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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의 전개와 유식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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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2,609회 작성일 21-07-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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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의 전개와 유식의 바다



불교 이론 중에서 복잡하면서도 가장 묘미가 있는 가르침이 유식일 것입니다.

유식에는 생소한 언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말 자체가 어렵다고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닙니다.

유식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일으키는 마음 작용들, 의식들의 총집합체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의 삶은 깨치는 것이 목적인데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식을 제대로 알아봄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음작용, 심리 명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식이며, 유식을 제대로 알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지인 깨달음에 도착하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라시대의 혜초 스님은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당나라를 거쳐 서역 인도로 불교 유학을 갑니다. 지금으로 친다면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최첨단 학문을 배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불법을 공부하면서 나이가 육십이 넘어 감회를 표현했던  글이 ‘고향 하늘 바라보며’라는 시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부터 약 천오백 년 전에 구법을 떠났던 한 구도자의 삶의 여정이 눈물겹습니다.


고향하늘 바라보며


                               혜초


달 밝은 고요한 밤에 고향 길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내 마음 가득 담아 구름에 띄우려하니

바람이 먼저 알고 구름이 비껴 가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동쪽에 있고

나는 지금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따가운 여기에는 기러기조차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에 소식 전해 줄거나.


고국을 그리워했던 혜초의 마음을 보고 불법에 대해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 후 불교를 전법하겠다는 의지로 이 시를 연구실에 걸어 놓고 매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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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갠지즈 강 유역은 인도 당시 불교가 성했던 지역입니다

갠지스 강을 따라  마가다국에서 코살라국에 이르는 이 루트가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전법을 했던 곳입니다.

베살리, 코살라국 쪽에서 쿠루 국으로 올라오면 히말라야 산맥의 오지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친 연기인 불교교리를  완벽하게 체계화시킨 것은 코살라국 중심의 오지에서 형성된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입니다.

불교의 원천은 설일체유부이며, 이 내용을 가지고 요약, 정리한 것이 경량부입니다. 모든 불교의 원천은 설일체유부로 히말라야 깊은 오지에서 불교교리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전파 지역은  전 인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변가를 따라 교통 요지에서는 대승불교가 일어났고 오지를 중심으로 상좌부 계통의 전통적인 불교가 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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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편리 한대로 결정을 하고 자기 주장대로 행위를 하는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삶이 결정되어 있는 존재로 가정하고 인간의 내면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이란 기본적인 생물학적 충동과 본능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욕망에 의하여 동기화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 모든 생명의 뿌리는 충동과 본능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욕구에 의해서 행위, 행동이 동기화됩니다.

불교 용어로 표현한다면 근본적으로 가장 선하지 못한 의식인 탐심 진심 치심이 있습니다.

치심은 바른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리석음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 치심에서 나누어진 것이 탐심과 진심입니다. 탐심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탐욕이며, 진심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탐욕입니다.

프로이트는 생물학적인 충동과 본능(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본능 욕구인 감정적인 진심)을 인간들이 갖고 있는 뿌리라고 여기고, 그 진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들의 행위가 발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접근하면 똑같습니다.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본능에 충실하려는 그 마음을 제어하고 수련하여 빛으로 바뀌게 해야 합니다.

또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들의 모든 행위는 충동과 본능에 준하여 일어난다고 합니다. 인간은 출생에서 5세 사이의 어린 시절에 경험한 무의식 속에서 잠재되어 있는 심리 성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5세 이전의 어린 시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한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 충동적인 본능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서양의 심리학은 프로이트로 시작해서 칼 융의 분석 심리학 쪽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폭넓게 전개되면서 과학적으로 체계화됩니다.

