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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5,568회 작성일 21-08-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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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바르게 본 것을 드러내다

 아난다가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슬피 울며 두 팔과 두 무릅과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절을 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아난다 "아난다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뒤로 부처님의 위신력만 믿고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서 닦지 아니하여도 부처님께서 삼매를 얻게 하여 주실 줄만 여기고 몸과 마음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나의 본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몸은 비록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마치 거지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행을 닦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마치 음식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배가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우리들이 지금 번뇌장과 소지장에 얽매어 있는 것은 고요하고 항상한 참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저의 부족한 것을 불쌍히 여겨 묘하고 밝은 마음을 설하여 보여주시고 도를 아는 눈을 열어주시기 원합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슴에 만자로서 훌륭한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이 찬란하고 현란하여 백천 가지 빛이 나타나며 티끌같이 많은 시방세계에 한꺼번에 퍼져서 시방세계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의 정수리를 비추고 다시 돌아와서 아난다와 대중들의 정수리를 비추었다. 

부처님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짐대를 세우며 시방 중생들로 하여금 묘하고 비밀한 본성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알아서 맑고 깨끗한 눈을 얻게 할 것이다. 

 아난다야, 네가 대답하기를 빛나는 주먹을 보노라 하였는데 주먹이 어찌하여 빛이 있으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네가 무엇으로 보느냐?"

아난다 "부처님의 전신이 염부단금 빛이어서 금덩이 같이 빛나시므로 빛이 있는 것이며 아난다가 눈으로 보았으며 손가락을 구부려 쥐었으므로 주먹이 되었습니다.“ 

부처님 "내가 오늘 진실한 말로 너에게 설명하니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비유로써 알게 할 것이다. 

 아난다야, 가령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네 눈이 없으면 네가 볼 수 없을 것이며 너의 눈으로 내 주먹에 비유하면 그 이치가 같겠느냐?"

아난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아난다의 눈이 없으면 아난다는 볼 수 없으며 부처님의 주먹에 비유하면 사실과 이치가 같겠습니다.“ 

부처님 "아난다야, 꼭 같다는 말이 옳지 않다. 왜냐하면 손이 없는 사람은 주먹이 끝까지 없으며, 눈이 없는 사람은 보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이다. 네가 시험 삼아 큰길에 나가서 눈봉사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눈이 없는데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내 눈에는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으로 말하면 눈봉사의 앞엣 것이 어두울 뿐이지 보는 것이 무슨 잘못됨이 있겠느냐."

아난다 "눈봉사의 눈에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본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 "아난다야, 눈봉사의 눈이 멀어서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는 것이 눈이 밝은 사람이 어두운 방에 있을 때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아난다 "부처님이시여,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이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눈봉사가 꺼멓게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을 비교하면 조금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 "아난다야, 눈이 먼 사람이 꺼먼 것만 보다가 문득 눈이 회복되어 대상을 볼 수 있게 되면 앞엣 물건의 여러 가지 색을 볼 것이다. 이것을 눈이 본다고 한다면 마치 어두운 방속에 있는 사람이 꺼먼 것만 보다가 문득 등빛을 얻어 밝아지면 역시 앞엣 물건의 여러 가지 색을 볼 것이며 이것은 등이 본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등이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이는 등이 보는 작용이 있으므로 등이라 하지 못할 것이며 또 등 자체가 보는 것이라면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등은 색을 비치는 작용만 있을 뿐이며 보는 것은 눈이지 등이 아니다. 이와 같이 눈은 색을 비치는 작용만 있을 뿐이며 보는 성품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는 이 말을 듣고 대중들과 함께 입으로는 할 말이 없으나 마음으로는 아직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여 부처님께서 다시 일러주시기를 합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부드럽고 빛나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펴시고 아난다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내가 처음 도를 이루고 사르나트에서 아야다등 다섯 비구에게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보리나 아라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분별하는 번뇌와 구생하는 번뇌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그때에 다섯 비구는 어떻게 깨닫고 아라한을 이루었느냐?"

 교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교진나 "저는 나이가 많아서 대중 가운데서 “알았다”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분별하는 번뇌와 구생하는 번뇌를 깨닫은 까닭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분별하는 번뇌를 비유하여 말하면 길가는 손이 객주 집에 들려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하고는 곧 행장을 차리고 길을 떠나는 것이요, 오래 머물러있지 않는 것입니다. 객주집 주인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물지 않는 것은 손이요, 머물러있는 이는 주인이니, 머물러있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번뇌라 하겠습니다.

