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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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의 불교 역사에서 이루어진 최대의 혁명을 지역에 따라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인도에 있어서 붓다 이후 최대의 혁명은 직관에 의한 '공사상의 확립'이다. 소수의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던 원시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서민계급 중심으로 체제변환을 거치게 되는 필연적 사실에 부딪치게 된다. 이 때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성을 갖는 불교의 새로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살이 등장하게 되며, 이 보살들이 추구해야 될 깨달음의 세계가 '공'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티벳을 넘어 중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토착화된 중국불교로서 선불교의 태동은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토착화된 중국불교로서 선불교의 태동은 중국에서 이루어진 최대의 혁명이었다. 법화경에서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깨달음의 씨앗이 있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수백년의 역사 속에서 붓다는 이미 종교적으로 신격화되어 버렸고 어느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절대자로 탈바꿈하여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선불교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즉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본성을 꿰뚫고 부처를 이룬다"라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깨달음의 보편성을 다시 확립하였던 것이다. 깨달음이란 인류의 상상 속에서의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실천해야 할 이상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목표로서, 우리들 자신의 삶의 문제로서 부각된 것이다.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한국불교는 거의 중국불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의 비호 아래 성장하였다. 이러한 한국에서 일어난 최대의 혁명은 '미륵신앙의 실현'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착하게 살다가 죽어서 가는 극락세계의 실현을 살아 있는 이 땅에서 이루고자 열망했던 것이 한 많은 이 땅의 서민들의 꿈이 미륵신앙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최대의 혁명은 1700년대 일본 역사상 최대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부영중기負永仲基(1715~1746)에 의한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대승불비설’의 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본불교는 중국불교의 교판에 머물지 않고 경전을 보는 독자적인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다시 초점을 중국불교 쪽으로 돌려 보자.
중국에서는 불교 수용방법은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이었다.
후한 명제 67년에는 사신을 서역에 파견하여 인도 승펴 2명과 불상을 모셔와 낙양 백마사에 안치하였다.
인도에서 유입된 모든 경전들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전 번역사업이 이루어졌으며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역경사업이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이 번역사업으로 말미암아 교종이 확립되었으며, 한역으로 번역된 경전들을 중심으로 종파불교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4개의 종파 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룬 것은 천태종파 화엄종이었다.
천태종은 북제의 혜문이 개조하였다. 3조 지의 천태(538~597)는 남북조시대의 도생, 혜관등 소위 남3 북7의 10가지 설을 연구 분석하여 천태종의 교판 5시 8교를 확립하였다. 5시란 화엄시,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를 말하며, 8교란 교화의 의식에 의한 4교(돈교, 점교, 비밀교, 부정교)와 교설의 내용에 의한 4교(장교, 통교, 별교, 원교)를 뜻한다.
천태종에서 주장하고 있는 5시는 붓다가 45년 동안 설하신 법을 시기에 따라 화엄시,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로서 이 순서로 법을 설하시며 중생을 교화했다는 것이다. 깨치신 당시 깨달음의 실상을 음미하며 법열에 잠긴 21일 동안 설하신 것이 화엄시(화엄경)이며, 그 후 오비구를 교화한 4성제(고, 집, 멸, 도) 법문을 시작으로 하여 그와 비슷한 계역의 법문을 12년 동안 설하신 것을 아함시(아함경)라 하며, 마음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실천과 윤리적인 면과 사회적 규범 등을 주제로 8년 동안의 가르침을 방등시(능가경, 유마경, 능엄경, 원각경, 승만경)라 하며, 베풀되 베품의 댓가를 바라지 않고 형상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형상에 매이지 않으며 모든 현상의 공한 도리를 21년 동안 가르친 것을 반야시(반야경)라 하며, 끝으로 삶과 죽음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생명과 존재의 실상에 대하여 8년 동안 가르친 것을 법화열반시(묘법연화경, 열반경)라 한다.
이 천태종의 교판은 1000여 년의 불교 역사 속에서 중국 교종이 이룩한 최대의 업적임을 인정하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불교를 보는 눈을 거기에 머물게 하는 최대의 함정이기도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당시의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인도라는 넓고 광활한 지역에서 몇 백년의 세월 동안 지역성과 역사성을 띠면서 생산된 불교 경전들이 중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성고 k역사성은 무시된 채 경전 자체만 옮겨져 번역된 것이다. 수많은 경전들이 뒤섞여 중국에 유입되어 번역되고 난 뒤의 문제는 이 경전들이 붓다께서 45년 동안 설하신 것들이데 ‘과연 어떤 순서로 설하였을까?’하는 문제는 승려들과 불교 학자들의 최대 관심사였으며, 이에 초점을 맞추어 교종이 정립되어 나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무감각하게 이 우물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함이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종교인 불교에서는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그 만큼 더 큰 것이다. 경전 자체가 바로 불교의 역사와 지역성과 사회성을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경전에 대한 맹목적인 눈을 넘어서 경전을 관조할 수 있는 상대적인 눈이 열리게 된다. 경전을 역사와 더불어 상대성을 이해할 때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과 종교적인 끝없는 열정을 함RP 체험할 수 있다. 이 되번역된 경전을 인연으로 하여 함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불기 2542(1998)년 입춘 정명선방에서
淨名 김성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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