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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16송 기멸분위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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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8,005회 작성일 21-08-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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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16송 기멸분위문육


<티벳 사자의 서>를 보면 선한 업은 백색이며 나쁜 업은 흑색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의 발달로 뇌의 비밀이 많이 벗겨졌습니다. 행위한 것이 조직에 저장되어 있다가 생각을 일으키면 생각에 따라 색깔로 신호를 나타냅니다. 현대 과학의 발달로 마음이 일으키는 모든 작용을 상세하게 밝혀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유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과학이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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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16송을 봅시다. ‘의식상현기 제생무상천 급무심이정 수면여민절’ ‘의식은 항상 일어난다. 무상천에 태어나는 것과 무심의 두 선정과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제외한다.’입니다. 


7. 기멸분위문육

5식이 감지한 것이 내 속에 쌓여있는 업과 결부되어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업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의식의 뿌리는 제7식 말나식입니다. 말나식의 근거는 세세생생 살아오며 쌓인 업의 창고 제8식 아뢰야식이 있습니다. 제7식은 제8식을 자신의 의지대로 해석해서 끄집어 내어 씁니다. 이 의식은 항상 일어나나 무상천에 태어나면 의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상천이란 생명이 존재하는 세상을 욕계, 색계, 무색계인 삼계로 나눌 수 있는데 색계에 속합니다. 무색계의 무심의 선정에 들었을 때와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의식이 없습니다. 잠잘 때는 의식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절했을 때도 의식이 없습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의식은 항상 일어납니다. ‘언제나 의식이 생한다.’는 것은 5식은 각기 생하든가 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의식은 언제나 활동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눈은 형상을 볼 때 귀는 소리를 들을 때 작용합니다. 내가 눈으로 형상을 볼 때 귀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5식은 작용하기도 하고 작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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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5식과 함께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째 5식의 직후에 작용하는 것, 둘째 5식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꽃을 볼 경우 꽃을 보고 나서 생각을 합니다. 이와 같이 대상을 보고 의식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이때 5식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5식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참선에서 일으키는 생각이 있습니다. 선정이나 삼매에 들어서 일으키는 생각은 5식과 무관하게 일어납니다. 미래나 과거를 생각할 때 일어나는 의식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내 의식 속에서 그냥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5식과 상관이 없습니다. 5식을 통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장창고를 통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꿈을 꿀 때의 의식도 5식을 통하지 않습니다. 저장창고의 업을 가지고 꿈을 꿉니다. 꿈은 내가 살아왔던 삶과 관계가 있습니다. 내 저장창고 속에 있는 것과 관계없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몇 생을 살아오면서 내 속에 저장된 것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전혀 관계없다면 그것은 꿈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도 꿈에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가 인간의 육체에서 벗어나 귀신이었을 때의 체험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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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이 없을 때를 살펴봅시다. 무상정이란 무상과에 이르기 위한 원인이 되는 정입니다. 무상과란 상이 없는 과로 색계에 해당합니다. 색계의 제4선천에 있는 세계로 여기에 태어나면 500 대겁 동안 무심의 상태로 살게 되는 세계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무심의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무심이란 안식 내지 의식의 다섯 가지가 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구상작용이 수행의 과정에서 마음의 형상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무상이라고 부릅니다. 6식이 없어져서 그냥 그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서 가사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동면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착각하기 쉬운 것이 무상과와 견성성불은 다릅니다.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그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사견인데 잘못된 사견에 빠진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상과에 빠져 고통을 받게 됩니다. 멸진정이란 안식에서 말나식까지 멸해진 상태입니다. 제7식은 제8지 부동지에 가야 완전히 멸해집니다. 20세기의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라마나 마하리쉬는 17살 때 깨달음에 대한 의식이 옵니다. 그때 다니던 학교도 내팽개치고 동네 근처의 산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평생을 그 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하리쉬는 그 산에서 4년 동안 그대로 선정에 듭니다. 4년 후 선정에서 깨어나 보니 산 속의 동물들, 곤충들에 의해 몸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태가 되는 것도 모르고 선정에 든 것이었습니다. 이런 선정에 한 번 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선정에 드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선정에 몇 시간 드는 것이 3천 배보다도 더 힘들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심의 수면상태에서도 의식이 없습니다. 꿈을 꾸는 일 없이 숙면 상태에 있는 것, 즉 깊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선정에 든 상태와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것도 자각하지 못합니다. 내 속에 번뇌 망상이 일어나도 나는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참선을 하면서 내 생각을 가라앉히면 많은 생각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가를 알게 됩니다. 극저온의 상태는 가라앉은 상태와 같습니다. 현시점에서 최고의 극저온은 -273.15도로 절대온도, 켈빈 온도입니다. 현재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269도 정도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상태가 되면 무엇인가 들어만 있어도 튀어나옵니다. 극저온으로 만들면 미세한 변화에도 움직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적정의 상태로 만들면 아무리 미세한 번뇌라도 다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여 선정에 드는 것은 그런 상태에 드는 것입니다. 이런 무의식의 수면 상태에서도 화두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 속에 잡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무심의 기절에서도 의식이 없습니다. 불의로 머리를 맞게 되거나 혹은 어떤 생리적인 이상 등으로 기절하여 완전히 의식이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70년대 해인사 선방에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를 잘 타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님들이 잣을 따고 있었는데 다른 스님들은 나무 밑에서 잣을 땄었는데 그 스님은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 사이를 뛰어넘으며 잣을 땄습니다. 한 번은 나무를 뛰어넘다 떨어졌는데 그대로 기절을 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그 스님이 죽은 줄 알고 다비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그 스님은 육체에서 영혼이 나간 상태였는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합니다. 속세의 부모님 집에 돌아갔다가 해인사로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보니 자신의 육체는 누워 있고 속세의 가족들은 울고 있고 스님들은 염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영혼이 염불을 자세히 들어보니 한 사람은 ‘제경행상’이라고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은행나무 바릿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염불을 참 이상하게 하는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스님의 영혼이 육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을 준비하는데 관에서 사람이 불쑥 일어나 튀어나오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스님이 당시 염불을 외우던 스님들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제경행상이라고 염불하던데 그 말이 무슨 뜻인가?” “네가 죽었으니 네가 가지고 있던 제경행상이라던 책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것은 태우지 않고 내가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영혼은 그 사람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스님에게 묻습니다. “너는 은행나무 바릿대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냐?” “난 네가 가지고 있던 은행나무로 만든 바릿대를 가지고 싶어서 화장하고 나면 가지려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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