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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8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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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930회 작성일 21-08-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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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8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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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사성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을 펴신 곳입니다. 그 당시 왕사성을 다스리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 죽림정사를 지어줍니다. 부처님 당시에 왕사성에서 하루에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흥분한 소가 지나가던 사람을 떠 받아 죽여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소의 주인은 겁을 먹고 소를 내다 팔았습니다. 그 소를 사 간 사람은 집으로 데려가는 길에 소에게 밀려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소를 사 간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 소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소고기를 시장에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의 머리를 사갔습니다. 그 사람은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 더워서 소의 머리를 나무 위에 걸어두고 그 밑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의 머리가 나무 위에서 떨어져 뿔이 사람의 머리에 박혀 그 사람은 죽고 말았습니다. 

전혀 관계없던 세 사람이 소와 관계되어서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담당하던 관리가 아무리 조사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임금에게 보고합니다. 빔비사라왕도 아무리 궁리해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찾아가 사건을 이야기한 후 그 사건의 원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사람들의 전생의 인과를 말해 줍니다. 죽은 세 사람은 전생에 같이 장사를 했던 동업자였습니다. 어느 날 먼 곳으로 물건을 팔러 갔다가 어느 노파의 집에서 한 달 간 머물며 장사를 했습니다. 노파는 그 세 사람을 정성껏 돌봐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배은망덕하게도 노파에게 숙박비조차 내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노파는 세 사람을 돌봐 주느라 돈을 다 써버려서 당장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노파는 악에 받혀 세 사람을 쫓아가서 숙박비를 내놓아라고 했지만 세 사람은 노파를 조롱하며 달아나버렸습니다. 노파는 극심한 분노에 떨며 “내가 다음 생애에 어떤 형태로든 너희들에게 복수를 하리라!”라 저주하고 그 자리에서 화병으로 죽습니다. 그 노파가 이번 생애에 소의 몸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소의 몸을 빌린 노파는 세 사람에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끄집어 내 쓰는 것은 알고 있는데 안에 들어있는 업은 모릅니다. 그러나 끄집어 내 쓰는 것을 통해 무엇이 들어있는지 추측은 가능합니다. 안에 들어있는 업을 잘 알고 쓰면 우리는 이번 생애를 더욱 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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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8식을 살펴봅시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의식의 저장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업과 전생의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6식은 대상을 보고 일으키는 생각이고 7식은 내 머리 속에서 일으키는 오만 가지 생각입니다. 8식은 저장창고입니다. 부처님께서 연기를 깨쳤을 때 나라는 존재 안에는 안이비설신을 통괄하는 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의식은 불교가 발전해오면서 구체화되어 6식, 7식, 8식으로 분리됩니다. 식의 전변이란 식의 움직임으로 안에서 무엇인가 생각이 요동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움직임으로 인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타나는 생각을 견분과 상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견분이란 내가 스스로 인식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일으키는 생각으로 제7식입니다. 견분은 내가 일으키는 생각으로 번뇌장, 번뇌 망상입니다. 견분으로부터 해탈하면 아라한이 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아라한까지 나옵니다. 상분은 대상에 대한 인식입니다. 대상을 보고 일으키는 객관적인 인식입니다. 상분은 대상을 보고 일으키는 생각으로 대상에 대한 번뇌 소지장입니다. 소지장을 깨트린 상태는 보리이고 깨우친 사람은 부처라고 합니다. 열반적정이란 견분과 상분을 깨트린 깨달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깨트리고 제8식인 본래의 식을 볼 수 있을 때 열반의 상태에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증분이란 것이 있습니다. 자증분이란 내가 일으키는 생각을 판단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일으키는 그 생각을 다시 확인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만약 유체이탈을 하면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증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증분을 확인하는 증자증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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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작용을 세밀하게 나누어보면 견분, 상분, 자증분, 증자증분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견분, 상분에 그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면 모릅니다. 