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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아함경

오온 잡아함오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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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39,219회 작성일 21-07-28 13:46

본문

1잡아함무상경

1. 무상경(無常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祗樹]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색(물질작용, 色)은 항상함이 없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다.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즐겨 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즐겨 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마음의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와 같이 수(감수작용, 受), 상(표상작용, 想), 행(행위작용, 行), 식(분별작용, 識)도 또한 항상함이 없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다.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즐겨 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즐겨 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마음의 해탈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스스로 증득(證得)하고자 하면 능히 스스로 증득하게 된다. 이른바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 항상함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이며, 공(空)이며, <나>가 아니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잡아함무지경

5. 무지경 3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색을 사랑하고 즐겨 하는 것은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는 것이며,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면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거기에 밝지 못하며 탐욕을 떠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사랑하고 즐겨 하는 것은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는 것이며,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면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색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는 것이며,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으면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는 것이며,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 하지 않으면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색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밝지 못하며 탐욕을 떠나지 못하면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고, 탐욕에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끊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밝지 못하며 탐욕을 떠나지 못하여 탐욕에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면 괴로움을 끊지 못한다. 만일 색에 대해서 잘 알고 밝으며 탐욕을 떠나 마음이 해탈하면 괴로움을 끊게 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밝으며 탐욕을 떠나 마음이 거기서 해탈하면 괴로움을 끊게 된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잡아함인연경

11. 인연경(因緣經) 1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항상함이 없다. 혹은 인(因)으로, 연(緣)으로 말미암아 모든 색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항상함이 없다. 항상함이 없는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색이 어떻게 항상함이 있겠느냐.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도 항상함이 없다. 혹은 인으로 연으로 말미암아 생긴 그것도 항상함이 없다. 항상함이 없는 인연으로 생긴 그것들이 어떻게 항상 하겠느냐.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색은 항상함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또한 항상함이 없다. 항상함이 없는 것은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색을 싫어하고, 수, 상, 행, 식을 싫어한다. 싫어하면 즐겨 하지 않고, 즐겨 하지 않으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지견(知見)이 생긴다.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을 줄을 안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3잡아함미경

13. 미경(味經) 1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중생들이 색에 맛들이지 않으면 그는 색(물질작용)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중생들은 색에 맛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물들어 집착하게 된다. 이와 같이 중생이 수(감수작용), 상(표상작용), 행(행위작용), 식(분별작용)에 맛들이지 않으면 중생들은 그것들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중생들은 수, 상, 행, 식에 맛들이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것들에 물들어 집착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색이 중생들에게 근심(환,患)이 되지 않으면 중생들은 색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색은 중생들에게 근심이 되기 때문에 중생들은 색을 싫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이 중생들에게 근심이 되지 않으면 중생들은 그것들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 상, 행, 식은 중생들에게 근심이 되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색이 중생들에게 떠날 수 없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색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색은 중생들에게서 떠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들은 색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이 중생들에게 떠날 수 없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들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수, 상, 행, 식은 중생들에게서 떠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것들에서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맛은 맛이며, 근심은 근심이며, 떠남은 떠남이라고 진실로 알지 못하였다면 모든 하늘이나 악마, 범(梵), 사문(沙門), 바라문(婆羅門)이나 모든 하늘 사람들 가운데서 벗어나지도 나오지도 떠나지도 못하여, 길이 뒤바뀜[顚倒]에 머무르거나 아욕다라삼먁삼보리[阿 多羅三 三菩提]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맛은 맛이며, 근심은 근심이며, 떠남은 떠남이라고 진실로 알았기 때문에 모든 하늘이나 악마, 범, 사문, 바라문이나 모든 하늘 사람들 가운데서 스스로 증득하여 벗어나게 되고 나오게 되고 떠나게 되고 결박에서 해탈하게 되어, 길이 뒤바뀜에서 머무르지도 않고 능히 아욕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색의 맛을 구(求)해서 다니며, 그것을 맛보았다. 그래서 색의 맛을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써 그것을 진실로 보았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의 맛을 구해서 다니며, 그것을 맛보았다. 그래서 수, 상, 행, 식의 맛을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써 그것들을 진실로 보았다. 

