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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4송 상응수구문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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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9,375회 작성일 21-08-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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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4송 상응수구문의 부정 


 경전 가운데 밀린다왕문경, 나선비구경이란 책이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사상적 교류가 최초로 기록된 문헌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에서 온 왕인 밀린다 왕이 묻고 동양의 나가세나 비구가 답을 합니다. 밀린다 왕은 아주 달변가였습니다. 그런 밀린다 왕이 기고만장하여 나가세나 비구에게 여러 가지를 묻습니다. 나가세나 비구는 거기에 대해 훌륭하게 대답합니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비구의 대답을 듣고 두 손 두 발을 다 듭니다. 그 가운데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에게 미리 하는 노력에 대해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밀린다 왕이 묻습니다. “왜 당신네 나라의 승려들은 젊었을 때부터 수행에만 전념하는가?” 나가세나 비구는 “왕이시여 당신은 전쟁을 잘 합니까?”라 하자 밀린다 왕은 자신은 전쟁을 잘 한다고 했습니다. 나가세나 비구는 “그럼 당신은 전쟁을 어떻게 치룹니까?”라고 하자 밀린다 왕은 “적이 어떻게 쳐들어올 것인가를 대비해서 미리 성을 쌓고 양식을 준비합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나가세나 비구가 미래의 위험이 지금 존재하느냐고 묻습니다. 밀린다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가세나 비구는 “대왕께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대비를 하셨습니까. 출가한 승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닥칠 늙음과 죽음에 대비해 젊어서 수행 정진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리 대비하는 것은 성과가 있지만 닥치고 나서 하는 것은 성과가 없습니다.”고 합니다. 결국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비구가 잘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했다고 수긍합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젊어서 공부를 시작하면 성과가 더욱 커집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과 같이 공부도 미리 해야 합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해야 합니다.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비구와 윤회에 대해서 이야기 한 부분을 봅시다. 밀린다 왕이 묻습니다. “다시 윤회하지 않을 사람이 다시 윤회하지 않을 것을 압니까?” 나가세나 비구는 “대왕이시여 그런 사람은 자신이 윤회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인과 연이 정지함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을 압니다. 어느 농부가 곡식을 가꾸어 창고에 채워둔 후 얼마 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저장된 것을 꺼내 먹거나 필요한 다른 물품과 바꾸며 살아간다고 합시다. 그 농부는 자신의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 있음을 알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채우지 않은 인과 연의 정지함(없음)에 의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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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 송을 보면 ‘방일급실념 산란부정지 부정위회면 심사이각이’입니다. ‘방일 및 실념과 산란과 부정지는 부정심소이다. 부정심소는 뉘우침과 수면과 심과 사이며 둘에 각각 둘이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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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부정법을 살펴봅시다. 네 개의 부정심소입니다. 이것은 정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선심소법은 부처되게 하는 선한 성품이고 번뇌지법은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하는 탐진치의 근원이 되는 성품입니다. 부정법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선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불선이 됩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되고 불선이 됩니다. 

(1) 악작은 kaukrtya이며, 악할 악惡 지을 작作으로 악작이며, 악함을 행하는 것입니다. 후회입니다. 악한 짓을 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입니다. 공중 전화기 박스에서 전화 걸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오래 건다고 다가가 때리고 패악을 부리는 행위는 악작입니다. 후회를 하고 참회를 하여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면 선법이 됩니다. 그렇지만 후회하는 자체는 불선법입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 낚시를 하여 고기를 잡거나 발을 쳐서 고기를 잡습니다. 고기를 잡는 순간은 즐겁지만 잡아 노은 고기를 보면 우울하게 됩니다. 바로 잡힌 고기를 보는 순간 불선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에 집중하는 삼매의 마음에 장애가 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2) 수면은 middha이며, 잘 수睡 잠잘 면眠으로 수면이며, 잠자는 것과 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가위눌린 상태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자유롭게 작용하지 못하고 잠에 가위눌려 위축된 상태입니다. 간혹 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가위눌리는 경우입니다. 꿈에 도둑이 들어 집을 뒤지며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 ‘도둑이야!’ 소리를 쳐도 소리가 나오지 않고 도둑을 잡으려고 해도 꼼짝 못하는 경우가 가위눌린 상태입니다. 우리가 불안할 때, 무언가가 잘 성취되지 않을 때 수면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치의 일부에 속하며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작용입니다.

(3) 심은 vitarka이며, 찾을 심尋이며,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왜 죽는가‘하는 문제에 깊이 몰두하는 것이 심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 하며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건에 부딪힐 때 이것은 무엇이고 왜 일어났을까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나의 전생은 무엇일까?’ 하는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선이 되고, ‘화투나 포커를 어떻게 하면 잘 할까?’를 연구하면 불선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추구하는 마음은 좋은 것인데 추구하는 내용에 따라 세상을 이롭게도 하고 악을 끼치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의지와 지혜의 특수한 작용에서 성립합니다. 심에는 의지가 필요하고 추구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의지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육근의 마지막이 의입니다. 지혜는 선함과 악함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판단력과 분별력을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지혜롭지 못하면 악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지식을 잘 활용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4) 사는 vicara이며, 엿볼 사伺이며, ‘우리는 왜 죽는가?’에서 심장이나 세포 등을 깊이 살펴보거나 자세하게 살펴보는 마음입니다. 심과 같이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에 ‘이것은 ~~이다.’라고 이해했던 것을 더욱 깊이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심은 거칠고 큰 것이라면 사는 미세한 것입니다. 참선하면 견성을 한다는데 하고 참선하려는 마음은 심이며, 이것을 더욱 세밀하게 깊이 공부하여 견성하게 하는 마음은 사입니다. 대부분 심은 되는데 사하는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되기가 쉽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은 의지와 지혜의 특수한 작용에서 성립한 것입니다. 심은 사물 자체를 전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면 사는 사물 자체를 보다 깊이 자세하게 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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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작, 수면, 심, 사는 부정법입니다. 부정법은 선도 아니도 불선도 아닙니다.  ‘이각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둘의 각각은 둘이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의 둘은 악작과 수면, 심과 사를 말하고 뒤의 둘은 따라 일어나는 마음으로 부수적으로 갖는 번뇌인 불선과 착한 마음인 선을 말합니다. 잘 쓰면 선이고 잘못 쓰면 불선이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는 깊이 생각하는 지혜로 공부를 할 때는 좋게 활용되지만 도박이나 도둑질 같은 나쁜데 이용되면 불선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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