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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청정법신, 마음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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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712회 작성일 21-08-0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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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청정법신, 마음은 하나


자 한 번 들어봐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起

心’이라. 금강경에 보면 용심이 결론입니다. 처음에 부주색 

부주성향미촉법으로 눈이 밖으로 육경을 거쳐 색, 즉 경을 

거쳐 색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색성향미촉

법에 주해서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관 객관에 마

음을 내지 않는 이것이 결론입니다. 마땅히, 응당히 하는 

소리는 꼭 반드시 주하는 마음이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으

로 이 소리에 깨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은 돈을 

좀 얻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해놓고 황매산의 

홍인 밑으로 들어가서 8개월을 지냈습니다. 그곳에서도 후

원에서 일만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다 알고 있는 사실

입니다. 그 이야기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어요. 그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운문사

에 가서 이런 이야기 하면 학인스님들도 그렇고 강사들도 

‘저 늙은이 했던 소리 또 한다.’ 하겠지만 난 그런 것이 아

닙니다. 내가 햇빛을 봐도 그대들보다 더 많이 봤다는 것입

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

닙니다.

금강경을 놓고 이야기해도 어제 화두와 오늘 화두와 평

생 드는 화두가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얘기를 했다가 내일 집어치우면 안 되는 것으로 한 가지를 

해서 끝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금강경을 내 놓고 

법문을 하는데 이 늙은이가 봐도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

기심’은 최고입니다. 이 구절에서 깨친 혜능이 어찌나 기분

이 좋았던지 다섯 마디를 읊었습니다.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만법萬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


그 때 오조 홍인대사가 혜능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유식

론의 본문으로 6백자입니다. 이 6백자 속에 뜻이 다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몸 속에 생명이 하나 들었다고 

생각 하는 것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유식론이라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오직 식 뿐입니다. 이렇게 내 몸뚱이가 중생

으로 된 것은 식으로 됐다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면 식識이 

없어지므로 부처에게는 지智라고 하지 식이라고 하지 않습

니다. 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몸뚱이로 그것을 지혜

로 메꾸어서 합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치가 명합이 되

면 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식에서는 성불해도 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유식의 입장에서 아직 덜 깨쳤기 때

문에 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불해도 식

이 있다고 하는 일본학자들은 견성해도 식 속에서 파묻혀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묘한 것이 생生인데 여러분은 정情이 있어 정으로 살거

든요. 여러분은 성품을 잘 모르는데 성품은 정이나 식이

나 똑같은 것입니다. 정을 설명하면 어렵지만 마음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마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유심과 유식

은 아주 다른데 그것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글자로는 이렇

게 쓰는 것입니다. 오직 유唯입니다. 빛깔은 형색 등을 말

하는 것으로 청, 황, 적, 백 그리고 흑이 있어 오색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유식과 상관없이 청황적흑백(동서남북중) 5 

색으로 세상을 표현하는데 먼저 동방을 청이라고 하고 남

방을 적색, 서방은 황색 그리고 북쪽을 흑색, 중앙은 백색

입니다. 청황적흑백 이것이 빛깔인데 마음(心)에다 빛깔

(靑)을 보태 놓은 것이 바로 정(情)(心 + 靑 = 情)입니다. 

그와 반대로 세상에 물 안 들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마음

은 성품性品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마음을 여러분이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법성자리는 수련을 해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품이 본래 법성입니다. 법성이라고 했지만 본

래 마음이란 표현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혹시 허공이 몇 개인지 알아요? 허공은 어떤 사람이 욕

심을 내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나누어 자기 몸속에 넣을

려고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나눌 수가 없는 것이 허공입

니다. 법성자리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허공의 근본이 되

는 것이 성품인데 성품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내 몸속에 넣

으려고 할 때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합니

다. 게으름은 원리하고 상관없이 뚱딴지 같이 자기 생각대

로 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는 달라지지 않는데 그것을 모르

고 엉뚱한 생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나쁜 물이 들지 않은 

본래 마음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정

을 가지고 이야기 했을 때 산다는 말이나 안다는 말이 같다

고 했습니다. 아는 대로 되는 것을 부처님은 지혜라고 했

습니다. 지혜를 지키지 못하면 깜깜하여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합明合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모르는 것으로 

나가면 식이 되는 것입니다. 

