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엄경십행품_1 > 우리말화엄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우리말화엄경

21화엄경십행품_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7,535회 작성일 23-02-18 13:28

본문

21화엄경십행품(十行品) 


(21-1) 공덕림(功德林)보살이 삼매에 들다

이 때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잘 생각하는[善思惟] 삼매에 들었다. 


(21-2) 부처님이 가피(加被)를 내리다

(21-2-1) 가피의 인연을 말하다

이 삼매에 드니, 시방으로 각각 일만 부처 세계의 한량없이 많은 세계 밖에 일만 세계의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계시니, 명호가 다 같이 공덕림불이며, 공덕림보살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보살이여, 그대가 잘 생각하는 삼매에 들었도다. 보살이여, 이것은 시방으로 각각 일만 세계의 한량없이 많은 명호가 같은 부처님들이 그대에게 가피하려는 것이니, 역시 비로자나여래의 지난 세상의 서원하신 힘과 위신의 힘과, 모든 보살들의 선근의 힘으로써 그대로 하여금 이 삼매에 들어서 법을 연설하게 하려는 것이다. 

  

(21-2-2) 부처님의 가피가 하는 일을 말하다

부처의 지혜를 증장하려는 연고이며, 법계에 깊이 들게 하려는 연고이며, 중생세계를 분명히 알게 하는 연고이며, 들어가는 데 걸림이 없게 하려는 연고이며, 행하는 일이 장애가 없게 하려는 연고이며, 한량없는 방편을 얻게 하려는 연고이며, 온갖 지혜의 성품을 거두어 지니려는 연고이며, 모든 법을 깨닫게 하려는 연고이며, 모든 근성을 알게 하려는 연고이며, 온갖 법을 가지고 설법하게 하려는 연고이니, 이른바 모든 보살의 열 가지 행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21-2-3)  가피의 상(相)을 보이다

(21-2-3-1) 말의 가피 

보살이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하라.” 

  

(21-2-3-2)  뜻의 가피

이 때 모든 부처님이 공덕림보살에게 걸림 없는 지혜, 집착 없는 지혜, 끊이지 않는 지혜, 스승 없는 지혜, 어리석지 않은 지혜, 다르지 않은 지혜, 허물없는 지혜, 한량없는 지혜, 이길 이 없는 지혜, 게으름 없는 지혜, 빼앗을 수 없는 지혜를 주었다. 이 삼매의 힘에는 그러한 능력이 있는 까닭이다. 

  

(21-2-3-3) 몸의 가피 

그 때 여러 부처님이 각각 오른손을 내밀어 공덕림보살의 정수리를 만졌다. 


(21-3)  공덕림보살의 열 가지 보살행

(21-3-1) 보살행의 근본을 말하다

공덕림보살은 삼매로부터 일어나 모든 보살에게 말하였다. 

 “보살들이여, 보살의 행은 헤아릴 수 없어서 법계와 허공계로 더불어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삼세의 부처님들을 배워서 행을 닦는 연고입니다. 

  

(21-3-2) 열 가지 행의 이름을 열거하다

보살들이여, 보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기뻐하는 행[歡喜行]이며, 둘은 이익 하는 행[饒益行]이며, 셋은 어기지 않는 행[無違逆行]이며, 넷은 굽히지 않는 행[無屈撓行]이며, 다섯은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無癡亂行]이며, 여섯은 잘 나타나는 행[善現行]이며, 일곱은 집착 없는 행[無著行]이며, 여덟은 얻기 어려운 행[難得行]이며, 아홉은 법을 잘 말하는 행[善法行]이며, 열은 진실한 행[眞實行]입니다. 


(21-3-3) 제1 환희행  

(21-3-3-1) 보살은 대시주(大施主)다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기뻐하는 행[歡喜行]입니까? 

이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가진 물건을 모두 다 보시하는데, 그 마음이 평등하여 후회하거나 아까워함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 아니하며, 명성을 구하지 아니하며, 이양(利養)을 탐하지도 않습니다. 


