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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육향육서, 여섯가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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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4,609회 작성일 21-07-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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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5Ⅰ

육향육서, 여섯가지 서원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我若向刀山 刀山自摧折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칼 도刀, 뫼 산 山, 칼 도刀, 뫼 산山, 스스로 자自, 꺾을 최摧, 꺾을 절折

내가 칼산 지옥으로 향하면 칼산 절로 꺾어지고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불 화火, 끓일 탕湯, 불 화火, 끓일 탕湯, 스스로 자自, 사라질 소消, 멸할 멸滅

내가 화탕지옥으로 향하면 화탕지옥 절로 소멸되고


칼산지옥 내가가면 칼산절로 무너지고

화탕지옥 내가가면 화탕절로 없어지네


이번 시간에는 여섯 방향 혹은 여섯 세계에 대한 6가지 서원을 할 차례입니다. 이 6가지 서원은 곧 6향 6서로서 서원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6향 6서는 6가지 방향을 향해 6가지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우리가 부처가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육향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앞에서 교리 공부할 때 육도윤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6도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입니다. 6향 6서란 바로 이 육도를 향해 여섯 가지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옥부터 하늘까지 온 우주를 향해 내 원을 발하는 것입니다. 원을 세워 지극하면 그 자체가 지극함을 이룹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내가 칼산 지옥으로 향하면 칼산절로 꺾어지고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내가 화탕 지옥으로 향하면 화탕 지옥이 저절로 소멸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내가 지옥세계에 가면 지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극하면 내가 지옥을 보자마자 그 지옥이 없어지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6향 6서는 서원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원을 세우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저도 참선에 빠져 몇 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다리를 틀고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내 모습을 보는 이나 내 음성을 듣는 이는 모두 편안한 마음이기를, 가슴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하기를’ 하는 지극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차며, 또한 모든 대상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충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유식을 공부할 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았을 때 모르는 사람인데도 왠지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생의 자신의 업으로 인해 그렇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유식의 원리를 잘 이해하면 서원의 극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칼산지옥에 가서 보기만 해도 그 지옥이 극락으로 변해버립니다. 지옥이 가지고 있는 탐욕과 모든 악덕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원력이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것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 ‘신통묘용’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부처님이 지옥에 가서 보기만 해도 지옥의 모든 것이 극락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 연꽃이 피어나며, 정신병자가 부처님을 보기만 해도 바른 정신으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지극한 원을 발하게 되면 외부에 까지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지옥은 보기만 해도, 가기만 해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4-4구절로 해보면 ‘칼산지옥 내가가면 칼산절로 무너지고 화탕지옥 내가가면 화탕절로 없어지네’ 이렇게 됩니다.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我若向地獄 地獄自枯渴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땅 지地, 감옥 옥獄, 땅 지地, 감옥 옥獄, 스스로 자自, 마를 고枯, 목마를 갈渴

내가 지옥으로 향하면 지옥 절로 말라지고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굶주릴 아餓, 귀신 귀鬼 

굶주릴 아餓, 귀신 귀鬼, 스스로 자自, 배부를 포飽, 찰 만滿

내가 아귀세계로 향하면 아귀 스스로 배 부르고 


모든지옥 내가가면 지옥절로 말라지고

아귀세계 내가가면 아귀절로 배부르네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내가 지옥으로 향하면 지옥절로 말라지고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내가 아귀세계로 향하면 아귀 스스로 배부르네 라는 뜻입니다. 

아귀의 덩치는 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더 작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티끌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습니다. 공양할 때 스님들이 천수물을 떠 놓고 거기에 시식을 합니다. 그 천수물은 탐진치를 떠난 수행자들의 거룩한 마음이 담겨 있는 아주 깨끗한 물입니다. 아귀는 그 천수물 밖에 먹지 못합니다.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고 도를 이룬 사람들의 깨끗한 마음으로 내놓은 천수 밖에 못먹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지 않고 수행자 자체가 줄어들면 아귀나 축생이나 지옥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깨치고 나면 지옥의 마음이 무너지고 아귀의 마음이 무너지고 축생의 마음이 무너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깨달음이란 바로 스스로 향기를 내며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한 원 때문에 주위의 모든 것이 동화되는 것입니다. 

