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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처 241잡아함소연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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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30,956회 작성일 21-07-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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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잡아함소연법경

241. 소연법경(燒燃法經)

  

이와 같이 나는 보고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베샬리의 잔나비 못 가에 있는 중각 강당에 계셨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 비구들이여, 차라리 불에 달군 구리쇠 산대로써 그 눈을 태워 불붙게 할 지언정, 눈의 <의식>으로써 빛깔 모양을 잡아서 아름다운 형상을 취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빛깔 모양을 취하거나 아름다운 형상을 취함으로써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은 잠기는 쇠탄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이여, 차라리 쇠 송곳을 불에 달구어 그 귀를 찌를지언정 귀의 식으로써 소리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소리를 취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귀의 식이 소리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소리를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은 잠기는 쇠탄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 비구들이여,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그 코를 벨 지언정 코의 식으로써 냄새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냄새를 취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냄새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냄새를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귀에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은 잠기는 쇠탄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이여,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그 혀를 끊을 지언정 혀의 식으로 맛의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맛을 취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맛의 모양을 취해 아름다운 맛을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은 잠기는 쇠탄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이여, 차라리 강철로 된 날카로운 창으로 그 몸을 찌를지언정 몸의 식으로써 부딪치는 모양이나 아름다운 부딪침을 취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부딪치는 모양이나 아름다운 부딪침을 취함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은 잠기는 쇠탄자와 같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수면(睡眠)은 어리석은 삶이다. 어리석은 삶은 이익도 없고 복도 없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차라리 잠잘 지언정 저 빛깔에 대해서 깨닫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만일 깨닫는 생각을 일으키면, 반드시 얽맴과 다툼이 생겨,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하고, 하늘과 사람을 이익 되게 하거나 안락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와 같이 공부한다. 즉 '나는 이제 차라리 불에 달군 쇠창으로 내 눈을 찌를 지언정, 눈의 식으로써 빛깔 모양을 취해, 세 가지 나쁜 세계에 떨어져 긴 밤 동안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나는 오늘부터 바르게 생각하여, 눈은 덧없고 하염있으며, 마음의 인연으로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혹은 빛깔과 눈의 식과 눈의 부딪침과 눈의 부딪치는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즉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정, 그것도 또한, 덧없고 하염있으며 마음의 인연으로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귀, 코, 혀, 몸의 들이는 곳에 대해서도 마땅히 그렇게 배워야 한다. 차라리 쇠창으로 내 몸을 꿸 지언정, 몸의 식으로써 부딪치는 모양이나 아름다운 부딪침을 취함으로써 세 가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부터 바르게 생각하여, 몸은 덧없고 하염 있으며, 마음의 인연으로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혹은 부딪침과 몸의 식과 몸의 부딪침과 몸의 부딪치는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즉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정, 그것도 또한 덧없고 하염있으며 마음의 인연으로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고.

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공부한다. 즉 '잠이란 어리석은 삶이다. 이 어리석은 삶은 결과도 없고 이익도 없으며 복도 없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자지 않을 것이며 또한 깨닫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키면 얽맴과 다툼이 생겨,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치로써 이익 되지 않게 하고 안락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이렇게 관찰하면, 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혹은 빛깔과 눈의 식과 눈의 부딪침과 눈의 부딪치는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정 그것에 대해서도 또한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 싫어하므로 바라지 않고, 바라지 않으므로 해탈하며 또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도한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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