비구들이여, 또 색의 근심(患)을 구해서 다니며, 그것을 맛보았다. 그래서 색의 근심을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서 그것을 진실로 보았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의 근심을 구해서 다니며, 그것들을 맛보았다. 그래서 그것들의 근심을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써 그것들을 진실로 보았다. 

비구들이여, 또 색을 떠나기를 구해서 다니며, 그것을 맛보았다. 그래서 색을 떠나기를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써 그것을 진실로 보았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떠나기를 구해서 다니며, 그것들을 맛보았다. 그래서 수, 상, 행, 식을 떠나기를 그대로 따라 깨달았을 때에는 지혜로써 그것들을 진실로 보았다. 

비구들이여, 내가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맛은 맛이요, 근심은 근심이며, 떠남은 떠남이라고 진실로 알지 못하였다면 모든 하늘이나 악마, 범, 사문, 바라문이나 모든 하늘 사람들 가운데서 벗어나지도 나오지도 떠나지도 못하여, 길이 뒤바뀜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아욕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맛은 맛이요, 근심은 근심이며, 떠남은 떠남이라고 진실로 알았기 때문에 모든 하늘이나 악마, 범, 사문, 바라문이나 모든 하늘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벗어나고 이미 떠나고 이미 나와서, 길이 뒤바뀜에서 머무르지도 않고 아욕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과거의 네 가지 말과

싫어해 떠남과 또 해탈과

두 가지 인연 말과

맛도 또한 두 가지니라



15잡아함사경

15. 사경(使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는 부처님께 나아가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해 간단히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법을 들은 뒤에는 고요한 곳에서 방일(放逸)하지 않고 수행하는 까닭은 '착한 남자가 집을 나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입고 비구가 되어 훌륭한 범행(梵行)을 완전히 이루고 현재에서 스스로 증득하여 저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을 줄을 아는 데 있다'고 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너는 즐거운 마음으로 '마땅히 저를 위해 간단히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법을 들은 뒤에는 고요한 곳에서 혼자 방일하지 않기를 닦고, 내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아는 데 있다'고 그렇게 말하였는가."

"그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상하라. 내 너를 위해 말할 것이다. 만일 번뇌의 사자(使者)를 따르면 그 사자를 따라 죽을 것이며, 죽음을 따르면 번뇌에 결박될 것이다. 비구여, 만일 번뇌의 사자를 따르지 않으면 그 사자를 따라 죽지 않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지 않으면 번뇌에서 해탈할 것이다."

"부처님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너는 어떻게 간단히 설명하는 법에서 그 뜻을 알았느냐."

"부처님이시여, 색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면 색은 그 사자를 따라 죽을 것이며, 번뇌의 사자를 따르고 그 사자를 따라 죽으면 그는 번뇌에 결박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면 사자를 따라 죽을 것이요, 사자를 따라 죽으면 번뇌에 결박될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색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지 않으면 그는 그 사자를 따라 죽지 않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지 않으면 그는 번뇌에서 해탈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색, 수, 상, 행, 식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지 않으면 사자를 따라 죽지 않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지 않으면 그는 번뇌에서 해탈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간략히 설명하신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습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내가 간단히 말한 법에서 너는 그 뜻을 널리 알았구나. 왜냐하면, 이른바 색이 번뇌의 사자를 다르면 그는 그 사자를 따라 죽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으면 그는 번뇌에 결박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상, 수, 행, 식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면 그는 그 사자를 따라 죽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으면 그는 번뇌에 결박될 것이다. 

