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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응스님의 유식특강

제3강 유식 30송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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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814회 작성일 21-08-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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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유식 30송 해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


먼저 책 처음부터 24 페이지까지 설명하겠습니다. 부처

님은 도를 이룬 뒤 설법을 시작한지 열두 해가 지나서 유식

을 설합니다. 이 유식사상을 정리하여 체계화 한 사람은 무

착과 세친인데 두 사람은 형제입니다. 무착은 형이고 세친 

즉 바수반두는 동생인데, 세친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지 

9백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형도 출가를 했지만 동생도 역

시 출가를 했습니다. 그 당시는 보수주의였던 상좌부 계통

과 진보주의였던 대중부 계통으로 나뉘어 20개의 부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상좌부上座部에는 설일체유부라는 

부파가 있었습니다. 대중부大衆部 계통은 부처님의 깨달음

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공한 것으로 보는데, 설일체유부

는 실상이 있는 것으로 보는 부파입니다. 

 인도에는 소원을 빌 때 큰 강에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습

니다. 큰 대大 하늘 천天자를 쓰는 대천이라는 큰 강가의 

높은 언덕에 사당을 지어놓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장수를 기원하는 그 곳에는 마하데바라는 신이 

있습니다. 또 바수반두라는 신도 있습니다. 사당에 모시는 

신인데 거기서 기도하면 아들 딸들이 장수를 한다는 것입니

다. 실제로 동생인 세친을 오래 살라고 부모가 그곳에 가서 

기도하고 바수반두라고 이름을 지었던 모양입니다. 세친은 

북인도 간다라국에서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설일체유부로 

출가하였으나 자국으로 돌아와 경량부의 스님이 됩니다.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상좌부의 설일체유부의 경전이 대비바사론입니다. 세친

은 대비바사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위장하여 설일체유부로 

가서 공부를 합니다. 대비바사론이라는 장문의 논을 연구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 교리가 너무 방대하여 마음에 들

지 않았습니다. 설일체유부에는 색건지라라는 큰 학자가 

있었습니다. 학자의 이름을 한문으로 번역을 하면 오입悟

入인데 깨달을 오悟에 들어갈 입入입니다. 오입존자가 수

백 명의 학자 승려들을 데리고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

친은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배우기는 해도 마음에 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경량

부사상과 절충하는 것을 오입悟入존자가 알았던 것입니다. 

늙은 노장인 오입존자가 보니까 세친은 보통 사람들과 다

르게 유부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에 

그를 부릅니다. ‘그대가 하는 공부는 정당한 것이 아니며, 

또 내 강의를 도청하면서 욕심을 내는 수행자한테는 가르

칠 수 없다. 그대는 여기에 있지 말고 본국으로 돌아가라.’

고 했습니다. 세친은 4년 동안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이제 늙은 노장에게 쫓겨나 본국인 경량부로 

돌아갑니다. 경량부에 돌아와서는 강의를 하는데 경량부 

사상과 설일체유부 사상을 종합하여 강의를 하게 됩니다. 

매일 강의를 하고 그 강의 내용으로 게송을 하나씩 짓습니

다. 육백 일 동안 강의하여 6백 게송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게송을 오입존자한테 보냅니다. 세친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건방진 생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오입존자 

밑에 있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학파를 선전하는 것으로 생

각하여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오입존자는 그런 것이 아니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과 반대되는 사상이

니 주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량부로 사람

을 보내서 6백 송에 대하여 주석을 달아 보내라고 합니다. 

하루에 한 송씩 해서 6백 송이나 되는 것에 주석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번역한 것이 아비달마구사론입니다.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아비달마구사론은 대비바사론을 요약, 절충하여 강의를 

하면서 6백 송을 지어 그 게송에 대한 해석을 덧붙힌 논입

니다. 아비라는 말은 대한다는 뜻이고 달마는 법이라는 뜻

입니다. ‘대법전對法典’이라고도 합니다. 법은 앞에서 설명

할 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육경六境만을 법이라고 했습

니다. 객관만을 가지고 법이라고 했는데 그 객관이 색성향

미촉법 입니다. 법을 대하는 것은 주관이니까 지혜로 번역

이 됩니다. 그래서 아비달마구사론은 ‘지혜를 간직한 논’으

로 번역됩니다. ‘구사론’을 보고 오입존자의 제자들은 손뼉

을 치며 좋아했지만 오입존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입

존자의 제자중에 한 사람이 12년 동안 ‘구사론’을 반박했는

데 그 논이 ‘구사박론俱舍雹論’입니다. 그 때 세친은 이미 

나이가 많아서 논박을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친은 

구사론을 반론한 그 논을 자신의 구사론을 더 충실하게 해

준다고 하여 ‘구사증의론俱舍證意論’또는 ‘아비달마순정이

론阿毘達磨順正理論’이라고 이름을 부칩니다. 

