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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진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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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7-08 14:01 조회 5,3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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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그 때에 유마가 여러 보살들에게 말했다.

 “여러 보살들이여, 당신들은 어떻게 해서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각자의 생각을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법자제보살 :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둘이지만 법은 본래 생겨나지도 않으며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진실한 법을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2) 덕수보살 : “나와 내 것이 둘이지만 내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 것이 있는 것이므로 만일 내가 없으면 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이치를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3) 보현보살 :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이 둘이지만 만일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얻을 것이 없으며 얻은 것이 없으므로 취할 것이 없고 버릴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니 이렇게 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4)  덕정보살 :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둘이지만 더럽고 깨끗함의 참 성품을 살펴보면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단지 적정하고 고요함을 따르게 되니 이렇게 보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5)  선숙보살 : “움직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둘이지만 움직이지 않으며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분별이 없을 것이니 이렇게 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됩니다.”

(9-6)  선안보살 : “모양 있는 것과 모양 없는 것이 둘이지만 모양 있는 것이 결국은 모양 없는 것인 줄 알면 모양 있는 것과 모양 없는 것에 치우지지 않고 평등한 마음을 내게 되니 이렇게 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9-7) 묘비보살 : “보살 마음과 성문 마음이 둘이지만 마음이 본래 공하여 보살도 없고 성문도 없음을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됩니다.”

 (9-8) 불사보살 : “착함과 악함이 둘이지만 착한 마음과 약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착함과 악함에 물들지 않으니 이렇게 마음을 내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됩니다.”

(9-9)  사좌보살 : “죄와 복이 둘이지만 죄의 성품을 바로 알면 복의 성품과 다르지 않으니 금강과 같은 지혜로 이 모양을 바로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10) 사자의보살 : “번뇌 있음과 번뇌 없음이 둘이지만 만일 모든 법의 평등함을 알면 번뇌가 있음과 번뇌가 없음이 다르지 않아 형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형상 없음에도 머물지 않으니 이렇게 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11) 정해보살 :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일어나는 것과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둘이지만 차별을 벗어나면 마음이 허공과 같아 걸릴 것이 없으므로 이렇게 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12) 나라연보살 :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지만 세간 성품이 공하여 세간에 집착함이 없는 것이 출세간이며 그 가운데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아 마음이 항상 고요하면 이것이 둘아닌 법이니 이렇게 될 수 있으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9-13) 선의보살 : “생사와 열반이 둘이지만 생사가 일어나는 본바탕을 바로 보면 생사도 없고 얽힘도 없고 풀림도 없는 바로 열반이니 이렇게 볼 수 있으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9-14) 현견보살 : “다함과 다하지 아니함이 둘이지만 법의 본바탕에서 보면 다함도 없고 다하지 아니함도 없는 것이니 이렇게 본바탕을 바로 보기만 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15) 보수보살 : “내가 있다는 생각과 내가 없다는 생각이 둘이지만 참성품에서 보면 나 자체가 있고 없음을 떠나 있으므로 이렇게 본질을 바로 본다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16) 전천보살 : “깨어있음(明)과 어리석음에 덮혀있음(無明)이 둘이지만 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명이며, 명과 무명을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다면 분별을 떠나 명과 무명이 평등한 것이니 이렇게 보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17) 희견보살 : “형상과 공함이 둘이지만 형상이 곧 공함이요. 공함 속에서 형상이 있으므로 형상과 공함이 둘 아닌 줄을 알면 진리의 세계를 여실히 보게 되나니 이렇게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됩니다.”