 또 비가 개고 볕이 나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오면 허공에 있는 티끌을 보게 됩니다. 티끌은 조용히 흔들리고 허공은 고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요한 것은 허공이요, 흔들리는 것은 티끌이니, 티끌같이 흔들리는 것을 구생하는 번뇌라 하겠습니다."

부처님 "그러니라. 그러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시며 폈다 구부리시고 대중가운데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아난다야, 네가 지금 무엇을 보았느냐?"

아난다 "부처님께서 보배로운 손을 펴락 쥐락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 "아난다야, 네 말이 내가 손을 펴락 쥐락함을 보았다고 하니 그것은 내 손이 펴락 쥐락하였느냐? 네가 보는 것이 펴락 쥐락 하였느냐?"

아난다 "부처님이 대중가운데서 손을 펴락 쥐락할 때 아난다가 본 것이며 부처님의 손이 펴락 쥐락하였고 아난다의 보는 성품은 펴지거나 쥐어지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어느 것이 움직이고 어느 것이 고요하였느냐?"

아난다 "부처님의 손이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며, 저의 보는 성품이야 본래 고요하다는 것도 없거니와 가만히 있지 않았다할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 "그러하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손으로 광명을 놓아 아난다의 오른쪽 이마에 비추니 아난다가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고 다시 한 광명을 놓아 아난다의 왼쪽 이마에 비추니 아난다는 또 머리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부처님 "아난다야, 네 머리가 어찌하여 흔들리느냐?"

아난다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저의 오른쪽 이마과 왼쪽 이마에 비추시니 제가 그것을 본다고 머리가 흔들렸습니다.“ 

부처님 "아난다야, 네가 여래의 광명을 보느라고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고 하니 너의 머리가 흔들렸느냐? 너의 보는 성품이 흔들렸느냐?"

아난다 "부처님이시여, 아난다의 머리가 흔들린 것이며 아난다의 보는 성품이야 고요하다할  것도 없으며 흔들렸다 할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 "그러하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만일 중생들이 흔들리는 것을 분별하는 번뇌라고 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을 구생하는 번뇌라 한다면 너희들은 보라. 아난다의 머리가 흔들렸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내 손이 펴락 쥐락 하였을지언정 아난다의 보는 성품은 펴락 쥐락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흔들리는 것을 몸인 줄 알고 흔들리는 것을 앞엣 건인 줄 알면서 어찌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몸이니 앞에 것이니 하는데서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졌다하여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뀌게 일을 행하는 것이냐. 그리하여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내 몸인 줄로 잘못 아는 탓으로 이 몸이니 앞에 것이니 하는데서 바퀴 돌 듯하는 것이 모두 자기의 잘못으로 헤매는 것이다.“


(3-1-4) 바르게 본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저때에 아난다와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져서 가만히 생각하니 끝없는 옛적부터 본래 마음은 잃어버리고 앞엣 것을 분별하는 그림자를 자신의 마음인줄 알았던 것이다. 이제 알고 본즉 마치 젖을 잃었던 아이가 뜻밖에 어머니를 만난 것 같아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이 몸과 마음이 어느 것은 참되고 어느 것은 허망하며 어느 것은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며 어느 것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인 줄을 부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파세나디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파세나디왕 "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말이 이 몸이 죽은 뒤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열반이라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부처님을 뵙게 되니 아직도 그 때의 열반에 대한 의혹이 남아 있는데 어찌하면 이 마음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임을 분명하게알겠습니까? 여기 대중들도 번뇌가 있는 이는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 " 대왕이여, 당신의 몸이 지금 여기 있는데 그 몸이 금강과 같아 영원히 살겠는가 혹은 변하여 없어지겠는가?" 

파세나디왕 " 부처님이시여, 이 육신은 결국에는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 " 대왕의 몸이 일찍 없어져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없어질 것을 아는가?" 

