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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23강 이숙능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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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078회 작성일 21-08-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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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강 이숙능변



오수상응문五受相應門


지난 시간에는 팔단 가운데에 삼상문과 소연행상문과 심

소상응문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책 217페이지 오수상응문

을 할 차례입니다. 어제까지는 촉 다음에 작의, 수, 상, 사

를 공부했습니다. 심소의 작용이 51가지나 되지만 제 팔식

에 상응되는 것은 다섯 가지 뿐입니다. 수라는 것은 영납으

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납입니까? 

오근이 밖에 있는 오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입니다. 그것

이 애초부터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모양을 보고 좋으면 좋다, 싫으

면 싫다, 또 귀와 코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것이 문제입니

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에 감촉하는 것, 

다음에 뜻으로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데 우리 생각이 그 

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한 번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

든지 눈에 좋은 것만 갖다 대라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소

리만 들으려고 하고 조금도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코로 냄새 맡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기에 

너무 팔려 사는 것입니다. 그저 입에는 좋고 맛나는 것만 

갖다 넣고 몸에는 좋은 감촉만 갖다대려고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괴로워집니다. 관수시고觀受是苦라 수하는 것이 

고입니다. 행하는 것이 오정심으로 나가면 그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삼십칠조도품에 오정심五停心이라는 것이 있는

데 관수시고라고 했습니다. 받아들이는 것을 따져보니 즐

거운 것은 많지 않고 괴로운 것이 많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만 짐승과 벌레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입니다. 실제로 받

아들이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눈으로 보고 생각을 냈는데, 

그대로 안 되는 것이 고통입니다. 생각을 내어 부자가 되었

으면 좋겠는데 부자가 안 됩니다. 안 되는 그것이 고통입니

다. 생각한 것을 행동이 따라가지 못하면, 성취가 되지 않

기 때문에 고통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눈이 없었다면 꼴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귀가 없다면 듣기 싫은 소리도 

안 들을 것입니다. 

육식에 가면 온갖 것을 다 수하게 됩니다. 고도 아니고 

락도 아닌 것을 무기無記라고 합니다. 제 팔식에서는 그런 

복잡한 것은 다 못합니다. 다섯 가지 심소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 수가 있습니다.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

가 나오는데 오늘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을 오수

상응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육식, 칠식이 하

는데 그 중에 육식에 가면 오수가 있습니다. 상응문의 글을 

새겨보세요. 심소상응문에서 항상 촉과 작의와 더불어 상

응을 한다고 그랬습니다. 오변행심소는 항상 상응을 하는

데 책에는 상응에 괄호를 쳐놓았습니다. 상응을 두 번 해

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변행심소는 촉, 작의, 수, 상, 사로 

더불어 상응을 합니다. 오심소에서 특히 수만은 다른 심소

가 하는 식을 못합니다. 제 팔식이 받아들이는 것은 육식만

큼 범위가 넓지를 못합니다. 제 팔식이 상응하는 것은 오직 

사수 뿐입니다. 수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

다. 제 팔식의 상응은 오직 버릴 ‘사捨’자 사수捨受 뿐입니

다. 윤곽이 드러나지요. 

책을 한 번 보세요. 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알 수 있

습니다. 수라는 것은 눈으로 귀로 들어오는 것인데 핍박수

逼迫受와 적열수適悅受가 있습니다. 핍박수라는 것은 자기 

몸에 해로운 것, 핍박하는 것에 대하여 고감苦感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수苦受라고도 합니다. 적열수라 하는 것은 자

기 마음에 드는 것으로 즉 마음에 좋은 것을 말합니다. 처

음 보는 데도 마음에 들어 옆에 더 있고 싶어하는 그런 것

입니다. 제 팔식인 아뢰야식에서는 과거 종자를 식으로 훈

습을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해도 

매우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잔뜩 화가 나도 옆에서 아무 

소리도 안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엇으로 찌르

는 것처럼 따끔따끔한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따끔

거리는 사람이 옆에 오래 앉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식이 

있는데 그것이 적열수입니다. 진작 떠났으면 좋겠다 하는 

식은 핍박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연이란 참 이상합니다. 한 번은 강릉에 갔을 때 