 (9-18) 명상보살 : “형상을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과 법의 본래 성품인 공함이 둘이지만 형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의 공함을 알면 지수화풍과 공함이 같은 것이니 이것을 철저히 알면 둘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19) 묘의보살 : “눈과 빛이 둘이지만 눈의 성품을 알고 빛의 경계를 떠나면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탐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아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하며, 이와 같이 귀과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접촉, 뜻과 집착에 대해서도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하니 이러한 상태가 되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9-20) 무진의보살 : “베품과 회향이 둘이지만 베풀면서 베품의 결과에 집착함이 없으면 베품과 회향이 동시에 일어나 베품이 곧 회향이 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지계와 참고 견딤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에 대해서도 집착함이 없이 행하면 원인과 결과가 둘이면서도 동시에 일어나 하나가 되니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1) 심혜보살 : “공함과 형상 없음과 지음 없음이 다른 것이지만 공함이 형상 없는 것이며, 형상 없는 것이 지음 없는 것이니 이 세가지 해탈이 다른 것이면서도 같은 것임을 알면 둘 아닌 법을 보게 될 것입니다.”

 (9-22) 적근보살 : “깨달음과 올바름과 청정함이 다른 것이지만 청정함이 바로 올바름이며, 올바름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니 깨달음과 올바름과 청정함이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는 것임을 알면 둘 아닌 법을 보게 될 것입니다.”

 (9-23)  심무애보살 : “몸과 몸 없어짐이 둘이지만 몸의 실상을 알고 나면 몸이 곧 없어짐을 알게 되어 몸과 몸 없어짐이 같은 것임을 알고, 이고 없음에 분별이 없으므로 이렇게 볼 수 있으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4)  상선보살 :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과 뜻으롤 짓는 업이 다른 것이지만 몸와 입과 뜻은 같은 육신에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하나의 육신으로 통섭되는 것이며, 이것이 지음 없는 무위법임을 알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것들이 지음 없는 것인 줄 알게 되어 둘 아닌 법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9-25) 복전보살 : “복된 행위와 죄 되는 행위는 둘이지만 참 성품은 공하여 복도 없고 죄도 없는 것이어서 행위는 있되 행위의 결과에 떠나 있으므로 둘 아닌 법을 보게 되니 이렇게 볼줄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6)  화엄보살 : “나로 말미암아 나와 남으로 분별되어 둘이 되는 것이니 실상을 보게 되면 분별이 끊어져 나와 남의 구별이 없게ㅐ 되니 두 가지 법에 머물지 않고 둘 아닌 법을 보게되니 이렇게 볼 줄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7) 덕장보살 : “소유와 얻음이 둘이지만 얻는 것이 없으면 소유가 없으니 취하고 버림이 없고, 취하고 버림이 없는 것이 바로 둘이 아닌 법이니 이렇게 되면 둘 아닌 법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8) 월상보살 : “어두움과 밝음이 둘이지만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있는 것이지 원래부터 밝음과 어두움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이와 같이 알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29) 보인수보살 : “출세간을 좋아하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이 둘이지만 원래 세간과 출세간은 도에 이르는 방편으로 있는 것이지 본질저긍로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세간이나 출세간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것이 둘 아닌 법이니 이렇게 바로 볼 수 있다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30) 주정왕보살 : “정과 사가 둘이지만 선정에 머물면 정이니 사니 하면서 분별하지 않아 둘이면서도 둘을 여의게 되니 이렇게 머물면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31) 낙실보살 : “실다운 것과 실답지 못한 것이 둘이지만 진실을 보는 이는 실다운 것도 실답지 못한 것도 보지 않으며 오직 지혜의 눈으로 본질만을 볼 뿐이니 이렇게 볼 수 있는 자는 둘 아닌 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9-32) 문수보살 : “진실한 법은 말도 없고 말 할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어서, 모든 문답을 떠나는 것을 둘 아닌 법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9-33) 많은 보살들이 말을 마치자 문수가 유마에게 물었다.

 “우리들이 제각이 자신의 생각들을 말하였습니다. 거룩한이여, 당신은 어떤 것이 둘 아닌 법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마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그대로 있었다.

 한참 후 문수보살은 유마를 찬탄하여 말했다.

 “훌륭합니다. 글자도 없고 말까지도 없는 것이 참으로 둘 아닌 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가 하나임을 말 할 적에 대중 가운데 오천 보살들이 분별심에서 벗어나 둘 아닌 법에 들어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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