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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삼십송강설

4. 제1송 연기와 유식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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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4,823회 작성일 21-07-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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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1송 연기와 유식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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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삼십송의 제 1송은 ‘유가설아법 유종종상전 피의식소변 차능변유삼’입니다. 해석해보면 ‘허망한 것에 의거해서 자아와 법이 있다고 말하니 자아와 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 그것들의 식이 전변 된 것에 의지한다. 이 능변식은 오직 세 종류이다.’의 뜻입니다.

 ‘유가설아법’은 허황된 뜻에 의거해서 나와 법을 가짜로 세우는 것입니다. 원래 없는 나와 대상을 있다고 생각하고 세우는 것입니다. ‘유종종상전’은 자아와 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상을 보고 온갖 생각을 일으킵니다. 나와 대상은 원래 없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세워놓으니까 모든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피의식소변’은 그것들의 식이 전변 된 것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차능변유삼’이란 능변식은 오직 세 종류라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6식, 7식, 8식입니다. 

 원래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데 있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모든 생각이 일어납니다. 부처가 되면, 진리를 알면 허황된 생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도 있다고 생각하고 대상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없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다 내 것이라고 고집하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로 없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이야기 전개가 안 됩니다. 원래는 없지만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있다고 생각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들을 분류하면 6식, 7식, 8식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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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나와 대상, 주체와 객체, 아와 법이 있습니다. 아我는 자기, 자신입니다. 법法은 사물적 존재로 산이나 강 등 내가 아닌 모든 것입니다. 산도 강도 이 절도 모두 사물적 존재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아와 법으로 나누어집니다. 나는 안이비설신의로 이루어졌고 대상은 색성향미촉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와 대상이 부딪히면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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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는 생명 있는 모든 것으로 범부도 성인도 다 속합니다. 부처 빼고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는 탯줄로 태어납니다. 조류는 알로 태어납니다. 모기와 같은 벌레들은 습기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다른 물건에 기생하여 스스로 업력에 의해서 갑자기 생성되는 것이 바로 화입니다. 천신이나 귀신이 이에 속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자아는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법은 5온이고 12처고 18계입니다. 나와 대상을 모두 포함하는 12처와 나와 대상이 부딪혀서 일으키는 생각까지 포함한 18계가 있습니다. 5온은 색수상행식이며, 12처는 육근인 안이비설신의와 육경인 색성향미촉법이며, 18계는 육근과 육경에 육식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신, 신식, 의식을 더한 것입니다. 유위와 무위는 법의 양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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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삼계라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욕계입니다. 욕계에는 욕과 물과 심이 있습니다. 색계에 들어가면 심과 물 밖에 없고, 무색계에 들어가면 심 밖에 없습니다. 색계는 17천, 무색계는 4천, 그리고 욕계는 11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 받아 윤회하고 살아가는 이 삼계는 욕계 위에 색계, 색계 위에 무색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번뇌를 나누어보면 탐심과 진심과 치심입니다. 탐 진 치가 엄청 강할 때는 지옥의 과보를 받고 아귀의 과보를 받고 축생의 과보를 받습니다. 이것보다 탐 진 치가 약하면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과보를 받습니다. 육도 윤회는 아귀, 지옥,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입니다. 우리는 인간 몸을 받았으니 6등급 가운데 5등급에 속합니다. 그래서 인간 정도 되면 아주 나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잘 하면 부처가 되는데 만약 이 생에서 내가 이렇게 공부를 했는데 윤회를 해서 과보를 못 받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공부에 대한 대가가 다음 생애에 없어진다면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부처님은 이 윤회에서 장치를 해놓았습니다. 