(21-3-3-2)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다만 일체 중생을 구호하며 일체 중생을 거두어 주며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려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배우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생각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좋아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청정히 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증장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에 머물러 지니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연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낙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21-3-3-3)  보시의 행을 밝히다

보살들이여, 보살이 이 행을 닦을 때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즐겁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지방에나 가난한 곳이 있거든 원력으로써 그 곳에 태어나되 호사스럽고 크게 부귀하여 재물이 다함이 없으며, 가령 잠깐잠깐 동안에 한량없고 수없이 많은 중생들이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선량하신 보살님이여, 저희들은 몹시 가난하여 끼니를 이어갈 수 없으며 굶주리고 곤고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어 나에게 살을 보시하여 먹고 살아나게 하소서' 한다면, 보살은 곧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환희하고 만족케 합니다. 

이렇게 한량없는 수 많은 중생이 와서 구걸하더라도 보살은 조금도 퇴타하거나 겁약한 기색이 없고, 다시 자비한 마음이 증장하니, 그래서 중생들이 모두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살이 보고는 더욱 환희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좋은 이익을 얻었다. 이 중생들은 나의 복밭이며 나의 선지식이니, 구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와서 나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 들게 하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렇게 배우고 닦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미 지었거나 지금 짓거나 장차 지을 모든 선근으로써, 오는 세상에는 모든 세계의 모든 중생 가운데서 엄청나게 큰 몸을 받아, 그 살로써 모든 굶주린 중생들의 배를 채워 만족케 하되, 조그마한 중생이라도 배가 차지 않은 이가 있으면, 나는 목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 내 몸에서 베어내는 살도 다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서원할 것이다. 


(21-3-3-4) 깨달음으로 회향하는 보시

이러한 선근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 열반을 증득하기를 원하며, 나의 살을 먹은 중생들도 역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불법을 갖추어 불사를 널리 짓다가 무여(無餘)열반에 들어지이다'라고 원하고, 만일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침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서원할 것입니다. 

  

(21-3-3-5) 보시의 인(人)과 법(法)이 다 공(空)함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이익하게 하지만, 나[我]라는 생각, 중생이란 생각, 있다는 생각[有想], 목숨이란 생각, 여러 가지란 생각, 보특가라란 생각[補伽羅想], 사람이란 생각, 마납바란 생각[摩納婆想], 짓는 이란 생각, 받는 이란 생각이 모두 없고, 다만 법계와 중생계의 끝없고 경계가 없는 법[無邊際法]과 공한 법과 있는 것 없는 법과 형상이 없는 법과 체가 없는 법과 처소가 없는 법과 의지가 없는 법과 지음이 없는 법을 관찰합니다. 

  

(21-3-3-6) 인(人)과 법(法)이 공(空)한 이익을 밝히다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제 몸도 보지 않고, 보시하는 물건도 보지 않고, 받는 이도 보지 않고, 복밭도 보지 않고, 업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고, 작은 결과도 보지 않고, 큰 결과도 보지 않습니다. 

  

(21-3-3-7) 법의 보시를 행하기를 원하다

그 때 보살은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중생의 받아 난 몸이 멸하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하되 '이상하다, 중생이여.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생사(生死)하는 속에서 수없는 몸을 받지만, 위태하고 연약하여 머물러 있지 못하고 속히 멸하는데, 이미 멸하였거나 지금 멸하거나 장차 멸할 것인데, 마침내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견고한 몸을 구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모든 부처님이 배우신 것을 모두 배우며, 온갖 지혜를 얻어 온갖 법을 알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삼세가 평등하고 고요하며 무너지지 않는 법의 성품을 말하여 주어, 그로 하여금 편안한 쾌락을 얻게 할 것이다.' 

보살들이여, 이것을 보살의 첫째 기뻐하는 행이라 합니다. 

 

(21-3-4) 제2 요익행

(21-3-4-1)  계(戒)를 가지는 행(行)을 밝히다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을 이익하게 하는 행[饒益行]입니까? 

