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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천수경

1. 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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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7,117회 작성일 21-07-0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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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천수경의 이름

천수경은 독송용이라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정리를 하다 보니 내용이 너무 좋고 구성도 잘 되어 있습니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이 천수경을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강의 내용에 넣었습니다. 

천수경의 원래 이름은 천수경 내용에 있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입니다. 그러니까 천수경의 내용중에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있습니다. 그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원래 이름이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입니다. 바로 천수경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신묘장구대다라니입니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앞부분을 보면 많은 내용들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또 뒷부분에도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서원부분과 계청부분에서 가범달마는 서원부분을 번역하였고 불공은 계청부분을 번역했습니다. 



불교의식의 변천_ 대승불교가 일어남

천수경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면 불교의식의 변천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불교가 이 땅에서 어떻게 꽃을 피웠나 살펴보면 근본불교 때는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다른 의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금강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루 일과는 걸식을 해서 공양을 하고 그 외 시간은 수행을 합니다. 수행을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부처님에게 묻고 부처님은 물음에 답해주시고 이것이 일반적인 하루일과였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명상과 수행을 하고 법구경과 같은 짧은 경전들을 염송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염송하는 것이 근본불교 시절 하루 생활이었습니다. 

이것이 대승불교로 넘어오면 실천 덕목으로 육바라밀이 생깁니다. 부처님 당시의 실천덕목인 팔정도의 근본 가르침이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육바라밀로 변합니다. 육바라밀로 변하면서 제일 먼저 나오는 내용으로 보시가 있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는 없었던 보시라는 항목이 들어갑니다. 

대승불교가 만들어진 배경은 부처님의 유골 사리탑을 중심으로 일어난 불탑신앙과 종래로부터 내려오던 부파불교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불교의 흐름인 대승불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일반 재가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덕목인 보시가 대승불교에서 가장 먼저 나옵니다. 대승불교의 주 내용은 보시와 공양, 명상과 수행 그리고 금강경 염송이라던가 다른 경전을 독송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대승불교에서 밀교로 

인도에서 일어난 대승불교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불교인 밀교가 일어나게 됩니다. 밀교가 일어날 즈음에는 인도의 사상계가 많이 혼란했습니다. 대승불교 때까지 인도사상의 흐름은 불교가 중심이었습니다. 이 밀교가 일어날 즈음이면 불교가 민간신앙인 힌두교에 밀려 힌두교의 주술, 주문, 다라니 이런 것들이 불교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대승불교가 밀교로 바뀌면서 진언중심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밀교에서는 의식이 매우 중요시 되었기 때문에 다라니 및 진언염송 안에서 의식이 정형화됩니다. 다라니를 읽고 진언을 염송하면서 이제까지 없었던 의식이 상당히 중요시 됩니다.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많은 불교의식들이 이 밀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선불교

대승불교는 중국으로 넘어와서 종파불교가 되고, 이 종파불교가 선불교로 꽃피우게 됩니다. 밀교가 중국 선불교로 넘어오는데 선불교의 원칙은 오로지 좌선입니다. 절에서 오로지 참선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원래 선불교의 원칙은 사교입선입니다. 사교입선이란 교리에 대해서 통달한 후 선에 들어간다는 내용인데 지금 우리는 교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하고 바로 선으로 들어가니까 뿌리가 없는 셈입니다. 뿌리가 없는데 어떻게 꽃이 피겠습니까? 현재의 불교 의식, 일과의 변천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불교는?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은 대승불교인데 모든 의식은 밀교를 따릅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독송하는 것은 밀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불교에서  어떤 의식을 하든지 반드시 천수경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식은 밀교를 따르고 내용은 선불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소의경전은 금강경이고 모든 의식에서는 천수경을 독송합니다. 

