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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분 물질적 베품을 넘어서(依法出生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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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256회 작성일 21-07-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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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수부티야,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우주에 가득한 보물을 여래나 존경받을 만한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8-2)매우 많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왜냐하면 복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복덕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복덕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복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복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8-3)수부티야. 

이 법문중에 사행시 하나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명해주면 이 복덕이 앞에서 말한 물질적인 복덕보다 더 큰 것이다.

왜냐하면, 수부티야.

일체의 모든 부처와 부처의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이 모두 이 법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8-4)그렇다 하더라도 수부티야, 

이 법문을 <불법>이라 말하지만 불법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불법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불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어릴 때 공부를 잘해서 자라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는데 삼류대학도 겨우 나와 그럭저럭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릴 때는 주위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평범한 아이였는데 커면서 능력이 특출하여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공부하여 위대한 연구자가 되어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어릴 때부터 중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부모의 극성과 가정교사의 도움으로 우수한 성적을 겨우 유지할 수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는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 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모든 면에서 자신이 없어지고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공부해 온 어린이는 그때 그때마다  겨우 따라가면서 공부하였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스스로의 능력이 개발되어 계속적으로 성적은 향상되고 모르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공부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나이가 드면 들수록 능력은 무한대로 증진되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과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것과의 차이는 이처럼 엄청난 것이다.

물질적인 베품은 아무리 많더라도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볼 것 같으면 없어져 한계가 있으며 정신적인 베품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보면 없어지지 않고 종류석처럼 계속 커지는 것이다. 

큰 항아리에 가득차 있는 물을 조금씩 사용해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없어지지만, 적은 양의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물은 수 백년의 세월이 지나도 물이 불어면 불었지 줄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다. 물질적인 베품을 큰 항아리에 비유한다면 정신적인 베품은 퐁퐁 솟아나오는 샘물에 비유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정신적인 베품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법문 가운데 한 문장만이라도 철저히 깨달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복덕은 이 우주를 가득채울 만큼 많은 보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복덕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질적인 베품은 끝이 있지만 정신적인 베품은 끝이 없는 것이다.‘

결국 베품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베풀어질 때 진정한 베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처님께서는 끝까지 친절하게 빠지기 쉬운 고정관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운문선사는 <똥막대기>라고 대답했고, 동산선사는 <마삼근>이라고 대답했고, 마조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부처란 정답이 하나뿐인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묻는자와 대답자의 상황에 따라, 지역적인 환경에 따라, 역사적인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불교가 맞추어야 될 과녁은 2500년 전에 부처님께서 오교진녀에게 말씀하신 경전 속에서의 괴로움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의 괴로움인 것이다. 

상대방의 진지한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할 때는 경전 속의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경전의 내용이 아니며, 아무리 하잘것 없는 책 속의 내용이라 하더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때는 경전과 같이 빛나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불법이란 것은 정해져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관계에 의해 끝임없이 변해가는 본질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이라고 이름하는 것만이 불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도 불법이 아니지만, 마음이 열리고 나면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그대로 불법이다.

알겠느냐?‘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삼천대천세계三天大天世界를 칠보七寶로 보시하면 복 받음이 많으나 자성에는 이익이 없다. 마하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수행해 자성自性으로 하여금 제유諸有에 떨어지지 않게 하면 이것이 복덕성福德性이다. 마음에 능能과 소所가 있으면 이름이 복덕성福德性이요 능能.소所 의 마음이 멸滅해야 진정한 복덕성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행이 부처님의 행行과 같으면 복덕성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부처님의 행을 실천하지도 않으면 복덕성이 아니다.

 십이부교十二部敎의 대의大意가 사구게四句偈 속에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모든 경전에서 사구게四句偈가 곧 [마하반야바라밀다]라고 찬탄하고 있다. 마하반야가 제불諸佛의 모친母親이 됨으로 삼세三世 제불諸佛이 다 이 경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성불을 한 것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이르기를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했다. 선생으로부터 배운것을 수[受]라 하고, 뜻을 알아 수행하는것을 지[持]라 한다. 스스로 알고 행하는 것은 자리自利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은 이타利他이며 이것의 공덕은 광대廣大하여 변제邊際가 없다.

 경經은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성이 체體로부터 용用을 일으켜서, 묘리妙理가 무궁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야般若]는 지혜이며, [지智]는 방편으로 공空을 삼고, [혜慧]는 결단으로 용用을 삼는다. 곧 일체시중一切時中에 깨달아 비추는 마음이 반야인 것이다. 일체 제불諸佛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각조覺照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일체 문자장구文字章句가 표와 같고 손가락과 같다]라고 설한 것이다. 표지標指는 그림자와 향響의 뜻이다. 표標에 의하여 물物을 취取하고 손가락에 의하여 달을 보지만, 달은 곧 손이 아니고 표는 물건이 아니다. 다만 경문經文에 의지하여 법을 취할지언정 경이 법은아니다. 경문은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법은 혜안慧眼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혜안이 없는 자는 경은 보지만 법은 보지 못한다. 법을 보지 못하면 곧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불도佛道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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