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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3,737회 작성일 23-02-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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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처음배우는 이의 필요한 일을 말하다

(6-1) 세계를 보임 

(6-1-1) 일곱 갈래가 벌어지는 까닭

  이 법문을 마치시니 아난다와 대중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시는 비밀한 인이신 반달라주의 뜻을 받들어 이 경의 이름을 듣고 선나를 닦아 성인의 지위에 나아가는 수승한 이치를 깨달았으므로 마음이 훤칠하게 고요해졌다. 삼계의 도를 닦는 자로서 부처님께 정례하고 합장하고 공경하며 여쭈었다.

  "큰 위덕을 갖추신 부처님이시여, 자비하신 말씀으로 중생들의 미세한 의혹을 잘 열어주시며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통쾌하여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이 묘하고 밝고 참되고 깨끗한 마음이 본래 원만하였으며, 땅과 풀과 나무와 구물거리고 굼틀거리는 벌레들까지도 곧 여래의 근본인 진여이며 성불하신 본체입니다. 부처님의 본체가 진실하거늘 어찌하여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아수라와 인간과 천상의 여러 가지 갈래가 있습니까? 이 여러 갈래는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까? 중생들의 허망한 습기로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이시여, 보련향비구니는 보살계를 지니고 남몰래 음행을 하고는 음행은 살생도 아니고 훔치는 것도 아니므로 업보가 없다고 허망한 말을 하더니 말을 마치자마자 여근에서 맹렬한 불이 일어나고 나중에는 마디마다 불이 타면서 무간지옥에 들어갔으며, 유리왕은 구담종족을 모두 죽였고 선성비구는 온갖 법이 공하다고 허망한 말을 하다가 산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이런 지옥은 일정한 곳이 있습니까? 혹은 제각기 업을 지어 제각기 받는 것입니까? 바라건댄 자비하신 마음으로 어리석은 소견을 열어주시며 계행을 지니는 여러 중생도 결정적인 이치를 듣고 기쁘게 받들어 범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부처님 "통쾌하다. 이 묻는 말이 여러 중생이 사특한 소견에 끌리지 않게 하니 자세히 들어라. 차근히 일러줄 것이다.

  아난다야 온갖 중생이 실재로는 본래 참되고 깨끗하지만 허망한 소견으로 인하여 허망한 버릇이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제 자격 안에 일과 자격 밖에 일이 갈라진 것이다. 

  아난다야 제 자격 안에 일이란 것은 중생의 분수 안에 것을 말하는 것이니 지저분한 애욕으로 인하여 허망한 애정이 생기고 정이 쌓여 쉬지 않으면 애욕의 물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맛나는 음식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생기며, 앞에 사람을 생각하되 사랑하거나 원망하거나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며, 재물에 탐을 내어 속으로 침을 흘리면 온몸에 기름이 쌓이며, 마음으로 음행할 것을 생각하면 남근과 여근에 물이 흐른다. 아난다야 여러 가지 애정이 다르지만 물이 흘러 맺히는 것은 마찬가지라 축축하고 젖어서 올라갈 수 없으므로 자연히 떨어지게 되며 이것을 자격 안에 일이라 한다. 

  아난다야 자격 밖에 일이란 것은 중생의 분수 밖에 것을 말하는 것이니 우러러 사모함으로 인하여 빈 생각이 생기고 생각이 쌓여 쉬지 않으면 수승한 기운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마음으로 계율을 가지면 몸이 가볍고 맑아지고 주문을 외우거나 결인을 익히면 눈 띠가 씩씩하고 마음으로 천상에 나가기를 원하면 꿈에 날아다니고, 마음을 불세계에 두면 성스러운 경계가 나타나고, 선지식을 섬기면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 아난다야 여러 가지 생각이 다르지만 가벼워 뜨는 것은 마찬가지라 날아 뜨고 잠기지 않으므로 자연히 뛰어나게 되며 이것을 자격 밖에 일이라 한다. 

  아난다야 온갖 세간의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나는 것은 순한 버릇을 따라서 있게 되는 것이며 죽는 것은 거슬린 버릇을 따라 변하여 가는 것이며 목숨이 떨어지려할 때에 따뜻한 기운이 식지 않아서 거슬린 버릇과 순한 버릇이 서로 어울리면서 일생에 지은 착한 짓과 나쁜 짓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순전한 생각만 가진 이는 날아올라 천상에 나게 되며 만일 나는 마음에 복과 지혜와 깨끗한 서원까지 겸하였으면 저절로 마음이 열려 시방부처님을 뵙게 되며 여러 정토에 소원대로 나게 된다. 

