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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9송 상응수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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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7,729회 작성일 21-08-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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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9송 상응수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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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9송을 봅시다. ‘차심소변행 별경선번뇌 수번뇌부족 개삼수상응’입니다. ‘이것(6식)의 심소는 변행이고 별경이고 선이고 번뇌고 수번뇌고 부정의 심소이다. 모두 세 가지 감수작용과 상응한다.’라는 뜻입니다. 


4. 상응수구문

세 가지 감수작용이란 선, 불선, 무기입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업의 창고는 모두 변행이고 별경이고 선이고 번뇌고 수번뇌고 부정입니다.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든 것이 세 가지 감수작용과 상응한다는 말입니다. 수억 겁 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업이 이런 형태로 쌓인 것입니다. 

5위 100법은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분별심을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으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정리해 놓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것을 잘 정리해서 알고나면 명쾌하게 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의 생각은 5위 100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선, 불선 등으로 분류된 것 가운데 선을 계속 써서 끄집어 올려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이러한 것입니다. 선을 하는 이유는 부처의 기운을 내 속에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부처의 기운이 내 속에 있으면 모든 것이 성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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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법이 있습니다. 두 법이란 안과 색입니다. 내 눈과 보이는 대상을 말합니다. 존재의 첫 출발은 나와 대상에서 시작합니다. 깨치고 나면 눈과 보이는 대상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쪽으로 가면 눈이 되고 바깥쪽으로 가면 보이는 대상이 됩니다. 눈과 보이는 대상은 하나이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하는 말은 다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가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안과 색(보이는 대상)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안과 색과 안식이 화합하여 촉이 생깁니다. 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작의가 있습니다. 근(안, 나)이 경(대상, 보이는 대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촉이 생기는 것입니다. 근은 무엇인가 하려는 의지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은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지에 의해 근이 경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촉이 일어나면 수, 상, 사가 생깁니다. 내가 대상과 부딪히면 느낌이 생기고 형상이 생기고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사고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언어는 촉, 작의, 수, 상, 사에 의해 그 지역에 있으면 알아집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으면 한국어를 알게 되고 미국에 있으면 영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언어도 우리가 수 억겁 동안 살아오면서 저장된 형상들이 부딪혀 되살아나거나 새로 촉, 작의, 수, 상, 사에 의해 저장된 형상에 불과합니다. 근과 경과 촉의 관계는 연기의 인연과와 비슷합니다. 연기는 인, 연, 과의 법칙입니다. 인연과의 법칙이 인과응보에서 주체가 되는 인은 의지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의지적 속성은 끊임없이 하려는 것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행위를 다음 생에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은 대상입니다. 연은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하면 반드시 그것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연은 보복성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을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내가 대상에게 자비를 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자비를 주고, 내가 대상을 살생하면 대상도 다음 생에 나를 살생합니다. 

 안식은 심왕이며 촉, 작의, 수, 상, 사는 심소법입니다. 왕은 제멋대로 합니다.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은 바깥으로 제멋대로 표현하므로 왕입니다. 식이 나타나게끔 해 주는 것이 심소입니다. 심소는 마음의 집으로 저장창고입니다. 그 마음을 끄집어 내어 쓰는 것은 왕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을 일으켜 색경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작의입니다. 묘하게도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나아갑니다. 눈은 소리나 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로지 보이는 것에만 나아갑니다. 모두 자기 것으로만 나아갑니다. 6식이 작의에 의해 작용할 때 착한 마음, 착하지 않은 마음, 착하지도 그렇지도 않은 마음(무기, 부정법)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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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를 한 후 번뇌가 되는 것, 번뇌가 되지 않는 것에 따라 유루법, 무루법으로 나누며, 깨치기 전후에 따라 세상은 유위법, 무위법으로 나누어집니다. 유위법은 심왕법, 심소법, 색법, 불상응행법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5위란 유위법의 네 개의 법과 무위법을 합쳐 말한 것입니다. 5위를 구체적으로 나눈 것이 100법입니다. 

100법은 심왕법 8개, 심소법 51개, 색법 11개, 심불상응행법 24개, 무위법 6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심왕법은 여덟 개가 있습니다.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7식, 8식입니다. 안이비설신을 통해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이 식입니다. 식이 대장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식(안이비설신식)에다 7식, 8식을 더해서 8개입니다. 색법은 11개인데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과 이 10개에 속하지 않는 법처소섭색 1개를 더하여 11개가 됩니다. 심소법은 51개인데 이것은 내 속의 업을 모두 분류한 결과입니다. 51개 가운데 변행 5개, 별경 5개, 선심소 11개, 번뇌심소 6개, 수번뇌심소 20개, 부정법 4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심불상응행법은 선과 선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으로 24개가 있습니다. 


내 속에 든 씨앗, 뿌리는 8식 아뢰야식입니다. 진여를 본다, 법성 자리를 본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6식, 7식을 깨트리고 8식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말나식으로 인해 나가 생깁니다. 나의 모든 것은 제7식의 것을 써 먹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을 통해 그림을 봅니다. 눈을 통해 그림을 보면 내 머리 속에서는 업의 창고를 통해 그림에 대한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 생각은 선일 수도 있고 불선일 수도 있고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 전5식이 대상과 부딪히는 순간 내 속의 업과 작용해서 생각이 일어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자의 업에 따라 각자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7식을 끊는다면 전5식이 대상을 보면 대상이 그대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이 보던 그 대상은 다 같습니다. 8식은 촉 작의 수 상 사의 변행 다섯 가지만 작용합니다. 8식에서는 제7식이 작용하지 않으므로 대상을 접해도 그 대상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8식으로 보게 되면 누구에게나 진리는 똑같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조주 스님이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든 내가 무엇이다라고 하든 다 똑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우리는 업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업에 의해 살아갑니다. 만약 우리가 업을 다 알면 비록 업이 있더라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래서 제7식이 작용하거나 하지 않으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장님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면 이리저리 부딪히며 잘 찾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눈이 보이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라고 한다면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업을 아는 것이 이러한 것입니다. 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깨친 사람을 무심 도인이라고 합니다. 무심이란 말은 제7식의 심소가 작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오변행의 촉, 작의, 수, 상, 사만 작용해서 나오는 마음이 무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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