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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9강 오직 식뿐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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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1,938회 작성일 21-08-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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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오직 식뿐인 세상


유가설아법由假說我法 유종종상전有種種相轉


이 세상이 식 뿐이라고 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중간 소리

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 8년 동안 설합니다. 나 밖에 천

지 시간과 객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눈으로 보

이는 육진과 안으로 육근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없다

는 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식 뿐입니다. 식에서 생긴 싹인 

것입니다. 즉 안으로 싹이 된 것은 육근이고 밖으로 생긴 

것은 육진입니다. 그러면 오직 식 뿐이고 밖의 현상은 없다

는 것입니다. 나라는 몸뚱이의 육근과 밖의 육진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我법法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

면 가짜를 설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난問難에 대해 답

하는 바 유가설아법의 그 뜻을 말하면 아법이라고 설합니

다. 그것은 시간이나 공간이나 혹은 선이나 교에서 가假

로 설한 것이지 결코 실제가 있기 때문에 설한 것은 아니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假를 말미암아 설한 것이기 때문에 

‘아’나 ‘법’을 여러 가지 상相으로 전개한 것입니다. 아무튼 

그것은 가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잡하지만 가假는 좀 접어두고 ‘아我’라는 것이 무엇인

지를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아는 상일주재常一主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둘이 아닌 것을 이

야기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상일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떳떳하고 항상하며, 공간적으로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에 상일주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

리의 아집은 제각기 몸뚱이 속에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또 

죽은 후에도 아가 있는 줄 압니다. 항상 뭐가 있는 줄 알고 

찾습니다. 예를 들어 동그란 알맹이가 망울처럼 있는 것은 

허망한 관념상으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있다면 가루를 

뭉쳐놓은 것이지만 백 개나 천 개나 되는 것은 아무리 뒤져

봐도 망울은 없습니다. 인연소생법에 의해서 인연으로 뭉

쳐서 그렇게 된 것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형상을 이루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레도 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의 생명체인 법성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림

자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상일주재를 다시 해석하면 항상하고 하나인 것이 실재한

다는 것입니다. 주主라는 것은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자

동차 운전수가 운전을 하듯이 색심은 색과 마음과 오온을 

운전하는 것입니다. 맡을 재宰 자는 운전한다는 뜻이며 상

일常一이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관념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관념인 형상을 실물로 볼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아’라는 것은 항상하고 하나인 주체가 그 

색심을 운전하는 책임을 맡는 것입니다. 문화부장관이 있

어 문화부 일을 맡아 하는 것이 맡을 ‘재’ 자의 뜻입니다. 

운전자는 자동차 안에서만 운전하지만 세상을 운전하는 관

리인은 안팎 어디든지 있습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념입니다. 망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바람이 불면 물건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깃

발이 펄럭펄럭 거리는 것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어서 펄

럭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 그 무엇인가가 있

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라고 합니다. 

‘법’이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책’이라 할 때 책이라고 하

는 것은 책이 가질 요소를 다 가지고 있으며, 물이라고 하

면 물이 가지고 있어야 할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물

입니다.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물건이라고 하면 모두

가 제각기 가지고 있어야 할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각기의 모양을 가지는 것을 임지任持라고 합니다. 그것

이 법입니다. 돌이면 돌, 나무면 나무, 사람이면 사람, 짐

승이면 짐승, 물건이면 물건 제각각 가지고 있어야할 성질

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임지자

성任持自性이라고 합니다. 내포라고도 하는데 안 내內, 쌀 

포包라고 하지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조건이 표준이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돌을 보면 돌인지 알게 

되는 것을 철학에서는 내포라고 합니다. 밖으로 뻗치는 것

을 임지자성이라 합니다. 사람, 토끼, 호랑이, 뱀 등이 가

져야 할 조건을 다 가진 것이 ‘법’입니다. 뱀은 뱀이 가지고 

있어야 할 조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보면 뱀인

지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법이라고도 하는데 책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예습을 좀 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121 페이지 둘째 줄에 보면 이 말을 해석해서 아我를 주

재主宰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상일주재라는 것은 항상 존

재하는 독일무비獨一無比의 사물이 있어 주내에 위치하여 

활동을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물건 그 자체의 중심

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 사람이라는 것이 하

나 들어있고, 벌레는 벌레 속에 벌레가 하나 들어있다는 것

이지 실재하는 실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육신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문득 아랍인은 

눈 속에 마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지, 귀 속에 들어있다

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그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뱃속에 

들어있는 것은 오장육부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몸속

에 나라는 것이 하나 들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신 중에 상미신입니다. 그런 생각은 몸하고 상관없는 것

으로 그것을 아집이라고 합니다. 아집은 잠을 자고 있을 

때나 깨어났을 때나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고 깨는 동

안에도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업상業

相에 의하여 행동한 기운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이어지지만 

이 몸뚱이가 없어져도 연속이 됩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

을 깨달아서 부처가 될 때까지 계속 윤회를 합니다. 법성

자리를 떠나서 윤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몰랐던 생각인 불

각이 바로 무명無明입니다. 무명이라는 것은 모르면서, 마

음 쓰는 것으로 법성자리를 모르고 사용하니까 그런 성질

이 생기게 됩니다. 물에 물을 타면 표시가 안 납니다. 물

에 기름을 타면 물과 기름은 동질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법성자리가 물과 같다고 하면 물과 화합하

