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잡아함사념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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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신관주경(身觀住經) 1
이와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덧없음을 끊기 위해서는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어떤 법이 덧없는가. 물질은 덧없는 것이니,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덧없는 것이니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덧없음>과 같이, 과거의 물질은 덧없는 것이다. 미래의 물질과 현재의 물질, 과거와 미래의 물질, 과거와 현재의 물질, 미래와 현재의 물질, 과거의 미래의 현재의 물질은 덧없는 것이니,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안 몸을 몸다이 관찰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안 몸을 몸다이 관찰하여 거기에 머무르는 것과 같이, 여덟 가지도 또한 그와 같다.'
'바깥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고 안팎의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며, 안의 느낌을 느낌이다라고 관찰하고 바깥 느낌을 느낌이다라고 관찰하고 안팎의 느낌을 느낌이다라고 관찰하며, 안 마음을 마음이다라고 관찰하고 바깥 마음을 마음이다라고 관찰하고 안팎의 마음을 마음이다라고 관찰하며, 안 법을 법이다라고 관찰하고 바깥 법을 법이다라고 관찰하고 안팎의 법을 법이다라고 관찰하여 머무르는 낱낱의 여덟 경도 또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덧없는 이치를 끊고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는 것과 같이, 아는 이치, 다하는 이치, 뱉는 이치, 그치는 이치, 버리는 이치, 멸하는 이치, 마치는 이치를 위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에 수순하는 것도 또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177. 신관주경 2
이와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불로 머리나 옷을 태우는 것과 같다. 그것을 어떻게 꺼야 하겠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마땅히 왕성한 욕심을 일으키고 간절한 방편을 써서 서둘러 꺼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머리나 옷이 타는 것은 오히려 잠깐 잊는다 하더라도 덧없음의 왕성한 불은 다 꺼서 없애야 하니, 그 덧없음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머무름을 닦아야 한다. 어떻게 덧없음의 불을 끊기 위하여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머무름을 닦아야 하는가. 이른바 물질이 덧없는 것이니 그것을 끊기 위하여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머무름을 닦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덧없는 것이니 그것을 끊기 위하여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머무름을 닦는 것이다."
이렇게 널리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덧없음과 같이 과거의 덧없음, 미래의 덧없음, 현재의 덧없음, 과거와 미래의 덧없음, 과거와 현재의 덧없음, 미래와 현재의 덧없음, 과거, 미래, 현재의 덧없음도 이와 같다.'
'안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머무름의 팔경과 같이, 바깥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팔경과 안팎 몸을 몸이다라고 관찰하는 팔경도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몸을 생각하는 <곳>의 이십사경과 같이, 느낌을 생각하고 마음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는 이십사경도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땅히 덧없음을 끊어야 한다는 구십육경과 같이, 마땅히 알고 뱉고 다하고 그치고 버리고 멸하고 마쳐야 한다는 낱낱의 구십육경도 또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198. 라훌라경(羅 羅經)
이와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성 그리드라쿠우타 산에 계셨다. 그 때에 라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서서 여쭈었다.
"나의 안의 의식(識)이 있는 몸과 또 바깥의 일체 모양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나>와 <내 것>과 <나>라는 거만과 번뇌와 얽맴을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라훌라여, 너는 능히 여래에게 매우 깊은 이치를 물었구나."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네 눈으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가 아니며, <다른 나>도 아니며, 그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보라.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라훌라여, 나의 이 식이 있는 몸과 또 바깥의 일체 모양을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나>와 <내 것>과 <나>라는 거만과 번뇌와 얽맴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라훌라여, 이와 같이 <나>와 <내 것>과 <나>라는 거만과 번뇌와 얽맴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애욕에 흐린 소견을 끊고 바로 지극한 평등으로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라훌라는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안의 감각 기관과 같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깔, 소리, 냄새, 맛, 부딪침, 법과 눈의 의식[識], 귀, 코, 혀, 몸, 뜻의 식과 눈의 부딪침[觸], 귀, 코, 혀, 몸, 뜻의 부딪침과 눈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느낌[受], 귀, 코, 혀, 몸, 뜻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느낌과 부딪침에서 생기는 생각[想], 귀, 코, 혀, 몸, 뜻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생각과, 눈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헤아림[思], 귀, 코, 혀, 몸, 뜻의 헤아림과 눈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사랑[愛], 귀, 코, 혀, 몸, 뜻의 닿임에서 생기는 사랑도 또한 위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 의식[識]이 있는 몸과 또 바깥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과 <나>라는 거만과 번뇌와 얽맴이 없게 되겠는가."
