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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강 불교 대특강

41. 42. 부처님의 십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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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5,476회 작성일 23-03-0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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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부처님의 10대 제자1 

(가섭, 사리불, 목련, 수보리)


1. 두타제일 마하가섭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 제일 큰 제자인 가섭은 이제까지 지구를 거쳐간 모든 수행자들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수행자의 표본이 된다. 수행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제자 중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였다. 가섭은 엄청나게 부유한 바라문가에 태어났다. 그 당시 마가다국의 왕이었던 빈비사라왕 보다도 더 부자였다.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을 하였지만 12년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청정범행을 닦았다. 결혼 첫날 가섭은 부인에게 자신은 출가 수행자의 삶을 원하며, 부모의 권유로 결혼은 했지만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음을 밝힌다. 부인도 가섭과의 전생에 지중한 인연이 있었으며, 또한 착한 선근이 있어 가섭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거섭과 가섭 부인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다정한 부부처럼 보였지만, 밤만 되면 가섭과 부인은 밤새도록 참선을 하면서 수행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가섭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가섭이 칩십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좀 편안하게 쉬면 어떻겠느냐?고 조용하게 권했다. 

“가섭이여, 너의 육신도 이제는 늙을만큼 늙었구나. 너가 평생 입고 있었던 분소의(세속 사람들이 버린 옷을 주워다가 여러 개를 모아 기워 만든 옷)가 무거워 행동하기에 불편하면 재가 신도들이 공양 올리는 가벼운 옷을 입어도 좋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두타행을 그만 두고 너의 육신을 편안하게 쉬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그러자 가섭이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오랫 동안 여러 가지를 보살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두타행을 닦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비록 늙은 몸으로 부처님을 뵈었지만 이 무거운 옷을 입고 하루 한끼를 먹으며 밤새도록 무덤가에 앉아 선정에 들기도 3, 40 년이 흘렀습니다. 세존을 처음 뵈었을 때 젊고 당당했는데 이제는 부처님께서도 많이 늙었셨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무거운 분소의를 입고 무덤 사이에서 수행하다가 죽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는 도를 닦아 탐욕을 줄이고 또 만족함을 알고, 혹은 조용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정에 들기도 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피하여 홀로 수행하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이같이 도를 닦는 것은 저의 즐거움이며, 또한 후세의 사람들에게 도를 닦는 즐거움과 도를 닦는 기준을 알리고 싶은 까닭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기뻐하면서 가섭에게 말했다.

“가섭이여, 너야 말로 후세 사람들의 등불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도를 이루어 안락을 얻을 것이다. 가섭이여, 너의 뜻대로 두타행을 계속해도 좋겠구나.”

가섭의 노안에는 미소가 번졌다.

“부처님이시여, 허락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가섭은 평생을 다음과 같은 12 가지 두타행을 하면서 수행하였다.

1.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2. 상행걸식(常行乞食) - 언제나 탁발걸식한 음식을 먹는다.

3. 차제걸식(次第乞食) - 걸식하는데 있어서 빈부의 집을 가리지 않는다.

4. 수일식법(受一食法) - 하루 한끼만 먹는다.

5. 절량식(節量食) - 수행에 적당한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량만 먹는다.

6.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 중식 이후에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7. 착폐납의(着弊納依) - 세속에서 버린 옷들을 모아 기워서 만든 옷을 입는다.

8. 단삼의(但三衣) - 옷은 세벌 이상 가지지 않는다.

9. 총간주(塚間住) - 잠을 잘 때는 무덤 사이에서 잔다.

10. 수하지(樹下止) - 수행을 할 떄에는 나무 아래에서 한다.

11. 노지좌(露地坐) -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但坐不臥) - 잘 때도 누워 자지 않고 좌선하는 자세로 그대로 잔다.

깊은 산속 한적한 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하며, 간혹 짐승소리만 정적을 깨고 있다. 밤에는 무덤 사이에 좌선하는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잠간 눈을 붙이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가만 마을로 걸식을 간다. 하루 한끼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의 량만 먹는다. 입고 있는 옷은 입다가 버린 것을 주워 모아 만든 분소의를 입고 있다. 가섭은 출가 전에도 참선만 하였고, 출가 후에는 이러한 삶을 평생 동안 행한다. 가섭의 삶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평생 동안 일관된 진지한 수행 그 자체였다. 누가 있어 이렇게 살겠는가? 부처님께서도 항상 가섭을 칭찬하시며 찬탄하였다. 

하루는 제자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가섭존자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어서 부유한 집에 태어났으며, 금빛 나는 몸을 받았으며, 항상 부처님께 칭찬을 들으면서 저렇게 진지하게 수행을 잘 합니까? 그 연유를 말씀해 주시면 저희들이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들어라. 내가 지금 그 인연을 설하겠다. 옛날 과거세에 한 벽지불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다가라시기 라고 하였느니라. 그는 항상 파라나성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였다. 어느 해 파라나성은 흉년이 들어 쌀이 귀하고 먹을거리가 없었다. 나라에서도 어찌하지 못하여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 걸식하는 수행자들도 많은 곤란을 겪게 되었다.