지 못하는 기름은 깨닫지 못한 성질인 무명이 됩니다. 그래

서 무명은 법성자리와 동질이 될 수 없습니다. 동질이 아니

고 이질이 생겼어요. 이질성을 가진 것이 무명인데 여러분

은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법성자

리와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 되겠습니까? 무명을 자꾸 법성

자리와 동질로 여기게 됩니다. 나는 자신이 있어서 강의를 

하는데 동질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들으면서 인정을 해주

지 않습니다. 이질적으로 된 것입니다. 물과 기름 같이 법

성자리와 합해지지 않아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 생명

체와 합해지지 않는 헛것입니다. 망념일 뿐 동질이 아닙니

다. 생명을 동질로 깨달으면 자타가 없어집니다. 

부처가 되면 망념으로 가진 몸뚱이도 동체대비가 됩니

다. 이것은 생명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올바르지 

못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벌레도 그대로 불성

으로 봅니다. 그러면 벌레가 벌레 몸뚱이를 가지고 동체대

비가 되어 버립니다. 저 벌레가 법성자리를 몰라서 벌레 몸

뚱이를 받았지만 부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

는 것을 동체라고 합니다. 벌레가 자신의 몸뚱이를 사랑하

듯이 부처님이 벌레의 몸뚱이를 사랑하는 것을 동체대비라

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성질이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지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아미타불을 잘 알지는 

못해도 듣긴 했을 것입니다. 아미타불이라는 말을 번역해 

보면 ‘하나’라는 뜻입니다. 무량광 무량수라고 하는데 똑같

은 뜻입니다. 

앞에서 임지자성이란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물이

면 물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물도 본질이 있어 1℃에서 

100℃ 까지는 액체로 보입니다. 우리 눈이 인정한 것으로 

본다면 액체이며 100℃ 이상에서는 기체가 되며 또 0℃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어 고체가 됩니다. 고체가 되고 

액체가 되고 기체가 되는 것은 모양을 바꾸었을 뿐이지 물

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물의 본질인 수소와 산소는 

변동이 없지만 얼음이 되어서 고체가 되거나 물위에서 액

체가 되거나 공중에서 기체가 되어도 본질에는 변화가 없

는 것입니다. 물이 탈바꿈해서 액체가 되고 고체가 되고 기

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온도가 업인 것입

니다. 온도처럼 업은 각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받게 됩

니다. 어떤 온도를 생명에 가하면 사람이 되고, 온도에 따

라 축생이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온도에 따라 형상은 

변하지만 생명체는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진眞이

라고 합니다. 공간은 위치를 나타내는데 물을 방 안에 놓아

두면 물에 젖게 되는데 이때 젖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물을 방 밖에 놓아둔다고 젖는 성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방 안이든 밖이든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쪽에 가져다 놓거나 서쪽에 가져다 놓더라도 

젖는 성질은 같습니다. 공간적으로 변동이 없는 것을 진이

라고 합니다. 그럼 시간적으로도 어제 물에 젖어 있었는데 

오늘도 물에 젖어있습니다. 어제는 젖었는데 오늘은 안 젖

는 이러한 현상은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 똑같은 모양을 유

지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유가에서는 이것을 중용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몸속이

나 벌레 몸속에 똑같이 들어있는 이것이 만물의 중심입니

다. 만물의 성품을 중생심이라고 했습니다. 즉 여러 가지 

생명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중衆이라는 것은 사는 

자리인데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평등하게 들어가서 

중심이 되어 중中자를 낳게 됩니다. 이것은 공간적으로 분

류한 것으로 유식에서는 둥근 자리를 낳습니다. 앞에서 어

제와 오늘이 일정하여 불변하는 것을 용庸이라고 합니다. 

유식론에서는 시간적으로 분류하여 성이라고 했습니다. 

원만하여 진짜 뜻과 같아서 성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시

간적으로 미숙한 것을 완성하여 생명을 여의고 변하지 않

은 것을 성이라고 했습니다. 원성에서 원은 공간적이고 성

은 시간적인 것으로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

을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원성실성

은 앞에서 물이 온도에 따라 액체, 기체, 고체가 되듯이 인

연에 따라 의타기성依他起性이 되기도 하고 변계소집성遍

計所執性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를 타他자는 인연이 

됩니다. 물이 고체, 액체, 기체로 탈바꿈하듯이 불성자리, 

진여자리, 원각자리가 타라는 인연에 따라 모양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원성실성이 인연에 따라 사람도 되고 짐승

도 되고 벌레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유식을 다 

아는 것입니다. 하나가 변하여 사람 속에도 가득 차고 벌레 

속에도 가득 찼습니다. 사람 속에 들어갈 때도 원성실성 그

대로 들어가고 나무에 들어갈 때도 그대로 들어가는 것입

니다. 사람 속이나 만물 속에 꽉차서 충만하면 곧 불성이 

충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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