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유식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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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강 유식대강
5위 100법五位百法
지난 시간에는 110페이지 유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꿈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인간은 인간의 꿈을 꾸고 있고 벌
레는 벌레의 꿈을 꾸고 있고 축생이나 지옥이나 전부 자기
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꿈을 깨뜨려야 합니
다. 오늘은 책을 중심으로 공부할까 싶은데 이 책은 내용이
잘 된 것입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이 책으로 배웠습니
다. 성유식론이라는 책을 가지고 강독하고 나서는 그 뒤로
다시 그 책을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직지사에서 출가해서 선 공부를 해보려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인사에서 강원을 졸업하고 김용사
가서 3년 동안 강사를 했습니다. 불교 종단에서 만든 능인
중고등학교에서 선생을 하려면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오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마침 유
식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잘 배웠던 것입니다. 일
본에서 돌아와 유식을 했다고 하니까 나를 유식학자라고
얘기하지만 난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유식공부는 그만 두
었는데 그 후에 여러 곳에서 유식을 강의 해달라고 해서 강
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는 이런 책도 없었고 유식삼십
송이라는 책이 나오기 전에는 삼십 송만 강의했습니다. 삼
십송을 잘 들으면 그만이지 다른 책은 볼 것도 없다고 했습
니다. 유식은 본뜻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문자는 중요하
지 않습니다. 뜻을 알면 그만입니다. 글자는 도를 실은 기
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도 도를 실은 기구일 뿐
입니다. 글자를 평생 따지면서도 유식의 본래 뜻을 알지 못
합니다. 이렇게 공부하다가 잘못되어 문자에 팔리면 안됩
니다. 불교를 알려고 해야 합니다. 글쟁이가 조금 배웠다
고 해서 불교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알아야 되는 것
입니다. 주제넘은 소리지만 나는 평생을 책보는 것에 크
게 열중하지 않았습니다. 참선한다고 앉아 있는 것으로 평
생을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강사로 취급하여 선
을 모르는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유식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내원사에서 법당을 다 짓고 낙
성 법회를 할 때 한달 동안 화엄경을 강의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속인도 포함하여 오백 명이 모였는데 그 때는 기운
이 있어서 잘했습니다. 지금은 늙어서 소리가 잘 안 나옵니
다. 한 달 전에 금정사에서 한 달 동안 강의를 했는데 중요
한 것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뜻만 알아 취하면 됩니다.
난 안경을 평생 쓰지 않았습니다. 안경을 쓴다고 해도 더
밝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 다시 책 111페이지 둘 째 첫마디부터 읽어봅시다. 식
이라는 것은 유식이십론에 이르기를 심心, 의意, 식識, 요
了 명지차별名之差別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또한 심心이라
고 해도 괜찮습니다. 심이라고 할 수 있고 의意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으며 혹은 요了라고 하여도 가능하며 실은 이것
은 모든 식識에 통하는 말입니다. 명칭으로서의 식만을 가
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유식이란 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
속에는 제 8식을 식이라고도 하고 제 7식을 식이라고 하기
도 합니다. 육식은 전육식前六識이라 하여 다른 식과 구별
하기도 합니다. 모든 식이 각각 그 뜻을 응하는 것에 지나
지 않습니다. 여기서 유식론에서의 유자는 이와 같이 구별
을 하지 않고 모든 식을 종합한 보조명사로 쓰여지고 있습
니다. 유식론이란 명사는 심의식을 나누어서 8식, 7식이
다른 것을 통칭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 책이 보통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한 글자를 빼도 말
이 안되고 더 넣어도 안되는 책입니다. 번역이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정은 제대로 봤는데 인쇄
하는 과정에서 한 두 글자가 빠진 것이 있습니다. 책을 받
아놓고 서울 갔다 왔다 하느라고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500페이지인데 어제 저녁에 400페이지
까지는 읽어보았습니다. 잘못된 것은 강의하면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늦더라도 강의 진도를 다 마치도
록 하겠습니다. 자 다시 공부하는데 유물론과 유심론에 대
해서는 앞 부분에서 설명했는데 이제 유물론과 유심론이
무엇인지는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유물론과 유심론 이야
기는 유식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세상 전체
를 보통 물질로 보는 것이 학문인데 정신이라는 것은 물질
에서 우러나오는 것 밖에 안됩니다. 유물론은 물건에서 퍼
진 것입니다. 유심론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사는 기운인 날 생生자인데 다른 말로 바꾸면 알 지知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설명하는 방법이 경에서 보면 몇 가지
안됩니다. 모든 경전의 해독방법은 최상승법으로 해야 됩
니다.