하루는 벽지불이 새볔에 일어나 가사를 입고 걸식하러 마을에 내려갔다. 차례로 입곱 집을 돌았지만 바루(걸식하여 얻은 밥을 넣는 밥 그릇)는 씻은 듯 깨끗한 빈 바루였다. 빈 바루를 들고 수행처로 돌아가는데 마을 쪽에서 한 사람이 벽지불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그 마을에 사는 제일 가난한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위의를 갖추고 조용히 서 있는 벽지불을 보자 마음이 밝아지고 맑아짐을 느꼈다. 그는 벽지불에게 말했다. “위의를 갖춘 수행자시여, 걸식으로 음식을 얻었습니까?” 벽지불이 대답하기를 “착한 사람아, 나는 걸식에서 음식을 얻지 못했다.” 그러자 가난한 사람은 벽지불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먹으려고 준비해둔 피밥을 나누어 주었다. 벽지불이 바루에  피밥을 받아 돌아가는 가는 모습이 너무나 성서러워 벽지불의 뒷 모습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은 합장을 하며 원을 세웠다. 

“원하옵건데 앞으로 이런 뛰어난 벽지불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받들어 나도 벽지불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옵니다. 또한 세세생생 지옥이나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 때의 벽지불이 지금의 나이며, 그 때 지극한 원을 세운 가난한 사람이 지금의 가섭이니라. 가섭은 그 인연으로 그 다음 생에는 부유한 집에 태어나 사재를 털어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우고, 탑을 세우면서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베풀었다. 그러면서 원을 세우기를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를 서원하였다. 또한 부처님의 몸과 같이 금빛 몸을 받기를 서원하였다. 사리탑을 세우고 금빛 몸을 받기를 원을 세운 그 인연으로 가섭은 금빛의 몸을 받게 되었다. 가섭은 금생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공덕을 지었느니라. 이러한 인연 공덕으로 오늘의 가섭이 되었느니라.“ 



2. 지혜제일 사리불


하루는 모든 비구들이 둘러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장로 사리불은 지난 과거세에 어떤 선근을 심었기에 그 인연을 타고 이제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또 수기하시되 '큰 지혜 성문 제자들 가운데는 사리불이 제일이요'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이여, 지난 옛날 과거세에 저 파라나성에 소필리야 善愛(선애)라는 사람과 또 선애의 여동생이 살았느니라. 

 그 때 선애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곧 벽지불을 이루었고 그 여동생 소필리야는 파리바사가 외도 가운데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어느 날 선애 벽지불은 외도 여동생 소필리야를 찾아갔다. 거기에 가서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동생 소필리야는 백 가지 맛을 음식을 장만하여 손수 공양을 베풀어 배불리 먹게 한 뒤에 다시 칼 하나와 바늘 하나를 그 오빠 벽지불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 벽지불은 밥을 다 먹고나서 여동생이 준 칼과 바늘을 가지고 그 여동생 앞에서 허공으로 날아서 갔다. 그 여동생 소필리야는 그 오빠 벽지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코게 기뻐 뛰놀며 기쁨이 온몸에 넘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합장하고 멀리 그 벽지불을 경례하고 이런 원력을 세웠다. 

 "원하옵건대 나는 미래세에 이런 스승이나 더 나은 분을 만나 그가 설하는 법을 빨리 깨닫고 악도에 나지 않게 하고 내가 보시한 날카로운 칼이 베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이 이 끊고 베는 인연업으로써 나는 미래세에 일체 번뇌를 모두 끊지 못함이 없고 또 이 바늘이 두루 꿰뚫듯이 나는 미래세에 일체 번뇌를 모두 다 꿰뚫고 사무치리라."

여동생은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세웠다. 

"비구들이여, 그때 소필리야 외도로 선애 벽지불에게 칼과 바늘을 보시한 사람이 바로 사리불 비구니라. 사리불은 이 생이나 다음 생에도 지혜가 제일이니라."


하루는 사리불과 여러 제자들은 신도의 공양 초대를 받았다. 사미가 된 라후라도 끼어 있었다. 대중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라후라에게 붓다는 물었다. 

“오늘의 대중 공양에는 모두 만족하였느냐?”

그러자 어린 라후라의 대답은 천만 뜻밖이었다.

“만족한 사람도 있으나 만족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비구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나왔으나 사미들에게는 거친 음식이 나왔습니다.”

“라후라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수행을 할 때는 한줌의 곡식을 먹고 지냈느니라. 그것과 비교한다면 거친 음식도 수행하는데는 훌륭한 것이다.”

붓다는 사리불에게도 물었다. 

“오늘 대중 공양은 모두 만족스러웠느냐?”

붓다의 의도를 알아차린 사리불은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침착하게 사리불은 말했다. 

“앞으로는 어떤 공양 초청에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걸식만 하겠습니다.”

그후 사리불은 평생 동안 공양 초청에 응하지 않고 걸식만 하였다. 다음은 사리불 만년의 이야기이다.

사리불은 여름 석달 안거를 끝내고 유행을 떠났다. 얼마후 한 비구가 붓다에게 다가와 

“부처님이시여, 사리불은 저를 모욕한 후에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하였다.

붓다는 사리불을 불러오도록 비구를 보냈다. 그리고 아난에게는 정사 안에 있는 전 대중을 한 곳에 모이게 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리불은 붓다에게로 불려온 것이다. 붓다는 사리불이 오자 엄숙하게 말했다.

“사리불이여, 네가 떠나자 얼마 후 한 비구가 찾아왔다. 그 비구는 네가 자기를 모욕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말인가?”

사리불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올해 팔십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살생한 기억도 없으며 거짓말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남과 다툰 일도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런 일을 하였다면 평생을 부처님 곁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안거가 끝나는 참회의 날입니다. 저의 마음은 호수와 같이 투명합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남을 가벼이 희롱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땅은 능히 모든 것을 참고 더러운 것도 받아들입니다. 땅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늘의 제 마음은 마치 이 땅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산과 들을 태우는 불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먼지를 쓸어내는 비 또한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저의 마음 또한 이 불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뿔을 잘린 소가 거리를 걸어도 온순하고 선량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음과 같이 오늘의 제 마음도 온순하고 선량하여 풀 한포기라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바른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 제가 어찌 다른 사람을 모욕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거짓말을 하였다면 세존께서도 아실 것이며 저 비구도 알 것입니다. 만약 저에게 잘못이 있다면 저는 그 비구에게 참회하겠습니다.”