파세나디왕 "부처님이시여, 무상하게 변하고 있는 이 몸이 비록 없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마치 불이 다 타고 재가 되듯이 끊임없이 점점 늙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몸이 결국에는 없어질 줄을 압니다.“ 

부처님 " 그렇습니다. 대왕의 나이는 이미 늙었으며 얼굴은 아이 때와 비교하여 어떻습니까?“ 

파세나디왕 "부처님이시여, 제가 어렸을 때에는 손발이 토실토실하고 살결이 고왔는데 나이가 들어 점점 자라나서는 혈기가 충실하였으며 지금은 늙어빠져 다 죽게 되었으며 살은 여위고 정신은 혼미하고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낯은 쭈구러져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몸이 어떻게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 대왕의 얼굴이 갑자기 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파세나디왕 "부처님이시여,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나 세월이 흘러감을 따라 점점 이렇게 늙었습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스무 살 때는 젊었다고는 하지마는 열 살 보다는 늙었고 서른 살 때는 또 스무 살 때보다는 늙었으며 그리하여 지금은 예순 두 살인데 쉰살 때를 생각하면 그 때보다 훨씬 건강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이렇게 엄청나게 변했는데 그 동안에 변한 것을 것을 위 십년씩 잡아 말하였습니다. 자세하게 생각하면 어찌 십년 이십년뿐 이겠습니까. 실로 해마다 늙었으며 어찌 해마다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달라졌으며 어찌 달마다 뿐 이겠습니까. 사실은 날마다 변하였으니 곰곰히 생각하면 잠간 동안도 머물러있지 않았는 것을 알겠습니다. 결국에는 이 몸이 없어지는 것을 알겠습니다.“

부처님 " 대왕이시여, 당신이 변하고 달라져서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몸이 결국에는 없어질 줄을 아노라 하였는데 그 없어지는 몸 가운데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는 줄을 알고 있습니까?“ 

 파세나디왕은 이 말을 듣고 합장하고 다시 여쭈었다.

파세나디왕 "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 " 내가 이제 일어났다 없어졌다하지 않는 성품을 보여주겠습니다. 대왕의 나이 몇 때에 겐지즈강을 보았습니까?“ 

파세나디왕  " 저의 나이 세 살 때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사당에 가서 재사를 올릴 때 이 강을 건너게 되었으며 그 때에 건넌 이 강이 커서 보니 겐지즈강인 줄 알았습니다.“ 

부처님 " 대왕의 말대로 스무살 때에 열 살 때보다 늙었고 지금 육십 두 살이 되도록 날로 달로 해로 때로 매일매일 달라졌다고 하니 세 살 때에 보았던 겐지즈강의 물과 열세 살 때에 보았던 겐지즈강의 물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파세나디왕 " 겐지즈강은 세 살 때와 꼭 같아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지금 예순 두살이지만 세 살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 대왕이 지금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낯이 쭈구러짐을 들어 설명하였는데 낯은 어렸을 때보다 쭈구러졌지만 지금 겐지즈강을 보는 기운이 어려서 겐지즈강을 보던 것보다 늙어졌습니까?“ 

파세나디왕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 " 대왕의 낯은 비록 쭈구러졌지만 보는 기운은 쭈구러지지 않았습니다. 쭈구러지는 것은 변했지만 쭈구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했는 것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 것은 원래부터 일어났다 없어졌다하는 것이 아니므로 몸은 죽더라도 몸을 지탱하는 기운은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찌하여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는 다른 사상가들의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까?“ 

 파세나디왕이 이 말씀을 듣고는 죽은 뒤에도 이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날 줄을 알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하며 처음으로 보는 일같이 좋아하였다.


(3-1-5) 바르게 본 것은 잃어지지 않는다

  아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배하고 다시 꿇어앉아 여쭈었다.

아난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성품이 일어났다 없어졌다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옳고 그름을 뒤바뀌게 일을 행한다’고 하십니까?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마음으로 저의 번뇌를 씻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팔을 흔들면서 팔을 손을 아래로 내리시고 말씀하셨다.

부처님 “아난다야, 나의 손이 똑바로 있느냐. 거꾸로 있느냐?” 

아난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 있다’라고 하지만 저는 부처님의 손이 똑바로 있는지 거꾸로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 “아난다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똑바로 있는 것이라 하겠느냐?” 

아난다 “부처님께서 팔을 세우고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면 똑바로라고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곧 팔을 세우고 말씀하셨다.

부처님 “아난다야, 이렇게 팔을 내리고 세우는 것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번 잘못 보고 두 번 잘못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난다야, 너의 몸과 여래의 깨끗한 몸을 팔에 비유하여 말하면 여래의 몸은 옳게 다 아는 것이라 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뀐 것이라 한다. 네 마음대로 자세하게 살펴보아라. 네 몸과 여래의 몸에서 뒤바뀌었다는 것은 어디를 가리켜 뒤바뀐 것이라 하느냐?”