불교에서 인식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의 6식입니다. 불교에서는 의식을 더 세분화해서 6식, 7식 그리고 새로운 삶과 새로운 행위의 씨앗이 되는 8식 아뢰야식으로 나누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위는 의식이고 이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했습니다. 무의식은 말나식인 제7식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뿌리인 제8식 아뢰야식까지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의 심리학을 아무리 공부해도 유식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제7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체계화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빙산에 비유하면 9/10 정도가 물속에 잠겨 있는 빙산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또 1/10은 현실에 나타나는 의식으로 빙산의 일각이 세상에 드러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 표면에 떠 있는 작은 부분이 의식이고 물속에 잠겨 있는 큰 부분이 무의식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경계 부분에 있는 것을 전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 빙산에 파도가 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빙산에 파도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의식 부분이 무의식이 되었다가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도가 치는 경계 부분인 전의식 아래에 잠겨 있는 그 부분을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제 6식 제 7식 제 8식을 이야기할 때 제 6식인 의식은 한 개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하는 모든 행위와 감정입니다. 

전의식은 이용 가능한 의식으로 의식의 부분은 아니지만 주위를 집중하면 의식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무의식이지만 잘 활용하면 의식으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무의식은 개인의 의식으로 떠 올릴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포함하며 감각기관으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진 정신세계입니다. 본능, 열정, 억압된 관념, 감정 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유식의 제 7식에 해당하는 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으로 표현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 정신분석학은 우리의 세계를 단순한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까지 확장하고, 이 무의식의 어마마한 보고가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식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2000여 년 보다 더 전에 체계화시켜 놓은 불교의 유식에서 제 7식  말나식에 대한 의견이 서구에서는 프로이트를 통해 출발합니다.

프로이트는 모든 정신 과정이 무의식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에 무의식을 가장 중요한 의식 수준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의식은 무의식에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유식으로 넘어가면 의식의 뿌리는 무의식보다 더 깊은 뿌리인 제 8식 아뢰야식부터 출발합니다. 유식에는 무의식을 넘어서 더 깊은 의식의 뿌리가 있는 데 거기서부터 우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방어기제는 쉽게 표현하면 자기 합리화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직접 다루어 가는 방법과 스트레스에 수반되는 부정적인 정서를 완화시키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스트레스를 직접 다뤄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원래 나만 안 그러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하여 그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방어기제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부딪치면 거의 다 이 두 가지로 해결합니다. 

이 방어기제는 내가 의도적으로 어떻게 하겠다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의식 속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식을 결정하는 더 근원적인 것은 무의식에서 다 일어납니다. 자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자기합리화 하는 것을 모르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자기합리화에 성공하여 스트레스로부터 모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자기 합리화를 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후회와 같은 다른 정서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쨌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렇게 방어기제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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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오천 년 전부터 계속 내려왔던 수행방법이 요가와 선입니다.
yama라는 말은  보통 행위를 제어하는 계율을 말하며 규칙적인 행동을 하면서 우리의 행위를 제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niyama는 계율 요가를 통해서 윤리적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asana는 있는 방법이고 pranayma는 호흡을 금한다는 말로 호흡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궁극적인 본질에 들어가는 수련 방법입니다. pratyahara는 감정을 조절하여 육체적인 수련까지 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좀 더 깊게 집중하는 것이 다라나 dharana입니다. 집중하는 것을 선으로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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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이라고 합니다. 호흡의 조절을 통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요가를 통한 선이 됩니다.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면 현상적으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배제된 그곳에 참된 자신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즉 관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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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vipassana 관법은 오온인 색수상행식을 통해서 색인 육신과 수상행식의 정신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관찰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유식을 이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색수상행식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무아, 즉 내가 내가 아니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상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들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아닌 것은 정신을 집중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그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일상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초기불교의 관점입니다. 
일상수행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결과로 어떤 계기가 되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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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념이라는 것은 행의 작용을 다스립니다. 이때 행은 념을 통해서 탐 진 치를 다스립니다. 
내 속에 탐 진 치가 들어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내 안에 들어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가 발생하게 되면 서로가 갖고 있는 탐 진 치가 부딪혀 상처가 됩니다. 그러므로 탐 진 치는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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