  애정은 적고 생각이 많은 이는 멀리 날아오르지 못하여 날아다니는 신선이나 기운 센 귀왕이나 날아다니는 야차나 땅에 다니는 나찰이 되어 사천으로 다니며 거리낌이 없으며 그 가운데 좋은 원력과 좋은 마음으로 불법을 보호하거나 계율을 보호하고 계행가지는 이를 따랐거나 주문을 보호하고 주문가지는 이를 따라 다녔거나 선정 닦는 이를 보호하여 법인을 안전하게 보전하였으면 이런 이는 부처님의 자리 앞에 나게 된다. 

  애정과 생각이 적당한 이는 날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아 인간에 나며 생각은 밝으므로 총명하게 되고 애정은 어두우므로 우둔하게 된다. 

  정이 많고 생각이 적은 이는 축생에 들어가며 중하면 기는 짐승이 되고 경하면 나는 짐승이 된다.

  정이 칠푼이며 생각이 삼푼이면 수륜을 지나내려가서 화륜의 갓에 나게 되며 맹렬한 불기운을 받아서 아귀가 되는 것이므로 몸에는 항상 불이 타고 물도 몸을 해롭게 하여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백천 겁을 지낸다. 

  정이 구푼이며 생각이 일푼이면 화륜을 뚫고 내려가서 풍륜과 화륜이 맞닿은데 까지 들어가며 경하면 유간지옥에 나고 중하면 무간지옥에 난다. 

  순전히 애정만 있는 이는 아비지옥에 떨어지며 떨어지는 마음에 대승을 비방하였거나 부처님의 계율을 파하였거나 거짓말로 법문을 연설하였거나 신도의 보시를 헛되게 탐하였거나 덕이 없으면서도 공경을 받았거나 오역죄와 십중죄를 지었으면 다시 시방지옥으로 가서 난아. 나쁜 업을 지은대로 스스로 받는 것이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받으므로 일정한 곳이 있는 것이다.


(6-1-2) 지옥

  아난다야 이런 것은 모두 중생이 스스로 지은 업으로 받는 것이며 열 가지 익힌 버릇이 원인이 되어 여섯 가지 두루 어울리는 과보를 받는다. 

  아난다야, 첫째는 음행하는 버릇으로 마주 붙음으로 서로 비비는데서 비롯하며 비비기를 쉬지 않으면 맹렬한 불길이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 마치 사람이 두 손을 서로 비비면 따뜻한 기운이 나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태우는 탓으로 무쇠평상과 구리기둥과 그러한 여러 가지가 있으며 시방의 여래께서 음행하는 것을 이름하여 애욕 불구덩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음욕 보기를 불구덩을 피하듯 한다. 

  둘째는 탐심내는 버릇으로 마주 고집함이 서로 빨아드리는데서 비롯하니 빨아드리기를 쉬지 않으면 혹독한 치움과 굳은 어름이 그 가운데서 꽁꽁 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빨아드리면 찬 기운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침노하는 탓으로 어허 으흐 호호하는 지옥과 푸른연꽃 붉은연꽃 흰연꽃 같은 지옥과 찬 어름지옥과 그러한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탐심 내는 것을 이름하여 탐욕물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탐욕을 보기를 토질 있는 바닷물을 피하듯 한다. 

  셋째는 교만한 버릇으로 마주 업신여김이 서로 자세하는데서 비롯하니 거슬려 흐르기를 쉬지 않으며 소꾸며 뛰어 넘는 파도가 쌓여 물결이 되는 것이 마치 사람이 입과 혀를 서로 빨면 침이 나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닥치는 탓으로 피바다와 잿물강과 뜨거운 모래와 독한 바다와 구리 녹은 물을 목구멍에 붓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아만한 것을 이름하여 어리석은 물을 마시는 것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아만한 것 보기를 큰 수렁을 피하듯 한다. 

  넷째는 성내는 버릇으로 마주 충돌함이 서로 거슬리는데서 비롯하니 거슬리기를 쉬지 않으면 속이타서 화를 내고 기운을 녹여 쇠가 되어 칼산과 쇠곤장과 칼나무와 칼바퀴와 도끼와 작두와 창과 톱이 있는 것이 마치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뻗치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마주치는 탓으로 불치고 가르고 베고 찍고 썰고 찌르고 부수고 치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성내는 것을 이름하여 잘드는 칼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성내는 것 보기를 목 찍는 것을 피하듯 한다.

  다섯째는 간사한 버릇으로 마주 달램이 서로 꾀는데서 비롯하니 꾀고 글어내기를 쉬지 않으면 오랏줄로 옭고 주리로 틀고 차꼬로 채우는 것이 마치 발에 물을 대면 초목이 자라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끄는 탓으로 고랑과 수갑과 칼과 족쇠와 채찍과 곤장과 초달과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간사함을 이름하여 참소하는 도적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간사한 것 보기를 늑대와 이리를 두려워하듯 한다. 