4-4로 해보면 ‘모든지옥 내가가면 지옥절로 말라지고 아귀세계 내가가면 아귀절로 배부르네’가 됩니다.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닦을 수修, 벌릴 라羅, 악할 악惡, 마음 심心, 스스로 자自, 고를 조調, 엎드릴 복伏
내가 수라세계로 향하면 악한 마음 저절로 조복되고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나 아我, 같을 약若, 향할 향向, 가축 축畜, 날 생生 
스스로 자自, 얻을 득得, 큰 대大, 지혜 지智, 지혜 혜慧
내가 축생세계로 향하면 스스로 큰 지혜 얻게 하소서

수라세계 내가가면 악심절로 사라지고
짐승세계 내가가면 지혜절로 생겨나네

인간세계 내가가면 아집절로 사라지고
하늘세계 내가가면 환희심이 절로나네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내가 수라세계로 향하면 악한 마음 저절로 조복되고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내가 축생세계로 향하면 스스로 큰 지혜 얻게 하소서가 됩니다. 
수라세계가 어떤 세계입니까? 수라란 전쟁과 투쟁을 좋아하는 악심이 가득한 신들입니다. 아수라장이란 말이 바로 투쟁과 전쟁을 좋아하는 수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내가 수라세계로 향하면 악심이 저절로 소멸되고, 내가 축생세계로 가면 축생들이 큰 지혜를 얻습니다. 
윤회하는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속성이 바로 탐심, 진심, 치심입니다. 이 가운데 탐욕이 가장 강하면 지옥과보를 받고 진심이 가장 강하면 아귀과보를 받고 어리석음이 가장 강하면 축생과보를 받게 됩니다. (아)수라, 인간, 천상은 그래도 탐진치가 가벼울 때 받는 과보입니다. 
4-4구절로 해보면 ‘수라세계 내가가면 악심절로 사라지고 짐승세계 내가가면 지혜절로 생겨나네’ 이렇게 됩니다. 이러한 것의 바탕이 자비이며, 자비에서 핀 꽃이 바로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육도 가운데 인간과 하늘세계가 남았습니다. 인간은 왜 자신을 나라고 고집하면서 무명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는 바로 알라야식이라고 하는 업의 종자를 자신이라고 고집하는 아집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세계 내가가면 아집절로 사라지고 하늘세계 내가가면 환희심이 절로이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향 6서가 육도 윤회하는 모든 세상에 내가 가면 바로 부처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극하고 거룩한 원이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천수경 서설을 강의할 때 수월스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구한말 불교를 다시 일으킨 분이 바로 경허스님입니다. 그 경허스님에게는 수제자인 만공스님과 수월스님, 혜월스님이 계셨습니다. 만공스님은 수덕사를 중심으로 법을 펼쳤고 혜월스님은 남쪽으로 내려가 선불교를 펼쳤고 수월스님은 북간도로 갑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수월스님이 바로 다라니의 은혜를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 당시 북간도에는 마적 때문에 해가 지면 사람들이 집 밖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집집마다 마적이 습격하지 못하도록 맹견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마을을 지나가면 무사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월스님이 어느 날 저녁 무렵에 북간도에 도착했습니다. 수월스님이 지나가자 마을의 개들이 짖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인기척과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참 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나와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수월스님이 멀쩡하게 앉아 있고 그 주위에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스님의 자비로 그 사납던 개들의 악한 마음이 사라지고 얌전해졌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6향 6서의 힘입니다. 내가 그런 마음이 되면 상대가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 식물이라도 그 마음을 이해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원을 이루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루는 세상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요, 극락입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같은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주변까지 변화시킵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이 주위 사람을 감화시키고 주위 사람들이 그를 따르면서 문화가 형성됩니다. 하나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문화의 이동,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클로스비는 유럽문화가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것을 생태학적으로 연구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부족인 수우족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주목했습니다. 수우족의 한 여인이 성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 성병의 원인에 대하여 역학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보통 버팔로 30마리 정도면 수우족의 1년 양식이 됩니다. 그래서 버팔로의 수는 수천, 수만인데 줄어드는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번식을 계속합니다. 개체수가 줄지 않는 버팔로가 아메리카 대초원의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풀을 몽땅 뜯어 먹습니다. 버팔로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는 풀은 겨우 한 두 종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식물과 버팔로와 수우족은 연관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오면서 버팔로를 살상하기 시작합니다. 1년에 30~50마리 정도 줄어들었던 버팔로가 1년에 200만 마리가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버팔로 수가 줄어들자 여태까지 이 곳에 침범하지 못했던 다른 동물, 식물들이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수우족에게 돌아가는 버팔로 수도 자연히 줄게 되었습니다. 버팔로 수가 줄자 수우족에게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우족 여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냥꾼들에게 몸을 팔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병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문화의 이동에 관한 생태학적인 연구는 세계 문화의 흐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구의 기독교 문화는 점점 번성하여 세계의 문화를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 문화가 우리 동양에서는 기존의 문화를 말살하는 형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불교를 잘 알아야 하는 것도 우리의 문화권을 지키는 것과 연관이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가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알면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의 10가지 다른 이름 
자비하신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위대하신 대세지-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천수행자 천수-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신통하신 여의륜-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덕있으신 대륜-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자재하신 관자재-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편안하신 정취-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원만하신 만월-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걸림없는 수월-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악한마음 소멸하는 군다리께 귀의합니다
탐욕심을 다스리는 십일면께 귀의합니다
온세상에 두루하신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본래스승 아미타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3번)