비구여, 색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지 않으면 그는 그 사자를 따라 죽지 않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지 않으면 그는 번뇌에서 해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색, 수, 상, 행, 식이 번뇌의 사자를 따르지 않으면 그는 그 사자를 따라 죽지 않을 것이며, 사자를 따라 죽지 않으면 그는 번뇌에서 해탈될 것이다."

그때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매우 기뻐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는 홀로 고요한 곳에서 꾸준히 힘써 닦고 익히면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한 까닭은 '착한 남자가 집을 나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이 없이 비구가 되어 내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그 비구는 곧 아라한(阿羅漢)이 되어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17잡아함비아경

17.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合掌)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장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해 간단히 법을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는 법을 들은 뒤에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묘롭게 상하면서 방일하지 않으며 머물겠습니다. 착한 남자가 집을 나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이 없이 도(道)를 배워 위없는 범행을 이루고, 현재에서 몸으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마쳐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것을 알기 위해서 입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너는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간단히 법을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는 법을 들은 뒤에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묘롭게 상하면서 방일하지 않으며 머물겠습니다.  혹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알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상하라. 비구여, 바르지 않은 법을 마땅히 끊어 버려야 하며, 그러면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된다."

"부처님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너는 어떻게 내가 간단히 말한 법에서 그 뜻을 알았느냐."

"부처님이시여, 색(물질작용)은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합니다. 수(감수작용), 상(표상작용), 행(행위작용), 식(분별작용)도 저의 소유가 아닙니다. 마땅히 빨리 그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이렇게 저는 부처님께서 간단히 설명하신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습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너는 내가 간단히 말한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구나. 무슨 까닭인가. 색은 너에게 마땅한 것이 아니다.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한다. 그것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된다."

그때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이 크게 기뻐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꾸준히 힘써 닦아 방일하지 않으며 머물렀다. 그러면서 수행하는 까닭은 '착한 남자가 집을 나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없이 지내며 혹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아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19잡아함결계경

19. 결계경(結繫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하여 간단히 법을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알뜰이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방일하지 않고 머무른 뒤에, 그 수행하는 까닭은 이른바 '착한 남자는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비구가 되어 내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을 줄을 아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너는 이제 '장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하여 간략히 법을 말씀해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들은 뒤에 마땅히 혼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알뜰이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내지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을 줄을 아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비구여, 맺힘[結:번뇌]에 매인 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하느니라. 그 법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되리라."

"부처님이시여, 이미 알았나이다. 선서시여, 이미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어떻게 내가 간략히 말하는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느냐."

"부처님이시여, 물질은 맺힘에 매인 법입니다. 이 맺힘에 매인 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하나이다. 그 법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되나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맺힘에 매인 법입니다. 이 맺힘에 매인 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법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되나이다. 이렇게 나는 부처님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나이다."

"착하고 착하다! 너는 내가 간략히 말한 법에서 그 뜻을 널리 알았구나. 무슨 까닭인가. '너는 물질은 맺힘에 매인 법입니다. 이 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하나이다. 그 법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되나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맺힘에 매인 법입니다. 이 법은 마땅히 빨리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법을 끊어 버린 뒤에는 바른 이치가 더하고 넉넉하여 긴 밤 동안에 안락하게 되나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매우 기뻐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며 내지 스스로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23. 라후라소문경(羅 羅所門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라성 칼란다[迦蘭陀]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 존자 라훌라[羅 羅]는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제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 <나>와 <내 것>이란 소견과 잘난 체하는 거만과 모든 번뇌와 얽매임이 없게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라훌라여, 모든 색은 과거나 혹은 미래나 혹은 현재나 혹은 안이나 혹은 밖이나 혹은 굵거나 혹은 가늘거나 혹은 좋거나 혹은 더럽거나 혹은 멀거나 혹은 가깝거나 그 일체는 모두 <나>가 아니며, <남>도 아니며, <나>와 <남>이 합한 것도 아니라고 평등한 지혜로써 바르게 관찰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도 과거나 혹은 미래나 혹은 현재나 혹은 안이나 혹은 밖이나 혹은 굵거나 혹은 가늘거나 혹은 좋거나 혹은 더럽거나 혹은 멀거나 혹은 가깝거나 그 일체는 모두 <나>가 아니며, <남>도 아니며, <나>와 <남>이 합한 것도 아니라고 바른 지혜로써 관찰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라훌라여, 비구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내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 <나>와 <내 것>이란 소견과 잘난 체하는 거만과 모든 번뇌와 얽매임이 없게 된다. 라훌라여, 비구가 만일 이와 같이 내 의식이 있는 이 몸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 <나>와 <내 것>이란 소견과 잘난 체하는 거만과 모든 번뇌와 얽매임이 없으면 그 비구는 애욕을 끊고 모든 번뇌를 버리어 당장 고통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라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0잡아함수루나경