  여섯째는 허망한 버릇으로 마주 속임이 서로 거짓말하는데서 비롯하니 속여 넘기기를 쉬지 않으며 간사한 마음으로 꾀를 내어 티끌과 먼지와 똥과 오줌과 더럽고 부정한 것들이 있게 되는 것이 마치 티끌을 바람에 날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더치는 탓으로 빠져 가라앉는 것과 차 올리는 것과 날렸다 떨어지는 것과 빠져 흐르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속임을 이름하여 겹살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속이는 것 보기를 뱀을 밟는 듯이 여긴다. 

  일곱째는 원통케 하는 버릇으로 마주 미워함이 원한 품는데서 비롯하니 그리하여 돌을 던지고 바위를 굴리고 뒤주에 가두고 함거에 싣고 독에 넣고 부대에 넣어 치는 것이 마치 몰래 해하려는 사람이 악독한 마음을 품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없애려는 탓으로 던지며 차며 붙들며 사로잡으며 치며 쏘며 내버리며 움켜쥐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원수를 이름하여 위해귀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원수 보기를 사약 먹는 것 같이 여긴다. 

  여덟째는 나쁜 소견으로 마주 변명하는 신견과 견취와 계금취와 사견들이 서로 거슬리고 서로 반항하는데서 비롯하니 그리하여 재판하는 이 문초하는 이들이 증거를 들고 증인을 세우고 증거문서를 내는 것이 마치 길가는 사람들이 가고 오고하면서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마주 대는 탓으로 심문하는 것과 넘겨짚는 것과 고문하는 것과 조사하는 것과 들춰내는 것과 증거대는 것과 선동자 악동자가 문서를 들고 증명하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나쁜 소견을 이름하여 사견구렁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허망하고 국집한 소견 보기를 독한 구렁에 가는 것같이 여긴다. 

  아홉째는 억울케 하는 버릇으로 마주 덮어씌움이 서로 얽어 너무는 데서 비롯하니 그리하여 산으로 깔고 돌로 누르고 연자로 틀고 맷돌로 갈아 보습으로 째는 것이 마치 남을 모함하는 사람이 선량한 사람을 얽어 세우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미는 탓으로 누르며 주무르며 두들기며 밀며 차며 거르며 달아매며 뽑아내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얽어 넣는 것을 이름하여 참소하는 범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억울한 것 보기를 벼락맞는 것 같이 여긴다. 

  열째는 들추어내는 버릇으로 마주 드러 내는 것이 감추어 덮는데서 비롯하니 그리하여 거울로 비치며 촛불로 밝히는 것이 마치 햇볕아래서 그림자를 감출 수 없는 것과 같다. 두 버릇이 서로 고발하는 탓으로 나쁜 동무와 업경과 불구술들이 옛 죄를 들춰내고 묵은 업을 증거대는 여러 가지 짓이 있다. 그러므로 시방의 여래께서 감추는 것을 이름하여 숨은 도적이라 하였으며 보살들은 덮는 것 보기를 높은 산을 이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는 듯이 여긴다. 

아난다야, 무엇이 여섯 가지 두루 어울리는 과보인가? 온갖 중생이 육식으로 업을 지었으므로 불러오는 나쁜 과보가 육근으로부터 나게 된다. 

  첫째는 보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보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먼저 맹렬한 불이 시방세계에 가득함을 보게 되어 죽는 이의 정신이 날았다가 떨어지면서 연기를 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밝게 보는 것이니 여러 가지 나쁜 것을 보고 한량없는 무서움을 내는 것이며 둘째는 어둡게 보는 것이니 캄캄하여 보이지 않아 한량없는 두려움을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보는 불길이 듣는데 타면 끓는 솥과 구리물이 되고 숨에 타면 검은 연기와 검은 불꽃이 되고 맛에 타면 볶은 탄환과 무쇠 죽이 되고 촉에 타면 뜨거운 재와 이글이글하는 숯불이 되고 뜻에 타면 별 같은 불이 쏟아져 뿌려 허공에 흩어진다. 

  둘째는 듣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듣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파도가 천지에 뒤덮임을 보게 되어 죽는 이의 정신이 빠져 내려가면서 물결을 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귀가 열리는 것이니 여러 가지 떠드는 것을 듣고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며 둘째는 귀가 막히는 것이니 적막하게 들림이 없이 넋이 가라앉는 것이다.

  이러한 듣는 물결이 듣는데 대면 꾸짖는 것과 힐문하는 것이 되고 보는데 대면 우뢰와 영각함과 악독한 기운이 되고 숨에 대면 비와 안개가 되며 여러 가지 독한 벌레를 뿌려 온몸에 가득하게 되고 맛에 대면 고름과 피와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되고 촉에 대면 짐승과 귀신과 똥과 오줌이 되고 뜻에 대면 번개와 우박이 되어 마음과 넋을 부수는 것이다. 

