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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12강 인연소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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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326회 작성일 21-08-0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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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강 인연소생법



그래서 강 가운데 달을 딴다고 표현합니다. 강 가운데 달

은 그림자지 달이 아닙니다. 그림자를 가지고 자꾸 자기 생

명이라고 하여 진여법성에 상응이 안 되고 진여법성의 그

림자에 놀고 있습니다. ‘가假’ 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

다. 인연소생법을 가지고 원성실성으로 착각하는 것입니

다. 책 124 페이지 끝에 도표가 하나 있는데 ‘가’를 이해하

기 위하여 ‘가’를 지어 놓고 아와 법을 설했습니다. 출세간

과 세간에서는 실제 얘기가 아니고 가를 위해서 임시 유가

有假의 가를 만나 아와 법을 세운 것입니다. 유가는 가짜이

므로 의타기성을 가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건 실제가 아닙

니다. 어제 얘기했던 황악산을 눈으로 보니까 눈동자에 황

악산은 깨알만큼 찍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앉아서 

식이 비추어 주는 그림자를 깨알 크기만큼 생각하는 것이

나 눈동자로 황악산을 보고 생각하는 것은 깨알보다 좀 더 

큽니다. 식으로 생각 하는 것이나 깨알 크기만큼 눈에 비친 

황악산을 확대시켜서 몇 천만 배나 크게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황악산의 실상이며 참 모습입니까? 실체를 모르면서 

눈에 비치는 것을 보고 이것이 황악산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가짜

지 진짜가 아닙니다. 황악산의 실상은 못 본 것입니다. 확

대해서 보는 여러분의 관념이 바로 식이니까 황악산이 깨

알보다는 수 천만 배 크다는 것을 인식한 것입니다. 식으로 

비친 것과 육근에 비친 것과 밖에 황악산이 어디 있는지 실

상을 아는 것은 육경에 잡힌 것입니다. 눈에 잡히는 것은 

육근에 잡힌 것으로 그것을 아는 놈이 식이란 말입니다. 그

래서 세 가지가 모두 도둑놈으로 실상이 없는 거짓임을 알

아야 하는데 앉아서 바로 깨달았다는 부처님의 학설을 강

연해도 아집이 막아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깨치고 보니까 중생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알고 잘못된 것을 맞는 것처럼 알고 아집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아집을 하고 있는 것은 망념입니다. 실제 

생각이 아닌 것을 망념이라 합니다. 실제로 부합하면 정념

이고 실제로 부합해서 보면 정견이라 합니다. 실제로 보는 

정견은 팔정도에 나옵니다. 또 실질적인 생각을 하면 정념

이 됩니다. 정념과 정견이 아닌 것이 식으로 바로 못 보고 

깨치지 못한 것인데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情입니

다. 우리의 실아실법은 가짜로 조립한 덩어리입니다. 가짜

로 조립한 인연소생법으로 그 속에 내가 있다고 집착하고 

아법을 실법으로 집착하는 것은 정情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

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명언名言으로 실아실법의 체

는 없지만 중생이 그릇되게 느끼는 정을 따라서 한 번 늦추

어 가정을 하자는 것입니다. 실아실법인 오온 속에서 제법

무아는 오온을 법이라고 합니다. 오온 속에는 나란 개체가 

실제로 없습니다. 깨치지 못한 중생인 우리들은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정을 따라 우선 가짜로 한 번 따라 해보는 것입

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 명언名言

이라 그랬습니다. 이름과 말로만 그런 것이 있을 뿐입니다. 

토끼 뿔과 거북이 털 이야기에서 토끼에게 뿔이 있습니까? 

거북 털과 토끼 뿔이 없는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명언으로 

되는 것이지 실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명무언물지공名無

言物之功’이라. 이름이나 말이나 물건은 공이 없다고 써 놓

았습니다. 실제 물건은 마땅히 이름을 붙일 체가 없다고 했

습니다. 이것은 이름 하고는 다르지만 명과 실에서 실은 무

엇입니까? 모양 ‘상’자를 붙혀 무엇이든지 자체에 실상이 

있다는 말인데 우리가 본 것이 실상을 본 것입니까? 중생은 

실상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깨치지를 못해서 아집을 가지

고 망념을 부리기 때문에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

부를 하면 혜안이 나오고 법안이 나옵니다.

눈에는 오안이 있습니다. 육안은 바로 못 보는 것이고 천

안은 천상 사람의 눈으로 있는대로 다 보지만 바로 보는 눈

은 아닙니다. 천상 사람들이 보는 눈일 뿐 벌레가 보는 눈

과 통하는 눈은 아닙니다. 우리의 육안은 문을 닫으면 막혀 

버립니다. 문을 막으면 밖의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천안은 

장외색障外色까지 보기 때문에 육안이 못보는 밖이 보인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치지 못해 잡생각을 쌓아놓았기 때

문에 잡동사니로 보입니다. 나무는 나무, 풀은 풀 모두 따

로 봅니다. 혜안은 차별을 깨뜨리고 평등한 것과 진실을 보

는 눈이며, 혜안을 얻고 난 후 법안을 얻으면 후득지를 얻

습니다. 법안을 얻으면 평등지로 하나인 이치로 본체를 보

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후득지가 생겨 중생의 차별

한 생각을 보게 되는데 인과응보로 벌레면 벌레, 사람이면 

사람의 그 맺힌 내력을 환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할 때는 그저 이치만 보는 것이고 법안을 가지게 되면 중

생이 무슨 죄를 짓고 무슨 업을 지어서 저런 벌레가 되었으

며 다음 생의 과보를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얻

으면 좋겠지요. 마지막 불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불안

은 해인삼매를 성취하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도장 찍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처럼 흘러가는 생각 속에