본인이 분명하게 알아야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경이 안경집 안에 들어있습니다. 견분이란 내 눈으로 안경집을 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상분은 그 대상인 안경집입니다. 자증분은 안경집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인식능력입니다. 증자증분은 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식간에 생각을 일으키지만 사실은 자증분과 증자증분의 검증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유식은 수많은 논사들에 의해 유상유식과 무상유식으로 발전합니다. 유상유식은 유식이 형상이 있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고 무상무식은 유식이 원래 형태가 없다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논리입니다. 인도의 나란다 대학은 4세기에서 5세기경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교입니다. 그 당시 나란다 대학의 최고 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호법논사가 유식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합니다. 호법은 4분을 주장하여 견분은 1분이고 상분은 2분이고 자증분은 3분이고 증자증분은 4분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에 반해 안혜논사는 곁가지들을 부정하고 8식 하나의 식만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안혜논사는 1분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8식의 성품은 오직 무부무기이며 작용은 다섯 가지 변행뿐입니다. 삼계와 구지에서 다른 업력을 따라서 생합니다. 무부무기란 더러움이 없는 맑고 깨끗한 무기입니다. 무기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선도 불선도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계는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고 지는 9지를 말합니다. 9지란 3계를 업력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눈 것입니다. 9지는 잡거지, 색계 4지, 무색계 4지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업력에 따라 3계 9지로 각각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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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식에는 5변행인 촉, 작의, 수, 상, 사가 작용하지만 그 작용이 미세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작용하고 있으나 우리가 작용하는지 자각하지 못합니다. TV를 멍하니 볼 때 다른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끊임없이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은 5변행을 반드시 거칩니다. 내가 어떤 대상을 보는 순간 대상과 부딪히는 것이 촉입니다. 작의란 6근이 6경으로 나아가게 하는 의지입니다. 나를 대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작의에 의해 대상을 보는 순간 느낌을 받습니다. 그 느낌이 바로 수입니다. 느낌에 의해서 형상이 내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상입니다. 형상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그에 대해 생각(사)을 합니다. 변행 다섯 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의식 구조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던 5변행을 꼭 거치게 됩니다. 

8식은 미세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거의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7식부터 입니다. 8식은 무엇인가에 덮혀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덮인 것을 뚫고 들어가 8식을 제대로 보고 깨치면 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6식, 7식에도 촉, 작의, 수, 상, 사는 있습니다. 8식에서 아무런 작용이 없다면 7식으로 넘어올 수 없습니다. 내 저장창고 속의 것을 쓰려면 무엇인가 작용을 해야 합니다. 저장창고 속에는 우리가 자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작용이 있어서 제7식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5변행입니다. 제8식은 3계 9지에서 각기 다른 업력에 따라 생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업력에 따라서 3계 9지의 어느 곳에 생하며 그때의 주체가 제8식입니다. 8식이란 내가 행했던 모든 행위의 결과가 들어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명이 새로 태어날 경우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제8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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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분, 상분에서 일으키는 모든 생각을 나눈 것이 5위 100 법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의식, 인식하는 모든 대상은 유위법입니다. 깨친 상태에서 인식되는 것은 모두 무위법입니다. 유위법을 나누면 색법, 심법, 심불상응행법, 심소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위법과 함께 이것이 5위입니다. 100법이란 유위법 5위와 무위법을 통틀어서 나눈 것입니다. 유식을 처음으로 완성시킨 세친의 구사론(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5위 75법이 나오고 대승불교에서 좀 더 세분화 되어 100법으로 완성됩니다. 심소법은 변행 5가지, 별경 5가지, 선 11가지, 번뇌 6개, 수번뇌 20가지, 불결정 4가지로 총 51가지가 있습니다. 