어느 단계 이상 가면 다음 생애에는 웬만하면 그 단계 밑으로 몸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부를 한 만큼 받아서 다음 생애에 태어나게 됩니다. 만약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내 것이 되어 있으면 다음 생애에 태어나도 내가 아는 것입니다. 대학 시험에 커트라인이 있듯이 이 생에서 삶이 합격점을 넘어가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 몸 밑으로는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악행을 하거나 엄청난 잘못된 생각을 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고 축생의 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인과를 잘 알고 제대로 살면 절대로 이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다 깨어나도 인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 몸을 받지 못하고 그 아래가 될 위험이 큽니다. 천상은 죽어서 극락에 가는 것입니다. 사천왕천이나 도리천과 같은 곳입니다. 인간 위가 사천왕천이고 사천왕천 위가 도리천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을 좌지우지하는 곳이 바로 도리천입니다. 이 도리천은 인간의 삶과 가장 관계가 깊은 곳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관장하는 것이 제석천왕입니다. 하늘나라 가운데 도리천에는 동서남북으로부터 갈라진 32천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정중앙에는 제석천이 있습니다. 그래서 총 33천이 됩니다. 절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종을 칩니다. 아침에는 28번 종을 치고 저녁에는 33번을 칩니다. 아침의 28번은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이 살고 있는 28천을 깨우는 것입니다. 저녁의 33번은 도리천의 33천을 의미하며 모든 생명을 잠재우며 쉬라는 것입니다. 절에 들어가면 4천왕이 있습니다. 4천왕은 부처님의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4천은 동서남북으로 있고 이 4천을 지키는 신장神將들이 팔부신장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신장님 보호하사.’라고 합니다. 신장이 지켜주고 도와주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도를 깨친 사람들은 어떤 곳에 가더라도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신장이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도를 얻고 맑고 깨끗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원효 스님도 그랬습니다. 의상 스님은 수행하고 있으면 천녀들이 천상에서 공양을 날라와 천공을 했습니다. 하루는 의상 스님이 원효 스님에게 점심 공양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의상 스님이 청하자 원효 스님은 그쪽으로 갔습니다. 의상 스님은 하늘에서 천공을 받아 원효 스님께 대접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천공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기다리다 말고 원효 스님은 배가 고파서 떠납니다. 원효 스님이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천공이 내려옵니다. 그러자 의상은 천공을 가지고 온 천녀들에게 불만을 토해냅니다. “내가 원효 스님께 대접하려고 천공을 기다렸는데 왜 이제 공양을 가지고 오시오?” 하니까 그 천녀들이 말합니다. “원효 스님을 지키던 신장들이 워낙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저희들이 감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진리를 아는 도인은 신장들이 지켜주는 것입니다. 팔부신장은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가 있습니다. 도리천 위에는 야마천, 도솔천이 있습니다. 도솔천은 부처님과 미륵보살이 현세에 오시기 전에 있었던 곳입니다. 부처가 되려면 도솔천에는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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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주와 세계를 살펴봅시다. 불교의 우주는 삼천대천세계입니다. 소세계에서 1000을 곱하면 소천세계가 되고 소천세계에서 1000을 곱하면 중천세계가 되고 중천세계에서 1000을 곱하면 대천세계가 됩니다. 그러니까 대천세계는 소세계에서 1000을 세 번 곱한 것입니다. 대천세계는 우주를 상징합니다. 삼천대천세계는 즉 1000을 세 번 곱한 대천세계라는 것입니다. 결국 대천세계나 삼천대천세계는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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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고 동서남북에 동쪽에는 동승신주, 서쪽에는 서우하주, 남쪽에는 남섬부주, 북쪽에는 북구로주가 있습니다. 이 남섬부주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지구를 말합니다. 우리 지구에 석가모니가 태어났습니다. 석가모니가 다스리는 세계가 남섬부주입니다. 남섬부주는 남방화주라고도 합니다. 
부처로 돌아간다는 회귀 사상은 우리가 부처인 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원래 부처였다는 것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회복해야 하는 삶의 과정을 지옥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우리는 고민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삶이 바로 부처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깊고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생각하는 것이 위빠사나로 왜 그 일이 일어나는지 밝히는 것이고, 깊이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생각에 깊이 빠져드는 것으로 사마타입니다. 위빠사나와 사마타는 우리의 삶을 부처로 만들어가고 회복시켜 줍니다.  수많은 경전을 공부해도 궁극적이고 중요한 내용은 위빠사나와 사마타입니다. 우리는 이제 목적은 압니다. 그 목적을 여러 가지 각도, 방향, 방법에서 접근해볼 수 있습니다. 
