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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6송 심소상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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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578회 작성일 21-08-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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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6송 심소상응문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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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 6송을 살펴봅시다. ‘사번뇌상구 위아치아견 병아만아애 급여촉등구’입니다. 이 말의 뜻은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하니 곧 아치, 아견과 아울러 아만과 아애이다. 또한 다른 촉 등과도 함께 한다.’입니다. 


5. 심소상응문칠

근본적인 네 가지 번뇌인 아애, 아집, 아만, 아치가 항상 촉, 작의 등과 함께 심소와 상응한다는 것입니다. 

아치, 아견, 아만, 아애는 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근본 덩어리입니다. 제7식은 제8식에 나오는 5변행의 촉 등과 같이 변행이 작용합니다. 제7식의 본질은 아치, 아견, 아만, 아애입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집착, 탐욕의 덩어리가 바로 7식입니다. 아치는 원래 무아인 것을 내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아견, 아만, 아애가 생깁니다. 왜 싸움을 합니까? 바로 내가 맞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맞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여 싸울 이유가 없어집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바로 아만입니다. 우리가 만약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처해 있을 때 어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챙깁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애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위한 것 같지만, 그 뿌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보살의 단계에 가면 나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본질적인 생각이 일어납니다. 말나식과 작용하는 심소는 변행 5, 별경의 혜, 번뇌의 탐, 치, 만, 견의 4개, 수번뇌의 불신, 해태, 방일, 혼침, 도거, 실념, 심란, 부정지의 8개가 작용하여 총 18개 심소가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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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치는 우리가 생멸하는 과정에서 원래 무아인데 멸하고 새로 생할 때 제8식 종자에서 생기는 자기라고 착각하는 마음입니다. 무상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의 출발은 생이고 마지막은 멸입니다. 이런 생멸의 과정에서 아치가 생깁니다. 이 아치는 보살의 단계가 되어야 깨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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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견은 아치 때문에 원래 없는 자신을 있다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아집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공인데, 내가 있다고 일으킨 생각인 아치에 의해 아집(아견)이 생기게 됩니다. 이 아집에 대별되는 것을 정견이라고 합니다. 견성을 하게 되면 나에 대한 바른 견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변하는 것을 변한다고 보는 것은 정견이며,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집입니다.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인 아견은 본래 자기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온인 색, 수, 상, 행, 식이 그것입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인 것입니다. 색은 육신이고 수 상 행 식은 정신입니다. 아견은 오온의 통합체를 나라고 생각하고 자아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입니다. 이 아견 때문에 말나식에 수반되는 심작용은 아뢰야식이 동일하고 변하지 않는 자아라고 오인하는 작용입니다. 강의 흐름과 같이 순간순간 생멸하는 상속체인 것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순간의 한 토막을 보면 영원한 것 같지만, 전체 흐름으로 보면 변해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제8식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제7식은 순간만 보고 자신이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인하게 하는 작용이 아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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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이란 자신만이 최고이며 항상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하고 전쟁을 하며 자기 고집을 피웁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부부가 자식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맞다고 큰소리치며 기물을 부셔가면서 싸움을 합니다. 아만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아애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하여 보시를 행하지만 중생심을 가지고 있는 한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습니다. 한평생 쌓아 올린 업적이 아애의 덩어리입니다. 중생심에 갇혀 있는 한 상대방을 위하는 그 마음의 이면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더 한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7식의 본질적 성격입니다. 그래서 7식은 네 가지 더러움으로 물든 마음입니다. 제8식이 맑은 물이라면 제7식은 네 가지 더러움으로 물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더러움을 끄집어 내어 씁니다. 결국 덜 더럽고 더 더러움의 차이입니다. 조금 진리를 알 거나 수행을 하면 그 더러움을 적게 끄집어 내어 쓰고 모른다면 그냥 끄집어 내어 쓰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더러움으로 덮여 있으면서 선으로 악으로도 기별 되지 않는 번뇌입니다. 내 속에 들어 있을 때는 더러움으로 물들어 있지만, 선도 악도 아니며 끄집어 내어 대상과 부딪힐 때는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 보시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은 내 것이라는 아집을 이겨내고 선한 심소가 작용하여 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도 자신의 것이 아까워 베풀지 못하는 아집을 이겨내지 못하고, 보시해서 뭐해 하는 번뇌 심소가 작용하여 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와 자아에 대한 어리석음, 자아에 대한 교만, 자아에 대한 애착이 네 가지 번뇌입니다. 이 네 가지 마음도 촉, 작의 수, 상, 사와 항상 함께 작용하므로 ‘함께 작용하는 심작용의 성질’이라고 합니다. 

아치는 자아에 대한 어리석음입니다. 자아는 원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아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내가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것이 자아에 대한 어리석음입니다. 아만은 자아에 대한 교만입니다.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에 의해 존재와 설정된 자아를 근거로 해서 나는 존재하고 나는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만에 싸인 심작용입니다. 아애는 자아에 대한 애착입니다.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심적 작용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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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논사는 아치를 원인으로 한 세 가지가 생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뢰야식 자체가 미혹할 때 아뢰야식에 대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가 생긴다.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지는 것이 자아에 대한 교만이다. 이 세 가지가 있을 때 자아라고 간주한 대상에 대해 애착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애이다.”고 합니다. 아뢰야식 자체가 미혹한다는 말은 깨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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