보살이 깨끗한 계율을 수호하여 가지며, 빛[色]과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과 감촉(觸)에 대하여 집착하지 아니하고, 중생들에게 계율을 수호하며 육경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며, 권세를 구하지도 않고, 문벌을 구하지도 않고, 부귀를 구하지도 않고, 몸매를 구하지도 않고, 임금의 지위를 구하지도 아니하여, 이러한 온갖 것에는 조금도 집착이 없고, 다만 청정한 계율을 견고하게 가지면서, '내가 청정한 계율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온갖 얽힘[纏]과 속박[縛]과 탐심과 시끄러움과 모든 재난의 핍박과 훼방과 탁란함을 버리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평등한 정법을 얻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1-3-4-2) 섭율의계(攝律儀戒)

보살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청정한 계율을 가질 때에, 하루 동안에 수없이 많은 악마가 보살이 있는 곳에 나오면서, 저마다 각각 백천억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녀를 데리고 왔는데, 모두 오욕(五欲)에 대하여 방편을 잘 행하며, 단정하고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홀리게 하며, 갖가지 훌륭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보살의 도심(道心)을 의혹하고 어지럽게 합니다. 

  

이 때 보살은 '이 오욕은 도를 장애하는 것이며, 위없는 보리까지도 장애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잠깐도 탐욕을 내지 아니하고 깨끗한 마음이 부처님과 같지만, 오직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만은 모두 할 것이니, 온갖 지혜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1-3-4-3) 섭중생계(攝衆生戒)

보살들이여, 보살은 탐욕으로 인하여 한 중생도 시끄럽게 하지 아니하며,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중생을 시끄럽게 하는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부처님을 뵌 후로는 일찍이 잠깐도 탐욕심을 내지 않았는데, 하물며 실제로 일을 행하겠습니까. 혹시라도 그런 일을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때 보살은 '일체 중생이 오랜 세월에 오욕을 생각하고 오욕으로 향하여 나아가고 오욕을 탐착하면서, 그 마음에 결정하여 물들고 빠져서 그를 따라 헤매고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내 이제 마땅히 이 마군과 천녀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계율에 머물게 할 것이며, 청정한 계율에 머문 뒤에는 온갖 지혜에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며, 내지 무여열반에 들게 하리니, 왜냐 하면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일이므로 부처님을 따라서 이렇게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21-3-4-4) 섭선법계(攝善法戒)

이렇게 배우고 모든 나쁜 행동과 ‘나’라고 고집하는 무지(無知)를 여의고, 지혜로 일체 부처님 법에 들어가서 중생에게 법을 말하여 뒤바뀐 생각을 버리게 하고, 그러나 중생을 떠나서 뒤바뀐 생각이 있지 않고, 뒤바뀐 생각을 떠나서 중생이 있지도 않으며, 뒤바뀐 생각 속에 중생이 있지도 않고 중생 속에 뒤바뀐 생각이 있지도 않으며, 뒤바뀐 생각이 곧 중생도 아니고 중생이 곧 뒤바뀐 생각이 아니며, 중생이 안의 법도 아니고 중생이 밖의 법도 아닌 줄 압니다. 

  

온갖 법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잠깐 일어났다 순간 없어지는 것이며, 견고하지 못하여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요술 같고 변화함과 같아서 어리석은 이를 의혹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면 곧 모든 행을 깨달아 나고 죽는 일과 열반을 통달하며,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며, 스스로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케 하며, 스스로 조복하고 다른 이를 조복케 하며, 스스로 고요하고 다른 이를 고요하게 하며, 스스로 편안하고 은닉케(安隱)하고 남을 편안하게하고 은닉케 하며, 스스로 때를 여의고 남도 때를 여의게 하며, 스스로 청정하고 남도 청정케 하며, 스스로 열반하고 남도 열반케 하며, 스스로 쾌락하고 남도 쾌락케 합니다. 