그러자 라훌라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근본이시며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止)이십니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그 이치를 널리 말씀해 주시면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마땅히 받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자세히 들으라.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리라. 모든 눈으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가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그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바르게 관찰하라.
라훌라여,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라훌라여,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나의 이 식이 있는 몸과 또 바깥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과 <나>라는 거만과 번뇌와 얽맴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라훌라여, 그러한 비구는 두 가지를 뛰어넘어 모든 모양을 떠나 적멸(寂滅)하고 해탈한다. 라훌라여, 그러한 비구는 모든 애욕을 끊고 모든 맺음을 풀어 버려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안의 감각 기관과 같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과...... 내지 뜻의 부딪치는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도 또한 이와 같이 널리 말씀하시었다.'
라훌라는 또 여쭈었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그 법을 듣고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放逸)하지 않겠습니다.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 머물러 알뜰히 생각하고 방일하지 않은 뒤에는, '족성자(族姓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도(道)를 배우고 범행을 닦아 가지는 까닭은, 법을 보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은 해탈한 슬기가 아직 익지 않아 더욱 수승한 법을 받기에는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었다.
"너는 남에게 <다섯 가지 쌓임[五蘊]>으로써 가르친 일이 있느냐."
라훌라는 부처님께 말했다.
"아직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너는 마땅히 남을 위해 다섯 가지 쌓임을 연설하여야 한다."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 분부를 받고 다음 날 남을 위해 다섯 가지 쌓임을 연설하였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 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미 남을 위해 다섯 가지 받아들이는 <쌓임>을 설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은 해탈한 지혜가 아직 익지 않아 더욱 왕성한 법을 받기에는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었다.
"너는 남에게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根]>을 설명한 일이 있는가."
라훌라는 부처님께 말했다.
"아직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너는 마땅히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연설하여야 한다."
라훌라는 다음 날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연설하였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미 남을 위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연설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은 해탈한 지혜가 아직 익지 않아 더욱 수승한 법을 받기에는 감당할 수 없음을 관찰하시고 라훌라에게 물었다.
"너는 일찍 남을 위해 <니타나[尼陀那]>법을 설명한 일이 있는가."
라훌라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직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너는 마땅히 남을 위해 니타나법을 연설하여야 한다."
라훌라는 다음 날 남을 위해 니타나법을 널리 설명하였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라훌라의 마음은 해탈한 지혜가 아직 익지 않은 것을 관찰하고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위에서 말한 모든 법에 대해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고 그 뜻을 관찰하여야 한다."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 분부를 받고 위에서 들은 법과 말한 법을 그대로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 뜻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법은 다 <열반>을 따라 나아가고, <열반>으로 흘러 모이며, 마침내는 <열반>에 머무를 것이다'고. 그 때에 라아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미 위에서 들은 법과 말씀하신 법에 대해,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고 헤아리며 그 뜻을 관찰하여 '이 모든 법은 다 <열반>을 따라 나아가고, <열반>으로 흘러 모이며, 마침내는 <열반>에 머무를 것이다'고 알았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의 마음은 해탈한 지혜가 성숙하여 더욱 수승한 법을 받기에 감당할 수 있음을 관찰하고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훌라여, 모든 것은 덧없다. 어떤 법이 덧없는가. 이른바 눈은 덧없는 것이며, 빛깔과 눈의 의식[識]과 눈의 부딪침도 덧없는 것이다."