한국불교에서 금강경과 천수경은 가장 중요한 경전입니다. 천수경이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천수경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수경의 구성 

천수경의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한문으로 된 구절을 우리말로 그대로 읽어보세요. 그 뜻을 알고 천수경을 독송한다면 얼마나 큰 감동과 신심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말로 독송을 하면 한문으로 독송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얻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천수경의 내용과 구성을 보면 첫 부분에 개경이 나옵니다. 개경이 무엇입니까? 경을 여는 것입니다.  ‘정구업진언,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개경게, 개법장진언’ 하면서 경을 펼치는 것입니다. 

경을 펼쳤으니 이제 계청을 합니다. 천수경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에 대한 계청이고 원이기 때문에 관세음보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청은 바로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계청을 하고 서원을 해서 ‘관세음보살 십대원 육향육서’ 즉 여섯 방향을 보면서 여섯 가지 서원을 하고 관세음보살의 열 가지 이름을 부르면서 계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뒤에 본론에 들어갑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본론이 나옵니다. 

본문에서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있고 사방찬, 도량찬까지가 이 다라니에 포함됩니다. 다라니가 끝나면 자신의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다라니의 모든 내용을 알고 나니까 내가 살아오면서 지었던 많은 업에 대한 참회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참회가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참회게, 참회업장 12존불이 나옵니다. 그리고 십악참회, 근본참회, 참회진언이 나옵니다. 그 다음 참회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준제주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준제주에 대한 내용을 보면 천수경이 처음 만들어질 때 이 부분이 얼마나 정밀하게 짜여졌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회가 끝나고 나면 내가 정말 부처처럼 살겠다고 발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발원이 나와야하는데 발원 앞에 준제주를 넣은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전해져오는 과정에서 첨가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준제주를 보면 이 안에도 계청이 있습니다. 정법계진언, 호신진언,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이 있고 준제진언 준제주로 되어 있습니다. 계청을 하고 준제진언을 합니다. 천수경 내용 안에 또 하나의 체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수경이 독송되어 오는 과정에서 삽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준제진언을 하고 난 뒤에 똑같이 발원을 하는 체계로 되어있습니다. 

참회를 했으니 마지막으로 발원서원맹세를 합니다. ‘여래십대발원문, 발사홍서원, 발원이귀명례삼보’ 이렇게 해서 내가 어떻게 원을 세우느냐?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 모든 번뇌를 다 끊겠다, 불교를 전부 다 배우겠다, 내가 도를 이루겠다는 원을 하는 것입니다. 원을 하고 마지막으로 ‘귀명례삼보’로 정말 내가 목숨을 거두어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수경의 체제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우리말로 뜻을 해석하면서 그 자체를 생각해보니 천수경을 구성한 사람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정밀하고 세밀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집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맞이할까?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온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손님인 부처님같은 분을 초대했을 때 먼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안 청소를 해야겠지요? 청소를 하고 정돈을 하여 일단 형체가 있는 집이 깨끗해지면 다음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이 집에 손님이 오면 집안을 정돈하고 나를 단정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개경입니다.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독송을 하는데 경을 연다는 것은 손님을 맞기 전에 청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음 소개하고 공덕을 찬탄하겠죠?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이 위대한지를 찬탄합니다. 초대한 손님을 찬탄하고 어떤 사람인지 소개를 하는 것이 바로 이 계청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법을 청하거나 손님을 맞는 부분은 곧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듣거나 손님을 맞은 다음 평가를 해야 되겠지요? 둘러앉아 평가하고 토론하고 하는 부분이 참회에 해당합니다. 둘러앉아 생각해보니 내가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것을 돌아보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참회 다음에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제 원을 세워야 되겠지요. 즉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로 발원에 해당하겠습니다. 