  

(21-3-4-5) 더욱 수승한 행을 닦을 것을 생각하다

보살들이여, 이 보살은 '나는 마땅히 일체 여래를 따르며, 일체 세간의 행을 여의며, 일체 부처님 법을 갖추며, 위없이 평등한 곳에 머물며, 중생을 평등하게 보며, 경계를 밝게 통달하며, 모든 허물을 여의고, 모든 분별을 끊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공교하게 뛰어나며, 마음은 항상 위없고 말할 수 없고 의지한 데 없고 변동이 없고 한량없고 한없고 끝나지 않고 모양이 없고 깊고 깊은 지혜에 머물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보살들이여, 이것을 보살의 둘째 이익하는 행이라 합니다. 

 

(21-3-5) 제3 무위역행(無違逆行)

(21-3-5-1) 인욕행을 밝히다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어기지 않는 행[無違逆行]입니까? 

이 보살이 항상 인욕(忍辱)하는 법을 닦아 겸손하고 공경하여 스스로 해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둘 다 해하지 않으며, 스스로 탐하지 않고 남을 탐하게 하지 않고 둘 다 탐하지 않으며, 스스로 집착하지 않고 남을 집착하게 하지 않고 둘 다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명예와 이양(利養)도 구하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 '내가 마땅히 중생에게 법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모든 나쁜 짓을 여의고,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 교만, 감추는 일, 간탐, 질투, 아첨, 속임을 끊게 하고, 부드럽게 화평하여 참고 견디는 데 항상 머물게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21-3-5-2) 원한과 침해를 참는 인욕 수행

보살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인욕을 성취하면 백 천억이나 되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이 그 곳에 오는데, 중생마다 백 천억이나 되는 한량없이 많은 입[口]을 가지고 낱낱 입으로 백 천억이나 되는 한량없는 많은 말을 하는데, 이른바 기쁘지 못한 말, 선하지 못한 말, 반갑지 않은 말, 사랑할 수 없는 말, 어질지 못한 말, 성인의 지혜가 아닌 말, 성현과 상응하지 않는 말, 성현에게 친근할 수 없는 말, 매우 역한 말,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들입니다. 이런 말로 보살을 헐뜯어 욕을 합니다. 또 이 중생들이 저마다 백 천억이나 되는 한량없이 많은  손을 가졌고, 손마다 각각 백 천억이나 되는 한량없이 많은 병장기를 들고 보살을 박해하기를, 아승지겁이 지나도록 쉬지 아니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극심한 고초를 당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생명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생각하기를, '내가 이만한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면, 자신을 조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고, 스스로 바르게 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끼지 못하여 스스로 집착을 내리니, 어떻게 다른 이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겠느냐.'고 합니다.

  

(21-3-5-3)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 수행

보살이 '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생사 속에 있으면서 모든 고통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마음이 청정하여 환희하고, 스스로 조화하고 거두어들여서 불법 가운데 편안히 머물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이런 법을 얻게 합니다. 

  

(21-3-5-4)  법의 이치를 관찰하는 인욕 수행

 '이 몸은 공한 것이어서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하지 아니하고 성품이 공하여 둘이 아니며, 괴롭고 즐거움이 모두 없는 것이며, 모든 법이 공한 것을 내가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널리 말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이런 소견을 없애게 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비록 이런 고통을 당하여도 참고 견디어야 할 것입니다.’ 


(21-3-5-5) 인욕을 수행하는 의미

 ‘중생을 염려하는 연고며,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는 연고며, 중생을 안락케 하는 연고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연고며, 중생을 거두어 붙드는 연고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고며, 스스로 깨달으려는 연고며, 다른 이를 깨닫게 하려는 연고며,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 도에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연고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셋째 어기지 않는 행이라 합니다. 


(21-3-6)  제4 무굴요행

(21-3-6-1) 열 가지의 정진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굽히지 않는 행[無屈橈行]입니까?

이 보살은 모든 정진을 수행하니, 이른바 제일정진과 큰 정진과 수승한 정진과 특별히 수승한 정진과 가장 수승한 정진과 가장 묘한 정진과 상품 정진과 위없는 정진과 같을 이 없는 정진과 두루한 정진입니다. 