강릉장 여관에서 며칠 있는데 밤에 잠을 자는데 새벽이 되

면 싸우는 소리가 들려요. 남편하고 아내하고 늘 새벽에 싸

웁니다. 남편은 직업이 운전수인데 낮에는 나가서 운전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 여자가 바가지를 긁어댑니다. 그

런데 남자가 그만 떠났으면 좋겠는데 못 떠납니다. 그렇게 

평생을 붙어서 바가지를 긁고 긁히면서 사는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나쁘게 인연을 모아놓으면 

결국에 가서는 만나 서로 주고 받았던 것을 다 갚게 됩니

다. 내외간에도 인연을 잘 지어야 됩니다. 인연 잘못 지으

면 큰일납니다. 

사수捨受라는 것은 비이수非二受라고 했습니다. 고수도 

아니고 락수도 아니고 중간치기 입니다. 몇 해 전에 신문에 

난 기사인데 충청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어릴 때는 여자아

이로 자라다가 사춘기가 지나면서 남근이 나왔습니다. 그

러면 남자가 되겠어요? 또 그 반대의 사람도 있었는데 아

무튼 성은 성분 성姓자를 씁니다. 남성, 여성, 여자도 남자

도 아닌 것을 중성이라 합니다. 무기라는 것은 남자도 아

니고 여자도 아닌 것처럼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이며, 

이것을 사수捨受라고 합니다. 악도 오분, 선도 오분 합해

서 사수라고 합니다. 또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니까 사수라

고 합니다. 사수을 핍박수에 가서 세분하면 고수苦受와 우

수憂受가 됩니다. 적열수에 가서도 락수樂受와 희수喜受로 

나누어 집니다. 사수는 중성이니까 마찬가지 입니다. 핍박

수에는 고수와 우수가 있는데, 여기서 우수를 취하고 적열

수에는 락수와 희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희수를 취하여 마

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즉 고수에서 우수를 취하고 락수에

서 희수를 취하여 심수心受라고 합니다. 핍박수에서 고수

와 적열수에서 낙수를 취하여 신수身受라고 합니다. 이것

은 육식이기 때문에 안이비설신까지는 몸인 색신입니다. 

뜻으로 아는 것은 앞에서 공부할 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육감이라고 할 때 고기 육肉자로 알면 안됩니다. 제

육감第六感은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육감이라 

합니다. 몸으로 피부로 느끼는 것이 아닌데 세상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는 것을 육감인 줄 알고 있습니다. 고기 육자

가 아니라 여섯 육六자입니다. 전오식과 전오근이 하는 짓

을 내놓고 여섯째에는 그것은 모양이 없는 것을 가지고 육

감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팔식이 상응하는 것은 비수非受

라 하고 사수라 해놓은 것만 사수라 했습니다. 이것은 드러

난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219페이지 도

표에 보면 전문이 다 나왔습니다. 인·천도 써놓고, 귀·

축도 써놓고, 지옥도 써놓고, 초선천, 이선천 해서 중간에 

구분을 했는데 이것은 세밀하게 나눈 것입니다. 이 정도 지

식이면 해석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강의하면서 설명한 것

은 이 책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제 3절 심소상응문에 대해서는 무부무기無覆無記등 팔식

에서 설명이 다 되어 있습니다. 제 4절 오수상응문에서는 

심소의 수의 행상에 우희고락사憂喜苦樂捨의 차별이 있음

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삼성분별문三性分別門


제 5절 삼성분별문에서 삼성이 나오는데 무엇입니까? 우

주만물을 나눌 적에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또 종교적

으로 따져서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루·무루는 철학

적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또 도덕적으로 따지는 것은 착하

다, 나쁘다 등 입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종교와 윤리는 다릅니다. 공

자의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윤리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되

려면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유교는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육신이 가지는 생명이 있는 동안 

남한테나 자신에게 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도

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했습니다. 오도는 앞에서 얘기

했지만 충서성경忠恕誠敬 그 네 가지 밖으로 나가지를 못

합니다. 그것은 이 몸을 가지고 사는 금생 동안에 쓰는 것

입니다. 금생, 전생, 후생을 삼생이라 하는데 그런 성격을 

띄어야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전생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만

