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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구도자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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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5,461회 작성일 21-07-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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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문수보살을 위시하여 많은 제자들을 유마의 병문안을 보내놓고 부처님께서는 암나나무 어거진 정원에 낮아 설법을 하고 계셨다. 갑자기 정원이 온통 금빛으로 빛났다.

 아난이 이러한 기적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상서로운 일이 일어납니까? 별안간 땅이 넓고 깨끗하며 주위가 온통 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것은 유마와 문수가 여러 대중들에게 둘러쌓여 함께 여기로 오려고 하므로 유마를 공경하는 대중들의 정성에 의하여 이러한 상서로움이 나타나는 것이다.”


(11-2) 유마 : “문수여, 우리끼리 많은 법담을 나누었으니 이제 부처님을 찾아 뵙고 법을 청함이 좋을 듯 합니다.”

 문수 : “좋습니다. 마침 때가 적당합니다. 함께 가서 부처님을 뵙도록 합시다.”


 (11-3) 유마가 신통력으로 방안에 있는 모든 대중과 사자좌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부처님이 계시는 암라나무절로 갔다. 부처님 앞에 대중들과 사자좌를 펼쳐 놓으니 절 마당에 가득하였다. 유마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올리니 모든 대중들도 따라 정성으로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보살들과 대중들을 칭찬하시며 자리에 앉기를 권하자 모두 자기 자리에 편안하게 앉았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유마보살의 자유자재한 신통력을 보았느냐?”

 사리불 : “부처님이시여, 잘 보았습니다.”

 부처님 :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 : “부처님이시여, 유마의 그 불가사의함은 저의 능력과 지혜로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11-4) 이 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지금 여기에 가득한 이 향기는 예전에는 한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향기입니다. 이것이 무슨 향기입니까?”

 부처님 : “이 향기는 중향세계의 보살들에게서 나는 것이다.”

 사리불이 아난에게 말했다.

 “아난이여, 우리들의 몸에서도 이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아난 : “그 향기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사리불 : “중향세계에 계시는 향적부처님께서 유마의 청에 따라 부처님께서 공양하시던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그 공양을 먹은 후로 향기가 납니다.”

 (11-5) 다시 아난이 유마에게 물었다.

 “이 향기는 얼마 동안이나 나겠습니까?”

 유마 : “우리들이 공양한 밥이 다 삭을 때까지 납니다.”

 아난 : “얼마 후에 삭겠습니까?”

 유마 : “이 공양은 칠 일이 지나야 삭게 됩니다. 칠 일이 의미하는 것은 육바라밀의 실천을 모두 마쳐 몸과 마음에 번뇌의 독기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이 공양은 부처님께서 드시던 것이므로 번뇌 독기가 없어야 삭게 되는 것입니다.”

 (11-6) 부처님 : “아난아, 잘 들어라.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밝은 지혜가 불토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보살의 자비심이 불토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큰 원이 불토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 올리는 의복이나 좌복이나 음식으로 불토를 이룰 수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부처님을 모실 나무로 된 누각을 지음으로 불토를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원만하고 뛰어난 형상을 가지면 불토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인생의 무상함을 철저히 가르쳐 실천하므로써 불토를 이룰 수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법문이나 경전을 통하여 삶을 성숙 시킴으로써 불토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선정으로써 마음의 고요함과 편안함을 성취하여 불토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중생의 숫자만큼 불토가 있는 것이다.

 아난아.

 팔만 사천 가지의 번뇌가 중생에게는 고통이지만 부처에게는 이 번뇌가 바로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번뇌로써 불토를 장엄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법문에 들어간 보살은 깨끗하고 훌륭한 불국토를 보고도 기뻐하지도 않으며, 탐내지도 않으며, 거만하지도 않으며, 더럽고 천한 불국토를 보고도 근심하지 않고, 장애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는다.

 오직 부처님을 생각하는 한마음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와 최악의 극한 상황까지도 청정하게 보이며, 즐거운 일로 보이는 것이다. 

 궁극적인 깨달음은 하나이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깨달음에 나아가는 방법은 중생의 숫자만큼이나 많다.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하나가 되듯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법은 자신의 근기에 맞는 것을 택하여 수행하지만,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면 지혜바다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불토를 이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이 모든 것이 성취하고 나면 같은 결과를 가져와 평등하므로 이름을 <변정각>이라고 부르며, <여래>라고 부르며, <붓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11-7) 아난 : “부처님이시여, 제가 지금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제일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부터는 부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부처님 : “아난아,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래도 성문중에서는 제일 많이 들었느니라.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리 보살의 마음을 헤아릴려고 해도 헤앚릴 수 없는 것이다. 갠지즈강의 모래수를 다 헤아린다 하더라도 보살의 선정과 지혜와 변재와 공덕은 다 헤아릴 수 없다. 유마가 한 번 보인 이 신통력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수천 만 년 동안 부린 신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변재가 더 큰 것이다.”


