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불가사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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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7-08 14:00 조회 5,207 댓글 0본문
(6-1) 이렇게 거룩한 순간에 사리불은 방안에 앉을 자리가 없음을 보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여기 있는 여러 보살과 많은 제자들이 어디에 앉을 것인가 하고 걱정하였다. 그러자 유마는 조용히 미소를 띄우며 사리불에게 물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법을 위하여 왔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편안하기 위하여 왔습니까?”
사리불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유마여, 나는 법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유마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평범한 진리가 사리불을 위시한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 들었다.
“사리불이여, 법을 구하는 수행자는 몸과 목숨도 아끼지 않아야 하며, 오로지 도를 이루겠다는 한 생각뿐이어야 합니다. 사리불이여, 형상에 대한 집착(色)과 형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느낌(受)과 형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생각(想)과 이러한 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행위(行)와 이러한 색수상행의 근본 뿌리가 되는 의식(識)으로는 천 년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법은 나와 대상이 부딪치는 경계에 있는 것도 아니며, 12인연법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이 우주를 철저하게 안다 하더라도 법을 보 것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도를 구하는 자는 부처에게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법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나는 수행자다 라는 생각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한 것이라 괴로움 뿐이다하는 극단적인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하며,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라 번뇌 속에 도가 있음을 보아야 하며, 즐거움이 가득한 열반의 세계에 들고자 도를 구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이라는 것도, 번뇌라는 것도, 열반이라는 것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6-2) 사리불이여, 마음이 고요하고 멸하면 그대로가 법입니다. 하나 되지 못한 산란한 마음으로 아무리 참선을 하여 생사해탈을 구해도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평등하여 애착이 없으면 그대로가 법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평등하지 못한 마음으로 열반에 들어가겠다고 애착한다면 평생을 수행해도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오고 감이 없으면 그대로가 법입니다. 티끌 만큼이라도 경계에 끄달림이 있으면 아무리 노력하여도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 취하고 버림이 없으면 그대로 법입니다. 좋고 나쁨에 물들어진 집착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무리 청정하게 수행을 한다하더라도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법에는 장소가 없는데 구태여 사찰을 고집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앞에 젊고 예쁘고, 늙고 추하다는 분별심이 왜 생기겠습니까? 만일 마음이 고요하여 법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생명현상은 단지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존재 본질을 보지 못함입니다.
법을 보고 듣고 깨닫고자 한다면 인식에 대한 앎이 생기는 것이지 존재본질에 대한 인식은 아닌 것입니다. 법은 그냥 있을 뿐입니다.”
(6-3) 유마의 이러한 말을 듣고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은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희열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둘러본 유마는 문수보살에게 조용히 물었다.
“당신께서는 한량없는 많은 세계를 다니셨습니다. 어느 세계에 가장 묘하고 훌륭한 공덕으로 이루어진 사자좌가 있었습니까?”
문수보살이 유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삼십육 항하사 세계를 지나가면 수미상이라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수미등이라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키가 엄청나게 커 팔만 사천 육순이나 되며 높이가 팔만 사천 유순이나 되는 사자좌에 앉아 있습니다. 이 사자좌가 제가 본 것 중에는 가장 묘하고 훌륭한 공덕으로 만들어지 것이었습니다.”
이 때 유마는 신통을 부려 자신이 누워 있는 조그마한 방에 수미등 부처님의 사자좌와 같은 의자를 삼만 이천개를 가져다 놓았다. 신기하게도 그 좁은 방은 의자가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사자좌가 있어도 보기 좋았다.
유마가 문수보살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문수보살이여, 당신과 함께 병 문안 온 여러 보살들께서 피곤하실 것입니다. 이 사자좌에 나아가 편안히 앉도록 하십시오.”
신통을 얻은 보살들은 쉽게 사자좌에 앉았으나, 수행의 연륜이 얕아 신통을 얻지 못한 보살들은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유마는 사리불에게 눈짓하며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리불은 의자가 너무 높아 앉을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유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리불이여, 신통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의자의 운인인 수미등 부처님께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예배 드리면 이 의자에 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유마가 시키는대로 오로지 한마음으로 예배하자마자 그 큰 사자좌가 보통의 의자처럼 보여 그냥 앉았더니 어느새 자신이 그 높은 사자좌에 앉아 있었다. 너무 신기하여 사리불은 유마에게 말했다.
“유마여,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게 좁은 방에 이렇게 높고 큰 의자들이 꽉 찼는데도 방이 비좁지 않으며, 비야리성의 모습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6-4)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들이 유마의 입을 통하여 흘러 나왔다.
“사리불이여, 지극하게 수행하여 생각할 수 없는 높은 마음경지에 도달핞 사람들은 마음을 꿰뚫어 자신과 우주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수행자는 지구를 티끌 하나에도 넣을 수 있으며, 티끌 하나를 지구만큼 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지금 제가 보인 신통처럼 본래 모습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큰 바다를 머리카락에 옮겨 놓더라도 바닷물 속에서 놀고 있는 거북, 자라, 모든 고기들은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바다 깊숙이 있는 용이나 귀신들도 자신의 몸이 줄어드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원래 바다의 성품도 변하지 않고 드대로 있습니다.
사리불이여, 시간적으로도 신통 현상이 일어납니다. 하루를 천 년이 되게도 하며, 천 년을 하루 되게도 합니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입니다.
이 우주를 구슬만한 크기에 담아 보여주기도 하며,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그 마음들을 모두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손바닥을 관하여 고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하더라도 손바닥 안에 있는 우주도 달려간 곳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몸을 천 개이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천개의 몸을 하나의 몸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수행자에게는 수행자의 몸으로, 술꾼에게는 술꾼의 몸으로, 거지에게는 거지의 몸으로, 창녀에게는 창녀의 몸으로 나타나 바른 삶으로 인도합니다 어떤 때는 바람 소리로, 어떤 때는 새 소리로, 얼떤 때는 물 소리가 되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좋은 길 잡이가 되기도 합니다.”
(6-5) 이 때 가섭은 생각할 수 없는 깊은 이 마음 법문을 듣고 찬탄하면서 사리불에게 말했다.
“비가 오고 난 뒤 아름다운 무지개가 산마루에 걸려 있어도 눈 먼 사람이 볼 수 없듯이, 생각할 수도 없이 깊은 마음 법문을 듣고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탄스럽구나. 이제 이 법문을 듣고 어느 누가 <위 없는 바란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겠는가! 이러한 마음을 낸 자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기어코 도를 이룰 것이다,”
가섭의 이 말을 듣고 거기 모인 모든 보살들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을 내니 세상이 더욱 밝게 빛났다.
그 때 유마가 가섭에게 말했다.
“거룩합니다. 가섭이여, 이러한 큰 마음을 낸 사람들은 서과 악을 가리지 않으며,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으며, 진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마왕의 몸을 나타내어 어리석은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며, 뜻이 견고하지 못한 자에게는 시련을 주어 뜻을 견고하게 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재물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 진리로 돌아오게도 합니다. 이와 같이 삶에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방편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쓴 약의 달콤한 껍질이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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