그런데 세친의 형인 무착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엄밀

하게 말해서 대승 경전들은 부처님 당시에 생산된 것이 아

니라 불멸 후에 만들어진 불교 경전들입니다. 그래서 형이 

안타까워서 동생을 오라고 했습니다. ‘내가 병이 들어서 죽

을 때가 되어 너가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하면서 ‘사실은 

네가 대승을 비방하는데 유래한 때문이라.’하였습니다. 이

에 세친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먼저 대승을 비방한 죄

를 뉘우치고 그의 혓바닥을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무

착은 ‘이제까지 비방하던 그 혀를 가지고 앞으로는 길이 대

승의 묘법을 찬탄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친의 대승으로의 전향


형의 간곡한 부탁으로 세친은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향하

게 됩니다. 세친이 볼 때 진정한 참회는 대승을 찬탄하는 

것이므로 그때부터 대승을 믿기 시작하며 대승을 찬탄하게 

됩니다. 소승에 몸 담고 있을 때 논이 6백부나 되었으며, 

그 후 대승으로 전향한 후에도 논을 더 하므로, 세상사람

들이 세친을 천부논사千部論師라고 부르게 됩니다. 대승

을 거듭거듭 칭찬한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유식에 대한 논

으로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있

는데 이십론은 4백자 밖에 안되며, 삼십송은 6백자입니다. 

이십론에는 게송이 21개인데 그 중에 한 송을 뺀 스무송의 

내용은 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삽십송은 전부 교리를 설

명한 것입니다. 이십론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명이 들었

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삼십송은 근본사상을 설명하

고 있습니다. 

유식이십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앞에서 탈선된 

사시꼬미 얘기를 했지요. 탈선되어 어긋난 사시꼬미는 어

긋난 것을 이야기 할 때는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어긋난 

사시꼬미는 전기가 변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제대로 안 

들어온 삐딱한 전기일 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

로 어긋난 사시꼬미는 삼매에서 생기는 것을 바로 받아들

이지를 못합니다. 제자리에서 생명의 본질에 합하지 못한 

탈선 된 그 빛깔이 여러분 몸뚱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생긴대로 바로 드러내면 삼매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태가 되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태양계에는 태양 하나가 빛을 발하며, 지구나 금성과 같

은 다른 혹성은 태양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물

속으로 비치는 빛이나 강에 비치는 빛이나 유리에 비치는 

빛은 물자체나 유리자체가 빛을 얼마나 흡수하느냐의 차이

이지 태양은 어디에나 똑같이 비출 뿐입니다. 태양은 똑같

이 비추지만 더 받고 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승기신론

에서는 업으로 인한 업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들어있는 

창고를 장식이라고 하는데 업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업이 나타내는 습관을 자꾸 자신이라고 집착을 합

니다. 업상을 모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햇빛은 식물도 잘 자라게 합니다. 똑같은 사과나무 100 

그루를 심어도 곧게 자라는 사과나무가 있고, 비뚤게 자라

는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바로 받는 것과 바로 

받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못 받으면 중생이고 바로 받

으면 부처인 것입니다. 바로 받으면 생명이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물론에서는 하나가 없습니다. 절대를 

잊어버리고 상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함께 앉아 있으면서

도 있지도 않은 인간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을 불

교에서는 무아라고 표현합니다. 무아를 모르고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도 못하며 용서하지도 못합니

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며 남의 허물을 용서

하는 것을 서恕라고 합니다. 내가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다

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용서하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스님

도 가정을 이루고 승려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김이라는 스

님이 하루는 출장을 갔다가 오니까 그 절에 같이 있던 박이

라는 스님이 김이라는 스님의 마누라하고 한 이불속에 있

는데 주인이 와도 모르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을 아

침에 일찍 깨워서 절로 보내고 평생 동안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부터는 남편은 자기 부인

하고 한 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는데 친한 친구인 박이라

는 스님이 자기 입으로 그 기막힌 이야기를 해서 소문이 퍼

졌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스님은 처녀가 애를 낳았는데 스

님이 데리고 와서 자기가 낳은 아이로 키운 이야기도 있습

니다. 이처럼 인간을 구제하는 힘은 먼저 자기자신을 구제

하는데 있습니다. 자기 몸을 못 건지는 사람은 남도 건질 

수가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못 건

지며 물에서 나온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

다. 승려들의 결혼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다 적용되

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체는 법성인데 법성에 어긋나면 파계고 어긋나

지 않으면 지계입니다. 원리에 어긋나는 것은 파계가 되고 

어긋나지 않는 것이 지계이며, 원리를 어기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은 물이 가라앉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가라앉으면 

본래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의 본질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성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질을 이야기해보지 않