집성제集聖諦가 무엇인지 알겠어요? 이 집은 형상을 이
루고 있는 것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하는 말인데 책상
은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안경알은 유리로 되어 있습니
다. 체라고 하는 것은 바탕을 말하는데 성품 성性자를 쓰
고 학문적 용어로 바꾸면 본질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바탕
은 본질의 이해입니다. 바탕은 몸 체體자를 쓰는데 이 지구
는 체로 되어 있습니다. 모양은 납작하고 둥글게 되어 있습
니다. 그런 것이 모양 상相입니다.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이것은 찻잔 받치는데 사용하는 찻종으로 용도가 밝혀진
것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사용 용도가 나온단 말입니다.
결국 체상용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생명의 본체는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본질은 청정합니다. 중생은 욕심
내고 지저분한 짓만 하는데 오탁汚濁이라고 합니다. 하나
만 알아도 다 들어옵니다. 다섯 가지 탁한 것으로는 번뇌망
상이 으뜸으로 탁이라 쓴 것은 둘이 아닙니다. 평등과 반대
되는 소리로 둘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양은 곧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평등하다는 소리는 둘이 아니라는
소리며, 똑 같다는 소리입니다. 상은 평등하고 체는 청정
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두고 한 소리인데 그러면 용은
어떠합니까? 쓰임새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용은 자재
하기 때문에 벌레도 되고 사람도 되고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습니다. 견성을 한 다음에 보림을 해야합니다. 하나 둘
은 별 것 아닙니다. 아침에 한 번 듣고 알면 팔만대장경이
한마디에 다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복은 어떻게 됩니까? 복이 천진한데 천진은 청정한 것으
로 체가 됩니다. 천진은 청정하고 체가 되는 이것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부터 있는 것입니다. 보림이란 보호
할 보保자 맡길 임任자로 자재가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천진한 자리에 체를 어기지 않고 보존하고 상은 그대로 유
지하는 것이며 용은 자재하는 것에 맡겨두면 됩니다. 그런
데 자꾸 붙들어서 가두려고 하는데 그러면 보림이 되겠습
니까? 법성은 중요한 것이니까 맡겨두세요. 번뇌가 일어나
는 것을 일부러 끊으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둡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다가 무기無記에 빠지면 뒤에 생각과 맞추어서
이으려고 애쓰는데 그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자재
를 해야 되는데 모두 하는 짓이 외도의 짓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외도의 짓을 하는데 공부가 되겠어요? 우리나라에
서는 처음부터 선방에서 참선을 하려고 하는데 서장과 선
요등을 통하여 참선하는 법을 배워서 해야합니다. 중국 선
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방에 들어가면 화두를 가지
게 됩니다.
조금 전에 법이라는 것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는 기운
이라 했습니다. 사는 기운은 뜻에도 안 나오고 말에도 안
나오고 참말만 되는 것입니다. 복되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
데, 깨치지 못한 아집을 가진 사람은 남한테 입만 열면 마
음 아프게 하는 말만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말하면 안됩니
다. 행동도 남을 열 받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는 자
리가 법인데 그것을 깨쳐서 마음으로 가면 지혜가 됩니다.