사리불의 이 말을 듣고 대중들은 모두 감동하였다. 붓다는 사리불을 비방한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너의 잘못을 참회하여야 한다. 만약 참회하지 않으면 너의 머리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다.”

그 비구는 앞으로 나아가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너는 사리불에게도 전 대중에게도 참회하여야 한다.”

비구는 사리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다시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사리불은 그 비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비구여, 참회는 불법 가운데 공덕이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는 그대의 참회를 기쁘게 받아들이나니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라.” 대중들은 사리불의 태도에 다시 한 번 감동하였다.


 어느 날, 사리불은 좌선을 하고 선정에 들었다. 그는 참선을 마치고 문득 생각하기를, 

 "옛부터 모든 부처님의 제자는 붓다에 앞서 열반에 드는 것이 상례였다. 지금 붓다는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시게 되어 있다. 내가 열반에 들어야 할 시기는 지금이다."

고.

그리하여, 사리불은 붓다를 찾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세존이시어, 저는 이제 열반에 들리라 생각하오니, 부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붓다는 물었다. 

 "어찌하여 그렇게 서두르는고? 사리불."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신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또 세존께서 주차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부처님의 높은 제자는 반드시 부처님 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열반에 들어야 할 때는 왔다고 생각합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사리불, 그대는 능히 열반의 때를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열반에 들겠는가?"

 "고향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를 뵈옵고 제가 태어난 그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선재라! 사리불 그대는 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모든 너의 법형제에게 최후의 설법을 하여라."

 아난다는 산중의 모든 비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고별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모였다. 

 사리불은 경건히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붓다를 만날 수 있어 그와 함께 살 수 있는가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제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승에서 붓다를 만나게 된 것은 이 위에 더 없는 기쁨이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어리석은 자도 붓다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사할 길이 없는 기쁨이옵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멀지 않아 사바 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한 경지에 들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거운 짐을 버린 사람과 같이 오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높으신 세존이시여, 이것이 세존에게 바치는 저의 마지막 인사이옵니다."

 사리불은 합장하고 붓다의 발 아래 오체를 굽혀 절하였다. 

 경건한 침묵이 붓다와 사리불과 모든 비구들을 감쌌다. 그 광경은 아름답고도 엄숙한 것이었다. 

 사리불은 절을 마치고 조용히 일어섰다. 그는 붓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붓다 앞을 물러갔다. 

 그의 법형제들은 손에손에 향을 피우고 혹은 꽃을 들어 그를 보냈다. 

그것은 조용하고 장엄한 행렬이었다. 그 중에는 소리 죽여 흐느끼는 자도 있었다. 

 사리불은 죽림 정사의 입구에서 발을 멈추고 그의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쿤티 사미만 남고 여러분은 돌아가 주십시오. 여러분은 돌아가 자기 자신의 수행에 정진하여 고뇌의 경지를 벗어나도록 힘쓰시오. 붓다께서 이승에 오시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마치 우담발라화의 꽃이 삼천 년에 한 번 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믿음을 얻고 출가하여 여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붓다의 출현보다 더 얻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한층 더 정진할 것을 저는 떠나면서 다시 부탁합니다. 형제들이여, 제행은 무상합니다. 번뇌를 이기고 무아가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열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하게 돌아가고 싶은 적정의 세계인 것입니다."

 사리불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이것이 사리불과의 최후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그들 자신을 더욱 슬프게 하였고, 이별의 슬픔과 쓸쓸함에 눈물을 흘렸다.

 "사리불 존자,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굳이 서둘러 열반에 들고자 합니까?"

 사리불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마음 아파하지 마시오. 이승이 무상한 것을 여러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수미산도 언젠가 먼 훗날에는 깎이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황차 한 알의 겨자씨와 같은 사리불의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일심으로 도를 닦고 고뇌를 벗어나야 합니다."

 사리불은 말을 마치고 쿤티 한 사람만을 데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집으로 떠나갔다. 그의 고향 집은 왕사성에서 이십리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제 사리불과 헤어지면 다시는 이승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거절해도 사리불을 사모하는 몇 사람이 뒤를 따르려 했다. 

 사리불은 그 미련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그 연연해 하는 습기가 수도에 장애가 됨을 역설하여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할 수 없이 늙은 사리불과 어린 사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지켜볼 뿐이었다. 사리불과 쿤티 사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그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시는 그 존경하는 사리불을 만날 수 없다. 그들은 멍청히 서서 사리불이 사라져간 허공을 향한 채 눈물을 흘렸다. 인생의 무상을 깨닫고 수도하는 그들도 인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3. 신통제일 목건련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에서 뛰어난 사상가 산자야가 있었다. 산자야의 제자 중에는 사리불과 목건련이 있었다. 목건련은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친구인 사리불과 함께 나라에서 일년의 풍년과 평화를 기원하는 산정제의 현장에서 제사 지내는 구경을 하다가, 그 시끄러운 가운데서 오히려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 수행을 결심하게 되었고, 사리불과 함께 출가하였다. 하루는 부처님의 제자 마승이 탁발하고 있는 모습을 사리불과 목건련이 지나가면서 보았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마승의 조용하고 맑고 깨끗한 모습에 반해 마승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승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누구의 제자냐?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시느냐? 의 핵심을 물었다. 