30. 수루나경(輸 那經)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자그라성의 칼란다[迦蘭陀] 대나무 동산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샤리풋트라[舍利佛]는 그리드라쿠타 산중에 있었다.

그때 수루나 장자(長者)의 아들은 여러 날 걸어서 그리드라쿠타 산으로 가서 존자 샤리풋트라를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물러나 한 쪽에 서서 존자 샤리풋트라에게 말하였다.

"만일 모든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으로서 덧없고 변하고 바뀌며 안온하지 않은 색을 가지고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와 같다. 나는 너보다 못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합니까?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덧없고 변하고 바뀌며 안온하지 않은 수, 상, 행, 식을 가지고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와 같다. 나는 너보다 못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합니까?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덧없고 변하고 바뀌며 안온하지 않으며, 변하고 바뀌는 색을 가지고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와 같다. 나는 너보다 못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합니까?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덧없고 변하고 바뀌며 안온하지 않은 수, 상, 행, 식을 가지고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와 같다. 나는 너보다 못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합니까?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색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수루나여, 만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수루나여, 만일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성인의 제자로서 그 색을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수, 상, 행, 식은 항상 한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만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수루나여, 만일 수, 상, 행, 식이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성인의 제자로서 수, 상, 행, 식을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루나여, 너는 마땅히 '색을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이 합한 것도 아니다'라고 알아야 하며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이 합한 것도 아니다'라고 알아야 하며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수루나여, 이와 같이 색, 수, 상, 행, 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해탈하고, 해탈한 줄을 알면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알 것이다."

그때 샤리풋트라가 이 경(經)을 설명해 마치자, 장자의 아들 수루나는 티끌과 때[垢]를 멀리 떠나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장자의 아들 수루나는 법을 보고 법을 얻어서 남을 의지하고 않고 바른 법 안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내고 끓어 앉아 합장하고 샤리풋트라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제도(濟度)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과 법과 상가에게 귀의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깨끗하게 삼보(寶)에 귀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샤리풋트라는 수루나에게 말하였다.

"수루나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색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색의 원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색의 멸함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색을 멸하는 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면 그 때문에 색을 능히 끊지 못한다. 이와 같이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수, 상, 행, 식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의 원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그것들의 멸함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을 멸하는 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면, 그 때문에 그들은 수, 상, 행, 식을 능히 끊지 못한다. 

수루나여,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색을 진실로 알고, 색의 원인을 진실로 알며, 색의 멸함을 진실로 알고, 색을 멸하는 길을 진실로 알면, 그 때문에 색을 능히 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루나여,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수, 상, 행, 식을 진실로 알고, 그것들의 원인을 진실로 알며, 그것들의 멸함을 진실로 알고, 그것들을 멸하는 길을 진실로 알면,  그 때문에 수, 상, 행, 식을 능히 끊을 수 있다. 수루나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하는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샤리풋트라는 말하였다.