입으로 나오면 거짓 없는 진언이 되고 몸으로 가면 남한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신통이라고 합니다. 남한테
아내같이 하면 마누라 같이 되고 부모 같이 하면 아들 같이
됩니다. 우리는 아침에는 이 놈한테 욕하고 밤에는 저 놈한
테 욕하고 그런 천백 억 화신을 하고 있습니다. 얘기가 자
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유식이라는 식識자하고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라 할 때
일체유심조라 하는 마음 심心자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유
심과 유식을 이렇게 말하며 또한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의意자가 있습니다. 즉 심의식心意識이 있습니다. 심과 의
와 식과 요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심과 식을 한 가지 뜻으
로 생각하고 식을 대신해서 심을 써서 유심이라고 해도 지
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본
래부터 식과 심이 동의인 것은 유식을 대신해서 유심을 쓸
때 가능한 것 같지만 유식이란 말은 인위유루因位有漏의
의미로써 말한 것이 됩니다. 내가 어제 강의 할 때 분명히
깨친 다음에 식이 나오는 것은 거짓말이라 했습니다. 심이
라는 것은 깨쳤을 때나 미했을 때나 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엄경에는 인과가 깨쳤을 때나 미했을 때나 통하
는 것은 심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범주가 생기는 것입니
다. 통은 유심唯心이라 했고 논설은 유식론과 같은 논서에
서 하는 것입니다. 경이라고 하는 것은 삼계유심三界唯心
의 설을 가리킨 것입니다. 유심론에서 설한 정분淨分연기
는 다 알고 있잖아요. 정분연기보다도 염분染分연기를 하
기 때문에 유식이라는 것은 중생이 어떻게 해서 중생이 되
었는지를 얘기하는 것이지 깨닫는데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책
에서 나온 것이지 내 말이 아닙니다. 그것을 믿으면 강의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과 식은 통하는 말입니다. 그
런데 유식론이 정한바 염분연기를 주로하기 때문에 유심이
라 하지 않고 유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유심이라
고 말하면 마음 심자가 보통 법 법자로 아함시대에는 객관
으로 육진 혹은 육경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을 설한 뒤
에 그것을 논한 지혜를 모아둔 것이 구사론인데 일명 대법
론이라고도 합니다. 유심이라고 말하면 일심一心의에 의해
서 제법을 개발한 것으로 기신론 등에 진여연기眞如緣起라
표현한 말과 공통된 명목이므로 마땅히 유식론은 현상식인
유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법이라고 했는데 만유는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
며 마음 심心자의 뜻입니다. 우주 전체에 퍼진 것을 법이라
고 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앞에서는 객관이라 하고, 오늘
은 객관과 주관이라 하는데 주관과 객관을 한꺼번에 모아
둔 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전체를 5위 100법으로 설명합
니다. 구사론에서는 5위 75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
사론에서는 색이 먼저 나와서 마음이 일어날 적에는 색이
밖에 있으면서 고요한 것으로 바뀝니다. 고요한 것은 변행
遍行이라는 심으로 심소心所를 읽으니까 색이 먼저 나와서
심이 됩니다. 심소는 나중에 나오는 것으로 전체 유식의 높
은 뜻은 법을 쫓는 것으로 색의 뜻이 따로 있어 법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명체 즉 움직이는 것은 시공간으로 퍼져
빛깔이라는 만물이 생기게 됩니다.
이만하면 유식에 대한 설명은 다 된 것입니다. 그 도수를
몰라서 생명이 아닌 것을 생명인 줄 알고 자꾸 파헤치고 있
습니다. 이것을 인지하면서 식이 생기니까 자타自他가 생
기고 주관과 개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관이 생긴 것이 견
분見分이고, 객관이 생긴 것이 상분相分입니다. 기신론에
서는 업상業相이 하나 더 있어 전상轉相과 현상現相이라고
합니다. 전상은 견분과 같은 것이며, 현상은 상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논을 어떠한 관점에서 설명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존재를 설명하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
상事相이 있고, 둘째는 이성理性이 있습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의타기성에서 나오고 이성은 원성실성에서 나옵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눈과 귀에서 드러나는 것을 말하
며, 눈과 귀를 통하여 인식되는 것으로 현상이라고 말합니
다. 실물이 있어 나타난 것을 현상이라고 합니다. 요즘 사
람들도 눈앞에 무엇이 나타났다 하면 현상이라고 말합니
다. 눈에 나타난 것과 귀에 나타난 것과 코에 나타난 것은
육근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으로 같은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때는 실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육근이 있어 육경이 보
