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이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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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이숙식
따라서 본송에 차능변유삼此能變唯三에 유唯자를 결정이
라고 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요동 부리는 이것을 증감增
減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유唯자의 뜻이 결정이라는 뜻도
되고 증감이란 뜻도 되니까 간략히 하면 세 가지가 되고 넓
히면 여덟 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소승부에서는 구종九種이라 하는데 정확한 학설은 아닙
니다. 식체로 들면 팔종식으로 순서가 되고 삼유로는 세 가
지로 이숙식을 아뢰야식이라고 하고 제 칠식을 사량식이라
고 하며 전 육식을 요별경식이라고 합니다.
다음 이숙을 새기는데 세 가지 설명이 나옵니다. 302페
이지 끝에 보면 인식을 무엇이라 했습니까? 우리는 평소에
업을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착한 일도 하고 악한 일도 하
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도 합니다. 도덕적으로 이숙이라
는 것은 선악을 의지해서 간택된 유정총보로 이 몸의 가치
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이 그
것입니다. 이숙의 이름을 해석하는데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변이이숙變異而熟은 뭉개버리고 점을 대신하여 떼
놓는 것입니다. 변이이숙을 설명할 때 반드시 인이 변이합
니다. 이숙을 해석하면 익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숙을
해석할 때는 세 가지가 있는데 변이이숙은 반드시 인이 과
가 되려면 그 가운데 변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다르게 변했다고 합니다. 인과 과가 같다면 변한 것이 아
닙니다. 원래부터 변한 것이 없습니다. 콩도 땅 속에 묻혀
물 기운을 빨아들여야 잘 자랍니다. 쌀을 가지고 밥을 하는
데 어떻게 합니까? 쌀을 그냥 두면 밥이 안 됩니다. 무엇인
가 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변이이숙이라고 합니
다. 밥이라는 과를 얻을 때는 쌀이라는 인을 그대로 놔두어
서는 안됩니다. 쌀에서 변동을 일으켜야 밥이 되는 것입니
다. 그래서 인에서 과로 변할 때 달라지는 것을 변이이숙이
라 합니다.
이시이숙異時而熟은 같은 때가 아니라 평생 업을 짓고 내
생에 가서 과를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금년 봄에 보
리씨를 뿌려서 다음 해 여름에 보리 추수를 하는 것처럼 그
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점차로 바꿔지는 것을 이시이숙이라
고 합니다.
이류이숙異類而熟은 여름에 보면 새파란 감이 가을이 되
면 빨간 홍시가 되듯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새파란 것이 빨
간 것으로 달라질 때 새파란 것은 인이 되고 빨간 것을 과
라고 하면 빨갛고 새파란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유類가
달라진 것입니다. 즉 모양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떫은
감이 달콤한 홍시로 변했다면 분명 같은 것이 아니라 달라
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이류이숙異類而熟이라고 합
니다. 이숙만 띄기 때문에 몸이 살아있을 때는 선악을 짓습
니다. 업을 지은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업이 종자를 심은 것이 아뢰야식입니다. 아뢰야라는 말
은 온갖 것 속에 다 감추어 놓았다가 나중에 세 가지로 나
온다는 뜻입니다. 선악이 아뢰야식에 가서 종자가 될 때 무
기가 됩니다. 업을 지을 때 선한 것은 참선으로 통했는데
과에 저장될 때는 무기가 되어버립니다. 한자로는 ‘인통선
악因通善惡’이라 하는데 인은 선악으로 통했다는 뜻입니
다. 문법적으로는 통자를 쓸 수 없지만 이것의 본래 글은
‘인시선악因是善惡’이나 과유무기果唯無記입니다.