"만일 색이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거룩한 제자가 그 색은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수루나여,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은 항상 하는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만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만일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 수, 상, 행, 식을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루나여, 색은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수루나여, 그러므로 거룩한 제자는 색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해탈하고,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에서 해탈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자는 수, 상, 행, 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해탈하고,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에서 해탈하게 된다.“


계속해서 샤리풋트라는 수루나에게 말하였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색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색의 원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색의 멸함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색을 맛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색의 근심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색을 떠나기를 진실로 알지 못하면, 그 때문에 그들은 색을 능히 뛰어나지 못한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수, 상, 행, 식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의 원인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그것들의 멸함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의 맛을 진실로 알지 못하며, 그것들의 근심을 진실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을 떠나기를 진실로 알지 못하면, 그 때문에 그들은 수, 상, 행, 식을 능히 뛰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느낌과 색의 원인과 색의 멸함과 색의 맛과 색의 근심과 색을 떠나기를 진실로 알면, 그들은 그 때문에 색을 능히 뛰어날 수 있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수, 상, 행, 식과 그것들의 근심과, 그것들을 떠나기를 진실로 알면, 그들은 그 때문에 수, 상, 행, 식을 능히 뛰어날 수 있다.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색은 항상 하는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수루나여, 만일 색이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거룩한 제자로서 그것을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수루나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은 항상 하는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항상 하지 않습니다."

"만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수루나여, 항상 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거룩한 제자로서 그것을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수루나여, 마땅히 색을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수루나여,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을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수루나여, 그러므로 거룩한 제자는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며 <내 것>도 아니다.'고 바르게 관찰한다. 이와 같이 바르게 관찰하면 모든 세간에 대해서 거두어 받아들일 것이 없게 되고, 거두어 받아들일 것이 없으면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으면 스스로 열반을 얻어, 내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때 장자의 아들 수루나는 샤리풋트라의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33잡아함비아경

33.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舍衛]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나>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색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 상, 행, 식도 또한 이와 같다.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색은 항상 하는 것인가. 항상 하지 않은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색은 항상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항상 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항상 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수, 상, 행, 식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색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색은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르지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다. 수, 상, 행, 식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며, <내 것>도 아니다'라고 진실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실로 관찰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연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내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알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6잡아함십륙비구경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투라(摩偸羅)국의 발제강(跋提河) 가에 있는 암라(菴羅) 나무 동산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자기를 피난처(避難處)로 삼고, 자기를 의지해 머무르며, 법을 피난처로 삼고, 법을 의지해 머물러서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거나 다른 것을 의지해 머무르지 말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바르게 관찰하여 자기를 피난처로 삼고, 자기를 의지해 머무르며, 법을 피난처로 삼고 법을 의지해 머물러서,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거나 다른 것을 의지해 머무르지 말라. 

무엇이 원인이 되어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이 넷이 있으며, 또 어떻게 스스로 아직 생기지 않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생기고, 이미 생긴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더욱 자라고 더해 간다고 관찰하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하는 곳입니다. 말씀해 주시면 저희들은 듣고 그 말씀과 같이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할 것이다. 색이 있어 색을 인하고, 색에 얽매이기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생기고, 이미 생긴 그것들은 더욱 자라고 커 간다고 관찰하라. 수, 상, 행, 식도 또한 그와 같다. 비구들이여, 색으로서 항상 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비구들이여, 색은 덧없는 것이다. 색은 덧없는 것으로서 이미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면, 그는 욕심을 떠나고 욕심을 멸해 모든 번뇌가 없어진다. 본래부터 색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인 줄을 안 뒤에는 색을 인연하여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끊고, 그것을 끊은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고,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게 되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며, 수, 상, 행, 식도 또한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세 정사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모든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대나무 동산과 바이샤알리[毘舍離]와

청정(淸淨)과 바른 관찰과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가 아님과

五와 三과 十六이니라.‘



43잡아함취착경

43. 취착경(取著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취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고, 취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취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는가. 어리석고 무지한 범부들은 색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또 '색은 <나>이고,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그 색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또한 그에 따라 옮긴다. 마음이 그에 따라 옮긴 뒤에는 또한 집착이 생겨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두려움과 장애가 생겨 마음이 어지러워지며, 이것이 다 취착[取著]하기 때문이다. 

