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제21송 삼종자성의 의타기성과 원성실성
페이지 정보
본문
30. 제21송 삼종자성의 의타기성과 원성실성
유식 21송을 봅시다. ‘의타기자성 분별연소생 원성실어피 상원리전성’ ‘의타기자성의 분별은 연(인연)에서 생겨난 것이다. 원성실자성은 그것에 있어서 항상 앞의 것을 멀리 떠난 자성이다.’입니다.
소변계의 자성은 의타기성뿐입니다. 두루 계탁하는 심왕등의 소연연이기 때문입니다. 변계소집은 집착심의 대상일 뿐 인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소변계가 아니고 능변계입니다. 두 가지 의지처인 견분과 상분은 실제로 연에 의탁해서 생겨나며, 이것의 체성이 비실재가 아닌 것을 의타기성이라고 합니다.
색심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은 유루에도 있고 무루에도 있지만 대상의 여러 가지 연에 의해서 생기하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연이라는 것은 인연, 등무간연, 소연연, 증상연을 가리키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은 이 네 가지 연에 의해서 생기하며, 제법은 인연과 증상연에 의지해서 생기합니다.
분별은 마음이며 구체적으로는 안식이며 나아가 아뢰야식 등 여덟 가지의 식입니다.
원성실자성은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자성을 떠나야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의타기와 분별에서 벗어나야 진리,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진여를 나타냅니다.
진여는 언어가 끊어진 자리이며, 생각이 끊어진 자리이며, 무분별지에 의해서 능히 증지되는 절대의 경지로 무위를 의미합니다.
심소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업은 의타기입니다. 자성인 원성실은 이 의타기에 덮여 있는지 없는지 모르며 평생 의타기를 나인 줄 알고 사용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덮여 있는 의타기를 걷어내면 원성실이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이 의타기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것입니다.
의타기성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의타기란 말은 다른 것에 의한 것입니다. 의타기가 다른 것에 의해 존재 형태를 갖는 이유는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타기자성의 분별, 모든 의식은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외의 다른 것의 힘, 인과 연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눈을 떠 봅시다. 그러면 눈앞에 나팔꽃의 화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팔꽃이 눈에 띄인 것은 우연히 눈을 뜬 그곳에 화분이 있다는 연의 도움을 입어 그것을 본다는 시각이 아뢰야식 속의 종자, 즉 ‘인’에서 생기게 된 것입니다. 시각 자체가 그것을 보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생성에는 시각 자체의 의지나 힘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각은 스스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의 도움을 입어 나, 육근, 인이 그 사물을 인식하는 구조입니다. 사물과 존재는 각각 사물이 생성하는 원인, 생성된 사물, 그 존재성이 있습니다. 사물이 생성하는 원인에는 인과 연, 분별이 있고 생성된 사물에는 의타기성, 분별된 것이 해당되고 그 존재성은 인과 연은 존재하지만 분별에 의해 생긴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별에 의해 망분별된 사물은 분별된 것이지만 그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물과 존재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인과 연에 의해 생긴 사물을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내 분별에 의해 분별된 것이 사물입니다. 우리는 그 사물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 사물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과 연에 의해 분별된 사물은 현실세계에서는 1차적인 존재로 변계소집성이라고 합니다. 의식에 의해 분별 작용에 의해 생겨난 사물, 마음을 떠나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사물은 현실세계에서는 2차적 존재입니다. 이것은 의타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성실성을 봅시다. 원성실성은 완성된 것입니다. 존재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최고도의 존재성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 원어 parinispanna에 부정사 a를 붙여 ‘무유진실, 비진실’로 번역되어 망분별된 존재의 형태를 갖는 것을 형용하는 말입니다. parinispanna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 진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본질, 진여, 본 자성을 말합니다. 진여의 말 뜻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마음의 번뇌가 불식될 때 자신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그대로의 존재, 진실성을 말합니다.
진여의 원어는 tathata 이며, 뜻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흙탕물이 고여 있을 때 몇 시간을 그냥 두면 모든 불순물이 가라앉아 깨끗한 물이 나타납니다. 청정이 된 것입니다. 이때 존재하는 그대로의 존재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투명한 상태에서는 미세한 움직임도 모두 포착됩니다.
정적이든 지적이든 번뇌 망상이 사라지면 마음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상태를 진여라고 하며 진실재이며, 온 우주를 덮고 있는 하나일 뿐입니다.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원성실성은 의타기성, 변계소집성과 항상 떨어져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버린 것입니다. 유식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세상은 나와 대상이 없는 오직 식만 있을 뿐입니다. 진리도 결국 내 마음을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원성실성이 내 마음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는 것(의타기성), 마음속으로부터 모든 속박, 분별된 존재 틀을 갖는 것(변계소집성)이 제거되어야 원성실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변계소집을 이루고 있는 속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의적(신체적) 속박과 정신적 속박입니다. 정의적, 신체적 속박이란 아뢰야식 속에 잠재한 더러움에 물든 종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정신적 속박인 지적인 속박은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적 대립에서 생기는 속박입니다. 변계소집을 이루고 있는 이 두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야 변계소집으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 이전글31. 제22송 삼종자성의 불일불이 21.08.03
- 다음글29. 제20송 삼종자성의 변계소집성 21.08.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