  

(21-3-6-2) 과오를 떠나다

성품에 삼독(三毒)이 없고 교만이 없고 덮어 숨김이 없고 간탐과 질투가 없고 아첨과 속임이 없고 성품이 스스로 부끄러워함이며, 마침내 한 중생이라도 시끄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합니다. 

  

(21-3-6-3) 정진수행의 20가지 이유

모든 번뇌를 끊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의혹의 근본을 뽑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습기(習氣)를 제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세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 나는 것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에 좋아함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경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성품이 수승하고 열악함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오직 일체 중생의 마음으로 행함[心行]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합니다. 

  

또 일체 법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근본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평등한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삼세의 평등한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지혜 광명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지혜를 증득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한결같은 실상[一實相]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끝없음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광대하고 결정하고 공교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구절과 뜻을 분별하여 연설하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는 것입니다. 

  

(21-3-6-4) 다시 문답으로 정진행을 밝히다

보살들이여, 보살이 이러한 정진행을 성취하고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한량없이 많은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위할 때에, 단 한명의 중생을 위하여 아비지옥에서 수없는 겁 동안에 모든 고통을 두루 받으면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날 때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게 하고, 부처님을 만난 연고로 여러 가지 낙을 받으며, 내지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 나서 그대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리니,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량없는 아승지겁 동안 중생을 위하여서 그렇게 많은 겁을 지나면서 매 순간순간 고통 받기를 끝없이 하라'고 하더라도, 보살이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잠깐이라도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다시 환희하는 마음을 더 크게 내어 스스로 다행하게 생각하고 큰 이익을 얻는다고 하면서, '나의 힘으로써 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통에서 길이 벗어나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21-3-6-5) 일체 중생에게 열반을 얻게 하다

보살이 이렇게 행하는 방편으로 일체 세계에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을 끝까지 얻게 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넷째 굽히지 않는 행이라 합니다. 

 

(21-3-7)  제5 이치란헹

(21-3-7-1)  어리석음과 산란을 떠나는 행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이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離癡亂行]입니까?

이 보살이 바른 생각을 성취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견고하여 동하지 않으며, 최상이고 청정하고 넓고 크고 한량없어 미혹하지 않은 것입니다. 


(21-3-7-2) 경계에 나아가도 어리석음과 산란함이 없다

생각이 바름으로써 세간의 온갖 말을 잘 알고, 출세간법의 말을 능히 지니며, 이른바 색법(色法)과 색 아닌 법의 말을 능히 지니며, 색의 성품을 건립하는 말을 능히 지니고, 내지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성품을 건립하는 말을 능히 지니어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세간에 있어 여기서 죽고 저기 나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태에 들고 태에서 나오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보리심을 내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선지식을 섬기는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불법을 부지런히 닦는 데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마군의 일을 알아서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마군의 업을 여의어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하지 않으며,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는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습니다. 

  

(21-3-7-3) 선정의 힘으로 온갖 법을 듣다

이 보살이 이렇게 한량없는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 한량없는 아승지겁 동안 부처님과 보살과 선지식에게서 바른 법을 듣습니다. 이른바 매우 깊은 법, 넓고 큰 법, 장엄한 법, 여러 가지 장엄한 법, 여러 가지 낱말 구절 소리의 굴곡을 연설하는 법, 보살의 장엄하는 법, 부처님 신력과 광명의 위없는 법, 바른 희망으로 결정한 청정한 법,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법, 일체 세간을 분별하는 법, 매우 깊고 광대한 법, 어리석음을 떠나 일체 중생을 분명히 아는 법, 일체 세간이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법, 보살 지혜의 위없는 법, 온갖 지혜로 자재한 법들입니다. 보살이 이런 법을 듣고는 아승지겁을 지내도 잊지 않고 잃지 않고 항상 기억하여 간단함이 없습니다. 

  

(21-3-7-4) 선정 수행의 인과를 밝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이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행을 닦을 때에 한 중생이라도 시끄럽게 하지 않아 바른 생각을 잃게 하지 아니하며, 바른 법을 파괴하지 않고 선근을 끊지 아니하여 마음에 항상 광대한 지혜를 증장하는 연고입니다. 