으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전을 멧돌에 세우려고 할 

때 줄만 당기면 서는데 똑 바로 세우는 방법은 요령을 알아

야 가능합니다. 세우기 위하여 그냥 붙이려고 하면 아무리 

세우려고 해도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자꾸 몸밖에, 생명밖에, 마

음밖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식에서 말하는 법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안에 생명이 하나 있다

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의 열반 밖에 없습니

다. 엉뚱한 소리로 설법을 하면 안됩니다. 부처님 소리는 

별로 안하고 자기 소리만 하는 것은 설법이 아니며, 부처

님 사상도 아닙니다. 머리를 깎고 팔십 년이나 구십 년 동

안 절에서 살아도 불교를 모르면 스님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근본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근본을 알려

면 중도가 되어야 하는데 부처님이 팔정도를 이야기할 때 

중도가 처음으로 나옵니다. 바른 생활은 뜻이 몸과 행동하

는 것과 정견이 합해져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팔정도는 정

말 묘한 것입니다. 팔정도가 하나로 통해야 합니다. 

유식이십론과 유식삼십송에 있어서 이십론이 높은 법당

이라고 하면 삼십송은 높은 법당의 행위를 표현한 것입니

다. 즉 나쁜 것을 제하는 것이며 이것은 적극적으로 자격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세친은 젊은 시절에 육백부 논을 지었

고 대승으로 전향해서 많은 논을 저술하여 천부논사가 되

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유식이십론과 유식삼십

송입니다. 이십 글자씩 한 게송으로 하는데 삼십송이면 육

백 자가 됩니다. 삼십 송에서 본론을 지어놓고 해설문을 지

어야 했는데 못하고 열반에 듭니다. 이렇게 되니 후세 사람

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후에 삼십 

송에 대한 28명의 주석가가 해석을 했습니다. 나중에 16

명이 또 해석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식삼십송에 대해

서는 십대 논사들이 나와서 한 사람이 열권 씩 백권을 가

지고 유식삽십송을 해석하였습니다. 그 때 중국에서는 십

대논사들이 해석한 것을 받았던 스님이 서른두살에 죽어버

렸습니다. 요절한 그 스님은 친분이 있던 한 거사에게 죽

을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논서 백권을 주면서 ‘나는 운

명을 다 하였으니 이 다음에 정견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

이 있으면 이것을 주고 유식을 잘 펴도록할 것’을 당부하였

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후에 인도에는 유식을 잘 하는 스님

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스님이 인도에 유학왔다가 그

것을 중국으로 가지고 가서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중

국에서 많은 번역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원래의 뜻이 정확

하게 번역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장스님도 인도에 건너갔습니다. 17년을 연구하고 중국

으로 돌아와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습니다. 반야경을 번역

하였는데 이 반야경은 600권으로 분량이 매우 많습니다. 

부처님은 반야경을 설하기 전에 8년 동안 방등경 계통을 

설하였는데 여기에 포함된 경전의 내용들을 요약하고 체계

화하여 만든 것이 유식삼십송입니다. 현장법사는 이것을 

네명의 제자들에게 맡겨 번역을 하자고 했는데 그 가운데 

규기라는 스님이 현장법사에게 독대를 청하여 여러 사람이 

번역하면 논이 통일되지 않고 복잡해지니 스승의 감독하에 

혼자서 번역을 하겠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열명이 번역을 

하니까 내용이 범벅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범벅이라는 음

식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범벅은 이것저것을 섞어서 만

든 것인데 현장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러 사람의 의견이 

복잡해지면 번역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규기에게 100권을 

번역하라고 주었는데 규기는 100권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10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열 권이 유식삼십송의 

중심 내용이 된 것입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야 하는데 내용이 많습니다. 삼십 송

은 중요한 것입니다. 십대 논사들이 어느 정도 정리하였는

데 그 후에도 많은 내용을 떼어내고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한 것은 유식사상을 전하는데 있어서 아주 잘

못된 것입니다. 

진시황은 봉건제도하에서 정치를 개혁할 때 모든 책을 

태워버렸습니다.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 

빼고는 모든 책을 불에 태워버렸던 것입니다. 또 진시황은 

정치가 마음대로 안되니까 육백 명이나 되는 학자들을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모든 책을 불태우는 분서갱유를 일으

켰던 것입니다. 현장이 한 행동은 분서갱유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에 우연히 프랑스인 세 

르반네이는 인도를 돌아다니다가 안혜가 번역한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것을 불기 2525년에 도서관에서 모두 발췌해 

두었는데 안혜의 번역이 옳다고도 하고 그르다고도 했습니

다. 이제까지 이십론과 삼십송에 대한 역사를 어느 정도 설

명했습니다. 유식삼십송에 대해서는 다른 번역이 없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이란 사람이 ‘전식론’으로 번역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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