첩

으로 해서 이러쿵 저러쿵 변계하는 것이 소변계입니다. 나

무니 불이니 하는 여러 가지 종종물을 변계라 하는데 잘못 

보던지 잘 보던지 이 변계소집성은 알고 보면 자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데 없는 것입니다. 자성이 없는 것을 우

리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성은 무소유라 합니다.

의타기자성은 분별연소생이라고 하고 또 의타기를 내놓

은 말은 의타기성인 것입니다. 의타기, 인연소생, 인연법

으로 엉켜서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청법 즉 단청

이 자기자성을 분별연의 소생이라 하는 것은 의타기를 내

놓은 그것이 전부 분별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

면 능생법에다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의타기자

성에서 분별까지 나와 버리면 자성분별은 소생법인 것입니

다. 의타기를 나타낸 분별까지가 인연의 소생법입니다. 유

피피변계由彼彼遍計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 차변계소집此

遍計所執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까지는 변계소집의 상을 

내세운 것이고 의타기자성을 분별연 소생이라 함은 의타기

의 모양을 해석한 것으로 상을 해석한 것이며, 원성실은 어

피於彼에 상원리전성常遠離前性입니다. 이래서 원성실은 

변계소집성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것입니다. 원성실

성이 변계소집성 가운데 있어 묻히는 것입니다. 의타기성

은 원성실성을 덮는 인연입니다. 원성실성은 어피於彼라고 

그랬지요. 의타기성은 원성실성을 덮고 있습니다. 원성실

성은 의타기성에 덮인 인연입니다. 단청과 마찬가지로 원

성실성은 어피하는 것이 항상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의타

기성에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원성실성은 멀리 의타기성

을 떠난 성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부무기有覆無記에는 

의타기성이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대답하는 사람은 세 가

지가 있어야 설명이 된단 말입니다. 원성실성은 의타기성

을 항상 떠나 있습니다. 전의 성질은 단청처럼 알록달록 덮

어 놓은 것이고 뒤의 놈은 떠난 성질로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원설성과 의타기성의 체는 무엇입니까? 원성실

성은 본질이고 의타기성은 현상입니다. 사진을 찍는 현상입

니다. 현상은 본래 사람과 본질에서 사진이 되는 것으로 다

른 것도 아니고 같은 것도 아니라 불일불이라고 합니다. 그 

사진이 바로 본질의 현상이기 때문에, 또 그 형상이 사진이

기 때문에 둘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이고 사람은 사람입

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진은 무상한 

것으로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을 떼내면 원성실성이 됩

니다. 단청을 떼어내듯이 항상 단청을 떠나 있습니다. 단청

을 할 때나 하지 않았을 때나 항상 떠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의타로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의 관계를 이야

기한다고 했습니다. 의타로 더불어 나타나는 것은 의타기성

이고 의타를 떠나 나타나는 것은 원성실성입니다. 그러니까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말한다면 원성은 사람, 의타는 사진

과 마찬가지로 다르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 그 사람

의 사진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는 사진이고 하

나는 실물이므로 다르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습니다. 비유하

면 무상등성無常等性과 같은 것입니다.

이 물건을 해석할 때에 자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상, 

즉 모양이 다 다릅니다. 책상은 책상모양, 사람은 사람모양

으로 개체의 각각 모양을 자상이라 그래요. 분필은 분필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사람은 사람의 성질, 돌은 돌 성질을 갖

고 있는 것을 자상이라 합니다. 그럼 이 자상과 저 자상을 합

하면 공상共相이라 합니다. 사람이나 짐승 등 모양이 있는 

것은 무상하여 없어집니다. 모양 있는 것은 전부 무상해서 

없어지는 것을 공상이라 합니다.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자

상과 공상이 같습니다. 책은 변하고 마음도 변하므로 생기필

멸生起必滅입니다. 뚝배기와 같습니다. 사람도 뚝배기처럼 

만들어지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의타기성은 자상

으로 말한 것이고 원성실성은 공상으로 말한 것입니다. 공상

과 자상의 관계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일불이不一不

二한 것입니다. 비불견차피非不見此彼라. 원성실성은 시간

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성실성을 모르면 무상하

다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원성실성은 볼 ‘견’자를 두 번 보

지요. 비불견차피라. 이것을 보지 않고는 저것을 보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원성실성을 보지 않고는 의타기성이 무상한 

줄을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원성실성의 불생불멸하는 도

리를 모르고서는 겉으로 나타나는 의타기성이 무상한 줄을 

모릅니다. 근본지로 의타기성을 아는 것이 원성실성입니다. 

임상과 해부를 해도 선생이 있어야 하는데 모양이 없는 마음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선생 없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공부가 

익어 깨치고 나서도 선생에게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411페이지를 펴 보십시오. 제법에 이름한다는 것입니다. 

416페이지를 보면 도표가 나오는데 잘 된 도표입니다. 대

총상설에 보면 정유이무情有理無라, 정으로는 있지만 이치

로는 없는 것입니다. 착각으로 존재하는 의타기성은 가유입

니다. 인연이 있어 가아가 생기므로 생긴 것은 가유입니다. 

의타기성은 이것을 가지고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법에는 없지만 착각하는 것이 있어서 오해를 한 것입니다. 

호법이 가유란 것은 가유한 법체는 있는데 거기에 법이 아

닌 이름을 믿거나 가히 마음으로 집착할 만한 가집성, 가명

성 그런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의타기성에 가면 한쪽은 가

법, 실법으로 원성실성은 의타기성 속에 덮여 있으니까 속

은 실이고 겉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갈라 놓은 것

입니다. 의타기성이 삼종무자성이라는 것을 설명했는데 반

야경에서는 모두 없다고 했기 때문에 유식무경唯識無境이

라 하면 부처님 학설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것은 

표면으로 표전해서 설립하고 차전으로 삼종무자성을 설립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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