이는 것이고, 벌레는 벌레 나름의 육경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본 것이 벌레에게도 똑같이 보이는 것
은 아닙니다. 실물이 있다면 사람이나 벌레가 보는 것이 똑
같아야 합니다. 실물의 인식은 실체가 없는 것을 내 업으
로 인하여 보는 것일 뿐입니다. 바로 업식業識 때문입니
다. 자신의 저장창고에 들어있는 업이 나타나는 것을 식이
라고 합니다. 그 기준에서 업상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
다. 업의 기운으로 그렇게 되는 줄 모르고 실물이 있는 것
으로 압니다. 이태백이 읊은 싯귀를 보면 ‘천지天地는 만
물지역려萬物之歷旅요’ 하늘과 땅은 만물이 지나가는 여관
과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우주를 객관으로
표현한 명문장으로 어린시절에 읽었을 때는 대단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성이나 사상에서 우주만법을 현상이라고 합니다. 눈으
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모양상자라
고도 말합니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첫 째 현상을 유위법이
라고 합니다. 반대로 무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
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유위법
은 중간에 생긴 것이며 본래 없었던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
다. 우리 눈이 없었다면 보이는 것이 없을 것이고, 귀가 없
다면 들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고막
이 상한 사람은 태어나서도 말을 못합니다. 어릴 적부터 벙
어리는 고막이 없어져서 말을 듣지 못하니까 말을 못합니
다. 예를 들어서 당나귀가 ‘으힝’ 하고 울면 고막이 상했으
니까 우는 소리는 못 듣지만 당나귀가 하품을 하는 것을 보
고는 하품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듣든지 보든지 간에,
우리의 현상세계는 육근에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근에서 이것을 통하여 세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식이라
는 것은 견분, 상분으로 갈려서 물건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잡합니다. 눈으로 보면 모양이 보입니다. 모양을
본 것을 안이비설신으로 받아들일 때 모양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본 것까지를 견분이라 합니다. 본 것까
지도 같이 들어옴으로써 견분상분이라 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들어옴으로 견분훈見分薰 상분훈相分薰이라 합니
다. 속에 들어있던 종자가 바깥으로 나가서 퍼져나갈 때에
는 견분으로도 나가고, 상분으로도 나갑니다. 상분으로 되
면 산과 들이 되는데, 중생은 그렇게 되는 것을 모릅니다.
눈을 통하여 보는 것도 들어가고 보여지는 산과 강도 한꺼
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유
위법이라고 합니다. 유위법은 현상세계를 말하는 것입니
다. 무위는 다른 말로 하면 보통 철학에서는 본체라고 하는
데, 본체란 말은 불교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원성실성
이라 해서 본체 대신에 실상이라 합니다. 실상이라는 말도
몇 천 년을 두고 우러나온 말인데 말의 뜻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서툴고 둔
합니다. 모두 서툴고 둔해 실상이라 하는데 실상자리를 무
위라고 합니다. 조금 전에 본체 얘기를 했습니다. 불교에
서는 원성실성이라고 하는데 원성은 아직도 나오려면 멀었
지만 유위무위로 나오는 것으로 철학적 불교라고 합니다.
이것은 철학적입니다.
그 다음에 루漏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번뇌를 가지고
루라고 하는데 번뇌란 말은 번거로울 번煩을 쓰는데 번요
뇌란煩擾惱亂이라는 말을 줄여서 번자와 뇌자만 따서 번뇌
라 합니다. 이것을 깨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탐진치의 치는 무명을 말합니다. 깨닫지 못했으니까 안이
비설신의 육근으로 항상 새어 나옵니다. 즉 육근으로 나타
나는 것입니다. 어디가든지 어리석음을 쏟아내고 있는 것
입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음을 쏟아내
고 있습니다. 무명無明이 없어진 사람을 무루라고 하며 이
것은 종교적으로 명상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가 있는데 그
것은 착한 일, 악한 일의 다섯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와 마
찬가지로 이 세상의 만법은 착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으
며,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닌 중간 것도 있습니다.
즉 선과 악과 무기입니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악이라고
도 이름할 수 없는 중성인 것을 무기無記라고 합니다. 이것
은 유가에서 하는 것으로 삼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도
덕적 불교라고 합니다. 우주만물을 이성과 사성으로 나눴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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