마승의 조용한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었다.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왜 태어났으며,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연기법을 가르쳐주시며, 올바르게 사는 방법과 실천에 대해서 가르쳐주시며, 몸소 우리들의 귀감이 되어주십니다.”

이 말을 들은 사리불과 목건련을 이제야 진정한 스승을 만나게 되었음에 대한 가슴에 사무치는 환희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 바로 부처님의 처소로 달려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가 되었다. 

목건련이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초기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전법을 하다가 순교한 위대한 정신이다. 

목건련은 지옥에 떨어진 그의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하여 경문을 지어 지성으로 기도하였으며, 이것이 목련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 목건련의 효심에 힘입어 음력 7월 15일 백중이 되면 지옥 중생들을 천도하기 위하여 지극정성으로 이 경을 독송한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의 두 팔이며 부처님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사정에 따라 부처님 자신이 설법을 할 수 없을 때 지혜제일인 사리불이나 신통제일인 목건련에게 설법을 부탁하였으며 그들이 설법을 하면 부처님께서는 안심할 정도였다.

신통력을 이야기할 때 보통 육신통을 말한다. 육신통이란 생각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생각하는 대로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세상이나 지옥이나 하늘까지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인간의 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과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알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宿命通), 탐, 진 치 모든 번뇌가 소멸하여 지혜를 터득하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목건련은 대중들이 모여 수행하고 있는 정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혼자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신통력이 뛰어난 목건련은 이교도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였고,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할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를 노린 이교도는 나형 외도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목건련이 산속에서 혼자 좌선하고 있는 것을 멀리서 둘러쌌다. 그리고 돌을 던졌다. 

 목건련은 날아오는 돌에 맞으면서도 조용히 앉아 움직일 줄 몰랐다. 그는 살의에 찬 무리들 앞에서 선정에 들어 있었다. 이윽고 무수한 돌은 선정에 들어있는 목건련을 쓰러뜨렸다. 

 나형 외도들은 목건련의 신통력을 두려워하여 쓰러져있는 목건련에게 다가서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이윽고 목건련의 몸은 돌더미 쌓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목건련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갔다. 

 비구들이 목건련의 죽음을 안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 

 비구들은 놀라운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구들 중의 몇 사람은 흥분하여 복수를 생각하였다. 흥분한 교단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교도들의 목건련에 대한 생각은 지극하였다. 특히 제바달다가 반란을 일으켜 제바달다를 따라간 교도들을 설득시켜 다시 데리고 온 사람이 목건련이었다. 그들에게 그렇게 진실한 수행의 길을 다시 열어준 자가 목건련이었다. 그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목건련이 살해된 것을 알고 더욱 분노한 사람은 아자타샤투루왕이었다. 그는 목건련을 죽인 자들이 나형 외도임을 알고 격렬한 성격의 왕은 나형 외도 중의 주모자를 화형에 처하였다. 

한 제자가 붓다에게 물었다.

 [목건련과 같은 존자도 이런 최후를 마쳐야 합니까?]

 [그렇다. 목건련도 전생에 자신이 지은 과보임을 알고 기꺼이 당하였다. 

목건련은 전생에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름다운 부인의 여색에 빠져 어머니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다. 악에 바친 어머니는 ‘어떤 힘센 장사가 저 놈을 쳐 죽였으면 좋겠다.’ 고 아들을 저주하였다. 여색에 빠져 불효한 과보로 목건련은 오백생 동안 계속 타살되었으며, 이번으로 그 과보를 다 받게 된다. 목건련도 그것을 알고 자신의 과보를 기꺼이 받은 것이다.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것이다. 언젠가는 받을 것은 받아야 하고, 베풀 것은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모두 알겠느냐? 

육체는 무상한 것이다. 목건련과 같은 자는 죽을 때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열반에 든다. 깨달은 자에게 생사의 문제는 중대한 것이 못 된다. 목건련의 육체의 죽음은 돌에 맞아 처참해 보이나 그 넋은 무한한 아름다움과 환희의 열반에 들었느니라.]



4. 해공제일 수보리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 권 4에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시고 보계를 타고 지상에 내려오시는 장면이 있다. 모든 제자들이 부처님을 맞이하러 부산을 떨었지만 수보리는 선정에 든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많은 제자들 앞에 연화색 비구니가 서서 부처님을 맞았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화색이여, 나를 제일 먼저 맞아준 사람은 그대가 아니라 수보리이다. 그는 하늘에서 내 법신을 제일 먼저 맞아주었다.” 이후로 승단에서는 수보리를 보고 “해공제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중 해공제일인 수보리는 코살라국의 사위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수마나는 대부호 수닷타의 동생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성격도 어디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원만하였으며 얼굴과 몸매도 부처님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났다.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지어놓고 부처님이 오시기로 약속한 날, 어린 수보리는 삼촌과 함께 설레이는 가슴으로 부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자 부처님의 맑고 고요한 모습이며, 진리를 꿰뚫고 있는 투명한 눈동자와 가슴에 스며드는 자비로운 눈매에 어린 수보리는 홀딱 반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부처님으로부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진정한 삶의 법문을 듣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 자리에서 결심하게 된다.

비록 어린 수보리였지만 그 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수보리는 출가를 하였다. 밤에만 홀로 피었다가 말없이 지는 달맞이꽃처럼 그는 평생 동안을 부처님 곁에서 조용히 수행하면서 지내게 된다. 스승인 부처님을 따라 유행을 하면서 교화도 받고 수행을 하였던 수보리가 한번은 혼자 마가다국의 왕사성을 찾게 되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수보리가 조용히 홀로 수행 할 수 있도록 오두막집을 지어 공양을 올렸다. 왕은 깜빡 잊고서 그 오두막집의 지붕을 씌우지 않았다. 수보리는 왕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수행하였다. 낮도 밤도 없이 오로지 선정에 들어 있었다. 간혹 삼촌 수닷타가 처음 부처님을 만났던 장소가 이곳 왕사성이라는 생각이 날 때마다 삼촌과 자신에게 얽혀 있는 묘한 인연을 생각하면서 혼자 빙긋 웃곤하였다.