또 어리석고 무지한 범부들은 수, 상, 행, 식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또 '이것은 <나>이며,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 만일 그것들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또한 그에 따라 옮긴다. 마음이 그에 따라 옮기기 때문에 곧 집착이 생겨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따라서 공포와 장애가 생겨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것은 취착하기 때문이며, 이것을 취착이라 한다.

어떻게 <취>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에 대해서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색에 대해서 <나>와 <내 것>을 보아 <취>하지 않는다. <나>와 <내 것>을 보아 <취>하지 않은 뒤에는 그 <색>이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이 그에 따라 옮기지 않는다. 마음이 그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 생겨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장애가 생기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다. 이것은 다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나>와 <내 것>을 보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이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은 그에 따라 옮기지 않고, 마음이 그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 생겨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장애가 생기지 않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을 <취착>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취착하는 것과 취착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4잡아함계착경

44. 계착경(繫著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내면 얽매어 집착하고,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어 집착하지 않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의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떻게 마음을 내면 얽매어 집착하는가. 어리석고 무지한 범부들은 색의 모임, 색의 멸함, 색의 맛, 색의 근심, 색을 떠나기를 진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에 대해서 사랑하고 기뻐하며 찬탄하고 취착하며 색에 대해서 '이것은 <나>며,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취>한다. 그것을 <취>한 뒤에는 색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그에 따라 변하고 달라진다. 마음이 그에 따라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두려움과 장애와 돌아보는 생각이 생긴다. 이것은 마음을 냄에 얽매이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이것을 마음을 내면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이라 한다.

어떻게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모임, 색의 멸함, 색의 맛, 색의 근심, 색을 떠나기를 진실로 안다. 그것을 진실로 알기 때문에 색에 대해서 사랑하고 기뻐하거나 찬탄하거나 취착하지 않으며 <나>와 <내 것>에 얽매어 <취>하지 않는다. <취>하지 않기 때문에 색이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은 그에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으며, 마음이 그에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얽매이고 집착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과 장애와 돌아보는 생각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은 마음을 내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 상, 행, 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이것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잡아함삼세음세경 

46. 삼세음세경(三世陰世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국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색의 받는 <쌓임>과 수, 상, 행, 식의 쌓임이다.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로서 숙명(宿命)을 아는 지혜로써 여러 가지 숙명을 알아 이미 알았고 장차 알 것이며 현재에서 안다면, 그것은 다 이 다섯 가지 쌓임에서 이미 알았고 장차 알 것이며 현재에 아는 것이다. 곧 '나는 과거에 이러한 색이었고 이러한 수였고, 이러한 상이였고 이러한 행이였으며, 이러한 식이였다'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의 쌓임이라 한다.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 돌, 막대기, 칼, 추위, 더위, 목마름, 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의 모든 독한 벌레, 바람, 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는 걸림이라 하며, 걸리는 것은 다 색의 쌓임이며,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기 때문에 색의 쌓임이라 한다.

모든 느끼는 모양은 다 수의 쌓임이니, 무엇을 느끼는가.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며, 느끼는 모양은 다 수의 쌓임이며,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기 때문에 수의 쌓임이다. 

모든 생각[想]은 다 상의 쌓임이니, 무엇을 생각하는가. 적은 생각, 많은 생각, 한량이 없는 생각, 가진 것이 없을 때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이니, 상의 쌓임이라 하고,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상의 쌓임이다. 지어 가는 모양은 행의 쌓임이니, 무엇을 지어 가는가. 색에 대해서 짓고, 수, 상, 행, 식에 대해서 지으며, 그러므로 지어 가는 모양은 행의 쌓임이며,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행의 쌓임이다. 