  

(21-3-7-5) 선정을 성취하면 어떤 음성도 산란케 하지 못한다

또한 이 보살은 여러 가지 음성으로도 산란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른바 높고 큰 음성, 거칠고 탁한 음성, 사람을 공포케 하는 음성, 뜻에 기쁜 음성, 기쁘지 않는 음성, 귀를 시끄럽게 하는 음성, 육근을 망그러뜨리는 음성입니다. 

  

(21-3-7-6) 온갖 음성에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다

이 보살은 이렇게 한량없고 수없는 좋고 싫은 음성이 아승지 세계에 가득함을 듣더라도, 잠깐 동안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바른 생각이 산란치 않고, 경계가 산란치 않고, 삼매가 산란치 않고, 깊은 법에 들어감이 산란치 않고, 보리행을 닦음이 산란치 않고, 보리심을 내는 것이 산란치 않고, 부처님들을 생각함이 산란치 않고, 진실한 법을 관찰함이 산란치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가 산란치 않고, 중생을 청정케 하는 지혜가 산란치 않고, 깊은 이치를 결정적으로 아는 것이 산란치 않습니다.

  

(21-3-7-7) 모든 장애를 떠나다

악업(惡業)을 짓지 않으므로 악업의 장애가 없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번뇌의 장애가 없고, 법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므로 법의 장애가 없고 정법을 비방하지 않으므로 과보의 장애가 없습니다. 

  

(21-3-7-8) 선정을 닦은 보살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보살들이여, 위에 말한 음성들이 낱낱이 아승지 세계에 가득하여 한량없고 수없는 겁에 잠깐도 끊이지 않으면서 중생의 몸과 마음과 모든 근을 무너뜨리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무너뜨리지 못하며, 보살이 삼매에 들어 성인의 법에 머물고, 일체 음성을 생각하고 관찰하며, 음성의 나고 머물고 멸하는 모양을 잘 알며, 음성의 나고 머물고 멸하는 성품을 잘 압니다. 

  

(21-3-7-9) 청정을 얻다

이렇게 듣고 탐심을 내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생각을 잃지 않으며, 그 모양을 잘 취하여서 물들지 않으며, 온갖 음성이 다 없는 것이어서 실로 얻을 수 없으며, 지은 이도 없고 근본의 경계[本際]도 없어서 법계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21-3-7-10)  선정(禪定)의 공덕 

보살이 이렇게 적정한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행을 성취하고 온갖 지혜에 이르도록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며, 온갖 선정의 문에 잘 들어가서 모든 삼매가 동일한 성품임을 알며, 일체 법이 끝이 없음을 알며, 일체 법의 진실한 지혜를 얻으며, 음성을 여읜 깊은 삼매를 얻으며, 아승지 삼매문을 얻어서 한량없이 광대한 대비심(大悲心)을 증장합니다. 이 때에 보살이 잠깐 동안에 수없는 백천 삼매를 얻어서 이런 음성을 들어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삼매로 하여금 점점 더 커지게 합니다.


(21-3-7-11)  중생들을 더욱 이익케 할 것을 생각하다

'내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이 청정한 생각에 편안히 머물러 온갖 지혜에 물러나지 않고 필경에 무여 열반을 성취케 하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다섯째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이라 합니다. 


(21-3-8)  제6 선현행

(21-3-8-1) 선현행(善現行)을 해석하다

보살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선함을 나타내는 행[善現行]입니까?

이 보살의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뜻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여, 얻은 것 없는 데 머물러서 얻을 것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보이나니, 삼업(三業)이 모두 없는 것인 줄을 아는 것이며, 허망함이 없으므로 얽매임이 없으며, 무릇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 성품도 없고 의지함도 없습니다. 