든 것이 시초입니다. 하느님 명령대로 하면 되니까 전생이 

필요없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만든 그 본질

대로 어기지 않으면 천당에 가고 어기면 지옥에 간다고 합

니다. 즉 기독교에서는 내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불교

에서는 이 몸을 받을 때 나무 끝에 걸린 실과實果 같다고 

합니다. 즉 과라고 하면 그 과가 되기까지 무슨 과정이 있

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과 연이 합해서 과가 맺어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몸은 

전생의 그 기운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금생에서 하는 것이 

내생으로 뻗쳐 나간다 해서 삼생을 얘기하는 것이 불교입

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삼성분별이라 했습니다. 선악무기인 삼

성을 가지고 제 팔식의 자(척尺)를 가지고 물건 재듯이 제 

팔식을 재 보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체중계로 몸무게

를 달아봅니다. 체중계로 달아보듯이 삼성을 가지고 팔식

을 재니까 거기서 나오는 것이 무부이며, 선악을 지었더라

도 선악과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가 됩니다. 무기에도 유

부무기有覆無記와 무부무기無覆無記가 있습니다. 무부라

는 것은 좋은 성질로 무기성질이라 합니다. 무기성질은 아

주 흐릿한 놈으로 그 자체로 얻었을 뿐이지 남을 덮지는 못

합니다. 해롭게는 못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못나긴 했

지만 남을 해롭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상

을 덮었으니 무기로 보란 말인데 책의 도표에도 있지만 한

도가 있습니다. 선, 악, 무기인 삼성을 나누어 선, 불선, 유

부무기, 무부무기를 따지면 들어오는 놈은 사성으로 나누

어집니다. 불선을 설명하면 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말

의 품이 다릅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들었던 표현으로는 저 

놈 나쁜 놈이다, 악한 놈이다 라고 했는데 맹자는 악하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맹자보다 층이 다른 모양입니다. 공자는 

악이라고 쓰지 않고 ‘아, 그 사람 착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말의 품위가 아주 다릅니다. 맹자는 그저 입으로 나

쁜 놈, 나쁜 놈하며 물어뜯는 것처럼 표현했는데 무부무기

를 조사해보면 맹자와 공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심소예동문心所例同門


다음 소절로 넘어갑니다. 제 6절은 심소예동문입니다. 

제 팔식의 심소를 가지고 다른 것을 예 한다는 것은 윤리적

인 입장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비교하여 예한다는 것은 견

주는 것,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촉등역여시觸等亦如是를 

심소예동문에 포함시켜 놓았습니다. 여기서는 오변행만 가

지고 얘기했습니다. 촉등이라고 하는데 ‘등자 속에 예동이

다.’ 할 때 예동을 밖에서는 등불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안에서는 내등이고 방밖에서는 예동이라 하는데 뜻이 다

릅니다. 예동은 곧 촉등으로 다섯 가지입니다. 촉 하나만 

들고 밑에 능히 들었으니까 밖에 까지 범위가 넓어지는 것

입니다. 등이 촉등이라는 것은 예동인데 촉하는 다섯 가지

를 다 들어 촉등이라 하면 이것은 내등인 것입니다. 등 가

운데 쏙 들어간 것을 내등이라 합니다. 여기서 등이라고 하

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누가 책을 한 번 읽

어봤으면 좋겠습니다. 8단하고 12과는 나왔습니다. 이것

을 가지고 제 팔식의 심소상응문에서 마음에 상응을 하는 

심소는 7단, 8단, 9단에서 육의로 예동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은 예동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촉등도 예동할 때 8

단 가운데 여섯 가지 육의만 예동하고 나머지는 예동을 안 

했다는 내용입니다.


