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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분 이 세상이 바로 극락(法身非相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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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332회 작성일 21-07-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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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서른 두가지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부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서른 두가지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부처라고 할 수 없습니다. 

(26-2)그렇다. 수부티야,

서른 두가지의 뛰어난 모습을 갖춘 자를 부처라 한다면 위대한 왕도 부처라고 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서른 두가지의 뛰어난 모습을 갖추었다고 부처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6-3) 부처님이시여,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는 육체적 특징을 갖춘 자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6-4) 그렇다. 수부티야, 이 사행시를 들어 보아라.

(사구게4) 만일 형상으로써 나를 보거나

소리로써 나를 보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여래를 볼 수가 없다. 


(사구게5) 깨달은 사람들은 법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모든 스승들은 법을 몸으로 한다 

그렇지만 법의 본질은 깊이 숨어 있어서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가 없구나.




​(해설)

1. 구말라집 번역에는 可以三十二相 觀如來 不 로 ‘서른 두가지 모양의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부처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되어 있는데,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Laksana-sampada Tathagato drastavyah’으로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되어 있다. 


조주가 행각(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수행을 하는 것)을 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만난 적이 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을 조주는 혼자서 걷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괴상한 모습을 한 두 스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 스님은 정상적인 승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낡고 헤어진 승복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는 땋아 올리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는 황혼 무렵이었다. 조주는 반가워 인사를 하였는데도 두 스님은 별로 반가워하는 눈치도 없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서 함께 하루 밤을 자기로 했다. 이튿 날 아침 일찍이 머리를 땋아 올린 동자스님이 어디선가 밥을 가지고 와서는 세 그릇으로 나누어 놓았다. 그 스님은 밥상 앞으로 나아가 동자스님과 마주보고 앉아 아침을 먹으면서도 조주를 부르지 않았다. 화가난 조주가 밥상 앞으로 다가가 앉으면서 동자스님을 쳐다보며 나무라듯 투들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스님이 조주에게 말했다.

’너무 언짠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밤중에만 길을 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화가 나 있던 조주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어찌하여 이 동자스님은 예의 범절이 없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그는 다른 세상 아이라서 그렇소.’

순간적인 불쾌감 때문에 형상에 사로잡혀 있던 조주는 진리를 볼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쳐 보낼 뻔 하였소.’

그러자 동자스님은 그 스님을 보고 말이 많다고 나무라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형상에 집착하여서는 천년을 가도 부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전에는 한문 번역에는 없는 둘째 단락의 게송도 포함되어 있다.


만일 형상으로서 나를 보거나

소리로서 나를 볼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애를써도 나를 볼 수가 없다.


깨달은 사람들은 법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모든 스승들은 법을 몸으로 한다 

그렇지만 법의 본질은 깊이 숨어 있어서

아무리 볼려해도 볼 수가 없구나.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세존世尊은 자비로 수보리가 상相에 집착하는 병을 없애지 못할까 걱정하여 물었는데 수보리는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를 본다]라고 하는 것도 미迷한 마음이다. 진眞을 여의는 것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여래가 미迷한 마음을 제하기 위하여 [만일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 여래라고 한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여래]라 설한 것이다. 윤왕輪王에게 비록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있으나, 어찌 여래와 같겠는가? 세존이 이 말을 한 것은 수보리가 상相에 집착한 병을 없애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수보리가 깨닫고 보니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깊이 알고보니 삼십이상三十二相

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한 것이다. 수보리는 대아라한大阿羅漢이어서 깨달은 바가 심히 깊기 때문에 방편方便으로 미로迷路를 보여, 세존世尊이 세혹細惑을 버려 후세後世 중생으로 하여금 소견所見이 잘못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다. 

 [약이若以]는 말을 내는 끝이다. [색色]은 상相이요 [견見견]은 식識이며 [아我]는 일체 중생의 몸 가운데 자성自性이 청정하고 무위無爲.무상無相한 진상眞常의 체體다. 가히 고성염불高聲念佛로 성취를 얻지 못하고 정견이 분명함을 알아야 해오解悟를 얻는 것이다. 만일 색과 소리의 두 상相으로 구하면 볼 수 없다. 상相으로써 불佛을 보고 소리로써 법法을 구하면, 마음에 생멸生滅이 있어 여래如來를 보지 못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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