분별해 아는 모양은 식의 쌓임이니 무엇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을 알며, 이것을 식의 쌓임이라 하며,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식의 쌓임이다.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쌓임에 대해서 이렇게 안다. '나는 현재에 색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혔다'라고.  미래의 색에 대해 즐겨하고 집착하면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을 즐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멸하는 길로 향한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수, 상, 행, 식의 쌓임에 대해서도 이렇게 안다. '나는 현재에 현재의 <그것들>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그것들>에게 먹혔다. 내가 이미 현재의 <그것들>에게 먹히고 있으면서 다시 미래의 <그것들>을 즐겨 해 집착하면 반드시 장래에도 현재와 같이 <그것들>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는 과거의 그것들은 즐겨하며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그것들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하여 멸하는 길로 향한다.

그래서 멸하고서 더하지 않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 취하지 않으며, 무엇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는가. 색을 멸하고 더하지 않고, 수, 상, 행, 식을 멸하고 더하지 않는다. 무엇에서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는가. 색에서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수, 상, 행, 식에서 물러나서 나가지 않는다. 무엇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색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수, 상, 행, 식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는가. 색을 버리고 취하지 않는다. 멸하고 더하지 않으며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고요하고 물러나 머무르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으며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으며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는다.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많은 비구들은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나[我]와 천함[卑下]과 종자와

집착[封滯]과 다섯 가지 쌓임[五轉]과 일곱 곳[七處]과

두 얽매임과 감각[覺]과

삼세의 쌓임[三世陰世食]이니라.‘




56잡아함루무루법경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시국의 선인이 사는 사슴 동산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법을 설명할 것이니 잘 들어라. 만일 색이 번뇌(漏)가 있어서 그것을 취하면 그 색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이 번뇌(漏)가 있어서 그것을 취하면, 그것들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니, 이것을 유루의 법이라 한다. 

어떤 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는가. 모든 색이 번뇌가 없어서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색은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도 그 색은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 상, 행, 식이 번뇌가 없어서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것들은 미래나 현재에 있어서도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하니, 이것을 무루의 법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두 가지 믿음과 두 가지 아난다의 물음과

허물어지는 법과 울저가(鬱低迦)와 바라문과 세간과

쌓임 번뇌와 번뇌없음[漏無漏法]이다.‘



58잡아함음근경 

58. 음근경(陰根經)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국 동쪽에 있는 녹모강당(鹿母講堂)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해질녘에 선정에서 깨어나 모든 비구 앞에 자리를 펴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색의 쌓임과 수, 상, 행, 식의 쌓임이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다섯 가지 쌓임이란 색의 쌓임과 수, 상, 행, 식의 쌓임입니까? 그 다섯 가지 <쌓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을 원인으로 하며, 무엇으로써 나고, 무엇으로 접촉을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 다섯 가지 <쌓임>은 욕심이 근본이 되고, 욕심이 원인이 되며, 욕심에서 나고, 욕심으로서 접촉을 한다."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섯 가지 쌓임은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은 훌륭하십니다. 이제 다시 여쭙니다. 부처님이시여, <쌓임>이 느낌입니까. 다섯 가지 <쌓임>은 느낌과 다릅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쌓임>이 느낌이 아니며, 또한 다섯 가지 <쌓임>이 느낌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욕심의 탐함이 있으면 그것이 다섯 가지 받는 <쌓임>이다."

"훌륭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그 비구는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두 <쌓임>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까?"

"그렇다. 마치 어떤 비구가 '나는 미래에 이러한 색과 이러한 상, 이러한 행, 이러한 식을 타고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비구의 <쌓임>과 <쌓임이 서로 관계하는 것>이라 한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쌓임>이라 합니까."

"모든 색으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를 모두 <쌓임>이라 하며, 수, 상, 행, 식도 또한 그와 같다."