  셋째는 맡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맡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먼저 독한 기운이 먼 곳과 가까운 곳에 가득함을 보게 되어 죽는 이의 정신이 땅속에서 솟아나와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코가 열리는 것이니 여러 가지 나쁜 냄새를 맡고 마음이 소란하여지는 것이며 둘째는 코가 막히는 것이니 숨이 통하지 못하여 기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맡는 기운이 숨에 쏘이면 막히는 것과 통하는 것이 되고 보는데 쏘이면 불과 횃불이 되고 듣는데 쏘이면 빠지는 것과 솟아오르는 것과 넘치는 것과 끓는 것이 되고 맛에 쏘이면 썩는 것과 상한 것이 되고 촉에 쏘이면 터지는 것과 끈적거리는 것이 되며 살이 화상을 입어 백천 구멍이 생겨 한량없는 것이 빨아먹고 생각에 쏘이면 재와 쟁기가 되며 모래와 자갈을 날려 온몸에 뿌려 부수게 된다. 

  넷째는 맛보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맛보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먼저 쇠그물에 맹렬한 불이 붙어 세계가 불길에 휩싸임을 보게 되며 죽는 이의 정신이 그물에 걸려 거꾸로 매어달려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빨아드림이니 찬어름이 맺혀 몸과 살이 얼어터지는 것이며 둘째는 내뿜는 것이니 맹렬한 불을 날려 살과 뼈를 태우는 것이다.

  이러한 맛보는 것이 맛에 닿으면 승락하는 것과 참는 소리가 되고 보는데 닿으면 타는 쇠와 녹는 돌이 되고 듣는데 닿으면 날카로운 칼과 병장기가 되고 숨에 닿으면 큰 철망이 되어 국토에 가득히 덮이고 촉에 닿으면 활과 살과 쇠뇌와 쏘는 것이 되고 생각에 닿으면 뜨거운 쇠를 날려 공중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다섯째는 촉하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촉하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큰 산이 사방으로부터 와서 마주치며 나갈 길이 없음을 보게 되어 죽는 이의 정신이 무쇠성에 불뱀과 불개와 호랑이와 사자가 있음을 보고 우두옥졸과 마두나찰이 창을 들고 성문으로 몰아넣어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누르는 촉이니 산이 합하여 몸을 짜며 뼈와 살과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며 둘째는 떼어내는 촉이니 칼로 몸을 찢어 염통과 간을 오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누르는 촉이 촉에 닿으며 길과 삼문과 관청과 문초하는 곳이 되고 보는데 닿으면 태우는 것과 사르는 것이 되고 듣는데 닿으면 두들기는 것과 치는 것과 칼로 쑤시는 것과 활로 쏘는 것이 되고 숨에 닿으면 흘치는 것과 고문하는 것과 결박하는 것이 되고 맛에 닿으면 보습으로 가는 것과 재갈 물리는 것과 찍는 것과 끓는 것이 되고 생각에 닿으면 떨어치고 날리고 볶고 굽는 것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는 생각하는 업보로 나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다. 생각하는 업이 어울리면 죽을 때 나쁜 바람이 불어 세계를 부수는 것을 보게 되어 죽는 이의 정신이 바람에 날려 공중에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바람 따라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견한다. 하나는 깨닫지 못함이니 매우 아득하고 갑갑하여 함부로 헤매는 것이며 둘째는 아득하지 아니함이니 분명하게 아는 것이 괴로워서 한량없이 지지고 볶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나쁜 생각이 뜻에 맺히면 형벌 받는 지방과 장소가 되고 보는데 맺히면 거울과 증거하는 것이 되고 듣는데 맺히면 마주치는 큰 돌과 어름과 서리와 먼지와 안개가 되고 숨을 맺히면 불수레와 불배와 불함거가 되고 맛에 맺히면 크게 의치는 것과 뉘우치는 것과 우는 것이 되고 촉에 닿으면 커지고 작아지고 하루 동안에 만번 살고 만번 죽고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난다야 이것이 지옥의 열가지 원인과 여섯가지 과보이니 모두 중생이 아득하고 허망함으로 짓는 것이다.

  만일 중생들이 악한 업을 두루 지었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한량없는 겁을 지낸다. 육근으로 각각 지으며 짓는 것이 경계를 겸하고 근을 겸하면 여덟 가지 무간지옥에 들어간다. 몸과 입과 뜻으로 살생과 훔치는 것과 음행을 지으면 십팔 지옥에 들어간다. 삼업을 겸하지 않으면 중간에 살생이나 훔치는 것 한가지를 지으면 삼십육 지옥에 들어간다.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한근으로 한가지 업만 지었으면 일백팔 지옥에 들어간다. 