묘법연화경의 서품을 한 번 살펴봅시다. 부처님의 설법 장소는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부근에 있는 기사굴산입니다. 청중은 13000 제자, 8만 보살, 10만이 넘는 천자, 용왕, 긴나라, 건달과 아수라, 가루라 등 반인반수, 마가다국의 아사세 왕도 신하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기사굴산은 모여든 사부대중으로 가득 차 버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법 전에 깊은 선정에 드셨고 선정에서 깨어나 중생을 위하여 대승법을 설하셨고 하늘은 축복으로 꽃비를 내렸고 땅은 놀라움으로 진동하였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미간인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아 동쪽 1만 8천 세계를 비추니 그 세계가 대중의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모든 대중은 이러한 기적에 놀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문수보살에게 묻습니다. 문수보살은 일월등명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실 때 지금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고서 아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것이다고 말합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육서는 성스러운 여섯 가지 서입니다. 설법서는 부처님 설법의 성스러운 서입니다. 입정서는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신 성스러운 서입니다. 우화서는 하늘에서 꽃비를 내리는 성스러운 서입니다. 지동서는 땅이 놀라 진동하는 서입니다. 중희서는 청중, 대중이 기뻐하는 서입니다. 방광서는 부처님께서 빛을 발하시는 서입니다. 지혜가 극에 달하면 빛을 발합니다. 사마타가 극에 달하는 순간 빛이 발하게 됩니다. 간혹 열심히 참선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그 참선하는 곳을 보고 훤하더라는 말을 합니다. 이렇듯이 본인이 알든 모르든 방광은 수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장 성스러운 여섯 가지 서瑞가 서품에서 전개됩니다. 또 서품에는 법화삼매, 무량의처와 같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가장 깊은 선정삼매에 들었을 때의 모습을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제법인 고집멸도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 사성제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사성제법입니다. 우리는 사성제법에 따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사성제법을 살펴봅시다. 고는 과제의 제시이며 집은 그 일이 일어난 원인입니다. 멸은 사건이 해결된 상태이고 도는 실천 방법입니다. 고집멸도는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활 양상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서든지 고집멸도 속에서 움직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오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싸움을 했습니다. 싸운 내용이 과제의 제시인 고입니다. 집은 왜 싸움을 했는가입니다. 아버지가 늦게 퇴근해서 자식이 많이 기다리게 되자 아버지에게 화를 냅니다. 이런 경우 아버지가 늦게 퇴근한 것이 원인이 됩니다. 멸은 사건의 해결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해명을 합니다. 자식은 그 말을 듣고 설득이 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천 방법인 도는 회사에 있었던 일들을 자식이 알아듣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든 고집멸도로 다 해결이 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을 알면 해결 방법이 생깁니다. 해결 방법에 따라 실천하면 사건이 해결됩니다. 부처가 되는 과정을 예로 들어봅시다. 고는 우리가 부처가 되지 못한 상태인 중생으로 있는 것입니다. 집은 이유를 살피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것도 부처가 되지 못한 이유가 되겠지요? 도는 실천 방법입니다. 위빠사나와 사마타를 열심히 하면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실천 방법인 도가 위빠사나와 사마타입니다. 불교의 12연기는 사제법과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2연기는 그 일이 일어난 원인으로 사성제의 집입니다. 그래서 사제법을 잘 하면 12연기도 자연스럽게 잘 하게 됩니다. 
 최근 일주일 동안에 일어났던 가장 큰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부부싸움, 자식과의 싸움, 직장 상사와의 갈등 등이 떠오를 것입니다. 다시 원인을 찾아보고 생각해보면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내가 원인을 끝까지 분석하지 않고 넘어가면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험을 보면 틀리는 문제를 계속 틀립니다. 문제집을 서너 권 풀어도 그렇습니다. 틀리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틀리는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은 계속 잘 하고 못하는 사람은 계속 못합니다. 못하는 상황에서 잘 하게 되려면 잘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터득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봐야 하는데 노력을 안 하고 그대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 제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생에서 고집멸도를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면 다음 생도 똑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고집멸도의 고의 내용은 무상과 무아입니다. 무상하고 무아이기 때문에 고입니다. 왜 무상이냐 하면 생노병사하기 때문입니다. 생멸을 하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고를 살펴봅시다. 네 가지 고에는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온성고가 있습니다. 무아에서는 애별리고를 합니다.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언젠간 헤어지는데 죽으면 헤어집니다. 애별리고는 항상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증회고가 있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고통이 됩니다. 가만히 자신을 돌아봅시다. 자기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은 다 원망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속에는 원망하는 마음들이 쌓여만 갑니다. 특히 강력한 원망은 기억에 강렬하게 남습니다. 그리고 구부득고가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구하는 것은 잘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고이고 무아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온성고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제각각 제멋대로 하려고 합니다. 자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몸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의 방향과 각도를 0.1도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집제입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났나의 원인을 철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 중에는 집제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업 때문에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목숨을 걸 정도의 각오를 해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되어야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어렸을 때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보면 하나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바뀌었다면 살아오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깨쳤습니다. 무명은 깨닫지 못해 모르는 상태이고 연기는 깨달아 아는 상태입니다. 불교는 끊임없이 무명과 연기가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지 못했는가는 과제의 제시인 고가 됩니다. 무엇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발생의 이유는 집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도이고 올바른 관찰, 올바른 생각,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수행이 이에 속합니다. 이것들에 의해 무명에서 연기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멸의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부처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 해야 가능합니다. 사성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삶에 배어들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삶을 바꿉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업이 우리로 하여금 못하게 만듭니다. 관성은 그대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 관성에 제동을 거는 것이 사성제입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각하는 것이 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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