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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분 하나의 생명체(一體同觀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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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411회 작성일 21-07-1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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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분 하나의 생명체(一體同觀分) (18-1)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육신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18-2)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하늘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하늘의 눈이 있습니다.

(18-3)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존재의 관계성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존재의 관계성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습니다.

(18-4)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법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법의 눈이 있습니다.

(18-5)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깨달음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깨달음의 눈이 있습니다.

(18-6)수부티야,

갠지즈강의 모래에 대하여 부처가 말한 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갠지즈강의 모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큼의 갠지즈강이 있고 그 많은 모래 수만큼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이 세계는 많겠느냐?

매우 많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18-7)부처는 이렇게 많은 세계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가지가지 마음의 작용들을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부처가 말한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18-8)그렇기 때문에 수부티야,

과거에 일어났던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지금 일어나는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다. 



​(해설)

1.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보고 인식하는 안이비설신의 육신의 눈이 육안이다. 

선방에서 참선하고 있는데 산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보이며, 숲 속에 숨어 잇는 호랑이가 보이는 신통력이 생기는 것은 천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끝임없이 변하는 무상한 것이며, 생멸하는 것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은 혜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 색수상생식 오온은 모두 연관되어 있어서 나라고 주장할 만한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임을 인식하는 것은 법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명으로 인하여 행이 일어나며, 행으로 인하여 식이 일어나며, 식으로 인하여 명색이 생기며, 명색으로 인하여 육입이 생기며, 육입으로 인하여 촉이 일어나며, 촉으로 인하여 수가 일어나며, 수로 인하여 애욕이 일어나며, 애욕으로 인하여 취가 생기며, 취로 인하여 유가 일어나며, 유로 인하여 생이 잇고, 생으로 인하여 노사가 있고, 노사로 인하여 무명이 있고, 이러한 무명과 생과 노사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는 원인과 결과를 알게 되는 12연기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고 이로써 존재의 방식과 존재의 구조를 인식하게 되는 불안이 생긴다. 


2.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상하며 무아이듯이, 색을 통하여 인식된 정신적 존재인 수상행식도 색과 같이 무상이며 무아이고 공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일어났던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지금 일어나는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육신의 눈을 가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 내에 들어오는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늘의 눈을 가지고

멀리 떨어져 있어 눈의 경계 내에 들어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형상까지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천안제일 아나율은 너무 열심히 수행하다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결국 하늘의 눈을 얻게 되었다. 

부처님과 아나율 사이에 있었던 일화가 아직도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울려 오고 있다. 

낡아 헤어진 옷을 기워 입어야 하는 것이 장님인 아나율에게는 제일 큰 걱정거리였다. 이날도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무리 애를써도 실이 바늘에 잘 꿰어지지 않았다.

’눈 먼 나를 위하여 바늘에 실을  꿰어 주는  공덕을 쌓지 않으시렵니까?‘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실과 바늘을 건네 받으면서  그는 말했다.

’그럼 내가 공덕을 쌓도록하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나율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죄송합니다. 저는 저의 곁에 다른 벗들이 정진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안 된다는 말인가?‘

’부처님께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신 성자이십니다.

이제 공덕을 쌓아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아나율이여, 그렇지 않다.

