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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분 자신으로부터 남에게까지(無爲福勝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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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681회 작성일 21-07-1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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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수부티야,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큼 갠지즈강이 있다면 이 모든 강의 모래의 수는 얼마나 많겠느냐?

(11-2)매우 많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데 그 모든 강의 모래 수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11-3)수부티야, 내가 지금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니 잘 들어라.

만약 어떤 사람이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끝없이 넓은 우주를 가득 채울 보물을 여래나 존경받을만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사람이 얻는 복덕은 얼마나 많겠느냐?’

(11-4)매우 많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11-5)수부티야,

만약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이 법문을 받아 지녀 알거나 사행시 등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명해준다면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 더 큰 것이다.



​(해설)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 불세출의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세속의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달마는 527년 중국 남쪽지방에 도착하였다. 곧 바로 양 무제의 초청을 받아 수도인 남경으로 들어갔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왕은 달마를 만나자마자 대뜸 물었다.

‘나는 왕이 된 이후 많은 절을 지었고 숱한 경전을 펴냈으며 수 많은 승려를 먹여 살렸다. 이 모든 일이 얼마나 큰 공덕이 되겠는가?’

달마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전혀 공덕이 안된다.’

양무제는 이 인도 승려의 뜻하지 않는 대답에 놀라 다시 물었다.

‘어째서 공덕이 안된다는 것인가?’

‘그러한 것들은 모두 속세의 인과응보에 불과할 뿐 진정한 공덕이 아니다. 마치 물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어서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공덕이란 말인가?’

‘진정한 공덕이란 밝고 맑은 지혜를 깨쳐 아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지혜는 본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말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화가난 양무제는 계속 물었다.

‘불교의 성서러운 교리 가운데 첫째 가는 것이 무엇인가?’

‘전혀 성서러운 것이 없다.’

더욱 화가난 무제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대체 누구요?’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달마는 이와 같이 대답하고는 떠나 버렸다. 

아무리 큰 물질적인 베품도 결국에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밝히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공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재물을 늘리려고 저축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100만원을 저축해 놓고 10년 후에 통장을 확인해 보니 200만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 100만원을 보시해 놓은 것을  다음 생에 태어나 자신의 마음통장을 확인해 보면 얼마나 되어 있겠는가? 10년에 2배로 불어나니까 20년 후에는 400만원이 되고, 30년 후에는 800만언이 될 것이며, 다음 생에는 수억 원이 되어 있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물며 형상이 있는 물질적인 베품도 이러한데  다함이 없는 정신적인 베품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순수한 마음으로 도를 이루겠다고 한번 마음을 낸 것은 언젠가는 성불하게 하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중구의 순치황제는 임금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전쟁과 대신들과의 암투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참선을 하다가 선정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보니 서역의 수행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도를 이루겠다는 한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하였는데도 공부에 전진이 없고 힘마저 떨어지게 되자 순간적으로 세속의 부귀영화를 동경하였다. 그 과보로 황제의 몸을 받게 된 것을 알고 재위 18년 만에 모든 것을 뿌리치고 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순치황제의 출가시는 다음과 같다.   


곳곳이 총림이요 쌓인 것이 음식이니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 알지마소 

가사장삼 얻어 입기 어렵고 어려워라.


이 몸은 중원천하 임금노릇 하건만은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잘날 하루 없네.

인간의 백년 살이 삼만육천 날이란 것

풍진 떠난 명산대찰 한나절에 미칠손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장삼 벗어놓고 곤룡포를 감게 됐네.

이 몸을 알고보면 서천축의 스님인데

무엇을 탐하여 제왕가에 떨어졌나?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나란 과연 누구인가?

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무엇이 나란 말인가? 


백년의 세상 일은 하루 밤의 꿈 속이요

천 만리 이 강산은 한판 노름 바둑이라. 

대우씨 9주 긋고 탕 임금은 걸을 치고

진시황 천하통일 한 태조가 새터 닦네. 


자손들은 자손대로 제 살복을 타고났으니

자손을 위한다고 말 소 노릇 그만하소.

수 천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아 

어찌하여 푸른 산 저믄 날에 한줌 흙 되었는가?


올 적엔 기쁘다고 갈 적엔 슬프다고 

속절없이 인간 세상 한 바퀴 돌았구나. 

애당초 오지 않았으면 갈 일 조차 없으리니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 손가.


나날이 한가로움 내 스스로 알 것이라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일세라. 

입으로 맛 들임은 시원한 선열미요

몸에 걸치는 건 누더기 한 벌 원이로다.


넓은 세상천지 간에  자유로운 손님되어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세속을 떠나는 일 하기 쉽다 말을 마소

전생에 쌓아 놓은 선근 없이 아니되네. 


지나간 십팔년 자유라곤 없었는데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던고?

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 할 것 없네. 


 크고 작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면 지구가 매우 커 보이지만 우주 속에서의 지구를 생각하면 한점 먼지에 불과한 것이다. 한 알의 콩을 바라볼때 매우 작다고 느끼지만 개미가 그 콩을 쳐다볼 때는 산 만큼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공덕도 물질적인 베품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베품을 행한 마음의 지극한 정도에 있는 것이다. 

어떤 큰 부자가 수십억을 들여 큰 법당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법당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그 지극한 신심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길에서 어린 아이가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자동차 한 대가 어린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정면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광경을 다리를 절뚝거리며 지나가든  사람이 보고는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하여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동차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가슴의 밑바닥에서 오는 찡한 감동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와같이 공덕은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한 정도에 있음을 부처님께서는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칠보七寶를 보시하면 삼계三界의 부귀富貴한 과보를 얻지만 대승경전大乘經典을 강설講說하면 듣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큰 지혜를 내어 무상無上의 道도를 이룬다. 그러므로 수지受持하는 복덕이 칠보七寶를 보시하는 복덕보다 승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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