 이때에 아난다는 대중들과 함께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생각했지만 몸과 마음의 뒤바뀐 데를 알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자비한 마음으로 아난다와 대중들에게 조수 같으신 음성으로 말씀하였다.

부처님 " 좋은 벗들이여, 내가 항상 말하기를 색법과 심법과 모든 인연과 마음에 딸린 여러 생각과 여러 가지 반연할 법들이 참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너의 몸이나  마음도 모두 묘하고 밝고 참된 마음가운데 나타나는 것인데 너희들이 어찌하여 본래 묘하고 밝고 뚜렸한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이 아득한 줄로 잘못 알고 있느냐? 

 밝은 성품을 잘못 아는 탓으로 어두컴컴하여 허공이 되고 허공과 어두컴컴한 가운데서 어두운 것이 작용하여 물질이 되었다. 이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섞여 생각과 모양을 내 몸으로 알고 반연하려는 것이 모여서 몸속에서는 흔들리고 밖으로는 앞엣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득하고 시끄러운 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번 잘못 알아 자신의 마음이라 인정하고는 이 마음이 결정코 자신의 몸속에 있는 줄로 생각하는 탓으로 자신의 몸이나 밖에 있는 산과 강이나 허공이나 땅덩어리 등을 모두 이 묘하고 밝은 참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맑고 묘한 큰 바닷물은 버리고 한방울 물거품을 잘못 인식하여 바닷물의 전체인줄 알고는 이것이 온갖 바다에 가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아득한 것을 잘못 아는데 두 번 잘못 보는 사람이니 나의 손을 드리운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너희들을 가련하다고 하는 것이다." 


 (3-1-6) 바르게 본 것은 돌려보낼 수 없다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해주시고 간절하게 일러주심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난다 " 저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여 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저가 부처님의 법문하신 내용을 깨달아 알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이 듣고 보는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저 묘하고 밝은 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의 본래 마음이라고는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원만한 말씀으로 가르쳐주시어 의심을 끊고 위없는 도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부처님 " 아난다야, 네가 오히려 듣고 보는 마음으로 내 법문을 들을 때 내가 설한 이 법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참된 법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김이라는 사람에게 보일 때 김이라는 사람이 저 손가락을 따라서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이나 한다면 김이라는 사람은 달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까지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밝은 달인 줄 알기 때문이다. 또 어찌 손가락만 모르는 것이겠느냐.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두운 손가락을 밝은 달이라고 잘못 알기 때문에 밝은 것인지 어두운 것인지를 전연히 모르는 것이다. 지금의 너도 그와 같은 것이다. 

 만일 나의 법문하는 소리를 깨달아 아는 것이 너의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나의 음성을 여의고도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여 말하면 손님이 객주에 들었을 때에 얼마동안 머물다가는 떠나가는 것이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객주집 주인은 갈 곳이 없으므로 주인이라 하는 것이다. 너도 그러하여 이것이 참으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나의 음성을 여의고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는 것이냐. 

 이것은 음성을 분별하는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얼굴을 분별하는 마음도 같은 것이다. 내 얼굴 모양을 여의고는 분별하는 마음이 아주 없어지면 그것은 빛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들이 이것을 몰라서 명체라 하는 것이다. 이것도 법진의 반연을 여의고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마음이라는 것을 제각기 돌려 보낼 곳이 있으니 어떻게 주인이라 하겠느냐?" 

아난다 " 만일 저의 마음을 제각기 돌려보낼 곳이 있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묘하고 밝은 본래 마음은 어찌하여 돌려보낼 곳이 없습니까?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부처님 " 아난다야, 네가 나를 볼 때에 보는 정기의 밝은 것이 비록 묘하고 밝은 참마음은 아니라 하더라도 옆에 있는 달과 같은 것이지만 달의 그림자는 아닌 것이다. 아난다야, 자세히 들어라. 돌려보낼 곳이 데 없는 까닭을 설명할 것이다. 