나도 여러 벗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관계성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으며, 더 나아가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법의 눈이 있으며, 법의 눈이 사무쳐 자신이 존재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깨달음의 눈이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부처는 깨달음의 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부처에게는 함께 괴로워 할 줄 아는 육신의 눈도 있으며, 신통조화를 마음대로 부릴줄 아는 하늘의 눈도 있으며, 고요한 절에서 풍경이 혼자 울릴 때 왜 풍경이 울리는지 아는 지혜의 눈도 있으며, 물이 온도가 내려가면 얼음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될 때도 본질은 같은 것임을 아는 법의 눈도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캄캄한 방 안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물건을 하나씩 찾는 것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며, 캄캄한 방 안에 촟불을 하나 켜 놓으면 모든 물건들을 한꺼번에 훤히 볼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많은 세계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가지가지 마음의 작용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사인 덕산 선감(780 - 865)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금강경의 대가였다. 주금강이라고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금강경 하면 덕산을 꼽았다. 남쪽지방에서 선이 크게 융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 많은 수행자들이 수 백번을 태어나고 죽음을 되풀이 하면서 부처가 되기 위하여 계율을 지키며 경전을 공부하며 몸부림 쳤어도 부처가 되지를 못했는데 남쪽의 도깨비 같은 놈들이 <마음을 꿰뚫어 부처를 이룬다(直指人心 見性成佛)>하며 허풍을 떨고 있으니 내 지금 당장 그 놈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종자들을 없애 부처님의 자비로운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그리고는 장대에 청룡의 금강경 해설집을 꿰어 짊어지고 자기가 있던 사천을 떠나 남쪽지방으로 갔다. 점심 때가 지나 배도 고프고 피곤하여 떡으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떡집에 들렸다. 그런데 떡집 주인 할머니가 보따리를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묻는다. 

덕산이 우렁찬 목소리로 금강경 해설집이라고 하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금강경에 대해 한 가지 물어 보겠는데 대답을 잘 해주시면 떡을 그냥 드리겠지만 대답을 잘 하지 못하면 떡을 팔지 않겠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읽다 보니까 <과거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붙잡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떤 마음에 점을 찍어 점심을 들고자 하시는지요?‘

덕산은 이 물음에 그렇게 자신있게 좔좔 외었던 금강경이었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점심도 굶은 채 용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상하며 무아이듯이, 색을 통하여 인식된 정신적 존재인 수상행식도 색과 같이 무상이며 무아이고 공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일어났던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지금 일어나는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에 점을 찍어 점심을 먹어야 할까?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모든 사람이 오안五眼을 갖고 있지만 미혹에 덮혀 보지 못한다. 부처님이 가르치기를 [미迷한 마음을 없애면 오안五眼이 원명圓明하다] 한 것이다. 생각생각에 반야바라밀법을 수행하여 처음으로 미심迷心을 없애는 것이 육안肉眼이요, 일체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는 것을 보아 연민憐憫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천안天眼이며,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혜안慧眼이다. 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법안法眼이며, 작은 혹함이 다해서 원명圓明해 두루 비치는 것이 불안佛眼이다. 또 색신色身 중에 법신法身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육안肉眼이요, 일체 생각이 각기 반여성般若性을 갖춘 것을 보는 것이 천안天眼이며, 반야바라밀이 능히 삼세三世의 일체법一切法에 나는 것을 보는 것이 혜안慧眼이요, 일체법一切法이 본래 스스로 갖추는 것을 보는 것이 법안法眼이며, 성품性品을 보는 것이 명철明徹해서 능能과 소所가 소멸하는 것이 불안佛眼인 것이다.

 항하恒河(겐지즈강)는 서국西國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근처에 있는 강인데 여래는 설법하실 때에 항상 이 강을 가르켜 비유를 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항하의 모래 수로 불세계佛世界를 비교하여 많겠느냐 적겠느냐 하니 수보리가 말하기를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것이다. 부처님이 많은 국토國土를 비유로 든 것은 그 속에 있는 개개의 중생이 다 이런 심수心數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국토 중에 있는 낱낱의 중생에게 여러 가지의 심수心數가 많으나 다 망심妄心이다. 망심妄心이 비심非心인 것을 알면 그 마음이 곧 진심眞心이며 상심常心이며 불심佛心이며 반야바라밀心심이며 청정보제열반심淸淨菩提涅槃心인 것이다.

 과거심을 가히 얻지 못하는 것은 전념前念의 망심妄心이 문득 지남에 추심追尋하여도 처소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심現在心을 가히 얻지 못하는 것은 진심眞心은 모양이 없으니 무엇을 의빙依憑하여 볼 것인가? 미래심未來心을 가히 얻지 못하는 것은 본래 얻을 것이 없으니, 습기習氣가 이미 다해서 다시 낳지 않는 것이다. 이 세가지 마음의 얻지 못함을 요달하면 [佛불이 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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