이 천수경은 부처님이 오시거나 부처님 같은 귀한 손님이 오실 때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어떤 자세로 맞이하겠는가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천수경 중간부분에 준제주가 들어있습니다. 이 부분은 공덕과 성불에 대한 내용으로써 본론인 다라니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준제주도 천수경과 같은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준제주는 후대에 내려오면서 공덕이 높은 누군가가 뜻을 좀더 강조하기 위해서 내용 중간에 넣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대다라니와 수월스님 

천수경을 독송해보면 이 만큼 완벽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갖춘 경전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본론인 대다라니를 봅시다.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얽혀있는 내용으로 근대의 수월스님(근대 한국 불교 중흥에 큰 공헌을 한 경허스님의 제자)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수월스님이 젊은 나이에 출가를 했는데 거의 배우지 못한 상태여서 학식이 짧았습니다. 마음은 순수했지만 세속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서산 천장사의 성원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출가했습니다. 출가 후 경허스님 밑으로 들어갑니다. 수월스님의 문제는 학식이 짧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형편 없었습니다. 

부처님에게도 기억을 잘 못하는 주리반특이란 제자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부처님께 특수교육을 받은 그 주리반특은 지금으로 말하면 정신장애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를 성공적으로 교육해냅니다. 바로 그에게 맞는 교육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수월스님도 배운 것은 돌아서면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어느 날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계속 신묘장구대다라니만 읽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간단한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외우기 어려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스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것은 하지 말고 신묘장구대다라니만 외우거라.”라고 했습니다. 수월스님은 신이 나서 7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다라니만 외웠습니다. 7일 동안 외운 후 수월스님은 공부하는 데 가장 큰 장애인 잠자는 것인 수마를 이겨냅니다. 또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불망염지不忘念智도 얻습니다. 그렇게 못 외우던 스님이 그 후로는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릴 때 잘 배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단순하게 외우는 것이 무식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암기력이 뛰어나 외우기도 쉬울 뿐더러 잘 외우면 쉽게 원리를 깨칠 수도 있습니다. 



홍도비구의 사신게 

기억력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스님인 홍도비구의 사신게 이야기도 신묘장구대다라니와 얽혀있습니다. 홍도비구는 조선시대에 금강산에서 수행을 하던 스님이었습니다. 수행과 공부를 잘해 거의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소문이 난 스님이었습니다. 그런 스님이 병이 들었습니다. 몇 개월 누워 있다가 어느 날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동안 몸도 아프고 공부도 제대로 안되던 터라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바람이 불어 옆에 두었던 수건과 옷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홧김에 부처도 없고 신중도 없다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만약에 부처님이나 신중이 있었으면 이렇게 병이 들고 공부가 잘 안되도록 버려두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자고나니 뭔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수행을 많이 한 탓인지 의식은 있는데 몸은 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서 짜증을 낸 그 업으로, 부처와 신중을 비방한 과보로 뱀의 몸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 뒤 절 근처를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젊은 비구가 공부를 하러 그곳에 올라옵니다. 올라와 보니 절에는 아무도 없고 구렁이 한 마리가 기둥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젊은 스님은 화엄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화엄경을 읽어주자 구렁이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꼬리에 재를 묻히고 나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 뱀이 남긴 글이 바로 뱀 ‘사蛇’를 써서 사신게라고 합니다. 

사신게의 내용은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부처님이나 신중들을 비방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 뱀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잘 수행하여 부처가 되라고 경책하는 내용입니다. 그 젊은 비구는 뱀이 쓴 글을 보고 뱀이 그 유명한 홍도비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음날 그 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짜증내고 화내는 마음인 탐진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리 수행을 해도 효과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준제주의 위치 

준제주를 봅시다. 준제주는 천수경 안에서 특이한 위치를 가지는데 ‘나무칠구지불모대’는 곧 ‘칠구지불모준제대명다라니경’이란 경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경을 다시 계청하고 준제진언하고 발원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준제주입니다. 고려 때 지눌의 정혜결사와 더불어 유명한 요세의 백련결사가 있는데 그 백련결사에서 이 준제주가 매우 중시됩니다. 백련결사는 지금은 정통성을 잃었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적 영향력이 컸고 사대부들과 연관이 많았습니다. 백련결사에서는 수행의 하나로써 하루에 준제주를 천 번 염송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준제주가 백련결사가 일어나면서 천수경 안에 삽입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상이 천수경에 대한 서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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