서 보니 과거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는데 불안을 얻으면 몇 

억 겁 전에 일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스님은 과거 몇 억 겁 전에 나무 밑에서 선정을 닦

고 있는 것이 보이고 어떤 스님은 보시를 해서 거들먹거리

면서 잘 살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법화경 서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현재와 마찬가지로 미

래 몇 억 겁 후에 생길 일들도 보입니다. 그것은 도장 찍은 

것으로 해인이라는 것입니다. 도장은 찍어 놓으면 앞뒤가 

없습니다. 글을 쓰거나 붓을 들면 첫 획이 있고 중간 획이 

있어 차례가 있는데 삼매를 얻으면 동시에 된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해인삼매는 삼세의 모든 경계가 일체병현一切

並顯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난다는 것입

니다. 가짜인 가라는 것은 실이 아닙니다. 인연소생법 전

부가 가입니다. 인연소생법 가운데 중생은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뜻 ‘정情’자의 정은 바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로 하면 식입니다. 정이나 식은 같은 

말로 식은 바로 못 보는 것입니다. 바로 못 보고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식이라 합니다. 정확하게 보는 것은 ‘지’라고 

합니다. 알 ‘지知’자로 아는 자리 즉 육바라밀 법성에 맞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알 지知자가 됩니다. 실아실법은 몸뚱

이도 없고 실체도 없지만 무명 중생은 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체가 없는 것이지만 중생의 정을 따

라 가짜로 해보자는 말입니다. 명언名言이지만 이것은 세

간에서 하는 것이고 불보살은 법으로 하는 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자동차나 사람도 인연을 뭉쳐 놓은 덩어리이기 때

문에 아예 실제는 아니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

은 오온이 집합한 것이고 자동차는 자동차가 집합한 것으

로 조건대로 모인 것 진짜 체는 아니지만 가짜 체라도 있기 

때문에 불보살들이 중생을 살리기 위해서 설법을 합니다. 

중생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 체가 있는 인연법에다 임시로 

시설을 해보는 것입니다. 영구적은 아닙니다. 중생이 모르

는 것을 깨치기 위한 방편으로 명과 언 두 가지가 있습니

다. 그리고 사람의 몸뚱이는 인연으로 생긴 것인데 사람 속

에 들어가면 머리도 있고 이마도 있고 눈썹도 있는 이런 부

분을 의義라고 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의라고 하고 법은 전

체입니다. 전체와 부분으로 들으면 됩니다. 그러면 오온이 

가화합한 이 몸 속에는 실아는 없지만 아와 비슷한 것이 있

습니다. ‘의義’와 ‘용用’을 따라서 하는 것으로 집합해 놓으

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의’와 ‘용’을 따라하면 실아

실법은 없지만 유정을 이용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몸

뚱이 속에 실아실법은 없지만 오온이 집합하면 상일주재한 

낌새가 있어 그것을 용이라 합니다. 실체는 없지만 오온인 

용은 그런 자격이 있습니다. 

쇠종 속에는 원래 소리가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모릅니

다. 종 속에 원래 소리가 있다가 나오는 것입니까? 종을 땡

하고 치면 종소리가 납니다. 마치 종 속에 들었다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격이 있어서 사람 속에서는 사람 

자격이 나오고 벌레 속에서는 벌레 자격이 나오고 북 속에

서는 북 소리가 나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성교聖敎에서

는 오온의 체는 있지만 오온의 체가 있는 곳에 가설해보면 

있었던 것을 끌어당기고 이용해서 명언에서 잡은 이치를 

시설하고 용用에서 잡은 이치를 당겨서 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용用이 있어 오온이 결합하면 상일주재한 것 

같고 나팔을 불면 나팔 속에서 무슨 소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과는 확실하게 다른 것입니다. 세간에서 쓰는 아법

이나 성교에서 쓰는 아법은 임시 방편으로 여러분이 모르

고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선불교

에서도 경전처럼 말 하는 것은 중생이 모르고 있는 것을 고

치려고 방편으로 합작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교재에 보면 인연소생법을 간단하게 말하면 희망, 승소, 

색, 분위법, 실상 그것에서 퍼진 것이 육근 전체의 현상입

니다. 누가 새끼를 쳤느냐? 어디서 나왔느냐? 여기서 표종

귀식標宗歸識이라 했는데 이것은 유식이 종宗입니다. 종을 

표시해서 식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삼라만상의 이 많은 

것은 전부 식이 만든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세상은 하나님

이 만들었다 하는데 똑같은 이야기로 세상은 식이 낳은 5

위 100법인 것입니다. 삼십송에서는 유가설아법이라 했습

니다. 유종종상전有種種相轉은 가지가지 모양이 만들어지

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가를 의지해서 가지가지 모양의 종

종상전이 흘러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라만상입니다. 

만유는 식소변입니다. 식이 낳았다는 소리인데 그래서 식

은 낳는 놈이고 5위 100법은 새끼입니다. 낳는 식을 능변

이라 하며, 능이 낳아진 놈인 5위 100법은 소변입니다. 피

의식소변彼依識所變이라 할 때 피자는 종종상전한 모양으

로 식이 낳은 것으로 유식입니다. 경계는 바로 식이 새끼 

친 것입니다. 식이 전부 만든 것입니다. 유식이란 말을 이

제 이해하겠지요? 

잠을 자다가 꿈을 꾼 것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꿈은 생

각이 깨끗하지 못하고 흐릿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정당치 못한 흐릿한 생각은 불각, 무명입니다. 우

리가 보는 삼라만상은 깨닫지 못한 불각에서 나왔습니다. 

깨치면 보지도 듣지도 않고 이런 것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눈뜬 사람은 걸림이 없습니다. 눈을 못 뜨니 안 보이는 것

이며 이것이 무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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