기신론에서는 우주의 생명은 하나인데 하나인 줄 모르는 

것이 식입니다. 마음 심자를 중생심자라고 했어요. 여러 

가지 생명인 ‘살타’라는 말은 인도의 보리 살타입니다. 깨

닫지 못한 우리를 구마라즙은 중생이라고 하였으며, 현장

은 유식의 유정有情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정이라고 할 때

는 살타의 의미를 천분의 일도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중

생이라면 마음속에서 유정뿐만 아니라 나무나 풀도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포함한 뜻입니다. 우리보다 감각작

용과 지각작용이 부족할 뿐이지 그것들도 살아있는 것입니

다. 내 몸뿐만 아니라 산 속의 소나무 잎사귀까지 유형 무

형을 통해 하나인 그것이 지인 동시에 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이치를 알게 됩니다. 

‘지혜 지智’와 ‘이치 이理’가 보리 반야인 지혜를 가지고 이

치를 덮어가야 합니다. ‘이’와 ‘지’의 폭이 같고, 질과 양이 

같아지면 그것을 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못 덮어

서 미끄러지면 식이 됩니다. 우리가 정통으로 깨닫지 못하

면 식이 되지만 깨달으면 다른 기운이 나오는데 그것을 ‘아

뇩다라샴막삼보리’라고 합니다. 깨달으면 전부가 하나 되

는 것입니다.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이 미간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는 

장면이 있습니다. 동방으로 일만팔천세계를 비춘다고 했

는데 일만팔천세계는 육근 육경 육식을 곱하여 삼육십팔한 

숫자입니다. 그 일만팔천세계가 없어져버리고 하나로 되는

데, 하나로 된 것은 공간도 하나인 동시에 시간도 하나입니

다. 과거에 어떤 스님이 보시를 했던지 지계를 했던지 간에 

현재는 공부를 하는 스님으로 보인 것입니다. 또 미래를 현

재에 믿어 과거 현재가 없어져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40억이나 됩니다. 40억의 낱낱은 몰라도 딱 합치면 부처

가 되는 것입니다. 전기가 통하도록 꼽는 콘센트를 일본말

로 사시꼬미라고 합니다. 거기에 끼우면 전기가 통하는데 

들어간다고 해도 삐딱하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삐딱해서 

10% 혹은 5% 밖에 전기가 안나오는 그것이 중생입니다. 

세상에는 사람 외에도 60만 가지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체들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바로 사시꼬미가 잘

못된 것과 같습니다. 본질인 사시꼬미에 꼽히면 바로 나타

나는데 나타나면 부처님이고 10도, 5도 삐딱하게 꼽혀서 

제대로 전기가 나오지 않으면 모두 중생이 됩니다. 우리는 

다 들어가지 않은 것도 모르고 전체인 줄 알아요. 

누에를 치는 사람에게 한 번 물어 보십시오. 누에는 고치

가 될 때까지 한 번 잠을 자는 것이 아니고 네 번 잠을 잡

니다. 뽕잎 한 다발을 먹이면 누에 뱃속은 훤하게 투명 액

체가 됩니다. 뱃속에 있을 때는 물 같이 액체지만 그것이 

누에 밖으로 나와서 공기를 쐬이면 실이 됩니다. 이것은 바

로 하나인 줄 모르는 그것이 밖으로 나오면 육경이 되는 것

입니다. 따로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삼라만

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액체가 공기를 쐬

면 실이 되는데 실은 곧 육근과 육경으로 변합니다. 누에가 

집을 지으면 여러분이 보는 것은 누에고치 속의 세계입니

다. 사람은 육근 육경이 생기고 또 파리가 되어도 육근 육

경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끝도 없이 생명체가 생기는데 그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이 중생은 사시꼬미를 바로 꼽지 