  중생들이 제각기 따로 지었지만 온 세계에서 같은 죄로 같은 곳에 가게 되는 것이며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며 본래부터 있는 것은 아니다.


(6-1-3) 아귀, 축생, 인간, 신선

  아난다야, 중생들이 계율을 파하였거나 보살계를 범하였거나 부처님의 열반법을 훼방하였거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업을 지으면 여러 겁 동안 불타는 고생을 겪다가 죄 받는 일이 끝나면 귀신의 보를 받는다. 

  업인을 지을 적에 물건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물건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괴귀가 된다. 

  색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바람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발귀가 된다. 

  의혹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짐승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매귀가 된다. 

  원한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벌레를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고득귀가 된다. 

  기억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쇠운 있는 곳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여귀가 된다. 

  교만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기운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아귀가 된다. 

  거짓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으늑함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염귀가 된다. 

  밝은 것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정령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망량귀가 된다. 

  이루어짐을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밝음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역사귀가 된다. 

  당파를 탐하여 죄를 지었던 이가 죄를 마치고 사람을 만나서 형상을 이루면 전송귀가 된다. 

  아난다야, 이 사람들은 모두 순전한 애정으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업화로 타서 없어지고 올라와서 귀신이 된 것이며 모두 제의 망상으로 지은 업보로 불러온 것이므로 보리를 깨달으면 묘하고 두렷하고 밝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야, 귀신의 업보가 끝나면 애정과 생각이 함께 공하게 되어 세간에서 빚졌던 사람과 원수끼리 만나면서 축생이 되어 묵은 빚을 갚게 되는 것이다. 

  물건에 붙었던 괴귀가 물건이 스러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올빼미 종류가 된다. 

  바람에 어울렸던 발귀가 바람이 스러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나쁜 일을 미리 알려주는 짐승 종류가 된다.

  여러 가지 축생에 붙었던 매귀가 축생이 죽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여우 종류가 된다.

  벌레에 붙었던 고독귀가 벌레가 없어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독한 종류가 된다.

  쇠운을 만났던 여귀가 쇠운이 다하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회충 종류가 된다. 

  기운을 받았던 아귀가 기운이 스러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잡아먹히는 종류가 된다.

  으늑함을 만났던 염귀가 으늑한 것이 없어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사람에게 복종하는 종류가 된다. 

  정령과 어울렸던 망량귀가 어울렸던 것이 스러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시절을 찾아다니는 종류가 된다. 

  밝음과 어울렸던 역사귀가 밝은 것이 스러지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상서로운 종류가 된다. 

  여러 가지 사람을 만났던 전송귀가 사람이 죽고 과보가 끝나면 세간에 나서 흔히 순종하는 종류가 된다. 

  아난다야, 이런 것들은 모두 업화가 말라버려서 묵은 빚을 갚느라고 축생이 된 것이다. 이것들도 역시 자기의 허망한 업으로 불러온 것이므로 보리를 깨달으면 이 허망한 인연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네 말과 같이 보련향비구니나  유리왕이나 선성비구의 그런 나쁜 업이 본래 스스로 발명한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며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준 것도 아니며 오직 자기의 망상으로 부른 것을 스스로 도로 받는 것이다. 보리마음에서는 모두 허무한 망상으로 맺힌 것이다.

  아난다야, 이런 중생들이 묵은 빚을 갚을 적에 받는 이가 지나치게 받으면 그 중생이 다시 사람이 되어서 지나친 것을 도로 받아간다. 도로 갚아줄 사람이 힘이 있고 복과 덕까지 겸하여 있으면 인간에서 사람의 몸을 버리지 않고 그 더 받은 힘을 갚아주며 만일 복덕이 없으면 도리어 축생이 되어 더 받았던 것을 갚게 된다. 

  아난다야, 만일에 돈이나 재물을 썻거나 그 힘을 부렸던 것은 갚을만큼 갚으면 자연히 그치게 되지만 중간에 그의 목숨을 죽였거나 그의 고기를 먹었으면 이런 것은 미진같이 많은 겁을 지나면서 서로 잡아먹고 서로 죽이게 되는 것이 마치 굴러가는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그치지 않는다. 삼매를 닦거나 부처님의 출현하심을 만나면 그치게 된다. 

  올빼미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우악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나쁜 일을 미리 알려주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괴이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여우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용렬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독한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심술궂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회충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미천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잡아먹히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겁약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복종하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노동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 

  시절을 찾아다니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글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난다. 

  상서로운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총명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순종하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이 되면 통달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아난다야, 이런 이들은 모두 묵은 빚을 갚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끝없는 옛적부터 업보로 얽혀 뒤바뀐 탓으로 서로 낳고 서로 죽이니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며 옳은 법을 듣지 못하고 번뇌 속에서 바퀴돌듯 하므로 이런 무리들은 불쌍하고 가련한 것이다.