그런 수보리가 지붕이 없는 오두막집에서 살고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도 수보리의 수행에 감동하였는지 수보리의 수행처에 지붕이 없음을 알고 비를 내리지 않았다. 수보리는 지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수행만 하였다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리던 곳에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조정에서 비가 내리지 않은 이유를 조사하다가 수보리가 수행하고 있는 오두막집에 지붕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말을 전해 들은 왕은 그 다음날 바로 지붕을 올려 주었다. 며칠 후, 다시 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좋아서 야단인데도 수보리는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수행만 하고 있었다.



43. 부처님의 10대 제자2 

(부루나, 가전연, 아나율, 우바리, 라훌라, 아난)


5. 설법제일 부루나


그는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국제적인 해양무역에 종사하였다. 그의 억세고 거친 기질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나서도 변방 포교의 선두주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노년에 이른 부루나는 젊은 시절에 뛰쳐나온 자기 고향 (인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수나아파란타국의 수퍼라카 지방)이 그리워 죽기 전에 꼭 한번 들러 형제 자매와 마을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 뵙고 자신의 뜻을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제 늙고 기력이 다했습니다. 이제는 저를 낳아준 고향 수나아파란타국으로 돌아가 거기에 불법을 전하고 진리의 씨를 뿌렸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대 저의 청을 들어주시고 그곳에서 제가 어떻게 행동하면 스승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진리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부루나여, 그 지방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한데, 만일 그 사람들이 그대를 사람들의 면전에서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멩이로 저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혹은 발길로 저를 차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돌이나 지팡이를 가지고 그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에는 칼을 가지고 나를 해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부처님의 법을 배울만하다고 생각하며 참고 견디며 법을 전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을 가지고 그대를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는 저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불제자들 가운데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뇌를 빨리 끝내고 극락세계로 가려고 스스로 목숨 끊는 번거러움을 덜어주는 고맙고 친절한 사람들이구나 하며 부처님의 법을 전하다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정말 장하다. 부루나여! 그렇게 확신에 차 있다면 어떤 흉악한 세상이라도 그대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 고향으로 전도를 떠나라. 그대의 확고한 믿음과 뜨거운 정열로 말미암아 그곳은 틀림없이 불국토가 될 것이다.

벗들이여, 부루나는 전생에서도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전도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나 설법제일이라고 불리웠다. 부루나가 설법을 잘하는 것이 어찌 이 생에서 만의 일이겠느냐.“

이것이 부처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부루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가면 다시는 부처님이 계시는 사위성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부처님도 부루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을 부루나는 깊이 감지하고 있었다.



6. 논의제일 가전연 


부처님 당시 남천축 아반티국의 웃제니라는 마을에 가전연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 나라에서 제일 부유하고 뛰어난 이 바라문은 그 당시 나라를 다스리던 엄치왕의 국사가 되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자기 나라의 학문과 문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10여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 나라에 있는 뛰어난 학자들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큰아들의 요청대로 대신들과 많은 학자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큰 아들은 그동안 암기했던 베다론을 모두 외웠으며, 갈고 닦았던 여러 가지 기예들을 모두 연출하여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이때 그 국사 바라문의 둘째 나라다에게 국사는 너도 형처럼 유학을 떠나 베다와 다른 많은 기예를 익히도록 하여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라다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어지신 아버지시여, 저는 이미 형이 터득한 베다와 기예를 다 익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번 외워 보겠습니다.”

나라다는 형이 한 것을 한 번 보고 듣고 형이 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외우고 연출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형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라다를 그대로 두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국사자리는 나라다에게 돌아갈 것이다. 동생이 더 크기 전에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는 형의 악독한 마음을 눈치채고 나라다를 남방 빈타산에 살고있는 사선과 오신통을 통달한 아사타선인에게로 보냈다. 

나라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선과 오신통을 모두 통달하였다. 그 때 용왕이 나라다의 뛰어남을 듣고 옛부터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해결된다는 문제를 나라다에게 가지고 갔다. 용왕이 나라다에게 물었다. 


“무엇이 자재하기에 염착하는 것을 물든다 합니까? 어떤 것을 청정이라 하고 어떤 것을 어리석다 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어째 미하고 어떤 것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합니까? 어째서 모이면 떠나고 말아 인연을 다했다고 이름합니까?“


아무리 뛰어난 나라다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라다는 용왕에게 일주일 후에 답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당시 베다에 뛰어난 모든 선인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수소문하다가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찾아갔다. 부처님에게 그 문제를 묻자마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나라다여, 제대로 잘 찾아왔구나. 


욕식이 자재로운 까닭에 심왕이 물든 것을 물들었다고 하노라. 물들 것이 없는데 물듦으로 이것을 어리석다 이르노라. 큰 물에 빠진 까닭에 방편을 다한다고 이름함이요 일체의 방편을 다하게 되면 이것을 지혜로운 이라 하노라.“


이때 나라다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게송을 듣자 마음과 뜻이 트이어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곧 바로 용왕에게 달려가서 이 게송을 일러주고는 다시 부처님에게 돌아와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구족게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나라다는 출가하여 얼마 되지 않아 곧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다른 수행자의 모범이 되었다. 

