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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분 청정한 마음(莊嚴淨土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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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706회 작성일 21-07-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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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수부티야,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먼 옛날 내가 연등부처님 처소에 있었을 때, 연등불로부터 얻은 법이 있었겠느냐?

없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 있었을 때도 법에 대하여 얻은 바가 없었습니다.

(10-2)수부티야,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보살이 부처로부터 법을 얻어 깨달음을 성취하여도 부처의 세계를 장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의 세계를 장엄한다고 말하지만 여래는 장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장엄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장엄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장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0-3)그런 까닭에, 수부티야. 

(사구게3)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형상에 머무름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생각의 대상에 머무름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10-4)수부티야, 

비유하자면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몸이 수미산만 하다면 이 몸은 크겠느냐?’

매우 큽니다. 부처님이시여.

왜냐하면 몸이라고 하지만 몸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몸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몸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해설)
1. 연등불 
연등불은 싯다르타가 부처를 이루기 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셨던 24분의 부처님 중의 한 분이다. 연등 부처님은 옛날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 올린 공덕으로 장엄겁시대 부처가 되었다. 

2.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基心 
응무소주 이생기심(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라)은 금강경에서 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 구절이 그 많은 대승 경전 중에서도 금강경이 가장 많이 읽힌 경이 되는데 최대의 공헌을 한 구절이다. 더욱 이 구절을 드라마틱하게 하는 것은 선불교를 일으켜 불교를 세계화 하는데 일등 공신인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에게 법을 전해 받으면서 홍인이 금강경을 설해 나갈 때 혜능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이 구절에서 견성하게 된다. 
우리 모두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부처님께서 부처를 이루기 전의 전생을 살펴보면 장엄겁시대 연등불이 출현하였을
때 선혜라는 수행자였다. 그 때 선혜는 설산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다. 머리는 큰 설산을 베고 누웠고 몸은 바다에 담근 채로 있었으며 한 손에는 태양을 다른 한 손에는 달을 잡고 있는데 물고기 떼가 그의 가슴속으로 안겨드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예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휼륭한 스승을 찾아 물어보려고 산을 내려갔다.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사연을 알아보니 연등부처님께서 출현하여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린다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선혜도 꽃을 한 송이 구하려고 하였으나 욕심 많은 왕이 모든 꽃을 자신에게 바치도록 하였기 때문에 한 송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여쁘고 단정하게 생긴 여자 수행자가 꽃을 한다발 안고 선혜의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구리선녀라고 불리우는 그 여자 수행자 앞으로 나아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드릴테니 꽃 한 송이만 달라고 사정하였다. 그 당시 은화 한 냥이면 꽃을 한 짐이나 살 수 있었는데 연등부처님에게 공양올릴 꽃이기에 은화 백냥을 주어도 꽃 한송이를 팔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선혜 수행자의 끈질긴 집념에 탄복한 구리선녀는 재미있는 제안을 선혜에게 하였다.
‘지금 이생 이후 당신이 세세생생 나와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꽃 일곱송이를 주겠다.’   
최상의 성취를 이루겠다고 마음먹은 선혜 수행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연등부처님을 만나 뵙고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그는 구리선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세생생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은 허락하겠소. 그러나 내가 어떤 지위에 있더라도 집을 나가 도를 닦는 것을 말려서는 안됩니다.‘
구리선녀 자신도 수행자이니 그것은 인정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석가의 전생이 선혜이며, 부인 야수다라의 전생이 구리선녀이다.  
꽃을 얻은 선혜 수행자가 서둘러 부처님이 오시는 길목으로 갔더니 이미 왕이 부처님이 오시는 길목마다 꽃다발을 뿌리고 있었다. 선혜도 가지고 온 꽃 일곱송이를 뿌렸더니 신기하게도 그 꽃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공중에 멈추어 있었다. 
