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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삼십송강설

37. 제28송 통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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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142회 작성일 21-08-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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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제28송 유식위의 통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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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28송은 통달위입니다. ‘약시어소연 지도무소득 이시주유식 이이취상고’ ‘만약 어느 때에 인식 대상에 대해서 지혜로 전혀 얻는 바가 없을 때 유식성에 주하게 된다. 이취의 모습을 떠났기 때문이다.’입니다. 유식의 본질, 본성, 원성실성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통달위에 가면 이지명합二智冥合이 됩니다. 능증지의 지智와 소연지의 이理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논증지에서 밝은 지혜가 나타나는 지와 소연할 때 사물의 이치에 철저하게 밝은 소연지를 말하며 이때 지는 진여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행위의 세제일법을 얻고 난 다음 찰나에 무루지의 하나가 비로소 발득하는데, 이것을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합니다. 진여를 증득하는 무분별지는 실로 모든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에 근본지라고도 합니다. 이 지가 발득해서 유식의 실재 성품을 비추어 보고 난 뒤에 다시 분별에 의해 남아있는 것을, 감지하기 어려운 지를 일으켜 의타의 사상事相들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를 후득지後得智라고 합니다. 통달위에서는 무분별지가 나타나고 수습위에 서 비로소 후득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지에 의해서 진여의 도리를 발득하는 것입니다. 소연에 가서는 지혜가 도무지 소득이 없습니다. 소득이 없으면 비로소 유식이 주가 되어 능취 소취가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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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에 햇빛을 쬐면 물건이 타듯이 우리는 무엇을 모아야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행위를 지나면 통달위에 이릅니다. 통달위란 실물을 보는 단계입니다. 체험을 통해 진여를 보는 단계입니다. 진리와 지혜가 합해지는 단계입니다.(이지명합) 여기서 지는 능증지의 지이고 소연지의 이입니다. 이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능증지는 주관이고 소연지는 객관입니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는 것, 즉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단계입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뿌리를 보고 나면 모두 다 같습니다. 하나의 뿌리로 되어 있습니다. 통달위는 나와 이 세상이 하나가 된 단계입니다. 지혜가 소득이 없는 무소득의 경지가 되고 비로소 유식이 주가 되어 능취, 소취가 떠난 단계입니다. 흔히 말해 견성을 한 단계입니다. 한 단계를 넘어서려면 커트라인 점수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량위와 가행위를 통해 열심히 한 것이 드디어 터지는 단계가 통달위입니다. 현대 한국 불교의 전환기가 된 성철스님, 향곡스님 등이 중심이 되어 봉암사에서 결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철스님이 지나가던 향곡스님을 붙잡고 “죽은 사람을 죽여 다 하여야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죽은 사람을 본다고 했는데 이것이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향곡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향곡스님은 그 후 약 3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만 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어느 날 향곡스님은 그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자신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 순간 확철대오한 것입니다. 향곡스님은 이때 깨달음의 순간을 오도송으로 나타냅니다. 


홀연히 두 손을 보니 전체가 살아났네.

삼세의 불조들은 눈 속의 꽃이요.

천경만론이 모두 무슨 물건이었던고?

이로부터 불조들이 모두 몸을 잃었도다.

忽見兩手全體活 三世佛祖眼中花

千經萬論是何物 從此佛祖總喪身


봉암사의 한 번 웃음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산 구비구비 만겁토록 한가롭네.

내년에도 또 있겠지 둥글고도 밝은 달.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구나.

鳳巖一笑千古喜 曦陽數曲萬劫閑

來年便有一輪月 金風吹處鶴淚新


 깨달음을 얻는 향곡스님은 성철스님을 찾아가 자신이 받았던 질문을 그대로 성철스님께 되물었습니다. 향곡스님이 깨달은 지혜가 바로 통달위인 것입니다. 이런 향곡스님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몰두하지 않으면 통달위를 얻을 수 없습니다.

깊은 산 속 암자에 두 젊은 스님이 견성을 결심하고 무문관 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마을 처녀가 나물을 캐러 그 암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잘 생긴 스님과 처녀는 눈이 맞아 마을로 내려가 결혼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기가 있고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두 부부는 금이야 옥이야 키웠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 날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아이가 등 뒤에서 저것 저것 하고 아버지는 뭐? 뭐? 하다가 숨이 넘어갔습니다. 성질 급한 아이는 그대로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루어 놓고 아버지는 도대체 아이가 등 뒤에서 저것 저것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그대로 무념이 됩니다. 이 상태가 통달위입니다. 깨치고 보니 아이는 전생에 자신의 도반이었습니다. 도반은 친구를 견성하게 하려고 아이로 환생하여 이 집에 태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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