 아난다야, 이 큰 강당이 동쪽이 환하게 열리어 해가 뜨면 밝아지고 그믐밤에 구름이 끼면 어두워지고 창틈으로는 밖과 통함이 있고 담벽과 지붕은 막혀 있고 여러 가지 물건이 채워져 있는 데는 반연할 물건이며 물건이 없는 빈 데는 허공이다. 흐리고 흙이 섞여 비오는 모양은 어두운 티끌이며 비가 개면 맑은 날씨를 볼 것이다. 

 아난다야, 너가 보고 있는 이 여덟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이제 모두 그 본고장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어떤 것이 본고장이냐? 

 아난다야, 이 여러 가지 모양에서 밝은 것은 해로 보낸다.  

어찌하여 해로 보내느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원인은 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로 보내는 것이다. 어두운 것은 그믐밤에 보내고, 통한 것은 창틈에 보내고, 막힌 것은 담벽과 지붕에 보내고, 반연할 물건은 차별에 보내고, 빈 것은 허공에 보내고, 흙비는 티끌에 보내고, 맑 은날씨는 갠 데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 세상 온갖 것이 이와같은 여덟 가지 밖에 다른 것은 없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를 능히 볼 수 있는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보내겠느냐? 만일 밝은 데로 보낸다면 밝지 않을 때는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여야 할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밝고 어두운 것은 여러 가지 차별이 있지만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은 너의 본래 마음이 아니라 네가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본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니까 너의 본래 마음은 묘하고 밝고 깨끗하지만 네가 혼미하고 알지 못하여 본래 마음을 잃어버리고 바퀴 돌듯하면서 나서 죽는데서 헤매고 있으므로 너를 가련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3-1-7) 바르게 본 것은 섞이지 않는다 

아난다 " 이 보는 성품을 돌려보낼 곳이 없는 줄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참 성품인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부처님 " 아난다야, 네가 비록 번뇌가 없어진 깨끗한 성과는 얻지 못하였으나 나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초선천까지는 막힘없이 보았다. 아나률타는 남섬부주 보기를 손바닥위에 암마라 열매를 보듯하며 여러 보살들은 백천세계를 보며 시방의 여래는 티끌같이 많은 세계를 모두 보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내지 않는 것이다. 

 아난다야, 내가 너와 더불어 사천왕의 궁전을 볼 때에 그 중간에서 물과 육지와 허공에 사는 것들을 보았는데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여러 가지 모양은 다르나 모두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물건들로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네가 이 가운데 자기의 보는 성품과 다른 물건들을 분별도 할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들을 보는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의 보는 성품이며 어느 것이 물건인 것을 구별해 보아라. 

 아난다야, 네가 볼 수 있는 대로 보아라. 해와 달까지를 보더라도, 모두 물건이며, 너의 보는 성품은 아니다. 실금산을 두루 보아도, 여러 가지 빛깔은 다르나, 역시 물건이며, 너의 보는 성품이 아니다.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티끌이 날리는 것이나, 풀, 나무, 산, 강, 사람, 짐승들이 모두 물건이며, 너의 보는 성품이 아니다. 

 아난다야, 가까이 있는 물건이나 멀리 있는 물건들이 제각금 다르나 모두 너의 깨끗한 보는 정기로 보는 것인즉, 저 물건들은 차별이 있으나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으니, 차별없는 묘하고 밝은 정기가 참으로 너의 보는 성품인 것이다. 

 만일 보는 성품이 물건이라면 네가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나와 네가 한 물건을 함께 보는 것을 말하여, 나의 보는 성품을 네가 본다고 한다면 내가 물건을 보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여 나의 보지 않는 데를 네가 보지 못하느냐.

 만일 나의 보지않는 데를 네가 본다고 하면 네가 본다고 하는 나의 보는 성품은 저절로 내가 보지 않는 저 물건의 모양이 아닐 것이며, 

만일 나의 보지 않는 데를 보지 못한다면 나의 보는 성품은 저절로 물건이 아닐 것이니, 보는 성품이 물건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너의 참 성품이 아니겠느냐. 

 또 네가 지금 물건을 볼 때 물건이 보는 성품이라면 네가 물건을 보듯이 물건도 너를 보리니, 그렇다면 보는 중생과 보이는 물건의 체성이 한데 섞여져서 너와 나와 모든 세간이 제대로 있게 되지 못한다.

 아난다야, 네가 나를 볼 때 그것이 너의 보는 것이며, 나의 보는 것이 아니며, 너의 보는 성품이 온갖 물건에 두루하여 있으니 어찌하여 너의 참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것이니, 어찌하여 네게 있는 참 성품이 참되지 않다고 의심하여 내게 물어서 참되고 참되지 않음을 따지려하느냐?"  