학교에서 12품사를 배웠지요? 12품사에서 지정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정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다, 아니다
입니다. 이다, 아니다를 지정사로 본다면 통할 통자는 문
법으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인은 선악이지만 과는 무기입
니다. 시是자가 지정사가 되었는데 문법에서는 시是자가
정확한 것입니다. 인은 선악과 통하나 과는 무기일 뿐이다
라고 해도 말은 되지만 시자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
니다. 예를 들어서 남을 때리면 악한 짓이고 남을 동정하면
착한 짓이 됩니다. 이렇게 겉으로 나타난 선악의 모양은 확
실히 달랐는데 무기로 볼 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입니다. 사람 때리는 것이
무기에 들어가면 안 보입니다. 선악의 행위가 나중에 무기
가 되면 식이라고 표현합니다. 행동이 직관에 박히는 것을
식이라 하는데 식에서는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 소멸되고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집착을 하기 때
문에 집착이 있는 한 그것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사그라들
지 않습니다. 선악에 아집이 있는 한 아집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칠식에 가면 이름만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제자가 성불을 할 때를 보면 참선한 자세의 다리모양만 있
고, 선악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무기입니다. 무기
無記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식이라
고 합니다. 안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 무엇을 잘못해서 어른들한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지요? 그래서 매를 맞았던 것이 저장 되어 있
습니다.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표시는 나지 않
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기입니다. 나중에 그 무기는 자극
을 하면 일어납니다. 어른한테 혼난 기억이 무기로 잠재된
상태에서 몇 십 년이 지났는데 옆에서 내가 했듯이 어린 아
이가 꾸중 듣는 것을 보면서 내가 꾸중 들었던 기억이 납
니다. 그것을 안다고 표현합니다. 경험이 없으면 모른다
는 것입니다. 식의 얘기는 그렇게 됩니다. 톡 때리면 나온
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의 무부무기로 되어 있다가 어느 때
에 가서 나타나게 됩니다. 네 가지로 되어있는데 아뢰야식
에 종자를 심어서 저장한 식입니다. 이것이 무부무기無覆
無記라는 것입니다. 이 속에는 좋든 나쁘든지 간에 무기
로 한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숙식이라고 합니
다. 제 팔식을 가지고 이숙식이라고 했는데 유로 잡을 때
에 이름으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어진 선악은
무기가 되었으니까 동류同類가 아닙니다. 종자가 그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과에 가서는 무기가 되고 인에서는 선
악이니까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과 과가 달라졌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과 과의 성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
다. 제 팔식을 종자식이라고 하는 동시에 인지할 때와 저장
될 때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숙식이라고도 합니다. 사
량식에 들어가 잠재되어 있을 때에는 무기이기 때문에 표
가 나지 않습니다. 무기를 선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악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들어가 있을 때에는 선인지 악인지 이름
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
니다. 잠재되어 표가 안 납니다. 종자에는 선도 들어가고
악도 들어가는데 문 밖에서는 선악이 표가 나는데 문 안으
로 들어가버리면 모양이 달라져버립니다. 선과 악의 증감
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햇빛이 있을 때는 얼굴이 훤하게
보이는데 캄캄한 방에 들어가니까 얼굴이 안보이더라는 것
입니다. 방 밖에 있을 때는 환하니까 키가 크다, 잘생겼다
등을 알 수 있는데 어두운 곳에 들어가니까 안 보이는 것입
니다. 내가 선악을 지었지만 방에 들어가면 선도 안 보이고
악도 안 보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선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악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무기라고 합니
다.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무의식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무부무기라 합니다. 이것은
들어갈 때 현행이 훈종자熏種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종
자가 박힐 그 즈음에 가면 죄 지은 놈이 감옥에 들어가서
갇히면 선악이 없어져버립니다. 판사 앞에 나가야 선악을
가리는 것이지 감방에 있을 때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가벼운 죄를 지었는지, 무
거운 죄를 지었는지 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방에서는
선악을 묻지 않고 불문에 부치는 그것을 무기라고 합니다.
다음 말나식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전육식前六識과 같은
줄 아는데 말나식은 작용이 얼마 안됩니다. 사량식을 설명
할 때 나오는 이야기로 사량식이라는 것은 ‘여’자를 떼버리
고 사량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쿵 저러쿵 따지는 것을 사
량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따집니까? 사량식은 제 칠식에 이
름을 붙인 것입니다. 다른 식과 마찬가지로 제 칠식은 제
팔식의 종자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다음 강의 쯤에 나올
것입니다. 제 팔식 견분은 업의 그림자로 사량식인 제 칠식
이 그대로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 칠식 견분이 제 팔식
견분을 보고 ‘나’라고 실아에 집착을 하는 것이 사량입니
다. 시간적으로 항상하고 공간적으로 아주 큰 것을 어떻게
씁니까? 항상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사량을 하되 본래 성
품이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해석하
기가 어렵습니다. 밤낮으로 성불을 하기까지는 한 번도 끊
어진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아집 때문에 미리 받을 것을 생각합
니다. 세 가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합니
까? 보살도 남에게 주면 줬다고 생각하고 받을 보답을 하
는 것입니다. 성불을 하면 없어지지만 제 팔식은 항상 하지
만 심사審思를 하지 못합니다. 제 육식은 심사는 하지만 항
상이 안 되고 전오식은 사량을 못하기 때문에 심사와 항상
두 가지가 없습니다. 팔식도 사량하는 것이 있어 표가 나지
않고 육식도 사량하고 또 전오식도 못한다고 했지만 식은
사량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사량을 잘
하는 칠식을 사량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책에는
도표가 있으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육식은 요별경식이라고 합니다. 요별하는 것이나 사량
하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왜 전육식에만 요별경식
이라고 할까요? 눈으로 물건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하
는 것이 추경계, 추탁한 경계, 드러난 추경계, 머트러운 경
계를 사량한다고 해서 전육식이 되어 특별히 상相으로 추
열해서 요별경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숙식,
사량식, 요별경식 세 가지를 다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인능변 과능변까지 하려고 했는데 못했습니다.
인능변 과능변이 나오면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는 능력을 행상이라고 합니다. 또 이
해해주는 여러 가지 인능변 과능변에 가면 유식의 체제가
대략적으로 잡힐 것입니다. 자꾸 없다고 하니까 없는 것으
로만 이야기했습니다. 밖에 경계가 없다고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산하대지가 없다고 했는데 왜 없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식을 표현할 때 동류식, 이숙식에서 이숙식을 업종자라
하며 동류식을 명언종자라고도 합니다. 명언종자라고 하는
것에는 또 까닭이 있습니다. 내일은 인능변 과능변에 대해
서 미리 한 번 읽어오면 강의 듣기가 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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