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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위덕자재보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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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194회 작성일 23-12-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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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위덕자재보살장


세 가지 관행법


그때 위덕자재보살(威德自在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원각의 성품을 수순하는 법을 분별하시어 보살들로 하여금 마음의 광명을 깨닫게 하시고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받아듣게 하시어 닦아 익히지 않고도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비유하면 큰 성(城)에 출입하는 네 개의 문이 있어서 사방에 길이 열려 있어 오는 이가 하나의 길에만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일체 보살이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고 보리를 이루는 것도 한 가지 방편만이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원하옵건대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의 방편 점차와 아울러 수행하는 사람이 모두 몇 종류가 있는가를 말씀하셔서, 이 모임의 보살과 말법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구하는 자가 속히 깨달음을 얻어서 여래의 적멸 바다에 들어가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며 오체투지하고,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위덕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보살이여. 그대들은 보살들과 말법세계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묻는구나. 자세히 들어라. 그대들에게 말해 주리라.”

이에 위덕자재보살이 가르침을 받들고 기뻐하며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보살이여, 위없는 미묘한 깨달음이 시방에 두루하여 여래를 내니, 일체의 법과 동체(同體)이므로 평등하여 모든 수행에 실제로는 둘이 없다. 

방편으로 수순하는 데는 그 수가 한량없이 많고 돌아갈 바를 원만히 거둔다면 성품을 따라 차별함이 세 종류가 있다.

보살이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으로 삼으면, 모든 생각이 맑아지는 까닭에 식심(識心)이 번거롭게 요동했음을 깨닫고 고요한 지혜가 생겨난다.  

몸과 마음의 번뇌가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므로 문득 안으로 적정한 경안(輕安)을 일으킨다. 

적정을 말미암아 시방세계에 계신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속에 나타남이 마치 거울 속에 훤히 나타나는 형상과 같다. 이런 방편은 사마타(奢摩他)라 이름한다. 

보살이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서 마음의 성품과 육근과 육진이 모두 허깨비로 인한 것임을 안다. 온갖 환을 일으켜서 환이 되는 것을 없앨 때 온갖 환을 변화시켜 환의 무리를 깨우쳐 준다. 

환을 일으키지만 마음속으로 능히 바꾸어 자비의 경안을 일으킨다.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일으켜 점차 증진하여, 환인 것을 관찰함은 환과 같지 않은 까닭이며, 환과 같지 않다고 관하는 것도 모두 환이기 까닭에 환의 모습을 영원히 여읜다. 

이것은 보살들이 원만하게 하는 미묘한 행으로서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방편은 삼마발제(三摩鉢提)라 이름한다. 

보살이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허깨비 같은 고요한 모습에 집착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다 걸림이 되는 줄 분명히 알며 지각이 없는 명(明)은 온갖 장애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장애와 장애 없는 경계를 영원히 초월한다. 

수용하는 세계와 몸과 마음이 서로 티끌 세상에 있으나, 마치 그릇 속의 쇠북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번뇌와 열반이 서로 걸리지 않으니 안으로 능히 적멸의 경안을 일으킨다. 

묘각이 수순하는 적멸의 경계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으로 능히 미치지 못하는 바이며, 중생과 수명이 다 들뜬 생각이니, 이 방편은 선나(禪那)라 이름한다. 

보살이여, 이 세 가지 법문은 모두 원각을 친근하고 수순하는 길이니, 시방의 여래께서 이로 인하여 성불하셨으며, 

시방의 보살들이 여러 방편으로 일체가 같고 다른 것이 다 이 세 가지 사업(事業)에 의한 것이니, 만일 원만히 증득하면 곧 원각을 이루리라.

보살이여, 가령 어떤 사람이 거룩한 도를 닦아서 백천만 억의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교화해 성취케 하더라도, 이 원각의 무애 법문을 듣고 한 찰나 사이에 수순하고 닦아 익힌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위덕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라.

위없는 대각의 마음은

본제(本際)가 두 모양이 없으나

온갖 방편에 따라서

그 수가 한량없이 많다. 

여래가 모두 열어 보임에

세 종류가 있느니라.


번뇌 없고 편안한 사마타는

거울에 모든 형상이 비침과 같고

환(幻) 같은 삼매는

새싹이 점점 자라남과 같고

적멸한 경계인 선정은 

그릇 속의 쇠북소리와 같다. 


세 가지 묘한 법문이

모두 원각에 수순함이다.


시방에 계신 모든 여래와 대보살이

이로 인하여 도를 이루셨고

세 가지 일을 원만히 증득하였므로

구경 열반이라 이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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