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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39강 명유식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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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163회 작성일 21-08-0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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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강 명유식위



삼종무성三種無性


지난 시간에는 삼성을 공부했습니다. 삼성은 앞에서 이

야기했고 차전으로 반야사상에서 제법개공이라 했는데 이

것을 삼무성이라고 했습니다. 삼무성의 변계소집성, 의타

기성, 원성실성을 총설로 상相, 생生, 승의勝義의 삼성을 

공적空的인 입장에서 의지하여 삼무성을 세웠다고 했습니

다. 반야사상을 본 틀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고불밀의

설故佛密意說 일체법무성一切法無性입니다. 삼성이 변계

소집성과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반야사상으로 

삼무성을 세웠습니다. 부처님은 반야경에서 육근, 육경,  

육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삼무성은 반야경설입니다. 원성

실성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이 상무성

相無性으로 변계소집성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변계소

생법은 인연소생법이니까 무라는 말입니다. 차무자연성次

無自然性이라는 것은 인연법으로 생겼지만 저절로 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후유원리전後由遠離前 뒤에는 소집아법

성所執我法性으로 원성실성입니다. 

이제까지는 유식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특히 유식상 저 

꼭대기에서 유식을 밝힌 것입니다. 이후에 유식상으로 이

야기 한 것은 앞에서 배웠던 승의무성勝義無性입니다. 승

의무성의 승의라는 두 글자에서 승자는 ‘수승하다’ 입니다. 

즉 수승한 지혜로 알 뿐 증지소지證智所知요. 무루지는 수

승한 지로 이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이 뒤에는 무루를 이야

기 한 것으로 무루지입니다. 무루지는 수승한 지智로 이는 

객관으로 부분을 이야기 하며, 법은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지智는 앞에서 아법을 설명할 때 아법을 여의면 나

오는 성질로 공이라 했습니다. 아공 법공을 하면 아뢰야식

의 실제가 없어집니다. 그 없는 속에 아가 들었고 법이 들

었습니다. 아와 법이 함께 공하여 무루지는 아공 법공의 소

현진여입니다. 아와 법이 공하여 무루인데 현상에서 아집 

법집의 두 가지가 덮쳐 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명유식성明唯識性


옛날 어떤 사람이 강가에 가니까 만경창파의 물결이 치

니 백로가 나타나고 파도가 고요하여 무파無波하니 청산이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물결이 고요해지니 만경이 나타나 

청산이 푸르더라는 것인데 파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는 

바람에 청산이 나타난 것입니다. 비가 그치니 무루지라. 

아집 법집이 공한 것이 반야경설이고 유식종지로 나아가면 

반야경지가 나가고 법화경에 가서 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

다. 아집 법집이 공하여 나타난 바 진여를 아직 이야기하

지 못했습니다. 법화경에서 드러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현상이라 했습니다. 유식상은 현상입니다. 명유식성

은 유식성을 밝히는 것으로 제법은 성이며 드러난 것입니

다. 유식성은 가라앉은 다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여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며 항상 여여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상여기성고常如其性故로, 그런 까닭에 상여기성으로 만물

에 유식성을 이야기 한 것이 맺어진 것입니다. 


명유식위明唯識位


유식성은 실상을 통하여 진여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다리를 건널 수 있습니까? 사다리로 올라가야 건널 수 있

는 것입니까? 이것이 자량입니다. 자량위는 삼현三賢을 이

야기하는 것입니다. 삼현은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을 자량이라고 합니다. 먼 길을 떠나려면 도시락을 싸야 하

는데 이것이 자량입니다. 여기서는 그 이름을 해탈이라 하

는데 삼현에서는 초지에 들어가면 그것이 증으로 유식성

이 됩니다. 삼현에서는 유식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량위

에 들어가면 비로소 유식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초지에 가

야 정기유식성正起唯識性입니다. 내지乃至라는 것입니다. 

내지는 십신에서 발심해서 가행위에 들어가기 전을 말합니

다. 내지는 십신에서 발심하여 식을 일으켜 유식성에 주하

기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유식성에 주하려고 애를 쓰

기 전입니다. 이것은 미기未起라 하는데 가행위에서는 구

주求住를 합니다. 내지는 가행위에 못 들어갑니다. 

가행위는 내지에 아닐‘미未’자가 들어있어서 주하려고 애

쓰는 단계입니다. ‘미’자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이취二取

가 섞이기 때문입니다. 이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취를 취

하는 것입니다. 견분한 능취, 상분한 소취, 실법으로 생존

하는 것, 또 이취를 취하는 것이 능취·소취·견분·상분

입니다. 이것은 곧 법으로 다 놓아야 합니다. 이취를 취하

는 것이 집착입니다. 거의 자량위까지는 내지 주하려고 애

쓰지 못하는 것으로 그것은 이취가 섞여 요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행위에 가서는 쉽지만 초지에 들어가면 이지

가 명합해서 그림자하고 형상이 합해지는 것입니다. 가행

위에는 아직도 이지가 명합이 안되지만 거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칠식이 팔식입니다. 토해놓은 본질은 5위 100법

입니다. 자기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바로 직접으로 진여를 관여하지 못합니다. 진

여는 눈이 사진을 찍어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진여인 본상

을 관여하지 못하고 사진 찍어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현전립소물現前立少物은 현전에 작은 사물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그림자 찍힌 것을 소물이라 하여 진여와 직접 명

합하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찍지 않고 반연하는 것입니다. 

