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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분 산의 정상에서(能淨業障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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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351회 작성일 21-07-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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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수부티야,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이 경전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는 데도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에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음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결국에는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16-2)수부티야,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 일을 생각해보면 연등부처님이 계셨고, 그 전에도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셨다. 나는 이 모든 부처님들을 만나 뵙고 그 뜻을 받들어 섬겨 한 분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16-3)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훗날 말세가 되었을 때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깨달아 안다면 그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긴 공덕보다 수 천배나 더 큰 것이다. 

(16-4)수부티야,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에게 훗날 말세에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깨달아 믿는 공덕을 내가 모두 말한다면,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마음이 어지러워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다.

(16-5)수부티야, 마땅히 알아라.

이 경전의 뜻은 능히 생각할 수도 없고 그 과보도 또한 능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해설)

1. 업신여김 

선한 마음으로 착한 행위를 하는 대도 잘 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악한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는 대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생의 인과 때문이다. 전생의 나쁜 업 때문에 이 생에서 착한 행위를 하여도 잘 안되는 경우가 있으며, 전생의 선업 때문에 이 생에서 악한 행위를 하여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경우가 있다. 

착한 행위를 하는 대도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면,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업신여김을 받게 됨으로 악도에 떨어질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2. 보시와 지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은 보시이며, 경전을 일고 깨달아 아는 것은 지혜이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보시의 공덕도 크지만 경을 읽고 깨달아 아는 지혜의 공덕은 더욱 더 크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여 모은 돈이 1000만원 있다고 하면 일하지 않고도 몇 달은 놀고 먹을 수

있다. 한편 돈 한푼도 없는 빈털털이가 돈을 모을려면 배고픔도 참아야 하며, 하고 싶은 것도 참아야 겨우 1000만원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저축해 놓은 돈이 있으면 급할 때 긴요하게 쓸 수 있는 것처럼, 전생에 닦은 착한 업이 있으면 쉽게 돈도 모이고 높은 지위에 까지도 올라 갈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질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음으로써 참고 견디는 싹이 성숙되어 겸손한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이러한 마음 공부를 닦음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어 축생이나 지옥의 과보를 면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모양을 만들어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항상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생하는 행위는 악업의 흔적을 남겨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도 그에 상응하는 육신을 받아 생명체를 이룬다.  이웃과 함께 괴로워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베풀어주며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정진하는 행위는 선업의 흔적을 남겨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때도 그에 상응하는 육신을 받아 생명체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화선지 위에 그리는 그림과 같이 한번 그리면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므로 전생의 어떤 악업의 흔적이 있다면 그 업이 다 소멸할 때까지 그 과보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선업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현생에 악업을 짓더라도 선한 과보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투자한 저금만큼 확실한 것도 없으며, 이율이 높은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한번 먹은 마음이 결국에는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한때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길가에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드시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 나뭇가지의 잎이 많으냐, 저기 보이는 저 숲의 나무잎이 많으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손에 들고 계시는 나뭇가지의 잎과 저 숲의 나무잎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저 숲의 나무잎이 수 천배나 더 많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렇다. 벗들이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저 숲의 나뭇잎만큼 많으며,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친 것은 이 나뭇가지의 잎에 불과한 것이다.‘

바로 그렇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앞으로 일어날 일, 수 백년 후에 일어날 일등 모든 것을 미리 말씀하시지 않았다. 단지 지금 문제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만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스스로 개선해 나가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아마 깨달음을 성취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자들에게 얘기해 주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처럼 저 정도의 크기라면 나도 정복할 수 있겠다고 마음을 내어 그 곳에 도달하여 뿌리를 따라 내려가 보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 하게 큰 것이 밑으로 묻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경의 뜻도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이 경을 읽고 외워 깨달은 과보도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평생 우물안에서 살았던 개구리가 바다의 크기를 상상도 할 수 없듯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가서 스스로 보고 체험하여 느낄 뿐인 것이다.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경을 갖는 사람은 일체 천인天人의 공경과 공양을 받지만 다생多生에 무거운 업장業障이 있는 사람은 금생에 비록 제불여래諸佛如來의 경전을 수지受持하여도 사람들의 경천輕賤함을 입으며 공경과 공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경전을 수지受持했기 때문에 인人.아我 등 相상을 일으키지 않아서 원함과 친親함을 묻지 않고 항상 공경하므로 마음에 번뇌와 한恨이 없다. 그리고 계교計較할 바가 없어서 생각으로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해 퇴전退轉함이 없다. 이렇게 수행했기 때문에 무량겁으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악장惡障을 다 소멸함을 얻는다]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선세자先世者는 전념前念의 망심妄心이요 금세자今世者는 후념後念의 각심覺心이니 후념後念의 각심覺心으로 전념前念의 망심妄心을 경천輕賤하면 망심妄心이 능히 주住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세先世의 죄업이 곧 소멸 된다] 한 것이다. 망념妄念이 멸하면 죄와 업이 없어져 곧 보리를 얻게 된다.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보배를 보시한 것이 삼천계三天界에 가득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미진수微塵數와 같이 행한 갖가지 복덕이 있어도 경을 가짐에 미치지 못함은 일념一念에 무상無相의 이理를 깨쳐서 욕망을 없애고 중생의 전도지견顚倒知見을 멀리 여의어 피안彼岸에 이르러 삼도고三途苦에 벗어나 무여열반無如涅槃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법末法의 중생들은 복덕은 엷고 죄구罪垢는 무거우며 질투는 더욱 깊어, 중성衆聖이 사라지고 사견邪見이 치성熾盛할 것이다. 이때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受持 독송하여 모든 상相을 원이圓離하고 마침내 얻은 바가 없어서 염염念念에 항상 자비와 희사喜捨를 행하며 유화柔和하면 끝내 무상보제無上菩提를 이룰 것이다. 혹 성문聲聞의 소견小見이 있어 여래의 정법正法이 불멸함을 알지 못하여 여래가 멸한 후오백세後五百世에 사람이 능히 무상심無相心을 성취하고 무상행無相心을 행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음을 들으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하신 것이다.

 이 경의 뜻은 무저無著.무상無相의 행이다. 불가사의라 한 것은 무저無著.무상행無相行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함을 찬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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