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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26송 자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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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4,732회 작성일 21-08-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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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26송 유식위의 자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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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송부터 30송까지는 유식의 수행 단계입니다. 유식성은 진여를 몇 가지 단계로 깨달을 수 있는지 설명한 것입니다. 우선 종성에 대해 살펴봅시다. 대승에는 두 가지 종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성에 머무르는 종성입니다. 두 번째는 훈습으로 이루어진 종성입니다. 예를 들어 물은 원래 자연스럽게 맑아지는 것도 있지만 노력해서 맑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본성에 머무르는 종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입니다. 훈습으로 이루어진 종성은 내가 배우고 노력해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내가 가지지 않았다면 할 수 없습니다.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도 원래 내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있던 것을 개발해서 잘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잘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환생을 할 때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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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의 수행 단계는 다섯 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에서 유식위를 설명했습니다. 유식성을 체험하기 위해 깨달아가는 실천 단계입니다. 다섯 단계에는 자량위, 가행위, 통달위, 수습위, 구경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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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개의 유식위를 구사론과 연결시키면 자량위는 삼현이고 가행위는 사선근이고 통달위는 견도이고 수습위는 수도이고 구경위는 무학도입니다. 화엄경에서 보살의 수행단계 52위를 보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묘각 입니다. 첫 번째 자량위는 삼현이며 십신, 십주, 십행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은 대승에서 말하는 순해탈분을 닦는 것입니다. 식의 성품과 양상에 의지해서 깊이 믿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행위는 사선근이며 십회향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은 대승에서 말하는 순결택분을 닦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통달위는 견도이며 보살 십지의 초지에 해당합니다. 네 번째는 수습위이며 보살 십지에 해당합니다. 다섯 번째 구경위는 무학도이며 불과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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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량이란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쌓아가는 단계입니다. 자량위에 대한 설명이 바로 유식 26송입니다. ‘내지미기식 구주유식성 어이취수면 유미능복멸’ ‘이에 식을 일으켜서 유식성에 주하기를 구해도 아직 이취(능취와 소취)의 수면을 복멸시킬 수 없다.’입니다. 

이것은 자량위의 단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유식성에 식이 머물지 않으면 두 가지 집착을 일으키는 잠재 위험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유식성에 머물기 전의 단계입니다. 아직 머물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량위는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사다리가 있어야 하고 먼 길을 떠나려면 교통수단과 먹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다리와 교통수단, 먹을 것을 챙겨 먼 길을 잘 다녀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자량위에 속합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번뇌망상을 자제할 능력이 없어 번뇌망상이 마구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취의 수면을 복멸시킬 수 없습니다. 이취인 능취와 소취, 주관과 객관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의타기의 입장에서 보면 능연을 능취라 하며, 소연을 소취라 합니다. 이것은 견분과 상분을 가리키는 것이며 견분은 능히 상분을 취하기 때문에 능취이며, 상분은 견분에 취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취인 것입니다. 

변계소집의 입장에서 보면 견집見執을 능취라 하며 상집相執을 소취라 합니다. 능취의 견분이나 소취의 상분을 인연으로 하여 내가 있다고 집착함으로써 무아, 공아를 체득할 수 없습니다. 이취를 집취하는 것이 번뇌장과 소지장이 됩니다. 번뇌장은 변계소집의 실재하는 내가 있다고 집착하는 아집我執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소지장은 변계소집의 실재하는 법(존재, 삼라만상)이 있다고 집착하는 법집法執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아집은 법의 작용으로부터 생하는 것이며 법집은 법의 본체로부터 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집을 소멸해도 법집은 남지만 법집을 소멸하면 아집은 그냥 없어지게 됩니다. 법집으로부터 일어난 대상 경계가 실상을 가리고 있어 이것으로 인해 보리의 묘지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장을 끊어 열반에 들고 소지장을 끊어 보리를 증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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