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분 소중한 인연(法會因由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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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이와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이 스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수행자 1250명과 함께 계셨다.
(1-2)마침 공양을 드실 때여서 부처님께서는 옷을 입으시고 밥그릇을 들고 스라바스티(사위성)로 들어가 걸식을 했다. 차례로 일곱 집에서 음식을 얻어 드시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아 선정에 드셨다.
(해설)
1.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다문 제일인 아난이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것을 보고 들었는 것을 송출하여 많은 제자들이 따라 암송하여 기억으로 전승하다가 문자화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불교의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경전의 구성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6성취가 있다.
육성취는 신성취信成就, 문성취聞成就, 시성취時成就, 주성취主成就, 처성취處成就, 중성취 衆成就를 가르킨다.
여기서 신성취는 여시아문으로 아난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고 듣고 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주성취(누가)는 법을 설한 주체인 부처님을 가리키는 것이며, 중성취(누구와)는 1250명의 스님들과 함께를 가리키는 것이며, 시성취(언제)는 어느 때를 가리는 것이며, 처성취(어디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정사에서를 가리키는 것이며, 문성취(어떻게 하는 것을)는 공양을 드시기 위하여 걸식을 하고 다시 정사로 돌아와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아 선정에 드시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2. 금강경에는 선남자 선여인, 보살, 어떤 사람의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다.
여기서는 선남자선여인을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로 번역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인간의 가장 평범한 삶을 만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부모 형제, 착한 벗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인연들이다. 더군다나 깨달음을 성취하신 위대한 스승 부처님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함께 살고 있으니 이 한 때가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과 더불어 수행처에 함께 계시면서 평등한 관계를 보이심으로 수직적 관계에 의한 집단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할 일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수평적 관계를 보이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하루에 한끼를 드셨다. 9시에 정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시고 기원정사로 부터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사위성으로 들어가 자신이 드실 음식은 손수 걸식하였으며, 부자집과 가난한 집을 가리지 않고 신분이 귀한 집과 천한 집을 가리지 않으며 차례로 일곱 집을 걸식하고 난 뒤에 수행처인 고독원으로 돌아와 대중들과 함께 공양을 드시고는 옷을 벗어시고 발을 씼으셨다.
이것은 진지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가져야할 기본정신인 겸손한 마음과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는 평등한 마음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공양을 드는 것은 단순한 의식주 해결의 한 방법이 아니라 이 몸을 지탱하게 하여 수행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경건한 의식인 동시에 수행인 것이다.
또 하나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은 성중에 들어가 걸식함으로서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흉년이 들어 굶어야 할 때 함께 굶는 것이고, 걸식하는 집에 사람이 죽었다면 함께 슬퍼하며 인생의 무상을 절감하는 것이며, 걸식하는 집에 생일이라든가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공양으로 함께 기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걸식은 단순한 밥을 비는 행위가 아니라 수행자의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또한 걸식하는 행위 속에는 수행자의 본분인 철저한 무소유 정신도 포함되어 있다. 철저한 무소유일 때 구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행자들의 행위들이 자신의 행위가 될 수 있으며 진정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게 된다.
부처님께서도 마을에 축제가 있어 빈 손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빈 손으로 돌아오면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음식은 비록 얻지 못했다 해도
보라, 우리들은 즐겁게 사나니
빛을 먹고 사는 저 하늘 처럼
나도 기쁨을 먹고 살아가리라.
공양에 관계되는 모든 행위를 마치고는 다시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 자리를 펴고 고요히 앉아 삼매에 드시는 것이다.
경전에도 수행처로서 적당한 곳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시내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아야 하며, 다니기는 편리하여 법을 구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쉬워야 하며, 낮에는 번거롭지 않고, 밤에는 시끄럽지 않아서 고요하고 명상하기에 적당한 곳이라야 한다.
불교 최초의 수행처는 빈비사라왕이 기증한 왕사성에 세워진 <죽림정사>였으며, 그 다음 세워진 수행처가 이 금강경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 양 끝자를 따서 기원정사라고 함>이며, 부처님께서도 이 곳이 마음이 들어 45년의 교화생활 중에서 21번의 우안거를 여기서 보내셨다. 그 당시 사위성의 임금은 파사닉왕 이었다. 대부분의 경전들은 우안거 중에 설해졌으므로 현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전이 설해진 무대는 <기원정사>였다. 지금도 이 수행처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수닷타는 중인도의 여러 도시를 상대로 대상을 조직하여 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대 부호였다. 그는 무역관계로 왕사성에 왔다가 죽림정사에 계시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부처님을 찾아가 뵙고는 그 빛나는 모습에서 감동하였다. 그래서 내년 우안거는 사위성에서 머물러 주시기를 청하였더니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부처님이 머무실 곳을 찾아 보았더니 제타숲이 적당하였다. 이 제타숲의 주인은 왕자였으며 수닷타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왕자님, 부디 그 숲을 저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저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실 정사를 짓고자 합니다.’
‘장자여, 그대가 그 숲 전체에 황금을 깔아 놓는다면 몰라도 그 숲은 넘겨줄 수 없소.‘
이렇게 해서 수닷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황금 숲을 만들었고, 지켜보고 있던 왕자도 그의 정성에 감복하여 제타숲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수닷타는 기쁜 마음으로 정사를 지었던 것이다.