  

(21-3-8-2) 선현행의 상(相)을 널리 분별하다

실제와 같은 마음에 머물러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을 알며, 온갖 법의 성품을 알지만 얻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고 매우 깊어 들어가기 어려우며, 바른 자리[正位]인 진여의 법성(法性)에 머물러서 방편을 내지만 업보가 없는 것이어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열반계에 머물고 고요한 성품에 머물고 진실하여 성품이 없는 성품에 머무르며, 말로 할 수도 없고 세간을 초월하여 의지한 데가 없습니다. 분별을 여의어 속박이 없는 법에 들어갔으며, 가장 나은 지혜의 진실한 법에 들어갔으며, 세간으로는 알 수 없는 출세간 법에 들어갔나니, 이것이 보살의 교묘한 방편으로 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1-3-8-3) 이치로써 사상(事相)을 알다

보살들이여, 이 보살은 '일체 중생이 성품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법이 함이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국토가 형상 없음으로 모양을 삼았으며, 일체 삼세가 오직 말뿐이니, 모든 말이 여러 법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고 모든 법이 말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21-3-8-4) 이치와 사상(事相)이 걸림이 없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모두 깊고 깊음을 알며, 모든 세간이 다 고요하고, 모든 불법이 더함이 없고 불법이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법이 불법과 다르지 않고, 불법과 세간법이 섞이지 아니하며 또 차별도 없음을 이해하나니, 법계의 자체 성품이 평등하면 삼세에 두루 들어감인 줄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21-3-8-5) 이치를 따라서 자비를 일으키다

큰 보리심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항상 물러나지 않으며, 큰 자비심이 더욱 증장하여 일체 중생의 의지할 데가 됩니다. 

  

(21-3-8-6) 내가 교화하지 않으면 누가 교화하겠는가

보살이 이 때에 다시 '내가 중생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누가 성숙시키며, 내가 중생을 조복하지 않으면 누가 조복하며,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누가 교화하며, 내가 중생을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깨우치며, 내가 중생을 청정케 하지 않으면 누가 청정케 하겠는가. 이것은 나에게 마땅한 일이니 내가 해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21-3-8-7) 나만 이 법을 알면 다른 중생은 어찌 되겠는가

또 '만일 나만 이 깊은 법을 알면 나 한 사람만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것이니, 다른 중생들은 캄캄하고 눈이 없어 큰 험난한 길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번뇌에 속박이 되어 중병에 걸린 사람이 항상 고통을 받는 것 같을 것이며, 탐애의 옥에 떨어져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염라왕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고통을 멸하지 못하고 악업을 버리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데 항상 있으면서 진실한 이치를 보지 못하고, 생사에 헤매면서 뛰어나지 못하고, 팔난에 있으면서 더러운 때에 물들고 가지가지 번뇌가 마음을 가리워서 삿된 소견에 빠져 바른 도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21-3-8-8) 중생들을 먼저 교화하라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관찰하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중생들이 성숙되지 못하고 조복되지 못한 것을 그냥 버려두고 내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증득한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니, 먼저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수 없이 많은 겁 동안에 보살의 행을 행하되, 성숙하지 못한 이를 먼저 성숙케 하고 조복하지 못한 이를 먼저 조복케 할 것이다.' 

  

(21-3-8-9) 이러한 보살을 섬기면 깨달음을 이룬다

이 보살이 이 행에 머물러 있을 때에 모든 하늘, 마군, 범천, 사문, 바라문과 모든 세간의 건달바와 아수라들이 만일 만나 보거나 잠깐이라도 함께 있거나 공경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공양하거나, 잠깐 귀에 들었거나 마음에 한번 거치기만 하여도, 이런 일이 헛되지 아니하여 반드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여섯째 잘 나타나는 행이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이트 정보

상호. 사단법인 통섭불교원 대표. 김성규 사업자등록번호. 514-82-14810 [사업자등록, 법인등록정보 확인]
Tel)053-474-1208 Fax)053-794-0087 E-mail) tongsub2013@daum.net
주소 : 대구광역시 남구 두류공원로 10(대명동)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성규

Copyright © 사단법인 통섭불교원. All rights reserved.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5,488
어제
7,407
최대
7,694
전체
1,235,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