세세생생 살아온 내 업의 창고에는 무엇인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의혹도 있고 의지도 있고 지혜도 있고 선과 악 등등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세세생생 했던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끄집어 냅니다. 조주스님에게 부처가 무엇인가 묻자 조주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이해하기 위해 내 저장창고 속의 것을 꺼내 계속 생각을 합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업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별하여 답을 끄집어 내면 내가 갖고 있는 업에서 각자의 다른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나의 저장창고 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작용해서 나오면 다 틀리지만 나의 저장창고를 통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 것은 다 같습니다. 각자의 업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저장창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다 알면 저장창고를 통하지 않고 나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51심소법을 살펴봅시다. 제8식은 5변행 만을 거칩니다. 제7식은 심소법 가운데 18개를 거칩니다. 18개란 5변행, 별경의 혜, 번뇌심소의 탐, 무명, 견, 만, 수번뇌심소의 방일, 해태, 혼침, 도거, 불신, 망념, 산란, 부정지입니다. 6식은 51심소법을 전부 다 거칩니다. 5변행은 6식, 7식, 8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변행은 모든 51심소법이 통과하는 통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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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성, 청정법신과 같이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성품에 대한 설명은 금강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금강경을 보면 ‘제보살 마하살 응여 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이란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금강경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내용에 대한 설명을 봅시다. ‘모든 보살은 응당히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형상에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생각에 머무름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응당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입니다. 청정한 마음이 바로 법성, 깨끗한 마음, 깨친 마음입니다. 우리는 형상을 보는 순간 저장창고 속의 것과 결부해서 마음을 일으킵니다. 깨친 사람은 마음에 머무르는 바 없이 살아갑니다. 즉 51심소법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업의 창고와 작용해서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결부시키지 않은 청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내가 갖고 있는 오염된 번뇌 망상과 결부해서 계속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은 아애인 것입니다.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인을 생각하려고 해도 자기가 우선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척을 하는 것뿐 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 반만 차 있어도 성인 대접을 해줍니다. 본질을 알고 깨친 자만이 상대방을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살려고 연습하는 중생입니다. 연습하다 보면 깨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몸을 받으면 그것을 마음껏 연습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돈이나 권력도 사람들이 나쁘게 보지만 그것들을 잘만 쓰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육조혜능은 오조홍인이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말하자 바로 깨칩니다. 육조혜능이 여기서 본질, 법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일초직입여래지’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초의 촌각도 없이 바로 나오는 것이 여래지라는 것입니다. 51심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견성한 깨달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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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장을 살펴봅시다. ‘이승二乘은 요해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미혹하니 집착이 이로 말미암아 능히 논주들의 논쟁을 일으켰느니라.’ 대학 입시를 보면 대학마다 학과마다 합격 커트라인이 각각 다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도 과정이 있습니다. 4성제의 도리를 깨친 사람이 성문승입니다. 연기의 도리를 깨우친 사람이 연각승입니다. 깨달은 상태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사람이 보살승입니다. 이 세 가지 승을 삼승이라고 합니다. 이 삼승을 거쳐 부처가 됩니다. 앞의 문장에서 ‘이승’은 성문승과 연각승 정도의 경지를 가리킵니다. 그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것이 맞다고 고집하여 끊임없이 논쟁하게 됩니다. 아무리 깨친 사람이 설명을 해도 중생들은 자기가 본 것만큼 보고 고집을 피웁니다. 자기는 그 단계까지 보지 못하니까 고집을 피웁니다. 성문승과 연각승 경지의 사람들은 미혹하여 제8아뢰야식의 근본 진여를 모르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심밀경에서도 ‘이승二乘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아뢰야를 이승二乘에게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을 괜히 설명했다가는 집착만 하고 논쟁만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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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세 가지 장은 끝을 다 할 수 없으며’라는 말을 봅시다. 