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


제 7절에 가서는 인과비유문입니다. 팔식은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종자가 현행을 낼 때도 있고 현행이 종

자를 훈할 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팔식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팔식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을 때 뿐만 아

니라 성불할 때까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시계바늘

은 늘 째깍째깍 돌아갑니다. 제 팔식은 여러분이 모를 뿐 

성불할 때까지 한 번도 끓어지지 않습니다. 이 몸이 있을 

때 중간에 한 번씩 끊어졌으면 좋겠는데 끊어지지 않습니

다. 죄를 지으면 가사억천겁假事億千劫에라도 소작업所作

業은 불망不亡해야 라고 했습니다. 인연을 만날 때에 과보

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인간 중에 회우會遇를 하고 태어나

도 또한 이것 때문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업을 다 닦아도 팔식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는 것입니다. 종자 속에서 전념前念은 갑자기 꺼지고 후념

後念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이 항상 상속하는데 폭류

瀑流와 같습니다. 저놈이 꺼졌으니까 상속이 안 되면 항恒

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전항류만 믿고 딱 한 번만 전轉하

여 상속이 안 되면 폭류가 되지 않는데, 앞의 물이 가고나

면 뒤의 물이 이어서 자꾸 연속을 하는 것입니다. 제 팔식

의 유전하는 모양이 흡사 전폭이 가고 후폭이 오고 후폭이 

오니까 전폭이 가고 자꾸 교차가 되어 성불하기까지 상속

이 되는 것을 항전여폭류恒轉如瀑流라 합니다. 이해가 됩

니까? 


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


제 8절은 복단위차문으로 아뢰야식이 언제 없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불하면 없어집니다. 그런데 아뢰야식이 

없어지는 밑천을 복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칠판에 

글씨를 가득 써 놓았습니다. 지우개로 닦으면 칠판이 나

옵니다. 글씨가 얼마만큼 지워지면 칠판이 나오듯이 하나

는 지워지고 하나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단을 한다는 것

은 원성실성자리인 진여자리가 나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

니다. 복단은 그렇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아라한에 가서야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라한은 소승에서 깨달음의 

단계를 말할 때 마지막 단계입니다. 아라한이라는 것은 인

도말에 여래아라하삼먁삼불타에서 나온 말로 아라한은 나

한이라는 소리입니다. 아라한을 해석하는데 세 가지로 나

누어 써 놓았습니다. 첫째는 삼승의 무학위를 가지고 아라

한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삼승의 무학위와 팔지八地를 가

지고 팔지 이상의 보살을 말합니다. 셋째 삼승의 무학위 및 

초지 이상을 말합니다. 즉 학설이 다를 뿐입니다. 


제 8식의 이명異名


책 234페이지에 보면 제 9절에서는 제 팔식의 다른 이름

을 말합니다. 팔식은 이숙식이라고도 하고 아뢰야식이라고

도 하고 나중에는 아타나식이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세 가

지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심心이라 하고 둘째는 

아타나로 되어있습니다. 또 소지의所知依가 나오는데 소지

는 변계소집, 의타기, 원성실을 이름합니다. 세 가지 이름 

중에 의타기가 나오는데 의타기를 팔식이라 합니다. 그것

을 망각하는 것을 원성실성이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변계

소집성은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성의 

바탕도 되고 원성실성의 바탕도 되기 때문에 소지라고 합

니다. 

잘 하나 못 하나 팔식이 바탕이 되면 종자식이라고도 합

니다. 여러 가지로 착각을 하고, 정각을 하지만 그 근본은 

이숙이라고 합니다. 팔식을 종자식이라고도 하고 아뢰야식

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이숙식이라고도 하고 무구식이라

고 합니다. 성론에는 제 팔식의 이명을 일곱 가지로 들었으

며, 뒤에 가면 열여덟 가지 이름이 나옵니다. 

유루有漏의 루는 무엇이었습니까? 번뇌를 루라 합니다. 

번뇌를 소유했을 때에 이야기이며 번뇌를 벗어날 때는 태

도가 달라집니다. 번뇌를 쓰고 앉았으면 생각이 다릅니다. 

번뇌를 벗어놓은 것을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입

니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무루라고 합니다. 무루가 없

어졌다고 하는데 이견已見은 무루를 얘기하는 것이고, 무

루 미견에서 이는 미견으로 미는 아닐 ‘미未’자로 유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책에 도표가 있는데 유루 때는 아뢰야식

이라 하고 무루일 때는 대원경지에 상응합니다. 그리고 칠

식 유식은 아직 남았기 때문에 팔식만 가지고 이견이 미견

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라고 하면 과상果

相이 유루일 때는 이숙식이라고 하지만 무루일 때는 이숙

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굳이 익었느니, 바로 익었느니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상因相에 가서 지종持種을 했