이 나라다가 바로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논의제일인 가전연존자이다.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가전연의 전생을 말씀하셨다. 

“너희들 수행자들은 자세히 잘 들으면 과거 가섭불 시대에 이 녹야원 근처에 신심이 뛰어난 우바새가 한명 있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 녹야원을 찾아 수행자에게 물었다.” 수행자가 명쾌하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이 부바새는 다음과 같은 원을 세웠다. 

 

‘원하건대 나는 내세에 태어나 이보다 나은 법을 얻고 또 이렇게 분별하여 남을 위해 차례로 설하여 주는 수행자가 되게 하소서.’ 이 원으로 우바새는 이 생에 태어나 논의제일인 가전연이 되었다. 공부를 마친 가전연은 부처님께 청하여 외진 고국으로 돌아가 그 곳에 불법의 꽃을 피웠다. 먼저 그 나라의 왕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다. 우리가 간혹 경전을 보다보면 웃제니 출신의 비구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가전연의 공이다. 부처님께서는 외진 곳에서 전도하는 가전연을 이하여 열명의 비구가 모여야 구족제를 줄 수 있다는 조항에 특수한 곳에서는 오 명의 비구가 모이면 구족제를 줄 수 있다는 특수조항을 두게 되었다. 



7. 천안제일 아나율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천안제일 아나율은 너무 열심히 수행하다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결국 하늘의 눈을 얻게 되었다.

 낡아 헤어진 옷을 기워 입어야 하는 것이 장님인 아나율에게는 제일 큰 걱정거리였다. 이날도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무리 애를 써도 실이 바늘에 잘 꿰어지지 않았다.

 “눈 먼 나를 위하여 바늘에 실을 꿰어 주는 공덕을 쌓지 않으시렵니까?”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실과 바늘을 건네 받으면서 그는 말했다. 

 “그럼 내가 공덕을 쌓도록 하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나율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신 성자이십니다. 이제 공덕을 쌓아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아나율이여, 그렇지 않다. 나도 여러 벗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관계성을 볼 수 있는 법의 눈이 있으며, 법의 눈이 사무쳐 자신이 존재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깨달음의 눈이 있는 것이다. 아나율이여, 부처는 깨달음의 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부처에게는 함께 괴로워할 줄 아는 육신의 눈도 있으며, 신통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줄 아는 하늘의 눈도 있으며, 고요한 절에서 풍경이 혼자 울릴 때 왜 풍경이 울리는지 아는 지혜의 눈도 있으며, 물이 온도가 내려가면 얼음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될 때도 본질은 같은 것임을 아는 법의 눈도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도 결국은 진정한, 최상의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거머쥐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내면의 자유에 비례하는 것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8. 지계제일 우바리


우바리는 석가족의 이발사였다. 싣닷타의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석가족의 젊은이들 50여명이 출가하기에 이른다. 경전에 제일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도, 승단에 반란을 일으켜 평생 부처님을 괴롭힌 제바달다도 부처님의 사촌들이다. 이 석가족의 젊은이들이 출가 의지를 밝히고 회의를 할 때 옆에서 보고있던 우바리가 먼저 부처님에게로 달려가 출가의 뜻을 알린다. 뒤늦게 도착한 사촌들은 먼저 출가의 의지를 밝히고 앞자리에 앉아있는 이발사인 우바리에게 인사하기를 거부한다. 출가를 안했으면 안했지 우바리를 선배로써 대접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틴다. 부처님께서는 사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어남으로써 귀천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에 의해서 귀천이 정해진다. 여기 출가 수행자들은 바라문이나 바이샤 수드라도 모두 평등하다. 지금부터는 행위에 의해서만 귀천이 생길 뿐이다. 사촌들이여, 교만심을 버리고 평등심을 가져라. 이것이 수행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다. 먼저 출가한 우바리에게 인사하고 경배함으로써 신분에서 벗어나라. 진정한 출가 수행자가 되기를.”

부처님께서 출가자에게 삭발할 때마다 이발사였던 우바리가 담당하게 된다. 이 인연으로 우바리는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계율을 가장 많이 듣게 되었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3개월 후 제 1 결집이 이루어질 때 아난은 법, 우바리는 계율을 송출하게 되어 2500년 불교사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같은 승단에서 수행정진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처님의 사촌들은 우바리가 어째서 왕족을 제치고 왕족들에게 존경과 대접을 받게되었는지 전생이 궁금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우바리존자는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길래 이생에서 저렇게 존경과 대접을 받게되는 것입니까? 저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시면 저희들의 수행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벗들이여, 잘 들어라. 

우바리의 전생은 다음과 같다. 

옛날 바라나성에 범덕왕이 있었는데 대지가 뜨겁게 불타고 있는 여름 날 그는 왕궁에서 쉬고 있었는데 한 사나이가 왕궁 근처에서 음탕한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를 잡아오게 하였다. 왕이 먼저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일에 종사하는데 한 낮에 그러한 음탄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저의 이름은 우바가라 하오며, 친구에게 빌려준 금화 한 닢을 받으러 가는 중입니다.”

“우바가여, 내가 그대에게 금화 두 닢을 줄테니 가지말고 여기에 있어라.”

“휼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두 닢을 주시겠으면 이왕이면 한 닢을 더하여 세 닢을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그러면 저는 마을에 가 빌려준 한 닢을 받아 금화 네 잎으로 저의 부인과 오욕락을 즐기겠습니다.”

그러자 범덕왕이 우바가에게 말했다. 

“우바가여, 마을에 가지말고 나와 함께 있으면 여덟 닢을 주마.” 

그러자 우바가가 대왕에게 또 아뢰었다. 