이렇게 널리 말씀하셨다.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도를 배우고 오로지 범행을 닦는 까닭은 법을 보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아 아라한이 되어 마음이 잘 해탈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02. 안나반나념경(安那般那念經)
이와 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아 익히기를 많이 닦아 익히면 몸과 마음이 쉬게 되고 대충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고요하고 순수하며 분명한 생각[想]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아 익혀라. 만일 비구가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아 익히기를 많이 닦아 익히면 몸과 마음이 쉬게 되고, 거칠은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있어, 고요하고 순수하며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 아나아파나 생각을 어떻게 닦아 익히기를 많이 하면 몸과 마음이 쉬고, 거칠은 생각과 미세한 생각이 있어, 고요하고 순수하며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되는가.
만일 그 비구가 촌락이나 도시에 의지해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여러 감관(感官) 문을 지키고 마음을 잘 매어 둔다. 밥을 다 빌고는 사는 곳에 돌아와 가사와 바리를 챙기고 발을 씻은 뒤에, 숲속의 고요한 방이나 나무 밑이나 혹은 쓸쓸한 빈땅에 들어가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는다. 그래서 생각을 눈앞에 매어 두어, 세상의 탐욕과 애정을 끊고 욕심을 떠나 청정하게 되어, 성냄과 잠[睡眠]과 들뜸과 의심을 끊어, 모든 의혹을 건너고, 온갖 착한 법에 대해 마음을 결정하게 되면,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고 장애 거리가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덮개의 번뇌를 멀리 떠나게 된다.
그래서 안 숨[息]을 생각하고는 그 생각을 잡아매어 잘 공부하고 바깥 숨을 생각하고는 그 생각을 잡아매어 잘 공부한다. 또 긴 숨이나 짧은 숨 등 몸에 들어오는 일체 숨을 깨달아 알고는 몸에 들어오는 일체 숨에 대해서 잘 공부하고, 몸에서 나가는 일체 숨을 깨달아 알고는 몸에서 나가는 일체 숨에 대해서 잘 공부한다. 또 일체 몸 행(行)의 숨과 드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일체 몸 행의 숨과 드는 숨에 대해서 잘 공부하고, 일체 몸 행의 숨과 나가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일체 몸 행의 숨과 나가는 숨에 대해서 잘 공부한다.
또 기쁨과 즐거움과 몸 행(行)과 마음 행의 숨과 드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마음 행의 숨과 드는 숨을 깨달아 아는 데 대해 잘 공부하고, 마음 행의 숨과 나가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마음 행의 숨과 나가는 숨을 깨달아 아는 데 대해 잘 공부한다. 또 마음과 마음의 기쁨과 마음의 고요함과 마음의 해탈과 드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마음의 해탈과 드는 숨을 깨달아 아는 데 대해서 잘 공부하고, 마음의 해탈과 나가는 숨을 깨달아 알고는, 마음의 해탈과 나가는 숨을 깨달아 아는 데 대해 잘 공부한다. 덧없음과 끊음과 욕심 없음과 드는 숨의 멸(滅)함을 관찰하고는, 드는 숨의 멸함을 관찰하는 데 대해 잘 공부하고, 나가는 숨의 멸함을 관찰하고는, 나가는 숨의 멸함을 관찰하는 데 대해 잘 공부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으면 몸과 마음이 쉬고 거칠은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고요하고 순수하며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10. 아난경(阿難經)
이와 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금강 부락의 발구마강 곁에 있는 샤알라 숲속에 계셨다. 그 때에 존자 아난다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혹 어떤 법을 많이 닦아 익히면 네 가지 법을 만족하게 하고, 네 가지 법이 만족하면 일곱 가지 법이 만족하며, 일곱 가지 법이 만족하면 두 가지 법이 만족하게 되는가'고. 때에 존자 아난다는 선정에서 깨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나이다. '혹 어떤 법을 많이 닦아 익히면 네 가지 법을 만족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두 가지 법을 만족하게 하는가'고. 저는 이제 부처님께 여쭙나이다. 과연 어떤 법을 많이 닦아 익히면, 나아가 두 가지 법을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한 법이 있다. 그것을 많이 닦아 익히면 두 가지 법까지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어떤 한 법인가. 이른바 아나아파나 생각이니, 그것을 많이 닦아 익히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四念處]을 만족하게 할 수 있고,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만족하게 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七覺分]가 만족하게 되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만족하게 하면 지혜와 해탈이 만족하게 된다.