"그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인과 연으로 색의 쌓임이라 하며, 무슨 인과 연으로 수, 상, 행, 식의 쌓임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요소를 인연으로 며, 이것을 색의 쌓임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색의 쌓임은 네 가지 요소며, 네 가지 요소를 인연하여 되었기 때문이다. 접촉을 인연하여 수, 상, 행이 생기며, 이것을 수, 상, 행의 쌓임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수, 상, 행은 모두 접촉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이름과 색을 인연하기 때문에 식이라 하며,  모든 식은 모두 이름과 색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훌륭하십니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어떤 것을 색의 맛이라 하며, 색의 근심이라 하며, 색을 떠남이라 합니까? 어떤 것을 수, 상, 행, 식의 맛이라 하고, 그것들의 근심이라 하며, 그것들을 떠남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며 이것을 색의 맛이라 한다. 만일 색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면 이것을 색의 근심이라 한다.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색을 떠남이라 한다. 수, 상, 행,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이것을 그것들의 맛이라 한다. 수, 상, 행, 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을 그것들의 근심이라 한다. 수, 상, 행,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그것들을 떠남이라 한다."

"그 말씀은 훌륭하십니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아만(我慢)이 생깁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색에서 <나>와 <다른 나>가 함께 있다는 것을 보고, 수, 상, 행, 식에서 <나>와 <다른 나>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며, 여기서 아만이 생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하면 아만이 없게 되겠습니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에서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수, 상, 행, 식에서 <나>와 <다른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그 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번뇌가 다하게 됩니까?"

"모든 색으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며, 수, 상, 행, 식도 또한 그렇다고 알고 그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그 자리에 어떤 비구가 있었다. 그는 무명(無明) 껍질에 싸여 있어서 사특한 소견을 일으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나>가 없다면 <나>가 없는 업(業)을 지을 것인데 미래 세상에서 누가 그 갚음을 받을 것인가'고.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의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서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지혜도 없고 밝지도 못하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일 색에도 <나>가 없고 수, 상, 행, 식에도 <나>가 없다면 그는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인데 누가 그 갚음을 받아야 할 것인가'고. 만일 이렇게 의심한다면 먼저 그것을 해석하라. 어떤가. 비구들이여, 색은 항상 하는 것인가, 항상 함이 없는 것인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항상 함이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항상 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움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항상 함이 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수, 상, 행, 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모든 색으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안이나 밖이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며 <내 것>도 아니라고 이렇게 보면 그것은 바른 소견이며, 수, 상, 행, 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이렇게 보는 사람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욕심을 떠나며, 욕심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한 줄을 알고 본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많은 비구들은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쌓임의 뿌리[陰根]와 <쌓임>은 곧 받음이라는 것과

두 <쌓임>은 서로 관계된다는 것과

명자(名字)와 인(因)과 두 맛과

아만과 빨리 번뇌가 다한다는 것이다.‘




61잡아함분별경

61. 분별경(分別經) 1

  

이와 같이 내가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바스티 제타숲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쌓임인가. 모든 물질로서 그 일체는 네 가지 요소(要素)와 그 네 가지 요소로 된 물질이니, 이것을 물질의 쌓임이라 하느니라. 다시 그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만일 그 물질의 쌓임을 영원히 끊어 남음이 없고 끝까지 버리어 떠나고 멸해 다하며, 욕심을 떠나 완전히 고요해지면 다른 물질의 쌓임은 다시 계속하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않고 나지도 않나니, 이것을 <묘(妙)>함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며, <버려 여임>이라 한다. 그래서 일체의 남음이 있는 애정이 다하고 욕심이 없어지고 번뇌가 다 멸하여 열반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느낌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받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쳐 느낌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이 부딪쳐 느낌이 생기나니 이것을 느낌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느낌의 쌓임은 다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내지 번뇌가 멸해 열반을 얻는다. 어떤 것이 생각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想]하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쳐 생각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이 부딪쳐 생각이 생기나니 이것을 생각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생각의 쌓임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번뇌가 다 멸해 열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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