  아난다야, 사람으로서 정각을 의지하여 삼매를 닦지 않고 허망한 마음으로 수행하여 생각을 보존하고 몸을 굳히어 사람이 갈수 없는 산과 숲 사이로 다니는 열 가지 신선이 있다.

  아난다야, 중생들이 약 먹는 것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먹는 도가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지행선이라 한다. 

  풀과 나무 먹는 것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약을 먹는 도가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비행선이라 한다.

  쇠나 돌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변화하는 도가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유행선이라 한다.

  움직이고 그치는 것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기운과 정기가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공행선이라 한다.

  진액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윤택한 덕이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천행선이라 한다.

  정기와 빛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정수를 빨아드리는 것을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통행선이라 한다.

  주문과 금께를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술법을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도행선이라 한다.

  생각하는 마음을 견고하게 하고 쉬지 않으며 생각하는 정신이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조행선이라 한다.

  만나서 어울림을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감응하는 것이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정행선이라 한다.

  변화하는 도를 견고하게하고 쉬지 않으며 깨닫는 이치가 원만하게 성취한 이는 절행선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런 이들은 모두 사람으로써 마음을 연단하였으나 정각을 닦지 않고 따로 오래 사는 이치를 얻어서 천년이나 만년을 살면서 깊은 산중에나 바다의 섬이나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사는 이들도 역시 바퀴 놀 듯 하는 망상으로 흘러 다니는 것이다. 삼매를 닦지 않았으므로 과보가 끝나면 도로 와서 여러 갈래로 들어가게 된다. 


(6-1-4) 천상, 아수라

  아난다야, 세상 사람들이 항상 머물러있기를 구하지 않으므로 아내나 첩의 애정을 버리지 못하나 정당하지 못한 음행에는 마음이 흘러가지 않으며 고요하고 맑아져서 밝은 빛이 나는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해와 달에 이웃하게 되니 이런 무리들을 사천왕천이라 한다. 

  자기 아내에게도 애욕이 엷어졌으나 깨끗하게 있을 적에 온전한 맛을 얻지못하는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일월의 밝은 데를 지나가서 인간의 꼭대기에 나게 되니 이런 무리들을 도리천이라 한다. 

  음욕의 경계를 만나면 잠간 어울리나 떠나면 생각이 없어져서 인간세상에서 흔들릴 적이 적고 고요할 적이 많는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허공에 명랑하게 머물려있으며 햇빛과 달빛이 위로 비치지 못하므로 이 사람들은 제 각금 광명이 있으니 이런 무리들은 수염마천이라 한다. 

  온갖 때에 항상 고요하다가도 어울리려는 것이 오면 거절하지 못하는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정미로운 데로 올라가서 아래 있는 인간이나 천상과는 접촉하지 않으며 망가지는 겁을 만나도 삼재가 미치지 못하니 이런 무리들을 도솔타천이라 한다. 

  나는 생각이 없지만 대상을 응하여 일을 행하며 할 수없이 만날 때에도 맛이 밀씹는 것과 같은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변화하는 하늘에 나게 되니 이런 무리들을 낙변화천이라 한다. 

  세간에 마음이 없으면서도 세간과 같이 일을 하며 어울리는 일에는 아주 초월한 이는 목숨이 마친 뒤에 변화있고 변화없는 경지에서 뛰어나니 이런 무리들을 타화자재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러한 여섯 하늘이 형상으로는 흔들리는데서 뛰어나며 마음으로 자취로 아직도 어울리므로 여기까지를 욕계라 한다. 


 아난다야, 이 세상에서 마음 닦는 사람들이 선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지혜가 없으나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않고 다니거나 앉거나 할 때에 생각까지 전혀 없어져서 애욕이 생기지 않고 욕계에 머물고자 하지 않으면 이 사람이 즉시 범천에 나게 되니 이런 무리를 범중천이라 한다. 

  욕계의 버릇이 없어지고 욕심을 여읜 마음이 현저하게 나타나서 여려가지 계율을 따라서 좋아하는 이 사람은 그때부터 범천의 덕을 행하니 이런 무리를 범보천이라 한다.

  몸과 마음이 묘하고 원만하여서 위의가 어지럽지 않고 계행을 깨끗이 가지며 밝게 깨달으면 이 사람은 그때부터 범천대중을 통솔하여 대범왕이 되니 이런 무리를 대범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온갖 고통과 번뇌가 침노하지 못하며 비록 진정한 삼매를 닦는 것은 아니나 청정한 마음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초선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그 다음 범천은 범천사람들을 거느리고 범천의 행을 원만히 하였으며 깨끗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고 맑아서 광명이 나니 이런 무리를 소광천이라 한다.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어 밝게 비침이 끝이 없고 시방세계가 수정같이 비치니 이런 무리를 무량광천이라 한다.