못한데서 생긴 그림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전체인 줄 알면 

안됩니다. 이것이 화두가 되든지 진언이 되든지 한꺼번에 

무너지고 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인 허공에서 과

거 현재 미래가 생기며, 시간과 공간이 생깁니다. 흘러가

지 않고 하나로 될 때 깨친 식에는 고락이 없어집니다. 파

도의 행위로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깨치기만 하면 

즉 견성한 사람은 잠을 자도 정신이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 

깨치지 못한 사람은 미끄러집니다.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

적인데 깨닫지 못하면 덮힌 것으로 정이나 식이나 같은 소

리입니다. 전체를 모르는 것, 전체적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한계가 생기는 것 그것을 공간적으로 식이라고 합니

다. 파리는 파리만큼 식이 있고 사람은 사람만큼 식이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것 즉 사시꼬미가 제대로 안 들어

간 것으로 이 상태를 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바로잡아 생

명의 본질을 나한테로 당겨오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하

는 공부입니다.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내

가 없는데 내가 있는 것 같은 가아假我에 대한 문제입니다. 

잘 아는 사람한테 가서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고 묻는 것

입니다. 이미 그릇에 무엇을 담아 놓으면 다른 것을 담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없어야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있습니

다. 정식이 있는데 그것을 종자라고 합니다. 종자라는 말

은 유식론과 같습니다. 눈으로 무서운 재앙을 본다면 감각

이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한 번 본 것과 두 번 세 번 본 것은 

놀라는 도수가 달라집니다. 

여러분 몸에 세포가 몇 개인 줄 알고 있습니까? 쌀이나 

콩을 빻으면 가루가 됩니다. 돌을 빻으면 돌가루가 나올 것

입니다. 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어두워서 

태평양은 큰 물이고 대서양은 작은 물로 보일 것입니다. 액

체나 고체나 기체 모두 분자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다른 곳

에서는 입자라고도 하지만 물을 끓여 공중에 뿌리면 다 증

발해 버립니다. 김이 조금 올라가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올

라가면 구름이 되고 구름은 올라가다가 무거워져 도로 떨

어지면 비가 되어 순환하는 것입니다. 물은 1도에서 100

도까지는 액체가 되고 100도 이상이 되면 기체가 되고 또 

영하로 되면 고체가 됩니다. 고체가 되든 액체가 되든 그것

은 탈바꿈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업은 사람도 됐다가 짐

승도 됐다가 탈바꿈합니다. 가루가 되는 것을 분자로 본다

면 우리 몸도 하나가 아닙니다. 이 세상 전부가 분자로 되

어있다면 사람의 세포를 쪼개면 한 대접의 물이 나올 것입

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물고기가 있어 대가리를 떼어버

리고 꽁지를 떼어버리면 몸통만 남는데 그것을 최소의 단

위로 보면 세포라 합니다. 우리 몸안에는 세포가 60조개

가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겠습

니까? 밥먹고 국 먹고 하는 동안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런 몸이 된 것입니다. 60조개나 되는 세포가 6년 동안에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60조를 6년으로 나누면 일초에 

만들어지는 세포 수의 계산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 나쁜 생각은 없어지

고 좋은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못생겼더라도 좋은 

생각을 하면 얼굴이 반듯해집니다. 이 말은 거짓말도 아니

고 웃으라고 하는 소리도 아닙니다. 찌꺼기를 종자라고 하

는데 다른 말로는 식이라고도 합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주

는 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대할 때는 훈습한 

기분을 식이라고 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 노름 잘 하는 

사람,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자꾸 미끄러지는데 그 

미끄러지는 성질을 육취라고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

은 술집으로 미끄러지고 여자 좋아하는 사람은 여자집으로 

자꾸 미끄러지는데 그것을 취라고 하며 육도로 미끄러지는 

것을 육취라 하며 종자라고도 합니다. 선택받은 부모에게 

자식은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종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종자는 집착인 것으로 몸으로 유식학 전체

에 통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45년 설법 가운데 12년 동

안은 시간 공간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여 중생에 따라서 비

유를 한 것입니다. 중생은 안으로 생긴 몸과 밖으로 모르는 

생각 하나에서 나온 것이며, 깨달음은 명明인 밝은 기운으

로 어두움이 없을 뿐입니다. 

