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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강 삼계(생유, 본유, 사유, 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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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713회 작성일 21-08-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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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강 삼계(생유·본유·사유·중유)




이제 삼계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삼계의 구지九地를 

논할 때에 밖에 있는 의보依報는 삼유이며 정보正報는 몸

입니다. 살아있는 생명 속에서 사는 생명을 삼유라 하며 그 

삼유를 세분하면 25유로 삼계 25유라 합니다. 그런데 정

보를 말할 때에 유는 영혼입니다. 12연기에서 애취유愛取

有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유有자가 영혼이라는 소리

입니다. 영혼을 인으로 볼 때 애취유는 인이 되어 삼계에서 

미래에 생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유는 결정이 되어 있습니

다. 결정이 되어 생사를 받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애취유가 

됐다는 것입니다. 유는 다른 말로 영혼이라는 소리로 사람

이 태어나는 곳, 이 육신이 태어나는 그것을 생유生有라 하 

고 나서 죽기까지를 본유本有라 합니다. 죽어서 49일 동안

을 중유中有라 합니다. 이 유자가 음자 뜻과 같습니다. 그

래서 오음五陰이라고도 하며 오온五蘊과 같습니다. 본유에 

있는 동안에는 오온입니다. 이 유자가 음자가 되어 중음신

이라 하며 중유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을 생유라 했으니 

살아갈 일이 있는 영혼, 죽는 영혼, 태어나는 영혼이라는 

말입니다. 중음은 중유로 구사론에서는 49일 동안 지내는 

네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세우존자와 법구존자 등은 여러 

가지 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칠일을 가느니, 칠일을 더 가

느니, 부정이니, 49일까지 안 간다는 등의 설도 있습니다. 

삼유라고 하는 것은 몸을 받는 것입니다. 삼계 속에 들어갈 

적에는 유라 하고 나올 적에는 계라고 합니다. 밖으로의 세

계를 법계라 합니다. 사람속에 영혼이 깃든 것은 법성이라 

합니다. 그렇게 놓는 것이 다 달라요. 유와 유구에서 인에 

의하여 몸을 받는 것을 과라 했습니다. 삼계에 몸뚱이를 받

는 것이 과입니다. 삼계가 과란 말입니다. 이 생이나 저 생

이나 나는 것은 과인데 그것은 여러 가지 짓거리를 해서 세

계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번뇌는 혹惑과 업業인데 혹은 씨앗이고 업은 거름입니

다. 혹과 업은 두 가지로 유와 유구에서 하는 것은 삼계에 

나타나고 구라는 것은 꺼리로 저녁꺼리가 있다 없다는 말

처럼 준비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자는 꺼리를 말하므로 

유구는 유꺼리로 유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까 거기에 대해서 애착과 집착을 안 하는 것은 무루이지만 

상은 집착하는 것입니다. 왜 집착을 합니까? 깨치지를 못

하면 마음으로 이론으로 가서는 곧 치痴가 된다고 했습니

다. 그러면 법계에 꽉 찬 생명을 자기 것인 줄도 모릅니다. 

법계에 꽉찬 생명이 하나인데 따로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허전한 것입니다. 사람이나 벌레에게 그

것은 탐욕입니다. 깨치면 이 자리는 둥근 태양과 같아서 남

은 것이 없습니다. 깨치지를 못하면 치가 되어서 뜻으로는 

탐과 진이 나오고 몸으로 가면 음이 되어서 살도殺盜를 하

고 구업으로 가서는 망이 되어 양설 악구가 된단 말입니다. 

유와 유구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탐’자가 되

어서 착각을 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데 무탐은 탐이 없는 것

이며 다음에 무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와 고구에서 고구가 무엇이지요? 고의 종자 즉 고와 

고구에서 성내지 않는 것으로 성을 삼고, 진여의 대지혜를 

가지고 작전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 밑에 

내려가서 고라는 것은 삼고로 먼저 고고가 있습니다. 고고 

밑에 행고가 있습니다. 행고는 구사론에서 나오는데 다 알

고 있지요. 고고라는 것은 고에 고를 보탠 것입니다. 그래

서 이 몸도 고이며 거기에 고를 또 올리니 고고가 되어 맨

날 고가 연속되는 것입니다. 또 가만히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한 대로 있으면 좋겠는데 늙고 병들어 죽어갑

니다. 그 다음에 행고는 물 내려가듯이 자꾸 흘러가서 지

금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조금 전에 쉰 숨은 벌써 지

나가고 조금 전에 돌던 피도 벌써 다리까지 갔습니다. 이

런 것은 속히 늙습니다. 어떤 서양학자는 시계를 똑딱 따라

가니 늙는 것 같아서 시계를 없앴다고 했는데 그래도 시간

은 흘러갑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창 밖에 비가 소

소하게 내리니 내 마음도 따라 소소하더라 하는 소리입니

다. 다시 말해서 창에 비가 우수수하고 내리는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관계를 알면 그만인데 고니, 고고니, 유니, 