  두렷한 광명을 빨아드려 교화하는 자체를 이루고 청정한 교화를 행하며 응하여 작용하는 것이 다함이 없으니 이런 무리를 광음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온갖 걱정이 침노하지 못하며 비록 진정한 삼매를 닦는 것은 아니나 청정한 마음에 거치른 번뇌를 굴복시켰으므로 이선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하늘사람들이 두렷한 광명이 음성이 되고 소리를 내어 묘한 이치를 드러내며 정미로운 행을 이루어 적멸한 즐거움과 통하니, 이런 무리를 소정천이라 한다. 

  깨끗하고 공한 것이 앞에 나타나고 끝없이 끌어내며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편안하여 적멸한 즐거움을 이루니 이런 무리를 무량정천이라 한다.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해지고 깨끗한 덕을 성취하여 의탁할 좋은 경계가 앞에 나타나서 적멸한 즐거움에 돌아가니 이런 무리를 변정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수순함 얻었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한량없이 즐거움을 얻으니 비록 진정한 삼매를 얻은 것은 아니나 편안한 마음에 환희한 기쁨을 갖추었으므로 삼선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하늘사람들이 몸과 마음에 침노함이 없어 괴로운 원인이 없어졌으나 즐거움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오래되면 없어질 것이니 괴롭고 즐거운 두 마음을 한꺼번에 버려 거치른 모양이 없어지고 깨끗한 복의 성품이 나니 이런 무리를 복생천이라 한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마음이 원융하여서 수승한 알음알이가 깨끗하여지고 복이 한없는 데서 묘하게 수순함을 얻어 오는 세상까지 이르니 이런 무리를 복애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하늘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먼저 마음에서 깨끗한 빛이 한량이 없고 복과 덕이 두렷하고 밝아져서 닦아 증한 이들을 광과천이라 한다. 둘은 먼저 마음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싫어하고 고도 낙도 아닌 마음을 정밀하게 연구하기를 간단함이 없이하여 고도 낙도 아닌 도를 원만하게 궁구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없어지면서 생각이 재와 같이 되어 오백 겁을 지내며 이 사람이 났다 없어졌다하는 마음으로 근본인을 삼았으므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성품을 발명하지 못하여서 첫 반 겁 동안에는 없어지고 나중 반 겁 동안에는 도로 나니 이런 무리를 무상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네 가지 수승한 무리는 온갖 세간의 괴로움과 즐거움으로는 움직일 수 없으니 비록 진정한 움직이지 않는 경지는 아니지만 얻는다는 마음에는 공부의 작용이 잘 익어졌으므로 사선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가운데 또 아나함들이 모여 사는 오불환천이 있다. 욕계의 구품습기를 함께 끊어버리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잊어버려서 아래에는 있을 데가 없으므로 고도 낙도 아닌 마음이 다 같은 가운데서 있을 곳을 마련한 것이다.

  아난다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둘이 모두 없어져서 싸우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이는 이런 무리를 무번천이라 한다. 

  고도 낙도 아닌 마음이 일어나듯 꺼지는듯하면서 시새울 여지조차 없는 이는 이런 무리를 무열천이라 한다.

  시방세계를 묘하게 보는 것이 두렷이 맑아지고 앞에 경계와 걸리는 생각까지 아주 없어진 이는 이런 무리를 선견천이라 한다.

  정미로운 견이 앞에 나타나서 온갖 작용이 마음대로 되어 걸림이 없는 이는 이런 무리를 선현천이라 한다.

  모든 기미를 끝까지 다하고 색성의 성ㅍ무까지 다하여 비어 없는 가에까지 들어간 이 이런 무리를 색구경천이라 한다.

  아난다야, 이 다섯 불환천은 사선의 네 천왕들도 듣기만하고 부러워만할 뿐이며, 보지도 알지도 못하니 마치 이 세상의 깊은 산과 넓은 들의 거룩한 도장이 모두 아라한의 있는 데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다야, 이 십팔천은 홀로 다니면서 어울림이 없어 형상의 얽힘이 끝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색계라 한다. 

  아난다야, 이 색구경천인 색계 위에 두길래 길이 있다. 고로 낙도 아닌 마음에서 지혜를 발명하여 지혜의 광명이 원통해지면 티끌세상에서 뛰어나 아라한을 이루어 보살승에 들어가니 이런 무리들은 마음을 돌이킨 큰 아라한이라 한다. 

  만일 고도 낙도 아닌 마음에서 그것까지 싫어하는 생삭을 이루고 몸까지도 장애되는 줄을 깨달아서 장애를 소멸하고 공한데 들어가는 이런 무리를 공처천이라 한다.

  모든 장애가 소멸되고 장애가 없어졌다는 것까지 없어지면 그 가운데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미세한 반분만이 남게 되니 이런 무리를 식처천이라 한다. 