 (11-8) 그 때에 중향세계에서 온 보살들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저흳르이 처음에는 이 사바세계를 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뉘우치며 그런 마음을 모두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바세계도 모두 방편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을 위하여 법을 베풀어 주시면 영원히 수행의 지침이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향적세계의 보살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법을 설하셨다.

 “번뇌를 다 떨쳐버리고 나면 끝없는 지혜가 열리는 해탈 법문이 있다.

 번뇌가 있으면 삶과 죽음이 있고, 번뇌를 여의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살들은 삶과 죽음속에 있으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하여 자유로우며, 열반에 있으면서도 열반에 얽메이지 않는다. 중생들과 함께 삶과 죽음을 윤회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그들을 가엾게 여기며,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중생과 더불어 살면서 모든 문제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사성제의 법에 따라 풀려고 노력하며, 바른 법 지키기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행위는 하되 결과에 구애되지 않으며, 바른 법을 구하는데 온 정성을 다하면, 바른 법을 펴는 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적극적이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다 사랑하는 것이다.

 (11-9) 그러므로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잘 살고 못사는데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으며, 공부하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부지런히 공부하는 자를 부처님 같이 존경하며, 번뇌 속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바른 생각을 가지게 하며, 세속을 떠난 한가로움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나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며, 마음이 고요하여 선정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산란하여 지옥을 헤메는 중생을 잊지 아니하며, 고난과 시련 속에 있으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견디어내며, 찾아와 도를 묻는 사람을 스승처럼 대하고, 계율이 흐트러져 삶의 질서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바른 길로 인도하며, 도를 이루는 행위를 부모 같이 여기며, 선한 마음 뿌리를 심는 데는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성취를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외부적인 모습과 마음 씀씀이를 구족하게 하며, 온갖 나쁜 것을 버리어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며, 끝이 없는 생사바다도 용감하게 헤쳐나가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 닦는 일에도 부지런하며, 지혜의 칼로 번뇌의 도적을 베어내고, 인연법을 철저하게 깨우쳐 윤회에서 헤어나며, 모든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며, 산란한 마음과 여러 가지 유혹들을 정진으로 뛰어넘고, 세간에 있으면서도 무소유 정신으로 아무리 작은 성취에도 만족할 줄 알며, 세속에 있으면서도 도를 버리지 않으며, 의심이 많은 중생에게는 신통을 보여 주고 믿게 하며, 중생들의 근기를 잘 분별하며 적절한 법문을 설하며, 진실을 말하므로써 걸림이 없게 하며, 착한 일을 행하여 하늘 사람의 복을 받고, 끝없는 자비 마음을 내어 범천의 세계를 열고, 부처님의 행위와 마음을 닮고자 끝없이 노력하고 수행하는 것이 보살들이 삶과 죽음 속에 있으면서도 삶과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11-10) 또한 공함을 배우고 닦아 공에 머물지 않고 세간 속에 공의 꽃을 피워내며, 항상 고요한 선정을 닦고 배워도 선정에 머물지 않고 세간 속에서 선정의 꽃을 피워내며, 인생을 관하여 무상함을 알면서도 삶과 죽음을 미워하지 않으며, 존재의 본질을 관조하여 <나>라는 실체가 없음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바른 길로 가도록 교화하며, 마음이 고요함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행동은 활발하며, 마음은 세속을 떠나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착한 일을 즐겨 닦으며, 윤회하는 몸뚱이를 살펴보니 돌아갈 데가 없는 줄 알면서도 바르고 깨끗한 삶을 영위하며, 다시 태어남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중생들과 더불어 번뇌 속에서 살며, 행할 것이 없는 줄 알면서도 행동을 보임으로써 중생들의 모범이 되며, 모든 형상 있는 것은 허망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세상의 변화무쌍함 속에 뛰어들어 중생과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길인 것이다.

 삶과 죽음의 세계에 뛰어들어 복덕의 씨를 뿌리며, 자비의 씨를 뿌리며,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법약의 씨를 뿌리며, 이상의 세계에 머물면서 지혜의 꽃을 피우며, 서원의 꽃을 피우며, 법약의 꽃을 피워 중생의 병을 없애 주는 것이 보살의 길이며, 이것이 깨달음의 법이니 마땅히 그렇게 받아 지닐지니라.”

 이 때에 향적세계 보살들은 이 법문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우주에 가득 뿌리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방편을 잘 행하시도다.” 하며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향적세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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