아나아파나 생각을 어떻게 닦으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이 만족하게 되는가. 그 비구가 촌락을 의지하여, 나아가서는 나는 숨이 나간다는 생각을 없애도록 공부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성인의 제자는 드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나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숨이 난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며, 숨이 길거나 짧거나 일체의 몸 행을 깨달아 알고, 드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나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숨이 난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한다. 몸 행의 쉼과 드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몸 행의 쉼과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몸 행의 쉼과 나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몸 행의 쉼과 숨이 난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면 된다.
그 때에 성인의 제자는 몸으로 관(觀)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몸에 다름이 있으면 그는 또 그와 같이 몸을 따라 비교해 생각한다. 만일 성인의 제자가 때로 기쁨과 즐거움과 마음 행을 깨달아 알고, 마음 행의 쉼을 깨달아 알게 되면, 드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마음 행의 숨과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마음 행의 쉼과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마음 행의 쉼과 나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마음 행의 쉼과 숨이 난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한다. 그 때에는 그 성인의 제자는 느낌[受]을 느낌으로 관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만일 느낌에 다름이 있으면 그는 또 느낌을 따라 비교해 생각한다. 선인의 제자는 때로, 마음과 마음의 기쁨과 마음의 선정과 마음의 해탈을 깨달아 알게 되면, 드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숨이 든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하고, 마음의 해탈과 나는 숨을 생각할 때에는, 마음의 해탈과 숨이 난다는 생각 그대로 공부한다.
그 때에는 그 선인의 제자는 마음을 마음으로 관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만일 다른 마음이 있으면 그는 또 마음에 따라 비교해 생각한다. 만일 성인의 제자가 때로 덧없음과 끊음, 욕심 없음, 사라짐을 관하게 되면, 덧없음, 끊음, 욕심 없음, 사라짐의 관에 머무르는 그대로 공부한다. 그 때에는 성인의 제자는 법을 법으로 관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법에 다름이 없으면 그는 또 법을 따라 비교해 생각한다. 이것이 이른바 아나아파나를 닦으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니라."
아난다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아나아파나 생각을 닦아 익히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만족하게 하는 것과 같이, 어떻게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하는 생각에 머무르고, 생각에 머무른 뒤에는 생각을 매어 두어 잊지 않으면, 그 때에는 방편으로써 생각의 깨달음 갈래[念覺分]를 닦는다.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그것이 만족하게 되면 법을 가리고 헤아린다. 그 때에는 다시 방편으로 법 가림의 깨달음 갈래[擇法覺分를 닦는다. 법 가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법을 가지고 분별하고 헤아리게 되면 부지런히 방편을 쓸 수 있다. 그 때에는 다시 방편으로 정진의 깨달음 갈래[精進覺分]를 닦는다. 정진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방편으로 정진하면 곧 마음이 기뻐진다.
그 때에는 다시 방편으로 기쁨의 깨달음 갈래[喜覺分]를 닦는다. 기쁨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그것이 만족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쉬게 된다. 그 때에는 다시 방편으로 쉼의 깨달음 갈래[ 覺分]를 닦는다. 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그것이 만족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즐거워져 삼매를 얻게 된다. 그 때에는 다시 방편으로 선정의 깨달음 갈래[定覺分]를 닦는다. 선정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되고, 그것이 만족하게 되면 탐욕과 근심이 없어져 평등한 버림[捨]을 얻게 된다. 그 때에는 다시 버림의 깨달음 갈래[捨覺分]를 닦는다. 버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그것이 만족하게 된다. 느낌과 마음의 법의 생각하는 곳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가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을,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만족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이다. 그리하면 다시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지혜와 해탈을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 없음과 사라짐에 의하여 열반으로 향한다. 이와 같이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지혜와 해탈을 만족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버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 없음과 사라짐에 의하여 열반으로 향한다. 이와 같이 버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지혜와 해탈을 만족하게 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이른바 법과 법이 서로 짝하고 법과 법이 서로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 세 가지 법은 한 법이 왕성하게 되면 한 법은 문이 되고, 차례로 점점 나아가 닦아 익히어 만족하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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