누구나 자라면서 성취의 기쁨은 한 두번씩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에서 오는 절망이다. 체념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본래의 생활에 다시 적응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성취가 주는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행위가,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행위는 하되 행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똑같은 생활 속에서 삶에 대한, 대상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게 달라져 있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의 황금시대에 천황 도오(748 - 807)와 그의 제자 용담 숭신(? - 838)이 있었다.
용담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떡을 팔아 생계를 도왔다. 용담의 집 근처에는 도오가 살고 있는 절이 있었다. 용담이 아침에 떡을 메고 나오면 항상 도오가 절 앞에 서 있었다. 용담은 매일 아침마다 도오에게 따끈하고 쫄깃쫄깃한 인절미 10개를 드리며 아침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 도오는 그 중에 한개를 다시 용담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너의 후손들이 잘 살도록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러한 일이 몇 달 반복되자 용담은 떡을 한개 되돌려주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도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도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떡은 원래 너의 것인데 그 중에 한개를 너에게 돌려 주는데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
도오의 이 말에 용담은 강력한 자석을 만난듯이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도오 곁에 있으면서 불법을 배웠다. 몇 년이 지났지만 용담은 도오에게 아무런 불법도 배우지 못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물었다.
‘제가 스승님을 모신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한번도 불법에 관하여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도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네가 이 곳에 온 이 후로 한번도 불법에 대한 가르침을 멈춘 적이 없는데!
네가 차를 끓여오면 즐겁게 차를 마셨고, 공양을 차려오면 맛있게 먹었고, 인사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모든 것에서 가르쳐 주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느냐?’
용담은 고개를 숙여 곰곰히 생각했다. 이때 도오가 마지막 열쇠를 내밀었다.
‘진정한 깨달음은 말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당장 깨치는 것이지 머리로 따지고 분별하기 시작하면 이미 빗나간 것이다. 깨달음은 분별심보다 더 넓고 더 깊은 분별 이전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
(혜능 해설)
육조 혜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如(여)는 가리킨다는 뜻이요 是(시)는 일정하다는 말이다. 아난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같은 법을 부처님에게서 들었다] 하니 이는 자기의 설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我(아)는 性(성)이 곧 我(아)다. 내외 동작이 다 性(성)으로 말미암아 일체를 다 듣기 때문에 我聞(아문)이라 칭한 것이다 .
一時(일시)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나 모인 때를 말한다. 佛(불)은 설법의 主(주)가 된다.在(재)는 처소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님 당시 舍衛國(사위국)은 披斯匿王(피사닉왕) 이 다스리고 있었다.
祇(기)는 태자 이름이요 樹(수)는 祇陀太者(기타태자) 가 보시한 숲을 말하여 그래서 祇樹(기수)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給孤獨(급고독)은 修達長者(수달장자)의 다른 이름이며 園(원)은 須達(수달)이 지었기 때문에 給孤獨園(급고독원)이라 했다.
佛(불)은 梵語(범어)며 한문으로 나타내면 覺(각)이다. 각의 뜻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外覺(외각)으로 모든 법이 空(공)함을 觀(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內覺(내각)으로 마음이 공적함을 알아 六塵(육진)에 물들지 않고 밖으로 사람들의 잘못을 보지 않으며 안으로 사악하고 미혹한 것(邪迷)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如(여)라는 말은 부처님이 비구(남자 수행승)와 함께 금강반야의 無相道場(무상도량)에 주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大比丘(대비구)는 大阿羅漢(대아라한)이며 比丘(비구)는 범어다. 한문으로 풀이하면 六賊(육적)을 능히 파한다는 뜻이다. 衆(중)은 많다는 것이고 천이백오십팔은 수행하고 있는 대중의 수를 나타내며 俱(구)는 평등법회에 함께 계신 것을 뜻한다.
爾時(이시)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그 때를 말하고 食時(식시)는 지금 시간으로 辰時(진시)쯤 이다.
着衣持鉢(착의지발)은 가르침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취를 보인 것이요, 入(입)은 성문 밖에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舍衛大城(사위대성)은 사위국의 豊德城(풍덕성)으로 피사닉왕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위대성이라 한다. 乞食(걸식)은 여래가 일체 중생에게 下心(하심)함을 뜻하는 것이며, 次第(차제)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평등으로 화한 것을 말한다. 乞已(걸이)는 많이 빈다 해도 일곱 집을 넘지 말아야 하며, 한 번에 일곱 집에서만 걸식을 하는 것이다.
還至本處(환지본처)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걸식을 마치고는 다시 수행처인 정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召請(소청)을 除(제)하고는 함부로 속가에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洗足(세족)은 여래가 범부와 같이 하려고 발을 씻는 것이다. 대승법에서 발을 씻는다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함을 뜻한다. 때문에 일념으로 마음을 맑게 하면 곧 罪垢(죄구)는 없어진다.
여래는 설법하실 때에 항상 자리를 펴고 앉았기 때문에 敷座而座(부좌이좌)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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