대승기신론에 불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공진여에서 시

각을 세 가지로 나누는데 불각과 상사각과 수분각입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에 하고 여기서 진여인 법자는 생명

의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생명을 깨달으면 부처가 됩니다. 

앞에서 12년 동안에는 밖에 있는 육경을 법이라 했고 유

식에서는 8년 동안입니다. 그런데 육경을 법이라고 하지

만 육경만을 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생명으로 

중생의 중자는 많은 생명, 중대한 생명의 중심자리입니다. 

기신론에서는 생명의 바탕자리라 했으며 이것을 알면 부처

가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명인 바탕자리는 사람뿐

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

와 철학에서는 생명의 본체를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나에

게도 본체가 하나 있고 너에게도 본체가 하나 있다고 하는 

것은 생명의 본체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법문

하는 스님들이 있는데 큰일 날 소리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본체를 모르고 하는 소리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

다. 생명체는 하나일 뿐입니다. 언제든지 생명체는 정당한 

생명의 중심입니다. 불각이라는 말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

으로 여실히 생긴대로 하나인 줄 알지 못하면 불각이라고 

합니다. 기신론에서도 여실히 하나인 줄 알지 못하는 것을 

불각이라고 합니다. 하나로 알면 각인데, 여러 개로 알면 

상대가 되어 불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똑같

이 만들었지만 그것을 모르니까 좋은 것을 먹고 영양가 있

는 것을 먹어야 되는 줄 알지요. 에덴동산에서 아담도 그랬

듯이 너도 하나, 나도 하나 상대가 되니까 만족할 수가 없

는 것입니다. 하나인 줄 알면 그날부터는 덜 것도 없고 보

탤 것도 없어집니다. 숨을 쉬려고 애를 써지 않아도 숨은 

쉬어집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면 잠만 자더라도 정진이 됩

니다. 알면 되는 것으로 깨치면 더 정확해집니다. 소크라

테스도 바로 알면 행해진다고 했습니다. 모르니까 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청나라 때 왕양명은 지행합일설을 주장합니다. 아는 자

는 실행한다는 좋은 소리입니다. 알기만 하면 마치 밤에 잘 

때 숨을 쉬었다 마셨다 하는 것을 가만히 두어도 어디로 도

망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살

며시 숨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육조스님이 알았다

는 것입니다. 생사를 받지 않으려면 집착을 벗어나야 한다

고 했습니다. 애초부터 집착을 떠나면 허공에 그림을 그리

면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거울에 사람이 오면 비치고 사람

이 없어지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자꾸 보고 들어서 보는 것을 낳고 듣는 것을 

낳고 이렇게 하는 것을 잔상이라고 합니다. 잔상이 모여지

면 몸이 됩니다. 애초부터 들을 때나 볼 때나 또 시체가 남

는 것을, 죽어도 시체가 없는 바람마냥 없어져버려야 살만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불교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하나인 줄 모르는 것을 불각이라고 했고, 몸은 왜 

생기느냐? 깨치지 못한 사람은 생명이 하나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본질이 갖고 있는 빛의 도수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도수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홀

연히 이질의 생각이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물에 기름이 뜨

는 것과 같습니다. 동질이 아니고 이질이라고 하는데 홀연

히 망상이 하나 일어나는 것으로 이것을 무명이라고 합니

다. 무명이 일어나면 밝은 기운은 도망가고 어두운 기운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근본이 되는데 여러분

은 마치 콘센트를 꽂으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 육

도중생들은 바로 꽂지를 못했기 때문에 기운이 들어와도  

절반도 안되는 천만분의 일도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적

게 들어오면 축생이 되고 좀 더 많이 들어오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얼굴이 반듯하여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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