제8아뢰야식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뢰야는 장이라고 번역하는데 능장, 소장, 아애집장이 있습니다. 아뢰야식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능장, 소장, 아애집장이 됩니다. 능장이란 제8식과 종자와의 관계에서 8식이 일체 만 법을 낳는 종자를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8식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창고입니다. 8식에는 내가 행위 했던 모든 결과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소장이란 만법의 종자가 8식에서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고에 들어있는 것들을 쓰며 견분, 상분 등을 일으킵니다. 창고에 들어있는 것이 능장이라면 소장은 끄집어 내어 쓰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움직임입니다. 아애집장은 아뢰야식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중생의 주체가 되므로 제7식 말나식이 이것을 잘못 알고 나라고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무아입니다. 원래 나는 없지만 한 생명이 생기는 순간 제8식의 창고가 형성됩니다. 그 순간 8식의 창고를 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애집장입니다. 나라고 착각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사랑하고 집착하는 덩어리인 것입니다. 여기서 제7식이 생깁니다. 제7식의 기본 작용에는 아치, 아집, 아만, 아애가 있습니다. 그것들과 연관되는 것이 아애집장입니다. 이 세 가지 장은 끝이 없다고 했는데 깨쳐야 세 가지 장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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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이 깊어서 전7식은 물결이며 경계는 바람이 되고’의 문장을 살펴봅시다. 큰 바다에 바람이 부는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바다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칩니다. 파도의 물결은 제7식이고 바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깊은 속 바다는 제8식입니다. 바람은 제6식입니다. 제8식의 근원은 매우 깊어서 밖에서 아무리 움직여도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요동쳐도 제8식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제7식과 제6식은 제8식의 바다에서 파도와 바람과 같이 작용할 뿐이지 바다는 바다로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깊은 해저를 모릅니다. 하지만 파도가 치는 것과 바람을 보고 바다는 어떻겠구나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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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을 받아 종자와 근신과 기계를 지니며’의 문장을 봅시다. 훈습을 받는다는 말은 아뢰야식이 전7식의 모든 훈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결과가 8식이 됩니다. 훈습이란 그 모든 결과를 말합니다. 제6식이 작용하여 행위를 하여 업을 지으면 자연히 제8식에 훈습되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 내가 살생을 하면 그럼 그 훈습이 내 종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살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모두 다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생명에 대한 가르침을 말합니다. 불교는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종교나 철학을 보면 인간 중심이지 다른 생명들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우연으로 교통사고가 났다고 합시다. 그 사고가 정말 우연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 없는 일이 없습니다. 그 우연한 사고도 전생의 업과 연관되어 일어난 일입니다. 전생에 다른 생명들을 살생했기 때문에 그 생명들이 나에게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과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배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집니다. 그 밑에서 풀을 뜯고 있던 사슴이 배에 맞아 죽습니다. 오비이락도 결국은 어떤 인과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망을 얻는 사람들을 봅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전생에 깨달음을 얻었거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종자, 근신, 기계에 대해 살펴봅시다. 종자는 8식을 가리키고 근신은 신체에 해당하며 육체입니다. 전5식을 가리키고 기계는 자연계에 해당하며 대상을 가리킵니다. 내가 행했던 모든 과보가 종자, 근신, 기계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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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는 나중에 가고 올 때는 먼저 와서 주인공이 되느니라.’의 문장을 봅시다. 8식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의식이 떠나고 제7식이 떠나고 마지막에 8식이 떠납니다. 49제는 죽는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티베트의 ‘사자의 서’를 보면 죽고 난 다음 3일 후부터 시작합니다. 그 말은 8식이 우리의 몸을 완전히 빠져 나가는데 3일이 걸린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는 8식이 가장 먼저 옵니다. 가장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나라고 고집을 합니다. 갈 때는 죽을 때를 말하는 것이고 올 때는 새로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의식이 전부 그치고 제7식은 작용을 못하지만 제8식 아뢰야식은 생명을 마칠 때까지 남아 따라갑니다. 또 다시 몸을 바꿔 환생할 때 제6식이나 7식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생기는 순간 6식과 7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뢰야식은 끊임없이 작용합니다. 제8식 아뢰야식이 제일 먼저 와서 그 중생의 주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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