(3-1-8) 바르게 본 것은 한량이 없다

아난다 " 부처님이시여, 만일 이 보는 성품이 원래 두루 가득하여 반드시 내 것이며 다른 것이 아니라면 내가 부처님과 함께 사천왕의 승장보배로 된 궁전을 보느라고 일월궁에 있을 때에는, 이견이 사바세계에 가득하였다가 절에 돌아와서는 절집만 보이고 방안에서 공부할 때에는 처마와 행랑만 보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이견의 자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가득 찼다가 방안에 있을 때에는 방안에만 가득하니, 이것은 큰 견을 뭉쳐서 줄인 것입니까? 지붕과 담벽에 막히어 끊어진 것입니까? 제가 이 까닭을 알지 못하니 크신 자비로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 아난다야, 이 세간에서 크다 작다 안이다 밖이다 하는 여러 가지 형용하는 것이 모두 앞에 물건을 두고 하는 말이니, 견이 줄어진다, 끊어진다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모난 그릇 속에서 허공을 보면 모난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난 그릇 속에서 보는 모난 허공이 모난 것으로 결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냐? 변하는 것이냐? 

 만일 결정적 모난 것이라면 다시 둥근 그릇에 담더라도 그 허공이 둥글지 않아야 할 것이며, 변하는 모난 것이면 모난 그릇 속에서도 모난 허공이 없을 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고 네가 말하지만 그 까닭이란 것이 이러한 것이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다야, 만일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자리에 이르고자하면 모난 그릇만 치우면 되는 것이다. 허공은 본래부터 모난 것도 둥근 것도 아니다. 허공의 모난 것을 치워야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네 말대로 방에 들어갔을 때 큰 견을 뭉쳐서 줄어졌다면, 해를 볼 때 견을 늘리어 해에 댄 것이겠느냐. 또 지붕과 담벽에 막혀 견이 끊어졌다면 벽에 구멍을 뚫었을 때는 어찌하여 견을 이은 매듭이 없느냐. 그 이치가 그렇지 않는 것이다. 

 온갖 중생이 끝없는 옛적부터 본래 성품을 잘못 알아 물건인 것같이 여기면서 본마음을 잃어버리고, 물건의 지배를 받는 탓으로 이 가운데서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을 보는 것이다. 만일 물건을 지배할 수 있게만 되면 여래와 같이 마음이 뚜렸하고 밝아서 도장에서 떠나지 않고서도, 한 터럭 끝에 시방세계를 넣을 수 있는 것이다." 


(3-1-9) 보는 것은 차별이 없다

아난다 " 부처님이시여, 견의 정기가 나의 묘한 성품인데, 이 묘한 성품이 지금 저의 앞에 있는데, 이 앞에 있는 견이 만일 나의 참 성품이면, 내 몸과 마음은 무엇입니까? 이 몸과 마음은 견을 분별하는 실체가 있는데, 저 견은 내 몸을 분별하는 성품이 없습니다.

 만일 저 견이 참으로 내 마음이면 나로 하여금 물건을 보게 할 것이며, 분별없는 견이 도리어 내가 될 것이며, 이 몸은 내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물건도 나를 보리라”하시던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자비하신 마음으로 저희들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 " 아난다야, “견이 네 앞에 있다”는 것이 옳지 않다. 그 견이 참으로 네 앞에 있어서, 네가 본다면 견의 있는 처소가 있을 것인데, 네가 어디 있다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너와 기타숲 절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법당을 보며, 위로는 해와 달을 보고, 앞에는 갠지즈 강을 보며, 네가 내 사자좌 앞에서 손으로 분명히 가리켜보아라. 여러 가지 모양이 그늘진 것은 숲이요, 밝은 것은 해요, 막힌 것은 벽이요, 통한 것은 허공이요,  풀과 나무와 검불과 쓰레기라도 크고 작은 것은 다르다. 형상 있는 것은 가리키지 못 할 것이 없으며 견이 반드시 네 앞에 있다면 손으로 분명하게 가리켜 낼 것이다. 어느 것이 견이냐?