“착하신 대왕이시여, 크게 기뻐하소서. 저는 다시 한 닢을 더 원하옵니다. 그러면 아홉 닢이 되고 저는 마을에 내려가 한닢을 받아 열닢으로 저의 부인과 오욕락을 즐기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되어 금화는 자꾸 많아지게 되었다. 범덕왕이 또 우바가에게 말했다. 

“우바가여, 마을에 가지말고 나와 함께 있으면 그대에게 한 고을을 주어 다스리게 하리라.”

한 고을을 다스리게 된 우바가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까지 부지런히 일하며, 성심으로 대왕을 섬겼다. 대왕은 우바가를 진심으로 믿고 나라의 반을 다스리게 하였고, 왕궁의 창고도 반을 우바가에게 주었다. 

하루는 대왕이 우바가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을 때 우바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찌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그를 죽인다면 왕위를 취하여 나 혼자서 이 나라를 다스리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칼을 뺄려고 하다가 대왕이 이제까지 베풀어준 은혜를 생각하며 마음을 돌려 먹었다.’ 

두 번이나 망설이다가 우바가는 마침내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대왕이 그 소리에 잠이 깨어 우바가에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다. 우바가는 자신이 나쁜 마음을 먹고 대왕을 헤치려고 하였다고 고백을 하고는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을 참회하고 출가 수행자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우바가는 수행자가 되어 열심히 정진하여 큰 덕과 지혜를 얻어 온 나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 때 범덕왕의 이발사 항가바라가 있었다. 항가바라는 매우 성실하였다. 우바가가 떠나가고 난 뒤 대왕의 관심은 항가바라에게 쏠렸다. 항가바라는 대왕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준다고 하여도 모두 물리치고 저 위대한 우바가에게 출가하여 수행자 되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대왕에게 아뢰었다. 결국 범덕왕도 항가바라의 출가를 허락하고 말았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을 둘러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벗들이여, 잘 들어라. 그 때의 우바가가 지금의 나이며, 범덕왕은 나의 부친이신 정반왕의 전생이며, 우바가 밑에서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며 수행정진한 항가바라는 우바리의 전생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우바리는 오백 대신들과 정반왕의 예배를 받았느니라. 

또한 비구들이여, 나의 제자들 중에서 계율을 갖는데 가장 으뜸인 사람은 우바리 비구임을 알지니라. 그는 혼란과 암흑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더욱 더 빛날 것이니라. 

계율은 인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무적이니라.”



9. 밀행제일 라훌라


어린 나이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라후라는 개구쟁이였다. 절에서의 생활도 집에서의 생활이나 별로 다를게 없었다. 모든 수행자들이 라후라에게는 한발 양보하였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 없이 지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자 친구들이 가끔씩 방문하여 ‘나는 아버지에게 왕위를 물려받았다느니, 또는 아버지에게 큰 도시를 하나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느니’ 하면서 라후라에게 자랑하였다. 친구들에게 여러번 이런 얘기를 듣자 라후라는 혼자 곰곰히 생각하였다. 세속에서 살고있는 친구들은 아버지로부터 권력이나 재물을 유산으로 물려받는데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물려주셨으며, 무엇을 물려주시겠는가? 며칠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루는 라후가가 부처님에게 나아가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친구들은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거나 큰 도시를 물려받거나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부처님께서는 아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왕위를 물려받은 친구는 백년도 못살 목숨으로 백년이나 천년이나 그 왕위를 지키겠느냐?”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수 십년을 지키다가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다른 신하에게 물려줄 것입니다.”

“그러면 라후라야, 큰 도시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친구는 죽을 때 거 땅을 가지고 가겠느냐? 어떻겠느냐?”

“부처님이시여,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해도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라후라야, 바로 그렇다. 너의 친구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인 유산은 대단한 것같이 보이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는 너에게 진리를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한다. 

진리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마는 평생 너의 삶을 확고하게 할 것이며, 죽어서도 네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영원한 유산이 될 것이다. 라후라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후라는 사리불이 맡고 있었다. 그리고 사리불은 그의 스승이었다. 어느 날 라후라는 사리불을 따라 기원정사를 나와 왕사성으로 탁발을 가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목에 있던 한 악한이 모래를 쥐어 사리불의 바리때에 쳐넣고 사리불의 뒤에 따라오는 라후라의 머리를 때렸다. 사리불이 뒤돌아 보니 이를 악물며 분노를 참고 있는 라후라의 얼굴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리불은 라후라에게 자비롭게 말했다. 

“라후라야, 부처님의 제자인 이상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분노를 마음속에 가져서는 안된다. 항상 자비심을 갖고 자비심을 갖고 중생을 불쌍히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지나고 나면 인욕처럼 기쁜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가르침에 따라 인욕을 가장 중요한 보배로 여긴다. 그러므로 라후라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라. 세상에 인욕을 뛰어넘는 용기는 없으며, 천상의 인간중 가장 힘센 씨름꾼도 인욕을 이겨낸 자는 없느니라.”

라후라는 물가에 가서 물에 비친 피투성이의 자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을 떠 얼굴을 씻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리불의 마음은 오히려 더 괴로웠다. 