유구니 하면서 탐 안 하면 됩니다. 또 관계를 맺지 않으면 

됩니다. 여기서도 관계를 맺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까 탐하는 것을 탐하지 않으면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

니다. 이것이 무탐입니다. 성낼 것을 성 안내면 됩니다. 또 

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황룡사심이라는 스님이 방안에서 불을 안 켜고 앉

아 있는데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뭐가 하나 들어오는데 머

리가 없는 귀신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는 소리가 여무

두汝無頭하니, 대가리가 없으니 여무두통자汝無頭痛者로

다, 너는 머리 아플 걱정은 없겠구나 하였습니다. 다음에

는 배가 없는 귀신이 들어옵니다. 윗도리 아랫도리는 있는

데 중간이 없는 귀신이 들어옵니다. 그것을 보고 여무복汝

無服하니, 너는 배가 없으니 여무복통자汝無服痛者로다, 

너는 배 아플 걱정은 없겠구나 하였습니다. 또 여화미女花

美어니, 꽃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옵니다. 그때 하는 

소리가 여지기량유시호汝之技量有時乎니 너의 재주가 몇 

가지가 되는지는 몰라도 재주 부리는 것은 다 때가 있습니

다. 아지불착무궁호我之不着無窮乎라, 내가 탐착을 안 하

는 것은 끝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이 통곡을 하

며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지기량은 유시어니와 아지불착

我之不着은 무궁호無窮乎라 하고서 무이혹란無以惑亂오, 

가죽주머니를 가지고 사람을 시험하려 들지마오 라는 소리

입니다. 아지불착은 누구입니까? 진이나 탐이나 내가 관계 

안 하면 내가 아니잖아요? 계는 설법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이 선물을 가지고 왔기에 받아서 자기방 안에 들여놓

으니까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물을 가져

와도 안 받으면 내것이 아닙니다. 계도 마찬가지로 받아야 

자기 것이 되지 안 받으면 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책 넷째줄에 무진無瞋, 무에無恚, 무치無痴가 있습니

다. 앞에서 이사와 이치를 설명할 때 이치는 실상이고 이

사는 현상이라 했습니다. 능히 아는 신信이라 그랬습니까? 

글자를 해석하니 병력이라 그래요. 고고한 것을 아는 것이 

병들어 모른다는 소리입니다. 병력 안에서 안다고 한 것

은 능히 아는 신信이고 우치를 대체해서 작전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둘째 장에 보면 정장이라는 것

이 있습니다. 모든 정장은 그대로가 혼침인데, 정장은 수

가 많습니다. 혼침을 대체하는 것은 의병입니다. 방일放逸

은 번뇌의 이름입니다. 정진과는 정진의 과보입니다. 정진

을 한자로 근이라 하는데 정진과 삼근에서 네 가지를 뒤쳐

놓으면 삼선근三善根이 됩니다. 무탐, 무진, 무치에서 없

을 ‘무無’자를 넣으면 삼선근이 되고, 없을 무자를 떼면 업

근이 됩니다. 즉 탐진치가 되는 것입니다. 정진과 삼근은 

소단수에서 번뇌를 끊고 선을 닦는 것입니다. 소단수에서 

수를 닦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수를 삼고 방일은 게으른 

것이며 불방일은 게으르지 않은 것이며 게으르면 수행을 

못하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소

단수에 방수란 것은 막는 것으로 방일하지 말고 나쁜 것을 

막는 것입니다. 저기 소단수에서 닦으라면 닦고 끊으라면 

끊으니까 정진과 소단수에 끊고 닦는 데에 방해하고 닦는 

것이지 수를 방해하면 안됩니다. 또 방일을 대치해서 일체 

세간출제간에 선을 가져다가 충만시키는 것까지 업을 삼습

니다. 

상항문에서 추번뇌까지 했는데, 끝에 가면 부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이 부정입니다. 좋

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것이 부정입니다. 343페이

지에 보면 부정의 정의를 이각이二各二라 합니다. 이것을 

부정이라 하는데 부정의 심소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회

悔와 면眠, 심尋과 사伺의 네가지이며 회와 면을 하나로 묶

고 심과 사를 하나로 묶습니다. 네가지 종을 다시 회·면

을 하나로 심·사를 하나로 해서 둘로 묶어 놓습니다. 사

법인데 회·면과 심·사로 두 개로 나눈 것입니다. 이것

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각자는 밑에 부정을 표시하

기 위해서 그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344페이지 끝에 이각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논에는 종종 이설이라는 것이 있지

만 그 가운데 정의로 삼는 것은 상相과 의意로 앞에서 말한 

회·면과 심·사 두 가지입니다. 위의 이는 부정의 사종을 

심·사의 이와 회·면의 이로 이분을 해서 말합니다. 아래

의 이는 염染과 정淨으로 통하니까 부정입니다. 