마침 이 모습을 보신 연등부처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선혜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며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부처님이 걸어오시는 앞을 보니 비가 온 뒤라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선혜는 자신의 몸을 던져 웅덩이를 덮었는데 그래도 조금 모자라 자신의 머리까지 풀었다. 선혜의 지극한 신심과 법을 구하는 간절함을 보시고 연등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수기를 주신다.
’그대는 지금과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한다면 다음 생에는 반드시 부처를 이룰 것이다.‘
연등부처님의 제자가 된 선혜는 어느날 꾸었던 꿈 이야기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선혜여, 좋은 꿈을 꾸었구나. 산을 베고 누웠으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며, 몸을 바다에 담구었으니 높은 지위를 버리고 중생들과 더불어 살 것이며, 한손의 태양은 도를 이뤄 부처가 되는 것을 뜻하며, 한손의 달은 중생들에게 바르게 사는 법을 편다는 뜻이다.‘ 
결국 선혜와 같이 지극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수행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을 극락으로 만들겠다는 결심도 형상에 집착한 허망한 생각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붉은 색깔의 셀로판지를 통하여 세상을 보면 온통 붉게 보이듯이, 자신이 극락이 되어 극락의 눈으로 우주를 보면 우주가 그대로 극락인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변해야 할 것은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수보리야,
육신의 눈을 통하여 보이는 몸은 크고 작음이 있지만, 진리의 눈으로 보면 형상의 크고 작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이루고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다시 흙, 물, 불, 바람으로 돌아가고 다시 인연이 모여 몸을 이루고 하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의 본질이 보인다.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금강경을 듣고 발심한 육조 혜능이 홍인을 찾아 간다. 홍인이 먼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혜능은 인사를 하며 공손하게 답했다.
’영남에서 왔습니다.‘
’영남의 무지랭이가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예상 밖의 대답이 혜능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습니다만 불성에 어찌 남과 북이 있겠습니까?‘
홍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혜능의 도에 대한 열린 마음을 알았지만 짐짓 꾸짓는 어조로 말했다.
‘어허, 오랭캐가 당돌한 말을 하는구나. 부엌에 가서 방아나 찧도록 해라.’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홍인이 혜능을 찾아왔다.
‘행자여, 그래 방아는 다 찧었는가?’
‘녜, 방아를  찧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 키질을 못했습니다.’
홍인은 가지고 있던 주장자를 세 번 땅에 치더니 가버렸다. 혜능은 삼경에 홍인을 찾아 갔다. 기다리고 있던 홍인은 혜능에게 금강경을 설명해 주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혜능은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라>하는 구절에서 깨달았다.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마음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법을 얻었다는 생각을 마음에 둘까 걱정하여 물었다. 그러나 수보리는 법의 얻은 바가 없음으로 부처님께 말하기를 [아닙니다]라고 했다. 연등불燃燈佛은 석가모니佛에 수기授記한 스승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에게 묻기를 [내가 연등불의 처소에서 법을 들었는데 법의 얻음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했다. 수보리가 말하기를 [법法은 연등불의 개시開示로 인因했으나 사실은 얻은 바는 없습니다. 다만 자성自性이 본래 청정해서 진로塵勞가 본래 없으며 적적해 스스로 깨달으면 성불입니다] 했으니, 마땅히 알라. 세존世存이 연등불燃燈佛이 계시는 곳에 있었으나 사실은 얻은 바가 없다. [여래법자如來法者]는 일광日光의 명조明照가 끝이 없어서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토佛土는 청정하여 상相도 없고 형形도 없는데 무엇을 장엄한다고 하는가? 그것은 정定과 혜慧의 거짓 이름으로 장엄한 것이다. 장엄함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간世間의 불토佛土를 장엄하는 것으로 절을 짓고 經경을 쓰며 보시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의 불토佛土를 장엄하는 것으로 일체의 사람을 보고 널리 공경을 행하는 것이며, 세째는 마음의 불토를 장엄하는 것으로 마음이 청정하면 불토佛土가 청정하므로 염염念念히 얻음이 없는 마음으로 항상 행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남의 시비是非를 말하기를 [내가 능히 그것을 안다] 하여 마음으로 말학末學을 경만輕慢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이것은 청정심이 아니다. 자성自性에서 항상 지혜를 내어 평등한 자비를 행하고 일체 중생에게 하심下心하여 공경하는 것이 수행인의 청정심이다. 만일 그 마음이 청정하지도 못하고 청정한 곳에만 애착해 마음에 주主한 바가 있으면 법상法相에 저著한 것이다. 색色을 봄에 색色에 집착하고 색色에 주住해 마음을 내면 미迷한 사람이요, 색色을 봄에 색色을 여의어서 색色에 주住하지 않고 마음을 내면 깨달은 사람이다. 색에 주해 마음을 내는 것은 구름이 하늘을 가림과 같고, 色색에 住주하지 않고 마음을 냄은 허공에 구름이 없어서 일월日月이 길이 빛남과 같다. 또한 색에 주해 마음을 내는 것은 망념妄念이요, 색色에 주住하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진지眞智니, 망념妄念이 生생하면 어둠이요 진지眞智가 비치면 밝음이다. 밝으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어두우면 육진六塵이 다투어 일어난다.
 색신色身이 크도 내심內心의 양量이 적으면 대신大身이라 이름하지 않고, 내심內心의 양이 허공계虛空界와 같이 커면 대명大名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색신色身이 수미산 만 하더라도 크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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