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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분 행위의 아름다움(淨心行善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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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145회 작성일 21-07-14 18:44

본문

(23-1)수부티야,

깨달음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으니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23-2)<내가 있다는 생각>, <상대가 있다는 생각>, <다른 생명들이 있다는 생각>, <영원한 것이 있다는 생각>의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평등한 것이며, 이러한 분별을 떠난 바른 법의 실천에 의해서 <깨달음>은 성취되는 것이다. 

(23-3)수부티야,

선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선법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선법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선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1. 금강경에서 즉비의 논리 

   금강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이 즉비卽非에 대한 내용이다. 

수보리 소언선법자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須菩提 所言善法者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이 부분을 번역하면 ‘수보리야, 선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바로 법이 아니라고 여래에 의해 말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선법’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가 된다. 이러한 즉비의 논리로 금강경에서 전개되는 것이 36곳이나 된다. 이 분분만 제대로 이해가 되면 금강경을 이해하는 데 많이 수월해 지고, 제대로 연기가 공의 개념으로 이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비에 들어 있는 부분을 포함하여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보리야, 선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선법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선법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선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질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그냥 이름을 부르면서 진리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의미인 것이다. 


2. 즉비가 나오는 구절

1) 제 5분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2) 제 8분 是福德 卽非福德性 是故 如來說 福德多

3) 제 8분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4) 제 9분 須陀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5) 제 9분 斯陀含 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6) 제 9분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不來 是故 名阿那含.

7) 제 10분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8) 제 10분 佛說非身 是名大身 

9) 제 13분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10) 제 13분 諸微塵如來說 非微塵 是名微塵

11) 제 13분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12) 제 13분 如來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13) 제 14분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14) 제 14분 我相 卽是非相

15) 제 14분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是非相.

16) 제 14분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

17) 제 14분 忍辱波羅蜜如來說 非忍辱波羅蜜.

18) 제 14분 若心有住 卽爲非住.

19) 제 14분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20) 제 14분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21) 제 17분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22) 제 17분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23) 제 17분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24) 제 18분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25) 제 20분 如來說 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26) 제 20분 如來說諸相 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27) 제 21분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28) 제 21분 衆生衆生者如來說 非衆生 是名衆生

29) 제 23분 所言善法者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30) 제 25분 如來說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31) 제 25분 凡夫者如來說 卽非凡夫 是名凡夫

32) 제 30분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 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33) 제 30분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34) 제 30분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35) 제 31분 世尊說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卽非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是名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36) 제 31분 所言法相者如來說 卽非法相 是名法相. 


한마음된 지극한 믿음은 분별을 떠난다.

분별심을 극복하는 첫번째 단계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데서 시작된다. 대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받아 들임으로서, 그 대상이 놓여 있는 상황이 최선의 상태임을 인정하게 된다. 에베레스트산은 8000 미터가 넘는데 백두산은 왜 3000 미터도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베레스트산은 8000 미터가 넘어서 넘는대로 좋은 것이고 3000 미터도 안되는 백두산은 그대로 좋은 것이다. 바로 대상이 놓여 있는 그 상황을 철저하게 인정할 때 모든 것은 평등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부터 나와 남의 분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분별의 세계에서 더 멀리 여행을 떠나 진리의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 

수보리야,

깨달음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며, <나에 대한 집착>, <상대에 대한 집착>, <다른 생명들에 대한 집착>, <영원한 것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평등한 것이다. 이러한 평등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른 법의 실천이며, 이렇게 삶을 살다보면 가을이 되면 밤이 저절로 벌어지듯이 깨달음은 자연히 성취되는 것이다.

무엇이 내것인지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라.

한 평생 살아가면서 모은 재산이 내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동안 약한 자를 향하여 

휘두른 권력이 내 것인가? 아니면  서푼어치도 안되는 명예가 내 것인가? 삼만일만 지나면 썩어 없어질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데 다른 어떤 것이 내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분별을 떠난 삶은 그대로 법인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이러한 착한법의 실천에 의해서 이루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가득찬 마음으로 좌선을 한다고 평생을 앉아 있는다고 선정에 들지 못한다. 내것으로 하고 싶은 탐하는 마음과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마음이 조금만치라도 있는한 좌선을 한다고 평생을 앉아 있은들 선정에 들지 못한다. 

자기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화를내며, 불구자들이나 문둥병 환자들의 삶은 자신과 무관하며 오직 좌선하여 부처를 이루겠다고 생각하는 한 좌선을 한다고 평생생을 앉아 있은들 선정에 들지 못한다. 입으로 하는 베품이 아니라 육신과 하나된 베품이 저절로 이루어질때,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절제된 삶이 저절로 이루어질때,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라도 화내는 마음이 올라오지 않을때 비로소 우리는 선정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으므로 저절로 베품(보시)이 이루어지며,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저절로 절제된 삶(지계)이 이루어지며, 화가 날 일이 없으므로 저절로 참음(인욕)이 이루어지며, 모두 깨달음으로 세계에 도달해야할 공동 운명체이므로 모든 것에 지극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수행(정진)이 이루어지며, 나와 남의 구별이 없으니 저절로 하나된 안정된 마음(선정)이 이루어지며,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관계를 바로 알고 있으니 모르는 것으로 부터 생기는 어리석은 마음이 저절로 없어지니 밝음(지혜)의 세계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보리의 법은 위로는 제불諸佛에서 부터 아래로 곤충까지 다 종지種智를 함含해 부처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평등해서 고하高下가 없다] 말한 것이다. 보리는 둘이 없기 때문에 사상四相을 여의고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보리를 얻는 것이다. 만일 사상四相을 여의지 않고 일체 선법善法을 닦으면 아我.인人만 더해 해탈의 마음을 증득證得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상四相을 여의고 일체 선법을 닦으면 해탈할 수가 있다. 일체 선법을 닦는 것은 일체법에 염착染着이 없고 일체의 경계를 대하여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세世와 출세出世의 법法에 불탐불애不貪不愛한다. 항상 방편을 행해서 중생을 수순隨順케 하며 정법正法을 설해환희歡喜 신복信服케 하여  보리를 깨달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수행이라 하며, [일체 선법을 닦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일체 선법을 닦아 과보果報를 바라면 선법善法이 아니요,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행하더라도 마음에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을 선법善法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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