  공과 색이 모두 없어지고 식의 마음까지도 없어져서 시방이 고요하게 되어 훤칠하게 갈 데가 없어진 이런 무리를 무소유처천이라 한다. 

  식의 성품이 움직일 수 없거든 멸하는 것으로써 끝까지 궁구하되 다함이 없는데서, 다한다는 성품을 발명하여 있는듯하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며 다한듯하면서도 다한 것이 아니니 이런 무리를 비상비비상처천이라 한다.

  이런 무리들은 공함을 궁구하였으나 공한 이치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불환천부터 성인의 도가 끝난 이런 무리들은 마음을 돌이키지못한 둔근 아라한이라 하며, 무상천부터 오는 외도천들은 공함을 다하였으나 돌아가지 못하는 이는 누있는 것을 잘못 알았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문득 바퀴 돌듯 하는데 들어간다. 

  아난다야, 이 여러 천상의 하늘사람들은 범부의 업보로 받는 것이므로 과보가 끝나면 바퀴 돌 듯 하는데 들어간다. 저 천왕들은 삼매에 다니는 보살로서 점점 닦아 나아가서 성인의 무리로 향하여 가는 수행하는 길로 들어간다.

  아난다야, 이 사공천은 몸과 마음이 다하여 없어지고 선정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서 업과의 색이 없어지며 이로부터 끝까지를 무색계라 한다.

  이런 이들은 모두 묘한 각의 밝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허망한 집착으로 발생하는 탓으로 삼계가 있게 되었으며 그 중간에서 허망하게 일곱 갈래를 따라다니면서 헤매는 것이므로 보특가라들이 제각금 그 종류를 따르게 된다.

  아난다야, 이 삼계에 네 가지 아수라가 있다. 귀신갈래에서 불법을 보호한 힘으로 신통을 얻어서 허공에 들어가는 것이 있으니 이런 아수라는 알로 나는 것으로 귀신갈래에 잡힌다.

  천상갈래에서 덕이 모자라서 떨어진 것은 있는 데가 해와 달과 이웃하였으니 이런 아수라는 태로 나는 것으로 인간갈래에 잡힌다. 

  어떤 아수라는 세계를 붙들고 있으며 기운이 세고 두려움이 없으므로 범천왕과 제석천왕과 사천왕들로 더불어 권리를 다투며 이런 아수라는 변화하여 나는 것으로 천상갈래에 잡힌다. 

  아난다야, 따로 한 종류의 못난 아수라가 있어서 바다 속에서 생겨나서 물구멍에 잠겨 있으면서 아침에는 허공으로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물에 돌아와서 자며 이런 아수라는 습기로 나는 것으로 축생갈래에 잡힌다. 


(6-1-5) 통틀어 맺는 말

  아난다야,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과 신선과 천상과 아수라의 일곱 갈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어둡고 캄캄한 하염 있는 모양이다. 허망한 생각으로 몸을 받아 나고 허망한 생각으로 업보를 따르는 것이며 묘하고 두렷하고 밝은 하염없는 본 마음에는 모두 허공 꽃과 같아서 원래 집착할 것이 없으니 한결같이 허망한 것뿐이며, 아무 근거도 없다.

  아난다야, 이 중생들이 근본 마음을 알지 못하여 바퀴 돌듯하면서 한량없는 겁을 지내도 참되고 깨끗한 본성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살생과 훔치는 것과 음행을 따르는 탓이며 이 세 가지를 버리면 살생과 훔치는 것과 음행이 없는데 나게 되며, 세 가지가 있는 데는 귀신갈래며 없는 데는 천상갈래다. 있는 데와 없는 데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바퀴 돌듯하게 되는 것이다. 묘하게 삼매를 닦아 얻은 이는 바로 묘하고 항상하고 고요하여 있는 데와 없는 데가 모두 없어지고 없어졌다는 것까지도 없어져서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 것도 없는데 살생하고 훔치고 음행하는 일을 어찌 따르겠느냐.

  아난다야, 세 가지 업을 끊지 못하여 제각금 따로 짓는 일이 있게 되고 제각금 따로 지음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의 따로 짓는 일로 한데 모이게 되므로 일정한 곳이 있게 된다. 자기의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며 허망한 것을 내는 원인이 없으므로 어떻다고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이제 행을 닦아 보리를 얻으면 세 가지 의혹을 끊어야한다. 이 의혹을 끊지 못하면 신통을 얻더라도 모두 세상의 하염 있는 공용이며 습기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마의 길에 떨어진다. 아무리 허망함을 끊으려해도 거짓 일만 더하게 되는 것이므로 여래가 가엾은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너의 허망으로 스스로 짓는 것이며 보리의 허물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말은 올바른 말이고 다르게 하는 말은 마왕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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