 아난다야, 잘 생각해 보아라. 만일 허공이 견이라면, 허공이 이미 견이 되었으니, 무엇을 허공이라 하겠느냐. 만일 물건이 견이라면, 물건이 이미 견이 되었으니, 무엇을 물건이라 하겠느냐. 너는 이 여러 가지 물건에서 낱낱이 쪼개 내어, 밝고 묘한 견을 가리켜서 내게 보이되, 저 물건들과 같이, 분명하여 의심이 없게 하라." 

아난다 " 아난다가 지금 이 훌륭한 강당에서 멀리 갠지즈 강을 보고, 위로는 해와 달을 보며,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물건뿐이라 견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아난다는 아직 배우는 성문이라 그러하거니와 비록 보살이라도 이 여러 가지 물건 앞에서 견의 정기를 쪼개어 내어 온갖 물건을 여의고 따로 견의 성품인 것을 가리키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 " 그러하다. 아난다야, 

네 말과 같이 물건을 여의고는 따로 견의 성품이 없으므로 네가 가리키는 물건 가운데는 견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 다시 묻는다. 네가 부처님과 함께 기타숲 절에 앉아서, 숲과 동산과 해와 달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는데 이 가운데 반드시 네가 가리킬 견이 없다면 너는 다시 생각해 보아라, 이 물건들 가운데 어느 것이 견이 아니냐?" 

아난다 " 아난다가 다시 기타숲을 두루 살펴보아도 어느 것이 견이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나무가 견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보며, 나무가 견이라면 어찌 나무라 합니까? 이와 같이 허공이 견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허공이 견이라면 어찌 허공이라 합니까? 아난다가 다시 생각하니 이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자세하게 따져보면 견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 그러하다." 

 이에 대중 가운데 배움이 없는 이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이치의 끝과 처음을 알지 못하여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의 생각에 놀라워하는 줄을 아시고, 가엾은 생각을 내어 아난다와 대중을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부처님 " 깨달음에 마음을 낸 자들이여,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며, 진리에 맞으며, 속이지 않으며, 허망하지 않으며, 말가리들의 죽지 않으려고 어지럽게 속이는 네 가지 허망한 말이 아니다. 너희들은 잘 생각하여, 부질없이 기대하는 마음을 어기지 말라." 

 이때 문수보살이 사부 대중을 딱하게 여겨,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고 여쭈었다.

문수 " 부처님이시여, 이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물건이나 허공이 견인지 견이 아닌지, 그 두 가지 뜻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앞에 있는 물건이나 허공이 만일 견이라면 가리킬 수가 있어야 할 것이며, 견이 아니라면 보지 못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 이치가 어찌 된 까닭인 줄 알지 못하여 놀라워하는 것이며, 선근이 부족하여 그러는 것이 아니니 바라옵건대 크신 자비로 일러주소서. 이 여러 가지 물건과 견이란 것이 원래 어떻게 된 것이라서 맞다 아니다 할 수 없습니까?" 

부처님 " 문수보살이여, 시방의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머물러 있는 삼매 가운데는 보는 정기나, 볼 물건이나, 인식하는 마음이나 몸이, 모두 허공에 보는 헛꽃과 같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견이나 물건이나 인식하는 것들이 원래 보리의 묘하고 밝은 본체이니, 어찌 이 가운데 맞다 아니다 할 수가 있겠느냐.“

" 문수보살이여, 마치 네가 문수라면 다시 옳은 문수라 할 문수가 있겠느냐? 문수가 없겠느냐?" 

문수 " 부처님이시여. 제가 참 문수이니, 옳은 문수라 할 것이 없으며, 만일 옳은 문수가 있으면, 문수가 둘이 되겠습니다. 지금 문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서 여기에는 옳다 아니다 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  견이 묘하고 밝지만 저 허공과 물건들도 역시 그러하다. 원래 묘하고 밝은 위 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두렷한 참 마음으로서 허망하게 물건들과 허공과 보는 것 듣는 것이 되었으니, 마치 곁에 있는 달을 어느 것은 옳은 달이라 어느 것은 그른 달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문수보살이여, 한 달만이 참 달이니, 그 가운데서 옳은 달이라 그른 달이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에 이것은 견이라 하고 이것은 물건이라 하여서, 여러 가지로 분별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생각이므로, 이 가운데서 맞다 아니다 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거니와, 만일 이 참된 정기의 묘하고 밝은 각의 본성을 깨닫기만 하면, 금시에 “견이라고 가리킬 수 있다 가리킬 수 없다” 하는 데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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