그 다음 346페이지에 소의문所依門이 나옵니다. 전 육식

이 어디서 나왔어요? 제 팔식 종자 가운데 근본식에서 생

겼습니다. 제 육절에서 구불구전문俱不俱轉門이 나옵니다. 

이 육식이 한꺼번에 일어나는가 판단하는 것인데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판단하는 것이 호법의 주장입니다. 다시 넘겨

서 350페이지에 보면 팔식이 일어나는 조건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처음에 전육식은 간단하기 때문에 항시전恒時轉

이 못됩니다. 353페이지에 보면 팔식구전八識俱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안이비설신까지는 뚝뚝 끊어집니

다. 예를 들어서 눈이 항상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지

요? 귀도 들을 때도 있고 안 들을 때도 있지요? 냄새도 그

렇지요? 전오식은 간단한 것입니다. 일어날 때가 적다는 

것으로 소시전少時轉입니다. 또 의식은 여섯 가지로써 다

섯 가지는 오후悟後에 가서 일어나므로 다시전多時轉이고 

칠식과 팔식은 언제든지 일어나기 때문에 항시전恒時轉으

로 되어 있습니다. 

350페이지로 되돌아가서 도표를 보면서 눈에 대한 설명

을 마무리 합시다. 눈은 아홉 가지 조건이 있어야 일어납니

다. 공이라는 것은 빌 공空자로 눈과 귀는 가까이에 붙여 

놓으면 안 보입니다. 이것은 공간을 두어야 합니다. 눈과 

귀는 공간을 두고 알며, 코와 혓바닥은 떨어져서 아는 것으

로 이중지離中知라 합니다. 가운데 띄어놓는 것인 후삼식

과 몸까지는 이중지 대신 합중지合中知라고 합니다. 다시 

349페이지로 넘어가서 끝에서 둘째 줄 중간쯤에 보면 안

식은 구연생九緣生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식耳識은 제명팔

除明八로 밝은 것이 없어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명을 

제하고 여덟 개의 인연이 있으면 알고 비설신은 각각 일곱 

개만 있으면 됩니다. 353페이지에 도표가 있는데 그 밑에 

줄을 그어놓았네요. 사삼四三이라는 것은 차례대로 아뢰야

와 말나가 배당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353페이지로 돌아

가서 도표를 보면 이것을 어떤 사람은 말나식이 위에 있고 

아래에 아뢰야식이 있으니까 첫 번째 4을 놔두고 543이라 

그랬습니다. 의식은 오연을 가지고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밑에 칠식은 칠연을 한다고 했습니다. 말나식을 4로 하기 

쉽고 아뢰야식을 3으로 하기 쉽단 말입니다. 그것을 표로 

나타낸 것입니다. 의식이 오연 말나식이 삼연 아뢰야식이 

사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해야됩니다. 그렇

지 않으면 거꾸로 된단 말입니다. 


기멸분위문起滅分位門


지금 설명하는 것은 기멸분위문입니다. 육식에서 의식을 

설명하기 전에 전오식을 얘기했고 전오식을 얘기할 적에는 

과목이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구불구전이라 했을 때 육

식이 전부 전육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불구전俱不俱

轉에 가서는 전오식만 가지고 얘기했고 구불구전이나 기멸

분위문은 똑같은 것입니다. 구불구전을 할 때는 전오식만 

가지고 했고 제 칠식 기멸분위문에 가서는 의식만 가지고 

했습니다. 그렇게 절충을 했는데 여기서 의식은 무상천에 

난 것과 무심의 이정인 무상정·멸진정과 수면과 민절 다

섯 가지를 오후에서는 무심이라 하며 기멸하지 못합니다. 

아주 잠이 깊이 들었을 때 무슨 전염병이 들어 의식이 끝납

니다. 이것을 앓으면 의식이 뚝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우

리는 의식이 덮혀 마음으로 기어 다니기 때문에 행상이라 

그랬습니다. 기어 다니기 때문에 안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서 이렇게 누우면 산 너머 아무개 집에서 부인이 저녁밥을 

해 먹고 설거지 하는 것이 보입니다. 의식이 덮혀서 병이 

민절이 되면 의식이 유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병든 사

람을 보지 않아도 병든 사람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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