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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처 273잡아함수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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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39,038회 작성일 21-07-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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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잡아함수성유경

273. 수성유경(手聲喩經) 

  

이와 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서 고요히 생각하였다. '어떤 것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것이 <나>인가. <나>는 어디서 머무르는가'고. 그는 선정에서 깨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어떤 것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법이 <나>인가. <나>는 어디 머무르는가'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두 법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어떤 것이 둘인가. 눈과 빛깔이 둘이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부딪침, 뜻과 법이 둘이니, 이것을 두 법이라 한다.

비구여, 혹 어떤 이는 말한다. '사문 고타마가 말하는 두 법은 둘이 아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버리고 다시 두 법을 세우리라'고. 그러나 그는 다만 말이 없을 뿐이다. 자꾸 물으면 알지 못하고  의혹만 더할 뿐이니 그것은 대경(對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識]이 생긴다. 비구여, 눈이란 곧 살[肉] 형상이니, 그것은 안[內]이요, 그것은 인연이며, 그것은 단단한 것이며,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지계(地界)라 한다. 비구여, 혹은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젖고 윤나는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수계(水界)라 한다. 비구여, 혹은 그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밝고 따뜻한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화계(火界)라 한다. 혹은 그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가볍게 나부끼면서 흔들리는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눈의 살 형상의 안의 풍계(風界)라 한다.

비구여, 비유하면 두 손이 화합해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니, 부딪침이 함께 하면 수, 상, <사(思)>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법은 <나>가 아니며, 항상이 아니며, 이것은 덧없는 <나>요, 항상이 아니요 안온이 아니며, 변하고 바뀌는 <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비구여, 그것은 이른바 나고 늙고 죽고 마치며 남[生]을 받는 법이기 때문이다.

비구여, 모든 행[行]은 꼭두각시와 같고 불꽃과 같으며 잠깐 동안에 다 썩어져 진실로 오고 진실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여, <공(空)>인 모든 행에 대해서 마땅히 알고 마땅히 기뻐하고 마땅히 생각하라. <공>인 모든 행은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는 법이 아니다. <공>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

비유하면, 눈이 밝은 사부(士夫)가 손에 밝은 등불을 잡고 빈방에 들어가서 그 빈방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여, 일체의 <공>인 행과 <공>인 마음을 관찰하여 기뻐하면 <공>인 법과 행은 항상 머물러 변하고 바뀌는 법이 아니며, <나>와 <내 것>이 <공>하였기 때문이다. 눈과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이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니 부딪침이 함께 하면 수, 상, <사>가 생긴다. 이 모든 법은 <나>가 없고 항상이 없으며, <나>와 <내 것>이 <공>하였다.

비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항상 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과연 거기서 <나>와 <다른 나>와, 그 둘의 합한 것을 보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그러므로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으며,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고 또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나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합수성비경(合手聲譬經)>의 가르침을 듣고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함부로 놀지 않는데 머물렀다. 다음생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고 아라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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