 천수경의 원제가 바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무애대비심 대다라니경’입니다. 관세음보살은 10가지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이름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관자재보살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모든 중생을 구제해주는 것이 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자재보살의 관자재의 의미는 스스로를 본다는 뜻으로 구제뿐만 아니라 지혜의 상징이며 우리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연기를 알고 진리를 깨치면 무명이 타파되고 끝없는 자비와 광명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며 관자재보살인 것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이란 말이 나오는데 ‘위대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첫째는 대세지보살입니다. 이 대세지보살이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삼악도 즉 지옥, 아귀, 축생에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입니다. 
둘째는 천수보살입니다. 여기의 천수는 천수천안의 천수로 천개의 손이란 뜻입니다. 이 천개의 손으로 중생들을 돌보시는 분이 바로 천수보살입니다. 
셋째는 여의륜보살입니다. 여의륜이란 삼매 속에서 법륜을 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기를 깨치지 못했을 때는 항상 무명이라서 끝없이 혼란스럽습니다. 연기를 깨치면 내 마음은 열반적정이 되는데 이 열반적정의 상태가 바로 삼매입니다. 그러니까 여의륜보살은 삼매 속에서 법륜을 굴리며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입니다. 또한 우리의 원을 원만하게 성취시켜 주는 것도 이 여의륜보살입니다. 
넷째는 대륜보살입니다. 대륜보살은 미혹과 어리석음, 무명을 지혜와 덕으로써 끊습니다. 이 관세음보살의 상징이 지혜와 자비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이 깨치신 연기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관세음과 관자재는 상징을 대표하며 나머지 10개의 이름들도 그 의미에 따른 것입니다. 
다섯째는 관자재보살입니다. 나무관자재보살 마하살은  스스로를 보고 아는 지혜의 상징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표현하면 ‘아발로키테스바라’가 됩니다. 부처님이 깨친 연기를 행위인 자비의 입장에서 보면 관세음보살이고 지혜의 입장에서 보면 관자재보살이 됩니다. 
여섯째는 정취보살입니다. 정취보살은 바른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살입니다. 여기에는 3정취가 있는데 바로 아수라, 인간, 천상입니다. 바른 세계입니다. 우리가 극락에 가고 싶거나 해탈을 하고 싶을 때 도와주고 인도해주는 보살이 정취보살입니다. 이 정취보살은 화엄경 ‘입법계품’에도 나옵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는 가운데 정취보살이 나옵니다. 이 때 선재동자가 정취보살에게 자신은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세웠는데 어떻게 보살도를 실천 할 수 있는지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일곱째는 만월보살입니다. 만월은 보름달로 모든 것이 원만하게 성취됨을 상징합니다. 공덕과 상호가 원만한 보살이 만월보살입니다. 이 만월보살은 묘법연화경 ‘서품’에 나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의 세계를 설한다고 하니까 많은 대중들이 모여듭니다. 부처님의 제자, 보살들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만월보살이 있습니다. 
여덟째는 수월보살입니다. 수월은 물에 비친 달을 의미합니다. 물에 비친 달은 어떻습니까? 달은 하나지만 수많은 강에 다 달이 비칩니다. 
수월보살은 달처럼 중생에게 내려가서 중생들에게 맞는 형태로 중생을 구제해주는 보살입니다. 중생들에게 맞는 방편을 가장 잘 쓰는 보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홉째는 군다리보살입니다. 군다리보살은 ‘보배병’이라는 병을 들고 다닙니다. 이 병 안에는 묘약이 있어 일체의 모든 고통을 덜어줍니다. 이 묘약으로 일체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비를 베풀고, 악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을 지켜주는 보살이 이 군다리보살입니다. 
열 번째는 십일면보살입니다. 이 십일면보살은 얼굴을 열한 가지로 변화하면서 중생을 구제해줍니다. 십일면보살은 아수라에서 중생을 구해줍니다. 
그 다음 ‘나무제대보살 마하살’ 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제대보살이란 말은 다름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란 뜻입니다. 나무제대보살 마하살을 해석해보면 ‘온 세상에 두루하신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끊임없이 중생들을 돌봅니까? 그것은 바로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아미타불에게 회향합니다. 
마지막 ‘나무본사아미타불’ 이것을 해석해보면 ‘본래스승 아미타불께 귀의합니다’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의 종착역은 바로 부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의 총11개의 이름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 관세음보살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깨우친 만큼 중생에서 보살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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