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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254잡아함이십억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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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192회 작성일 23-02-2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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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잡아함이십억이경

254.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그리하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존자 이십억귀 비구는 그리드라쿠타산에서 부지런히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 익히고 있었다. 그때에 이십억귀는 혼자 고요히 선정에 들어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근(精勤)하는 성문(聲聞) 가운데 나도 그 수(數)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아직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다. 나는 유명한 족성(族姓)의 아들로서 재물과 보배가 넉넉히 있다. 나는 차라리 집에 돌아가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리면서 널리 보시를 행하여 복을 짓자'고.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이십억귀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십억귀에게 가서 '부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알려라."

그 비구는 부처님 분부를 받고 이십억귀에게 가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이십억귀는 그 비구가 스승님의 명령이라는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서 있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이십억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진실로 혼자 선정에 들어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느냐? 

 '부지런히 공부하는 부처님의 성문 가운데 나도 그 수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직 번뇌가 다해 해탈을 얻지 못하였다. 나는 유명한 족성의 아들이요 또 많은 재산이 있다. 나는 차라리 속세로 돌아가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리면서 널리 보시하여 복을 짓자'고 하였는가?"

그때에 이십억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내 마음을 아신다'고. 그래서 놀라고 두려워서 털이 일어섰다.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십억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생각대로 대답하여라. 이십억귀여, 너는 속세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는가?"

"그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네가 거문고를 탈 때에 만일 그 줄을 너무 조이면 미묘하고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내게 할 수 있던가?"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그 줄을 어떻게 늦추면 과연 미묘하고 부드럽고 밝은 소리를 내던가?"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줄을 잘 고루어 너무 늦추지도 않고 조르지도 않으면, 미묘하고 화하고 맑은 소리를 내던가?"

"그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십억귀에게 말씀하셨다.

"정진이 너무 급하면 들뜸이 더하고, 정진이 너무 느리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평등하게 닦아 익히고 거두어 받아,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며 모양을 취하지도 말라."

이십억귀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때에 존자 이십억귀는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라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혼자 고요히 선정에 들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였다. 그래서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그때 존자 이십억귀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으로 해탈한 기쁨과 즐거움을 깨닫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부처님께 가서 문안드리리라'고. 그때 존자 이십억귀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부처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유(有)의 번뇌는 다하고 할 일은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기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유(有)의 맺음을 다하고 바른 지혜로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욕심을 떠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떠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에서의 해탈, 늘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조그마한 신심(信心)을 의지하여 욕심을 떠나 해탈하였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맞지 않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한 욕심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조금 계율 가짐을 의지하여 '나는 성냄에서 해탈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맞지 않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한 해탈이라고 합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이양(利養)을 멀리 떠나기를 닦아 익힘을 의지하여 멀리 떠난 해탈이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맞지 않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진실한 멀리 떠난 해탈이라 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애욕을 떠난 것일 가하며 또한 취를 떠난 것이라 하며 또한 생각의 잊음을 떠난 해탈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시여, 만일 모든 비구들이 아라한이 되지 못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지 못하고 이 여섯 곳에서 해탈을 얻지 못하고, 또 어떤 비구가 배우는 지위에 있어서 아직 왕성한 즐거움의 <열반>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향(向) 익히는 마음에 머무르면, 그 때에는 배우는 계를 성취하고 배우는 근(根)을 성취하여, 뒷날에는 반드시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하여...... 내지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배움이 없는 계>를 얻고 배움이 없는 모든 근(根)을 얻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어리석고 작은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을 그 때에는 어린아이의 모든 근(根)을 성취하고, 그가 뒷날에 점점 자라나 모든 근이 성취되면 그 때는 어른의 모든 근을 성취하는 것과 같이, 배우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직 왕성한 안락은 얻지 못하였다가 내지 배움이 없는 계와 배움이 없는 모든 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눈으로 항상 빛깔을 보더라도 마침내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이 없는 좋은 해탈을 닦아 나고 멸함과 내지 덧없음을 관찰합니다. 귀는 소리를 분별하고 코는 냄새를 분별하며, 혀는 맛을 분별하고 몸은 부딪침을 분별하며, 뜻은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이 없는 좋은 해탈을 닦아 나고 멸함을 관찰합니다. 비유하면 마을 가까이 큰 돌산이 있는데, 끊기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고 뚫리지도 않아 한결같이 두텁고 짜여 있으면 비록 사방에서 바람이 불더라도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배움이 없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눈으로 항상 빛깔을 분별하고...... 내지 뜻으로 항상 법을 분별하더라도 마음의 해탈과 슬기의 해탈을 방해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굳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니, 안으로 한량이 없는 좋은 해탈을 닦아 나고 멸함을 관찰합니다."

그때 이십억귀 비구는 거듭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심을 떠나 마음이 해탈하고

성냄이 없는 해탈 또한 그렇고

멀리 떠나 마음이 해탈하고

탐욕과 사랑도 아주 다 없어졌네.

  

모든 집착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또 생각을 잊지 않고

느낌이 생기는 곳 환희 알면

그것에 대해 마음이 해탈하네.

  

그 마음이 해탈한 사람

그 비구는 뜻이 쉬고 그치고

모든 할 일은 이미 마치어

다시는 할 일을 만들지 않네.

  

마치 저 큰 돌산은

네 가지 바람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빛깔, 소리, 냄새, 맛, 부딪침과

여섯 감관이 항상 그것 대해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

  

마음은 언제나 굳게 머물러

법의 나고 멸함을 환히 관찰하네.

  

존자 이십억귀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에 스승의 마음은 기뻐하시고, 많이 아는 범행자들은 존자 이십억귀의 말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그때 존자 이십억귀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존자 이십억귀가 물러가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저와 같이 말해야 한다. 이십억귀와 같은 사람은 지혜로써 말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추키지도 않고, 또한 남을 낮추지도 않고, 바로 그 이치를 말하였다. 그것은 저 왕성한 거만을 가진 자가 그 이치도 얻지 못했으면서 스스로 사람에서 뛰어난 법을 얻었다고 자랑하여, 스스로 손해 보는 것과 같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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