마음을 잘 다스려 분노를 이겨낸 라후라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지금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세상에는 악인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란 참으로 좋지 않는 일이 많은 곳이군요. 그러나 저는 결코 화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바른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대자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포악한 자는 잔인한 짓을 즐겨하지만 출가 수행자는 인욕을 지키고 높은 덕을 쌓습니다. 그러나 포악한 자는 이것을 경멸하며 도리어 잔악한 인간을 존경합니다. 그리하여 악은 윤회하여 그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도 그들은 썩은 시체와 같이 자극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늘이 달콤한 이슬을 돼지에게 주어도 돼지는 이슬보다 썩은 음식을 좋아합니다. 부처님께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법을 설하여도 흉악한 사람은 돼지와 같아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사리불은 라후라를 데리고 정사로 돌아오자 바로 부처님을 찾아 갔다. 그리고 오늘 탁발을 나갔다가 라후라와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라후라의 인욕을 칭찬하시면서 더욱 자세하게 인욕에 대하여 설하셨다. 

“만약 참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부처를 만날 수도 없고 법을 등지고 승단으로부터 멀어진다. 항상 지옥에 떨어져 윤회는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악행을 참는 자는 항상 편안하고 여러 가지 재앙이 소멸한다. 인욕하는 사람들은 화합하고 서로 기뻐한다. 지혜로운 자는 인과를 깊이 살피므로 마음을 극복하여 잘 참는다. 물론 불법의 방법과 세속의 방법은 다르다. 부와 권력을 세속에서는 귀하게 여기지만 출가 수행자는 부와 권력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충성과 아첨은 사이가 좋지 않다. 부정은 언제나 바른 것을 질투한다. 그러므로 탐욕한 자는 욕심이 없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때라도 우리는 참아야 한다. 바른 까닭에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인욕은 마치 커다란 배와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곤란이라도 헤쳐나갈 수가 있다. 인욕은 또한 양약과 같다. 그러므로 능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 지금 내가 부처가 되어 하늘 나라로부터 숭앙을 받고, 오직 홀로 삼계를 거닐며 편안한 마음일수 있음은 모두 이 인욕의 덕이니라. 능히 참아 인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느니라. 인욕하는 자만이 능히 모든 것을 이루고,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

왕자로서 어떤 사치도 향락할 수 있었던 라후라는 세속의 기쁨보다 인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지금을 기뻐하였다. 



10. 다문제일 아난 


붓다는 도를 이루고 난 다음 20년 동안은 시자도 없이 혼자서 다른 수행자들과 똑같이 생활하였다. 55세 된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서 안거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법문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이제는 늙었다. 옆에서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야기한 것을 외어 두었다가 다음 날에 전하고 싶다. 너희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명 골라 주기 바란다.」

 이때 맨처음으로 제자가 된 교진여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옆에서 모시겠습니다.」

「교진여, 너도 나와 같이 늙지 않았는가. 누가 먼저 죽을지 알 수 없는일.     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몸이 아닌가.」

 이밖에도 四, 五명의 비구가 자원하였다. 그러나 모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이때 목건련은 붓다의 뜻을 알았다. 반드시 붓다가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일까? 목건련은 마음을 가다듬어 조용히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붓다의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붓다의 마음의 메아리가 목건련에게 통하였다. 붓다가 아난을 시자(侍者)로 원하고 있음을 알았다.

 목건련을 선두로 비구들이 아난을 찾아가 권하였다.

「아난이여, 붓다는 당신이 시자가 되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붓다의 시자가 되어 주십시오.」

 아난이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잠시 생각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면 세 가지 일을 승낙해 주신다면 맡겠습니다.」

「세 가지 일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새옷이건 헌옷이건 부처님께 보시들어온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제가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께서 공양 초청을 받아서 가실 때 함께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정해진 때가 아니면 부처님을 모시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제가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부처님과 여러 도반께서 이에 동의하시면 기거이 부처님을 모시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생각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반드시 승낙하시리라 믿습니다.」하고 목건련은 말했다. 다른 수행자들은 아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목건련은 아난의 이야기를 그대로 붓다에게 전하였다. 붓다는 기쁘게 말하였다.

「아난은 참으로 지혜로운 수행자이구나. 그는 시끄러운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있다. 수행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아난이 나에게 들어오는 보시물 때문에 시봉한다고 할 것이다. 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시봉한다고 할 것을 알고 앞서 예방하는 것이다. 또 아난은 여래를 만날 수 있는 때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수행자들이 어느 때 여래를 만나는 것이 좋은가를 알고 있다. 또 신도와 이교도가 여래를 만나기 위하여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로 찾아가는 것이 좋은지를 알고 있다. 여래가 식사를 마치고 안온하게 있는지를 살피고 여래가 설법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어느 때인가를 알고 있다. 아난은 정말 현명한 수행자이다. 또한 출가 수행하는 것은 도를 이루기 위해서 생업을 뿌리치고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부처라 하드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시봉을 들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암기력이 뛰어난 아난에게 시봉을 부탁하는 것은 내가 열반에 든 후에도 진리가 끊이지 앓고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며, 어떤 시대에서도 진지한 수행자들이 많아 세상의 복밭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아난이 거절하지 않고 나의 청을 들어준 것은 아난이 나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기 때문이다. 아난의 결정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너희들은 가서 붓다의 뜻을 전해라.」

 붓다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또 실제로 아난은 붓다의 기분과 심경을 잘 알고 있었으며 항상 근신하는 것을 잊지 않는 수행자였다. 이로부터 붓다의 육체가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아난은 시자로서의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치신 법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난 다음 아난을 통하여 재현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며, 우리가 경전을 펼치면 어떤 경전이라도 첫구절이 여시아문(如時我聞, 어느 때 아난은 부처님에게 이렇게 들었다.)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부처님 곁에 아난과 같은 뛰어난 송출자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부처님의 법이 오늘날에 까지 전하여 왔겠는가. 정말 아난이 우리 사바세계에 베푼 은혜는 하늘보다도 더 높다. 지금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인도의 구시나가라에 가보면 부처님의 보탑 옆에 아난의 탑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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