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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25송 유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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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6,467회 작성일 21-08-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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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25송 유식성


지구에서 가장 분쟁이 많은 지역은 이스라엘 땅일 것입니다. 유태인에 의해 형성된 디아스포라라는 유태인의 집단은 아직도 존재합니다. 중동 지역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지금은 집단에 의한 이기심이 만연해 있습니다.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집단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 정치 등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심이 해소되어야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편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집단이 골고루 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과는 개인에 의한 인과도 있지만 집단에 의해 집단이 받는 인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인과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 일류 기업에 취직을 했으나 당시 국제 정세, 국내 사회 문제 등으로 기업이 망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면 이것은 집단의 인과를 받은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 같이 영어를 쓰고, 전쟁 위험이 별로 없는 잘 사는 나라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편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현재 우리는 분단되어 전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한국 땅에 태어났습니다. 한국 땅에 태어난 것도 집단의 인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업이 이 땅에 태어나게끔 움직이고 짜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환생을 하면 살았던 곳 근처에서 계속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불일불이입니다. 나와 내 사진의 관계입니다. 사진은 나와 같기도 하여 불일이며, 또한 다르기도 한 불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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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 25송을 살펴봅시다. ‘차제법승의 역즉시진여 상여기성고 즉유식실성’ ‘이것은 모든 법의 승의이며 또 진여이다. 상주하고 평등하며 그것의 자성이기 때문에 유식의 참다운 성품이다.’입니다. 

이것은 원성실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성실성은 본질이자 진여이며 유식성이기도 합니다. 원성실성을 바다의 파도에 비유해봅시다. 바다에 가면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파도가 잠잠해지니까 저 멀리 파도에 가려져 있던 청산이 보입니다. 파도는 바로 진여, 본질을 가리는 변계소집성, 의타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산은 원성실성, 진여,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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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실성은 진여입니다. 진여란 법계와 같은 말입니다. 공성, 실제, 무상, 불이성, 무분별계, 불가언성, 불생불멸, 무위, 열반입니다. 이것들이 진여의 특징이자 동의어입니다. 진여는 공하고 실재하는 본질이며, 끊임없이 변하며, 다르지 않으며, 분별이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습니다. 진여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진여는 성지의 소행(성인의 지혜가 행동으로 나온 것)이며 성지의 경계이며 무분별지의 경계(분별이 없는 단계)이며 반야의 경계입니다. 진여는 객관과 주관이 없어진 청정한 지혜에서 나타나는 존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진여, 원성실성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설명을 했지만 결국 본인이 체험하고 체득해야 제대로 알게 됩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25송에서 원성실성, 진여가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진여는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에 들어 있는 진여의 성품은 하나인 것입니다. 나비에게는 나비의 특성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특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특성이 있지만 진여의 성품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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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는 ‘완성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유식성이라고 합니다. 

25송을 보면 ‘유식의 참다운 성품’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유식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유식성은 vijnapti – matrata이며, 뜻은 ‘모든 것은 오직 식에 지나지 않는다.’ 입니다. 형상, 모양 즉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유식상이라고 한다면 본질, 본성은 유식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유식성을 체험해야 하는데 그 유식성을 체험하는 과정을 유식위라고 합니다. 

안혜는 25송의 ‘그것은 바로 유식의 참다운 성품이다.’는 말은 현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관이란 진리, 진여를 지혜 즉 무분별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안혜가 유식성을 객관으로써의 진여가 아니라 주관으로서의 무분별지로 파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유식성은 자기의 주관이 개입된 진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식성이란 주관이 개입되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식성, 원성실성은 진리에 도달했을 때의 마음도 되지만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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