현전에서 소물을 세워서 그림자를 진여로 보니까 참 진여

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진보고 진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매를 할 때 먼저 사진보고 하는데 실물은 아직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진을 보고 알지요. 그것을 현전에 소물을 세

워서 유식하게 하는 것으로 사진을 가지고 진짜라 하여 소

득이 있으면 진여에 합하지 못합니다. 아직 생각이 남아서 

무소득이 안되고 유소득이 되는 것으로 가행위까지는 유식

이 주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정에 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달위에 가면 이지명합二智冥合이라, 능증지의 지와 소

연지의 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능증지에서 밝은 

지혜가 나타나는 지와 소연할 때 소연지를 말하며 이 때 지

는 진여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루지가 소연의 열반자리에

서 보리가 열반을 대하는 것입니다. 소연에 가서는 지혜가 

도무지 소득이 없습니다. 소득이 없으면 비로소 유식이 주

가 되어 능취 소취가 떠나는 까닭입니다. 

수습위修習位에서 초지에 들어가면 무루지가 진여자리로 

등극합니다. 저 밑에서 무득이 되는 것입니다. 능취 소취

가 없어지니까 삐딱해서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

리와 열반이 한 덩이가 되면 비로소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그림자가 아니라 무득입니다. 무소득입니다. 범부의 지혜

로는 생각할 수 없고 그 자리에 가 봐야 아는 것입니다. 스

스로 맛을 봐야 아는 것입니다.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지 옆 

사람이 생각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득

의 출세간지입니다. 능취 소취를 여윈 까닭으로 전의轉依

를 지은 것입니다. 의타기성을 여의어 식을 없애 버리므로 

전의라 합니다. 여기에서 수습위를 설명하면 모여 있는 것

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법성게에서는 행이라 했습니다. 

수인을 닦는 것이 행입니다. 인을 닦는 것이 진수로써 그 

가운데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이라, ‘귀가에 분수

를 따라 자량을 얻는도다’입니다. 여기에는 초지에서부터 

십지까지 다 들었습니다. 불, 부사의 세간지와 출세간지 

등 그 속에 초지에서부터 십지까지 가는 것이 다 들어있습

니다. 초지에서 이지로 나갈 때 떠돌아다니다가 동거하는 

것입니다. 성덕은 지나가는 바람에 하나씩 사다리로 올라

간다면 아래층에서 올라가는 것만큼 보입니다. 성덕은 진

수에서 수가 위로 한 층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덕은 비는 

것입니다. 후일구의 진수라고 해서 나가면서 십지를 닦는 

것입니다. 이다라니무진보以多羅尼無盡寶라. 바로 성덕이 

되는 것입니다. 

십지를 지나면 정각正覺이라고 합니다. 묘각妙覺은 졸

업장 받는 것과 같습니다. 6학년 수업을 마친 것은 정각이

라 합니다. 묘각을 하려고 하니까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

中道床에 다 간 것입니다. 온 것도 없고 간 것도 없습니다. 

정각은 늘 하는 것으로 초지에서 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보니까 처음 그 집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

의 그 집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식이 다르고 참선이 

다르지만 아는 사람은 유식이나 참선은 같은 것입니다. 

구경위究竟位에 가면 승행을 닦고 번뇌장과 소지장을 모

두 끊어 보리와 열반의 2과를 증득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

루이며 계이며 부사의이며 선이며 견입니다. 또한 안락이

며 해탈입니다. 이제는 어딜 가서라도 ‘유식 강의를 들었습

니다.’라고 답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것이 명유식위이며 자

지법성自知法性이라고 합니다. 

다시 책장을 넘겨 461페이지에 통달위에 대해서 약시어

소연若時於所緣 지도무소득智都無所得 이시주유식爾時住

唯識 이이취상고離二取相故라 했습니다. 이 위의 보살이 

초지의 입심入心에 의지해서 무루의 정각을 발득하여 진여

를 체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475페이지를 보면 번뇌장

과 소지장의 이장二障을 끊어서 그 능단에 나가기 위함인

데 결국에는 뭉개버립니다. 결코 무분별지보다 여법한 것

이 아닙니다. 무분별지는 남고 여법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

란 말입니다. 

다시 494페이지 가운데 도표에 보면 위에서 서술한 삼신

이 나옵니다. 불신佛身을 자성신自性身, 수용신受用身, 변

화신變化身으로 나눈 것입니다. 불의 소변은 무루에 한하

지만, 유정의 소변은 무루지의 발득 여하에 의해서 유루가 

되기도 하고 무루가 되기도 합니다. 삼신 가운데 수용신을 

자自, 타他로 나누어 사신四身이 되며 또한 사토四土가 되

는 것입니다. 자성신이 사는 법성토, 수용신이 사는 자수

용토와 타수용토, 변화신이 사는 변화토가 그것입니다. 사

지란 수류응기隨流應機라 하는데 본문에서 수류응기라 한 

것을 그냥 써도 되는데 유를 닫고 기를 응한다는 소리입니

다. 즉 수류응기를 새긴 말입니다. 유를 따라 하지 말고 유

를 닫고 기에 응해서 새긴 것입니다. 유를 닫고 기에 응해

서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따라하면 떨어져버립니다. 그

래서 따라 하면 한 가지인데 이것은 둘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류를 따라하면 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수류응기라는 것은 곧 따르면 한 가지이고 따르지 못하면 

두 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회향해야 하는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여기에 주저앉으라는 소리가 아닙니

다. 유식은 목적지에 가는 응용물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가면 비행기에서 내려야 되지, 계속 비행기를 

타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유식을 보고 앉아 있으라는 것

이 아닙니다. 유식은 깨달음으로 가는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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