지만 이것도 깨달아 무루에 가더라도 몸뚱이를 유지하고 

세계를 유지하는 그런 바탕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루에서

도 지종이고 유루에 가서도 지종입니다. 소연경에서의 유

루일 때는 삼경을 반연합니다. 삼경이 무엇입니까? 팔식의 

상분은 종자와 근신根身·기계器界인데 그것이 삼경으로 

소연입니다. 상분이 소연은 아닙니다. 무루가 되면 일체법

을 막힘 없이 반연합니다. 행상行相은 유루무루 다 같이 요

별을 합니다. 또 상응에 가서는 유루일 때 오심소, 촉, 작

의, 수, 상, 사뿐인데 무루에 가면 21심소(변행5, 별경5, 

선11)와 상응 합니다. 팔식이 51심소가 되려면 칠식과 전

육식이 다 들어가야 51심소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오수五受

는 사수捨受뿐이라고 했습니다. 사수뿐이라고 했는데 유루

와 무루가 사수입니다. 또 삼성문에서 유루일 때는 무부무

기지만 무루일 때는 무기가 없어지니까 선 밖에 없습니다. 

인과비유문에서 항상 상속되는 것은 유루나 무루는 같습

니다. 복단위차문에 가서는 아라한위사라 했는데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없어집니다. 

제 팔식 존재의 증명第八識 存在의 證明

제 11절 제 팔식 존재의 증명에서는 제 팔식 존재의 증

명을 설명하지만 소승교에서는 전육식밖에 얘기하지 않습

니다. 말나식과 아뢰야식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아직 말나

식 얘기는 안 나왔습니다. 소승교에서는 육식밖에 없는데 

칠식과 팔식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량식이 나오니까 팔식은 끝납니다. 팔식 하나

가 끝났단 말입니다. 이제 무루에 들어가는 경지에 대해서 

얘기해야겠습니다. 위位라는 말이 나오는데 위는 칠식, 팔

식, 팔식과 육근, 육경을 덮었을 때와 아닐 때는 경지가 달

라집니다. 팔식을 가졌을 때는 ‘나’라는 모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내 모양이 어디에 있거니 하는데, 유식을 배

우고 선문이나 불교를 좀 알면 자신의 그림자가 안 보일 때

가 있습니다. 지금은 자나깨나 몸이 남아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것을 아집이라 하는데, 유식을 듣고 

화두를 들어서 수행을 하면 자기 그림자가 안 보일 때가 있

습니다. 수행을 하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 그림자가 안 보

이는 것, 자기 그림자가 없으면 남한테도 안 보입니다. 귀

신도 못 봅니다. 귀신도 못 보는 경지가 되어야 귀신이 못

잡아갑니다. 귀신에게 보이면 귀신한테 잡혀갑니다. 내가 

오늘 귀신한테 안 잡혀가는 법을 얘기하겠습니다. 내 몸뚱

이와 내 것을 인정하는 몸이 있으면 귀신한테도 보입니다. 

조금만 수행하면 자기 몸이 안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몸으로 사는 것이 없어지면 큰 일날 것 같지요? 

옛날 염관스님이 있었는데 소금 ‘염鹽’자 벼슬 ‘관官’자 

염관스님이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

금도 마찬가지지만 칠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대

개 스님들은 근기따라 한철이나 두 철 정도 하고는 안 합니

다. 염관스님 밑에 있던 휘일스님도 참선을 하다가 다른 것

은 해보니 잘 된단 말입니다. 좋으나 나쁘나 다 본인의 근

성입니다. 본인의 근성이 있으면 됩니다. 휘일스님은 염관

스님이 그저 덮어놓고 대중을 받들어라 하니까 하는 수 없

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이에 

나이가 50이 넘어버렸는데 맨날 스님 시봉하는 것과 대중 

뒷바라지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밥을 먹고 법

당 옆을 지나가는데 호랑이처럼 구척 장신이나 되는 험상

궂은 놈이 시커먼 옷을 입고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라는 것이 남아있으니까 깜짝 놀라는 것입

니다. 여러분은 놀라지 마세요. 시커먼 놈이 무엇입니까? 

염라국의 사자입니다. 어떻게 왔소? 하니까 ‘당신 데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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